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R GIRLFRIEND
written SOW.
㏂ 3 : 08 |
항상 제 글을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오래 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건데 이렇게 새벽에 낼 줄은 몰랐네요. |
여전한 얼굴을 한 너를 보며 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너, 제정신이야? 나의 물음에도 너는 그저 고개를 대충 끄덕이며
형의 사진 앞으로 가 씁쓸하게 웃었다. 김여주. 우리 형의 약혼자였으며 그녀의 부모는 좆같은 사랑의 도피를 주장한 형을 죽였다.
그 둘이 사랑했으면 얼마나 사랑했다고. 그렇게 죽인다고 우리 형에 대한 그녀의 애착이 떨어지지 않을텐데도 그녀의 부모는 가볍게 형을 죽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부모의 수하들이겠지만.
"네 부모가 우리 형한테 한 짓, 잊었어?"
"꽤나 진부한 말을 한다, 너."
"뭐?"
"내 부모가 했든, 누가 했든."
"‥."
"내가 한 거 아니잖아."
"야."
"근데 내가 왜 네 형 추모일에 오면 안 되는 건데?"
"김여주."
"넌 네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겠지."
"‥."
"넌, 내 생각 한 번이라도 해봤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내 뒷목을 꽉 잡는 듯한 압력이 느껴졌다. 형을 잃은 내 슬픔에만 비통해했지, 그녀의 동의도 없이 하루아침에 약혼자를 잃은
그녀의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이 내 시선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똑똑히 보라고, 네 비통함만큼 나도 비통해했다고.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내 부모?"
"‥."
"좆까, 그딴거 둔 적 없어."
"대체 어쩌자는건데."
"네 형 집에서 딱 한 달만 있을게."
"‥뭐?"
지금 내 앞에 있는 여자가 뭐라는거야. 세상에 이렇게 막무가내 일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당돌한 제안이었다. 내가 그 제안을 들어준다고 해서 얻는 것도 없는데,
내가 너의 말을 들어줄 필요도 없는데. 왜 나는 네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을까.
"그리고 ‥ 완벽히 떨어질게."
"누구한테서."
"너도, 박지운한테도 모두."
사실 불쾌하진 않았지만 애써 불쾌한 척을 하며 거절했다. "네가 우리 형 집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난 불쾌해.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줘야하는데?"
"제발, 내 마지막 부탁이야."
"‥."
"정말, 완벽히 떨어질거야. 다신 네 눈 앞에도, 박지운 앞에도 안 보일게."
"알겠어."
"고마워, 정말 고마운데."
"뭐."
"나랑 한 달만 같이 지내주면 안돼?"
"미쳤구나,너."
"날 투명인간 취급해도 돼. 그냥 한 달만 같이 지내줘."
투명인간 취급이라. 있는 사람을 없는 사람처럼 대하기가 쉬운 줄 아나. 애초에 왜 형의 집에서 지내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김여주의 눈은
확고해 보였다. 확실히 눈에 힘이 있는 걸까. 왜 나는 너의 눈을 보자마자 형이 떠오른 걸까.
마지못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알았으면, 절대로 같이 살지 않았을텐데. 아, 어떻게든 엮였으려나.
* * *
"한 달이나 붙어있을거야?"
내 물음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네가 우유를 마셨다. 새하얀 우유자국이 묻은 입가를 혀로 핥은 너는 고양이처럼 사뿐히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내 눈을 바라보며 어딘가 막혀있는듯한 음성으로 다시 대답했다. 걱정마, 곧 떨어질테니까. 나는 왜, 네 말이 이렇게도 불안할까.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것 같아 손으로 네 손목을 잡았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행동이라 당황했지만 이내 내 손에 잡힌 네 손이 너무 갸냘퍼
걱정스러운 말투가 나왔다. 너, 밥은 먹냐?
"당연하지."
"어제도 일하다 잤지."
"내가 능력이 좀 좋아야지. 다 나한테만 시키는 걸 어떻게 해."
"‥그래도 밥은 먹어가면서 해."
"넌 너무 잔정이 많아."
"뜬금없이 무슨소리야?"
"그냥, 그렇다고."
"싱겁긴."
가끔 너는 내게 알 수 없는 말들을 한다. 그리고 그 말들이 조금씩 나를 흔들어 나는 점점 무너지고 만다. 지금도 그렇다.
사랑은 어리석은 짓임이 분명하다. 나도 어느새 너의 뒤를 걷고 있었다. 소복히 쌓인 눈을 너는 만취한 상태로, 난 비교적 멀쩡한 상태로.
너는 새벽 거리에 쌓인 눈에 너의 발자국을 새기며, 나는 너의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겹치며. 그렇게 걷고 있었다.
연말이라서 그런지 너는 회식이 잦았다. 고작 일주일 좀 넘게 살았는데도 벌써 네 만취상태를 보는 게 3번째였다.
