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좀 받아라 제발-"
벌써 수십통 째 백현은 신호음만 가고 받지 않는 전화번호로 계속해서 전화를 걸고 있었다. 밝게 비치는 핸드폰 화면의 시계는 어느새 새벽 12시를
지나가고 있었다. 화려한 각양의 가게 불빛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번화가 시내 한복판에서 차가운 입김만 내뱉으며 귓가로 핸드폰을 가져간 그가
연신 욕을 내뱉었다. 이번에는 제발- 따위를 중얼거리며 이제 그만 흘러나오는 무미건조한 통화연결음이 멈춰주기만을 바라고 있는데 그 때,
- 여보세요
달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지겹도록 계속되던 통화연결음 대신 낮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상치못한 갑작스런 목소리에 중얼거리던 욕을 멈춘 백현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향해 쏟아내듯 입을 열었다.
"야 도경수!! 지금 어디야?"
- 왜
"내가 지금 전화를 몇 번 했는지나 알아?!
- 어 잠깐만... 정확히 32번
씨근거리는 백현의 목소리와는 달리 아주 평온하고 태연한 태도의 경수는 차분하게 백현이 묻는 말에 대답하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 전화는 왜 안받아?"
- 못들었어
그러고보니 경수의 목소리 뒤로 꽤나 시끄러운 소음이 일정한 박자를 타고 들려온다. 백현 역시 익숙한 곳.
"어디야"
- 클럽
"네가 클럽을 가? 하-"
- 나는 클럽 오면 안돼?
수화기 너머로 코웃음치는 경수의 목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려퍼진다. 그래 도경수. 네가 지금 화가 단단히 났다 이거지?
"그러니까 클럽을 왜 갔냐고. 그것도 야심한 시간에"
- 클럽을 그럼 야심한 시간에 오지 날 밝은 대낮에 오냐. 할 말 없으면 끊어-
짜증스런 목소리로 대꾸한 경수가 일말의 망설이 없이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 황당함에 손에 든 핸드폰을 들여다보자 화면은 어느새 배경화면으로
돌아가있었다. 거친 손길로 머리를 한 번 쓸어넘긴 백현이 다시 경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 번 해보자.
이번에도 역시 두세번의 시도와 끊임없이 울리는 통화연결음이 막바지에 다다를 때 쯤에서야 어렵게 경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야!! 이게 어디서 먼저 전화를 끊어!!"
- 쓸데없는 말 할거면 전화하지마 귀찮게
"도경수 너 진짜 이럴래?"
씩씩거리는 숨을 몰아쉬며 따지듯 묻는 백현에 경수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솔직히 따지고 보자면 경수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그저 백현이
한 것 만큼 똑같이 갚아준 것 뿐인데. 언제나 제멋대로 나 잘난남자야- 하는 마인드의 백현은 경수의 전화를 무시하기 일쑤였고, 뒤늦게서야
못들었어- 하는 한마디로 해명아닌 해명을 했으며, 가끔은 클럽에서 밤새 다른 여자들을 끼고 놀며 진탕 술을 퍼마시곤 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집안일을 핑계로 경수와의 약속을 취소하고 다른 여자와 사이좋게 길을 걷던 백현이 길거리 한 가운데에서 보기 좋게 경수를 만난 후 이렇게 둘의
입장은 바뀌어버렸다. 다른 변명의 여지도 없이 현장을 들켜버린 백현은 몰려올 경수의 폭풍같은 분노를 기다리며 눈치를 살폈지만 의외로 아무 말
없는 태도에 조심스레 '화 안났어?' 하고 물었다. 그리고 들려온 대답은 예상 밖으로 '응 전혀. 앞으로도 계속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 신경 안쓸게.
대신 나도 너 만나느라 참았던거 할거니까. 앞으로는 우리 조금 프리하게 만나자. 서로 터치하기 없기야' 하는 쿨한 대답이었다. 설마 경수가
말하던 의도가 이런 것이었을거라는건 전혀 상상도 못했던 백현이 속이 타는지 가슴을 몇 번 주먹으로 두드렸다.
"네가 무슨 어울리지 않게 클럽이냐고- 갑자기!! 너 일부러 그러는거지?"
- 어울리지 않기는. 넌 모르겠지만 나 놀만큼 놀았거든?
"뭐?"
- 나 놀만큼 다 놀아보고 할거 못할거 다 해보고... 꽤 방탕하게 놀았거든
들려온 경수의 아무렇지도 않은 대답에 이마를 감싸쥔 채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던 백현이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지금 좀 만나"
-뭐? 잘 안들려
"만나자고"
-뭐라고? 여기 전화 잘 안터져
"그럼 문자해"
정신없는 음악과 경수의 목소리가 섞여 백현의 귀를 파고든다. 잘 들리지 않는다는 듯 크게 소리치는 경수에 인내심을 가지고 문자하라며
얘기했지만 들려온 답은 가관이었다.
- 나 지금 술잔 들고 있어서 문자 못 해
"하.. 뭐?"
- 술잔 들고 있어서 문자 못한다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 그리고 만나려면 미리 연락을 해서 나랑 약속을 잡아야지. 내가 그렇게 한가한 줄 알았어?
대답없는 백현에 역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핸드폰을 귓가에 대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빨리 전화 끊고 놀자는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알겠어. 그러면 너희 집 가서 기다릴게. 되도록 빨리 와"
- 나 오늘 집에 안들어갈건데?
"뭐? 왜"
- 말했잖아. 나 놀만큼 놀았다고. 오랜만에 온건데 바로 집에 갈 순 없잖아
"하..."
- 아, 내가 좋아하는 노래 나온다. 끊어-
또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에 화면만 허무하게 바라보던 백현이 다시금 전화를 걸었다.
- 춤추고 있는데 왜 자꾸 전화야
"할 말 있다고. 문제가 있으면 대화를 해서 풀어야될 거 아니야!!"
- 너랑 얘기하기 싫다고. 바쁘니까 끊어. 자꾸 귀찮게 하지 말고
"아 씨발!! 끊지마!! 지금 말 할 테니까 잘 들어"
- 해
꿀꺽- 목울대로 침을 삼킨 그가 결심한 듯 비장의 무기를 꺼내보였다.
"깨지자"
- 뭐? 잘 안 들려
"헤어지자고"
- 뭐라고? 다시 말해봐
다음으로 나올 경수의 반응을 살피며 얘기를 꺼냈지만 자꾸만 되묻는 경수에 짜증이 난 백현이 큰 목소리로 길 한복판에서 소리쳤다.
"아, 헤어지자고!!!"
- 아, 그래
"... 뭐...?"
- 알겠다고. 할 말 끝난거지? 끊는다
"뭐? 야!! 잠깐만!! 알겠다고? 너 내 말 똑바로 알아들은거 맞아?!"
- 헤어지자며
"아니 그게... 그건 홧김에 내뱉은 말인...데..."
- 그래서, 진심이 아니라고?
"ㅇ..어..."
- 알겠어. 나 바쁘거든? 나도 한 마디만 할게
"어,,,, 그래... 듣고 있으니까 말 해"
- 헤어져 이 씨발놈아. 그리고 전화 그만해 귀찮아
뚝...
이번에도 역시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에 정신을 놓고 부동자세로 서있는 백현의 귓가에 경수의 찰진 욕이 계속해서 울려퍼졌다.
여기저기 망아지처럼 튀는 백현에 지친 경수가 한동안 조신했던 생활 청산하고 다시 클럽에 발들이는 썰;ㅅ;
그냥 레이디가가 telephone 들으면서 쓴거예요 짤막하게...;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