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정국 lost star
정연이를 처음 본 날.
나는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기획사에 들어가서 연습실로 출근을 하는 날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저 연습실 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고 그런 나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었다.
"오늘 처음 오셨어요?"
검은색 머리카락을 하나로 질끈 묶은 채로 나를 향해 환히 웃어보였던 사람.
정연이었다.
유명 아이돌은 연애를 할까?
07
w. 복숭아 향기
오랜만에 본 정연이는 예뻤다.
정말 어떻게 뭐라 설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예뻤다.
나는 말없이 정연이를 바라보았다.
정연이 역시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무슨 말부터 해야할까. 물어볼 말들이 많이 있었는데 떠오르지 않았다.
"오랜만이네."
"그러게."
"잘 지냈어?"
"보다시피."
여기 밥 괜찮더라. 만날 샐러드만 먹다가 밥 먹으니까 살 거 같아.
정연이의 말에 나는 푸스스 웃어보였다.
그렇지. 늘 샐러드만 먹으면서 몸무게 하나하나 신경을 썼던 그때와는 많이 다르지.
모르는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따라다니고 인터넷에 모르는 사람들이 내 욕을 하고 다니고 그럴 때랑은 많이 다를거야.
나는 고개를 들어 정연이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때보다는 조금 살이 올라있었다. 아이러니하게 나는 지금 정연이의 모습이 화려한 무대화장을 했을 때의 모습보다 더 예뻐보였다.
어이없게도.
"은영이는 잘지내?"
"몰라. 나도 연락 가끔해."
"거짓말."
"..."
"언니 성격에 가끔 할 리가 없지."
맞는 말이었다.
나는 은영이랑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이메일을 주고받고 있었다.
기분이 나쁠 정도로 정연이는 나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잠시 잠만 자러 들어오는 곳이었지만 한 집에서 몇 년동안 같이 살았다는 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연이는 턱을 괸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정연이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언니는 항상 그래."
"뭐가?"
"너무 착해 빠졌어."
"지랄."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한테는 한없이 퍼줘."
"..."
"나도 언니 사람이었을 때가 있었는데."
"그래서."
다 가져가려 했니?
내가 부르고 싶었던 노래도 내 사람들도 내 모든 것들을 가져가고 싶었던 걸까.
사소한 내 행복까지도.
그래서 나한테 그런 짓을 했던 걸까.
입 안에서 맴도는 말들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아니. 꺼낼 수 없었다. 어쩌면 나는 확인사살을 받고 싶지 않은 거 일 수도 있었다.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정연이는 어느새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부러웠어."
"..."
"그리고 언니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랬다는 사람이..."
"근데 될 수 없었어."
"..."
"착한 척 하는 거 진짜 너무 힘들거든."
"최정연."
"언니 사람이 되는 것보다 언니한테 느끼는 그 좌절감이 더 컸나봐, 나는."
"..."
"언니처럼 냉정한 사람도 없거든."
"나 지금 네 하소연 들으려고 온 거 아니야."
"알아."
"너한테 물어봐야 할 거 있어서 온 거야."
"이제와서 이런 말 하면 믿을 지는 모르겠는데..."
"최정연 너..."
"나 언니 처음 본 날부터 언니가 죽도록 미웠어."
"..."
"내가 가진 거 다 가져갈까봐 너무 미웠어."
"..."
전혀 예상치도 못한 말이었다.
라고 말을 하면 거짓말이었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으니까.
나에게 깍듯하게 대한다고 해도, 내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옆에서 맞다고 맞다고 맞장구를 쳐줄 때도
묘하게 느껴지는 그 괴리감. 그리고 그 거리감. 그 때문이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해서 이 하소연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
사실 아예 궁금하지 않다는 것도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됐고."
"..."
"너 최기영이라는 기자. 알아?"
"최기영?"
"응."
"몰라."
"너 오빠 있다고 했지."
"응."
"네 오빠 이름은 뭔데?"
그건 왜 물어보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던 정연이가 똑바로 나를 바라보며 물어왔다.
나는 이번에도 정연이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손이 부들부들 떨려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들킬 수는 없었다.
나는 두 손을 가방 아래로 숨겨벼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최기영이라는 기자가 내 사람을 건드렸어."
"..."
"그리고 그 전에 나한테 네 이야기를 잠깐 했었고."
"..."
"혹시나해서 물어보는 거야. 너랑 그 사람이랑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몰라."
"... 정말?"
"믿고 말고는 언니 마음이야."
하지만 나는 진짜 몰라.
정연이는 조용한 말투로 이렇게 말을 해왔다.
나는 두 눈을 느릿하게 깜박였다. 정말 모르는 걸까. 아니면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걸까.
정연이의 말을 믿을 수도 그렇다고 해서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으니 더이상 물어볼 것은 사라진 셈이었다.
게다가 면회시간도 얼마 안남아있었다.