너는 술에 취하면 언제나 위태했다. 곧 바스라져버릴 낙엽처럼, 그렇게 너는 바람에 쓸려갔다.
바람에 휩쓸려가는 고엽을 낚아채는 건 온전히 너의 뒤를 걷고 있던 나의 몫이다.
"지운아."
"‥."
그리고 또, 너는 술에 취하면 나를 보며 형의 이름을 부르곤 한다. 살면서 형과 닮았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심지어 성격도, 말투도, 게임 취향도 달랐다.
"보고싶었는데, 왜 이제 왔어."
"‥."
네가 가까워진 사이를 더욱 좁혔다. 추운 날씨와는 다르게 네 입술은 눈처럼 포근했다. 따스한 네 온기에 내 마음이 녹아버릴 것 같아 겁이 났다.
아, 얼음은 불을 이기지 못한다더니. 나는 슬며시 눈을 떠 네 감긴 눈과 마주했다. 촘촘히 박혀있는 네 속눈썹에 물기가 어렸다.
형, 형은 김여주의 어떤 면에 반한거야? ‥ 난 지금 같은데.
형과 닮지 않은 나는, 형과 여자 취향은 같았나보다.
입술을 맞대긴했으나 굳게 닫혀있는 네 입술에 애가탔다. 너는 왜 나를 애타게 해? 왜 항상 날 불안하게 만들어? 왜 하필 ‥ 너야?
네 아랫입술을 아프지 않게 깨물어 틈을 만들어냈다. 은하의 계곡에 들어가면 이런 느낌일까. 눈을 맞으며 혀를 섞는 기분은 황홀했다.
너는 송곳니가 뾰족했다. 살짝 혀로 쓸어도 쓰라렸다. 흡혈귀도 아닌데 너에게 피를 빨릴 것 같아 거리를 다시 넓혔으나 다시 나를 당기는 너에 그만
피를 내어주기로 했다.
내가 형과 닮지 않아서 다행이다.
* * *
분명 내가 잠든 시간은 1월 8일 12시였다. 그리고 나는 초능력 따윈 없는 평범한 사람이고. 근데 내가 왜 지금 1월 9일 9시 38분에, 널 품에 안은 채로
잠들어 있는 걸까. 술을 마신 것 같지도 않았다. 술이 원체 안 받는 체질이라 두 잔만 먹어도 속이 쓰린데, 오히려 속이 좋았다. 어제 좋은 걸 먹은건가.
품에 안겨 곤히 자는 너를 계속 보다가 아침을 먹이고 회사에 보내야할 것 같아 부엌으로 향했다. 장 봐온게 없어 분명 찬거리가 없을텐데, 왜 냉장고가
알차게 차 있는거지. 흔들리는 눈으로 계속 꽉 차 있는 냉장고를 훑었다. 네가 장을 봐 왔다고 볼 수 없는건, 형이 좋아했던, 그리고 네가 싫어했던
크림치즈가 냉장고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이 왔다간 것도 아닐텐데 냉장고엔 가장 큰 사이즈의 크림치즈가 있었다.
어제 대체 뭘 먹었는지는 몰라도 개수대에 설거지할 게 많았다. 아침을 준비하려면 냄비도 있어야하는데, 냄비란 냄비는 모조리 개수대에 빠져있었다.
어제 고기를 구워먹었는지 싱크대에 기름기가 잔뜩 끼어있었다. 나 말고 다른 남자를 들인건가.
"지민아, 뭐해?"
"‥아, 아무것도 아니야."
잘못을 했다고 한다면 분명 네가 잘못한 것일 텐데, 반대로 내가 죄인이 된 듯 했다. 네 입에서 나올 진실이 두려웠던 걸까.
원래 정신이 없는 편이긴 했지만, 너를 만난 뒤로 나는 자주 필름이 끊겼다. 같이 술을 먹은 적도 없거니와, 다른 사람과 술자리를 가진 적도 없다.
정신이 없다곤 했지만 이렇게 필름이 끊긴 적도 없고, 일말의 기억은 언제나 남아있었다. 근데, 누가 내 머리를 차지한 것 마냥 아무런 기억도 남아있지 않다니.
내 앞에서 웃고 있는 네가 이질적이었다. 너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아니?
"어제, 집에 누구 왔었어?"
"‥아니."
"이거, 너 혼자 다 먹은거야?"
"아, 고기? 응."
"…이 크림치즈는?"
"‥."
너 크림치즈 싫어하잖아. 내 말에 당황한 너를 보며 나는 불안했다. 아직도 네가 형의 잔재를 쫓는거면 어쩌지. 나는 이미 네게 마음을 다 줘버렸는데.
너는 아직 형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거면 어쩌지.
"그냥, 사봤어."
"그래."
더 이상은 안 들을래. 미안해, 형.
