DEMON
written SOW.
자그마한 새가 소리쳤다. 그가 돌아왔노라고. 숲 전체에 울려퍼지고 나서야 새들은 바삐 움직였다. 잡히면, 죽는다.
잡히지 않아도, 죽을껄.
나뭇잎 한 장 마저도 불태워버린 악마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숲에서 아이를 발견했다. 수많은 희생을 낳고서야 낳아진 아이.
드디어, 내게로 와주었구나.
나의 아이야.
26. 악마가 화나면
태형은 굳은 얼굴의 여주를 무섭게 내려다보았다. 여주의 얼굴이라고 한들 윤기일 것이지만 그래도 노려보았다.
내가, 누구한테 화를 내야 하지. 여주의 얼굴을 한 윤기에게 화를 내는 게 맞는 건가, 아니면 윤기의 얼굴을 한 여주에게 화를 내는 게 맞는 건가.
노려보고는 있지만 속으로는 열심히 고민을 하던 태형은 아직도 여주의 품에 안겨있는 윤기의 볼을 툭툭 쳤다. 나와.
아프지 않게 툭툭 쳤지만 볼을 맞은 윤기는 언짢은 기색을 내뱉으며 자신을 안으며 자고 있는 여주에게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런 윤기를 흘긋 쳐다본 태형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너, 처신 잘해. 내가 원래대로 돌아가는 순간.
"너, 죽어."
"‥."
"신의 가호고 뭐고, 난 여태껏 김여주 옆에 있던 새끼들 그냥 돌려보낸 적 없어."
윤기가 침을 꿀꺽, 삼켰다. 살기란 무서운 거구나. 인간의 형태를 한들 그는 악마였다. 여주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냥 보통 악마는 아닌듯했고,
아마 자신이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존재일 터. 자신은 그런 존재의 소중한 것에 안겨있었던 거다.
자각을 하니 더 무서운 건 기분 탓인가. 느릿느릿 방을 나온 윤기는 한숨을 내뱉었다. 무슨 첫사랑이 이렇게 힘들어.
* * *
"여주야."
"‥아, 졸린데."
태형은 잘자는 여주를 보자니 부글부글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니, 얘는 막 아무나 끌어안고 자? 내가 잘못 가르쳤네, 잘못 가르쳤어.
나긋한 목소리로 여주를 깨운 태형은 짐짓 화난 얼굴로 여주에게 말했다. 너, 내가 아무나 끌어안지 말랬지.
"내가? 누굴 끌어안아요?"
"잡종."
"아,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잡종을 잡종이라고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불러."
"예쁜 이름 있잖아요. 민윤기."
"예뻐? 그게?"
"왜, 입에 착착 달라붙는데."
허. 헛웃음을 뱉은 태형이 자신의 이름이 더 낫지 않냐며 우쭐댔다. 그 모습이 마냥 귀여워보여 여주는 그만 웃고말았다.
아니, 악마님이 이렇게 귀여워선 어떡하시려고요?
"내가? 귀엽다고?"
"응, 완전 귀여운데 지금."
"넌 지금 얼굴 완전 별로야."
"에, 뭐가 별론데요."
"잡종 얼굴. 빨리 바꿔."
"나도 빨리 바꾸고 싶은데."
"‥미안."
"갑자기 뭐가 미안해요."
"내가 애초에 너 인간계 보내줬으면, 이런 일 없었을텐데."
"됐어요, 새삼스럽게."
머쓱하게 웃던 여주는 태형의 머리칼을 쓸었다. 흑발 태형을 여기서 볼 줄은 몰랐는데. 윤기 몸으로 되니까 키가 커져서 그런지 태형 머리 쓰다듬기엔
좋네요. 그쵸? 태형은 윤기가 제 머리를 헤집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진 않았지만 그래도 여주가 자꾸 겹쳐보여 좀 낫긴 했다. 언제 바뀌는 거야.
마력 폭탄이 3일 정도 간다곤 했지만 대상에 따라 지속 시간이 천차 만별 인데, 태형이 악마일 경우엔 1분도 채 되지 않아 풀리고 남준과 같은 악마였는데
인간의 길을 택한 사람 같은 경우엔 2시간에서 3시간 정도 걸린다고 책에서 읽었던 것 같다. 근데 여주는 그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 독보적인 케이스라서
태형도 감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태형."
"왜."
"나 지금 느낌이 와요."
"뭐가."
"지금이에요, 나랑 윤기랑 바뀌는 거."
"? 무슨 소리야."
갑자기 새파래진 얼굴로 태형에게 마구 쏟아붓던 여주는 방문을 열고 윤기의 방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아무리 혼혈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정신으론
마력폭탄의 파장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침대에 틀어 막혀 끙끙 앓고 있는 윤기가 보였다. 여주는 윤기의 이마를 한 번 만져보곤 이것이 바로 자신이 저번에
책에서 읽었던 열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평범한 열벙이 아닌, 마력폭탄으로 인한 부작용 중 하나.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에 인간은 열을 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고 했던 것 같다. 정국도 감기라는 것에 걸렸을 때는 여주가 차가운 것을 이마에 대주곤 했으니.
"윤기야."
"‥."
"곧, 너랑 내 몸이 바뀔거야."
"뭐?"
"조금만 참고 있어. 곧 바뀔 거,"
여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태형의 앞에서 여주와 윤기의 근처에서 흑黑의 망령이 일었다. 그 망령은 여주에게도, 태형에게도 익숙한 망령이었다.
태형이 2년 전인가, 여주를 혼자 두고 나갈 일이 생겼었는데 그 때 잠시 만들어 두었던 망령이었다. 망령치곤 귀여운 크기에 여주와 자주 놀았더랬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나타나다니.
