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신화 - 오렌지
문을 열고 나온 네 모습은 조금 수척해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나를 끌어안고 계속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나는 손을 들어 네 등을 꼭 끌어안았다.
얇은 옷 아래로 고스란히 만져지는 네 갈비뼈에 눈물이 울컥 쏟아질 뻔한 걸 겨우 참아내며.
유명 아이돌은 연애를 할까?
08
w. 복숭아 향기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늘 이런 식이었다.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지금 내 몸상태가 어떤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연예인에게 중요한 것은 카메라를 통해서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그 모습 뿐이었다.
오늘은 자켓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그리고 내 손에는 제작진 분들이 쥐어줬던 핸디캠이 들려있었다.
언제까지나 리얼리티 촬영을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지금 네 상태가 좋지 않으니 촬영 분량은 네 몫까지 나에게 떠넘겨진 것 뿐이었다.
"오늘은 이렇게 자켓 촬영이 있는 날입니다."
"여기 액세사리랑 메이크업 도구들이랑 보이시죠? 이거 다 엄청 비싼 거래요."
처음에는 어색했던 혼잣말이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나는 작게 웃어보이며 촬영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원래대로라면 너랑 같이 촬영을 하는 그런 스케줄이었을 텐데...
괜시리 씁쓸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너는 지금 뭐하고 있으려나.
네가 작업실에서 나왔다는 말을 들은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바로 연습실로 달려왔었다.
아. 스케줄이 있던 김석진 빼고.
다들 너를 얼싸안고 엉엉 울기도 하고 네 등을 찰싹찰싹 때리기도 했지.
스텝들은 다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뒤에서 매니저 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배 안고파?"
"괜찮아요."
"저 쪽에 보온병 놔뒀어. 유자차니까 천천히 마셔."
"고마워요."
같이 밥을 먹은 이후로 매니저 언니는 눈에 띄게 살갑게 나를 대해 주었다.
스케줄을 할 때 내가 멍하니 있으면 옆에 와서 괜찮냐고 물어보며 물병을 쥐어주기도 했고
내가 밥을 먹지 못해서 쫄쫄 굶고 있으면 이렇게 보온병에 유자차라던가 자몽차라던가 담아와서 먹으라고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나는 '고맙다'는 마음보다는 '미안하다'라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의심을 해서 그런걸까.
나는 고개를 돌려 힐끗 언니를 바라보았다.
스케줄 조정 때문인지 언니는 누군가와 바쁘게 통화를 하고 있었다.
[♪]
덩달아서 내 핸드폰도 윙윙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고 촬영장을 빠져나왔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너였다.
이제 일어났나. 나는 최대한 사람들이 오지 않는 그런 인적이 드문 구석으로 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네 목소리는 아직도 낮게 가라앉아있었다.
"이제 일어났어?"
(응... 어제 너무 늦게 잤거든.)
"내일부터 다시 녹음 들어간다잖아. 목관리 잘해."
(내가 할 말이거든. 오늘 촬영있다 그랬지?)
"응. 자켓 촬영. 너도 찍어야지."
(그러게. 너 풀메한 모습 한 번 보고싶었는데.)
"뭐래."
(만날 쌩얼에 퉁퉁 부은 얼굴만 보여주고.)
"뒤질래?"
(살고 싶은데?)
다행히 기운은 좀 차린 모양이었다.
스케줄 갔다온 김석진이 나한테 그랬지.
자기가 무슨 일 있어도 저 새끼 다시 살 찌우고 만다고.
어제 이것저것 많이 먹기는 했을까.
한동안 밥도 물도 제대로 먹지 못해서 바로 뭐 먹으면 오히려 속 안좋고 그럴텐데.
"밥은?"
(먹었지. 정확히 말하면 죽.)
"미음?"
(석진이 형이 본죽에서 죽만 4그릇 사왔어.)
"헐..."
(죽만 먹다 뒤지라는 건가봐. - 그정도는 먹어야 하거든! 죽은 배 금방 꺼져서!)
"김석진 답네."
(그치?)
이름씨! 메이크업 수정 볼게요!
저 멀리서 스텝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촬영 시작이구나. 나는 얼른 다시 촬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스텝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 쪽에서 코디 언니들이 나를 향해 손짓을 해보였다.
나는 언니들이 가리키는 의자 위에 앉아 내 앞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화장을 해서 그런지 오늘따라 피부가 조금 더 좋아보이긴 했다.