* * *
--------CUT--------
미안, 괜찮아? 너무 세게 밀어붙인건지 너는 꽤 힘든 얼굴을 하고 있었다. 쾌락과 동반되는 고통이라, 마치 내가 양날의 검같은 존재가 된 것같아 괜시리
풀이 죽었다. 그런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너는 뜬금없는 얘기를 꺼냈다.
"있지, 파리에는 자살가게가 있대."
"‥그거 영화 아니야?"
"영화 속에라도 있잖아."
"그래서, 뭐."
"그냥 ‥ 한 번 가보고 싶어서."
"자살하고 싶어서?"
나는 나름대로 심각하게 말을 꺼냈는데, 너는 오히려 밝게 웃으며 물었다. 너는?
"난, 싫어."
"아, 아깝다. 너도 좋다고 하면 자살가게에 있는 커플세트 주문하려고 했는데."
"그런 것도 있냐."
"영화엔 있던데."
"‥죽지마."
"‥."
"네가 이 집에서 사는게 나한테 마지막 부탁이라고 했지."
"응."
"내 마지막 부탁이야. 죽지마."
내 말에 여전히 밝은 웃음으로 화답한 너는 너무 찬란했다. 나는 너의 그런 찬란함을 마주하기 버거워 눈을 감았다.
형, 형이 살아있었으면 내가 형 여자랑 잔게 되는 건가. 내 마음 속 독백에 대답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래도 말을 이었다.
근데 형, 지금 여기 없지? 그러니까 나 ‥.
"사랑해도 돼?"
독백이 아니었지만, 너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대신 너는 다른 물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너, 요즘 정신 없지?"
"그렇지, 졸작 준비도 해야하고."
"아니, 그거 말고. 막 필름 끊기듯이."
"‥그걸, 네가 어떻게."
내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묻자 너는 침대에서 내려가 얇은 슬립을 입으며 말했다. 내가 그것 때문에 너한테 온거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네 안에 ‥ 박지운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
내 호통에도 너는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말했다. 나와 방금 몸을 섞던 사람과는 다른 사람 같았다. 사람은 맞는지, 기계는 아닌지.
확인해보고 싶을 정도였다.
"네 몸에, 가끔 박지운이 들어와. 그리고 나한테 말을 걸어. 내가 너랑 살기 전에도, 박지운은 몇 번이나 네 몸으로 날 만나러 왔었어."
"‥설마 그 크림치즈도."
"지운이랑 둘이 장보러갔다왔을 때, 지운이가 사 놓은거야."
"좆같은 소리 하지마. 내가 그걸 믿을거 같아?"
"‥ 미안해 지민아."
* * *
Nec possum tecum vivere, nec sine te
나는 너와 함께 살 수도 없고, 너 없이 살 수도 없다
네가 내게 미안하다고 말을 한 후, 나는 그 집에서 나와 다시는 들어가지 않았다. 무너진 세상을 받치고 있었던 거였다.
이미 무너져버린 너를, 빈 껍데기였던 너를, 나는 애써 모아 품에 안고 있었던 거였다. 마치 죽은 새끼를 계속 돌보는 미련한 코끼리처럼.
내가 너를 놓자마자, 너는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 형이 기어코 너를, 데려가 버렸다.
의사의 말로는 뛰쳐나온 나를 찾으러 나온 네가 트럭에 치였다고 했다. CCTV가 그 모든 걸 담고 있는 바람에, 나는 너의 죽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너는 어쩌면, 다 알고 있었던게 아닐까. 내가 너에게 사랑을 느낄 거라는 걸.
형, 죄는 내가 벌였는데, 왜 벌은 여주에게 줘?
" 여주야, 보고싶어."
나는, 너 대신 파리에 갈게. 네가 가고 싶다던 가게에도 가볼거고, 네가 좋아하던 파리의 분위기도 느껴볼게.
그러니까.
"내 부탁, 지금이라도 들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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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좀 어려운 글이라서 당황하셨나여... 왜 그런지 알아여? 제가 새벽감성 터져서 그럼.
혹시 글에 대해서 궁금하신거 있으면 댓글로 말씀해주세여. 그리고 가장 중요한!! CUT부분!!!!!!!!!!!!! 이거 불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무슨 불맠을 쓰냐고요? 죄송합니다. 기존 암호닉분들 [암호닉 / 이메일 / (선택사항이지만 강제 필수인) 감상평] 이렇게 써주시면 되여.
감상평이야 뭐..... [SOW/[email protected]/작가님의 흑염룡이 부활하셨나보네여! 오글거리게 잘 읽었습니다!] 라고 써주셔도 무방.
날카롭게 지적해주쎄여!!!!!!!!!!!!!!!!!!!!!!!!!!!!!!!!!!!!!!!!!!!!!!!!!!!! 항상 감사합니다. 단편이기도 하고 정말 열심히 써서 포인트가 겁나 높네여, 걍 쳐주세여.
메일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