망령을 만든 태형이 느끼지 못한 기척을 여주가 느끼다니. 새삼 여주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태형에게 퍼졌다. 자신이 만들었음에도 미지수인 여주.
태형은 제 앞에서 머리를 짚고 일어나는 여주를 보며 쓰게 웃었다. 언젠가는, ‥.
27. #마계로 #돌아간다 #인간계투어 #성공적
윤기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몸에 기뻐하기도 잠시. 이제 자신에게 닥칠 이별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제 여주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 그 전에 자신은 태형에게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여주를 침대에 뉘인 태형은 우두커니 서 있는 윤기를 싸늘하게 쳐다보았다.
"이제 내가 널 살려둘 이유가 없어졌네."
"‥."
"살고 싶냐?"
"‥."
살고 싶지도, 죽고 싶지도 않았다. 제 아버지는 윤기를 탐탁지 않아했고, 어머니 몰래 킬러를 보내오기도 했다. 그 때마다 자신이 살 수 있었던 건
자신에게 내려진 '신의 가호'였던 것을 깨달은 지금, 윤기는 자신이 이제 살아가더라도 전처럼 대학을 걱정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 될 수 없단 걸 깨달았다.
침대에 누워 정신없이 자고 있는 작은 여자아이 하나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으리라는 것은 아마 악마도 알지 못했으리라.
"죽여주세요."
죽여달라는 윤기의 얼굴에는 상황과는 맞지않게 웃음이 피었다. 태형은 이제 그가 완벽한 '잡종'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안타깝게도, 너는 이제 완벽한 '잡종'이 되어버려서 신의 가호를 받는 너를 죽이기엔 우리 여주가 위험해져."
"‥?"
"잘 살아라. 니가 혼자 뒤져버리면 더 좋고. 아, 기억 지워줘?"
"아뇨."
"여주 기억에 손대는 건 싫은데, 좀 지우지?"
"김여주 기억에도 손 대지 마세요."
"왜, 여주가 너 기억하고 나중에 찾아오게 하려고?"
"‥ 제가 찾아갈건데요."
윤기의 허무맹랑한 소리에 태형이 헛웃음을 쳤다. 네가? 무슨수로? 마계와 인간계가 통하는 건 딱 하나, 마법진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그 마법진은 상급악마 이상이 그릴 수 있었다. 왠만한 마력이 체내에 있지 않는 한 그릴 수 없는 고도의 마법기술이었다.
물론 태형은 고작 3살 때 그려냈지만.
"마계에 오면, 김여주한테 닿기도 전에 넌 죽어."
"왜요."
"마계에서 '잡종'은 별미로 통하거든."
섬뜩한 말을 내뱉은 태형이 매력적으로 웃어 보였다. 윤기는 자신이 음식 취급을 당하는 거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듯 했지만 살아서 여주를 만나는 게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윤기는 태형이 여주를 들쳐 업는 것을 가만히 쳐다봤다. 아, 이제 곧 시간이 될 것이다. 그가 날개를 펼치는 시간이.
"마지막으로 충고하는데, 절대 마계에 올 생각 하지마."
여주가 나한테 부탁하더라도, 난 너 구하러 안가.
어느 새 금발로 변한 머리카락을 뽐내며, 그렇게 여주와 태형은 사라졌다.
28. 집에 돌아온 악마와 아이의 일상
마계에 도착하고 나서도 하루를 꼬박 잔 여주는 일어나자마자 보이는 익숙한 풍경에 절망했다. 기어코, 와 버렸구나.
침대 밑에 가지런히 놓여져 있는 슬리퍼에 발을 구겨 넣곤 질질 슬리퍼를 끌며 거실로 나간 여주는 마침 식사를 하러 가는 정국과 마주쳤다.
"야, 너 ‥."
"헐, 너 우냐?"
"내가, 너 안 일어나서 얼마나 걱정 했는데."
"정국아 왜 울어! 나 멀쩡해!"
"진짜 내가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고."
여주를 보자마자 눈물을 퐁퐁 쏟아내는 정국에 당황한 건 오히려 여주 였다, 항상 여주를 타일렀음 타일렀지, 약한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던 정국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하긴, 정국이 저렇게 눈물을 쏟아낼 만도 했다. 낯선 타임리프에 홀로 갇혀있었고, 빠져나오자마자 독기가 가득한 호수에 빠져 일주일 간 사경을 헤맸는데
겨우 깨어났더니 태형은 인간계에 가있고, 여주는 아직도 안 돌아왔고.
그렇게 며칠을 홀로 보낸 정국인데, 갑자기 여주를 들쳐 업은 태형이 돌아와선 정국을 계속 들들 볶았는데. 억울한 마음이 이제야 터져 나온 듯 했다.
"아 진짜 전정국 완전 애기네, 애기야."
"인간계 다신 가지마."
"‥."
인간계. 그 말을 듣자마자 무언가가 떠올랐어야 했던거 같은데. 여주는 제 머리 속에서 떠오르지 않는 '무언가'에 눈을 질끈 감았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 자신이 인간계에 머무르면서 '누군가'를 만났던 거 같은데, 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것인지.
곧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은 여주가 정국을 뒤따라 식사를 이었다. 태형의 빈자리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누군가, 여주의 기억을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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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죠ㅠㅠ 근데 에피소드가 3개밖에 없어서 미안해요ㅠㅠ 더 이상 쓰면 망글이 될 것 같아서 일단 가져왔어요!
다들 즐거운 방학이실텐데 저처럼 낮밤 바뀌게 생활하지 마시고 규칙적으로 사세여... 요즘 운동도 다녀서 힘들어 쥬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