무엇보다 아직까지도 작업실 안에서 혼자 있을 네가 마음에 걸렸다.
"최기영이라는 기자는 모르지만."
잘있어.
라는 짧은 한 마디와 함께 몸을 돌린 순간 뒤에서 정연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에게 그 이름을 말했던 사람이 한 명 있기는 했어."
"뭐?"
"어떤 여자였어. 처음보는."
"..."
"그 사람도 내 오빠에 대해서 물어봤어."
"그 여자가 누구야?"
"나야 모르지.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고."
"생김새는?"
"마스크 끼고 와서 그것도 몰라."
"네 오빠는 왜 물어봤는데?"
"글쎄. 그것도 모르지. 다만 나는 이렇게 대답했어."
지금 우리 오빠는 미국에 있어서 나랑 연락 끊긴지 오래라고.
그리고 우리 오빠 이름은 최기영이 아니라 최정민이라고.
-
(네 말이 맞아. 최정민이라고 나와.)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지..."
(정신이 없었나보지. 너무 무리하지 말라니까.)
"..."
(어딘데?)
"연습실 가고 있어."
(홉이 때문에?)
"응."
(문 아직도 안열어주더라.)
"밥은 먹은 거 같아?"
(물이라도 먹었으면 다행이게.)
"열쇠 아저씨는?"
(아직. 내일이나 모레쯤 오실 거 같아.)
"알았어. 끊자."
(그래.)
내가 바보지.
최기영을 알아보기 전에 정연이 가족이 누구누구인지 부터 찾아보는게 우선일텐데.
자꾸 한숨만 튀어나왔다.
머리가 다시 아파오는 기분이었다.
김석진 다음으로 김남준이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김석진도 자기 스케줄을 하긴 해야하니까.
그런 김남준도 지금 당장 볼일이 생겼다고 자리를 비웠다고 하니 지금 네 작업실 앞에는 아무도 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택시 창 밖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과 다르게 어두컴컴한 밤하늘 사이로 수많은 건물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밥은 먹었을까.
물은 마셨을까.
지금도 피아노를 치고 있을까.
지금 내가 연습실로 찾아 가면 문을 열고 나오지는 않을까.
혼자서 자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개를 돌려 기사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조금만 더 빨리 가주세요. 라고 말을 하고 싶었다.
슬쩍 속도기를 보니 100km로 밟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감사합니다. 나는 이 말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두 눈을 감았다.
아. 머리가 점점 더 아파오는 것 같았다.
-
연습실 불은 꺼져있었다.
네가 있는 작업실 문은 아직도 굳게 닫혀있었다.
나는 불도 켜지 않은 채로 터덜터덜 작업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작업실 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피아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지금 너는 무엇을 하고있을까.
나는 푸스스 웃어보였다. 얼굴도 보지 못하고 목소리도 듣지 못하니 날로만 늘어가는 건 상상력 뿐이었다.
"너 지금 뭐하고 있을까."
"자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 말을 듣고 있기는 할까."
상상력이라는 것은 참 나쁜 것이었다.
좋은 상상은 현실이라는 벽에 막혀 그만둘 수 밖에 없는데 나쁜 상상은 자꾸만 꼬리에 꼬리를 물곤 했다.
이런 상상을 멈출 수 있는 건 말 뿐이었다.
억지로라도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그나마 나쁜 상상의 꼬리는 끊어지곤 했었다.
"리얼리티 촬영은 다음주로 미뤄졌어. 첫방도 미뤄졌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아."
"다른 멤버들도 나름 잘 견디고 있어."
"방금 전까지 김남준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건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민윤기랑 연락했어. 생각 많은 거 같더라. 하긴. 갑자기 자기 곡 누가 표절했다고 모르는 사람이 떠들고 다니는데 그게 안이상하겠어? 그치?"
"..."
보고싶다.
보고싶다 라고 말을 하면 너는 문을 열어줄까.
나는 두 팔로 내 다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내 무릎 위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다리에 닿는 바닥이 너무나도 차가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오늘 뭐했게."
"아무도 말 안해줬지? 나도 오늘 누구 만나고 왔는지 말 안했었지롱."
"아. 김남준은 알겠다. 내가 오는 길에 말해줬거든."
"나 오늘 최정연 만나고 왔어. 물어볼 거 있어서."
"그래서 물어봤는데..."
"겁도 없이 혼자 거길 왜 가."
"..."
"가서 얼굴 보면 너만 더 힘들거면서."
"정호석..."
"..."
"개새끼..."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내 눈가에 있던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나는 내 앞에 서있는 너를 그대로 끌어안았다. 너는 팔을 들어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보고싶던. 그토록 보고싶던 네 얼굴이었다.
미안해. 미안해.
너는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중얼거리며 나를 꼭 끌어안았다.
방금 전 정연이를 만나면서까지 참고 있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오랜만에 본 네 얼굴은 너무나도 수척하게 말라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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