이따가 셀카나 찍어서 보내줘야지.
보지 않아도 네가 뭐라 답장을 보내올지 예상이 가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
촬영은 계속해서 진행이 됐다.
나는 중간중간에 메이크업을 수정하기도 했고 옷을 갈아입기도 했다.
옷을 갈아입는 것도 쉽지는 않았지만 가장 힘든 일은 역시 메이크업을 수정보는 일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다른 사람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정호석♥]
- 아
- 아아
- 아아아아아아
- 나 왜 집이야?
- 나 지금 왜 집임?
푹 쉬기나 해 -
내일 촬영하고 -
녹음도 하려면 -
쉬어야지 -
- 내가 이 죽 다 먹고 만다
- 아
- 이름아
왜? -
-
- 보구싶다
나도.
나는 푸스스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어쩌면 너는 내가 예상했던 모습을 이렇게 한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걸까?
가끔은 그 예상을 뛰어넘을 때도 있지만.
이름아.
코디 언니가 고데기를 탁탁 두드리며 불러왔다.
나는 미안하다는 듯이 배시시 웃어보이며 언니에게 다가갔다.
화장실 갔다 온다고 해놓고 너무 늦은 건 아니겠지.
다행히 다들 그렇게 오래 기다린 눈치는 아닌 것 같았다.
"내일은 홉이랑 같이 촬영하는 거라고 했지?"
"네."
"너도 고생이다. 갑자기 이상한 기사가 떠가지고..."
"저보다는 호석이가 더 고생이죠."
"회사에서 하는 말은 듣지도 않고 말이야."
"그러게요..."
"이럴 때 원곡자가 딱 나와서 말하면 직빵인데. 슈가라고 했지? 그 작업팀 이름이."
원곡자라...
민윤기가 나올까?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았다.
대중들은 '슈가'를 한 사람이 아닌 한 집단으로 알고 있었다.
작사 작곡 편곡까지 모두 하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단 한 번도 기자회견이라던지 대중들 앞에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던 민윤기였다.
정호석 네 남친이기 전에 내 동생이거든?
이렇게 말을 한 거는 무슨 의미일까.
동생을 지키기 위해 힘을 써보겠다는 말이겠지.
그런데 어떻게?
물론 민윤기가 모습을 드러내고 이러이러한 사정이다 라고 밝히는 것은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어쩌면 최상이 아닐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민윤기가 지키고 싶어했던 자신의 '프라이버시'가 사라지는 방법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함부로 부탁을 하지 못했던 것도 있고.
김남준이 그랬지. 지금 민윤기도 생각이 많은 거 같다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아...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헐. 대박."
"왜요?"
"슈가가 팀이 아니었어?"
"네?"
"지금 기사 떴는데?"
"그게 무슨 소리..."
나는 얼른 핸드폰을 집어들고 인터넷을 켜보았다.
검색어 1위에는 슈가 라는 이름이 올라와있었다.
[슈가 '나는 표절을 당한 적이 없다.']
그리고 그 기사에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마이크 앞에 앉아있는 민윤기의 사진이 박혀있었다.
-
현재 정호석 군이 제 곡을 표절했다며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는 곡들은 제가 연습생 시절 정호석 군과 함께 만들었던 비트 그리고 가사입니다.
너무 오래 전에 만들었던 지라 누가 만들었었는지 정확히 구분을 지을 수 없었고
누가 어떤 곡을 만들었는지 일일히 확인을 하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시간 이후로 그 곡들은 모두 저와 정호석 군의 공동 작업으로 만들어진 곡으로 다시 협회에 올릴 것이며
근거 없는 소문을 낸 네티즌들과 기자들에게는 명예훼손 및 강경한 법적 대응을 보일 것입니다.
Q. 당신이 슈가라는 말과 저 발언들이 모두 사실이라는 건 어떻게 증명할 생각인가요?
내가 나라는데 뭘 어떻게 증명하라는 건데.
아나. 씨발... 존나 좆같네. 그딴 쓰레기 같은 기사는 믿으면서 내가 내 곡 표절 당한 적 없다고 말하는 건 무슨 증거같은 게 필요하냐?
그딴 질문 던질거면 펜 내려놓던가.
존나 지랄이야.
아...
김남준이 보내준 동영상 속 내용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화끈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방금 전까지 머릿속이 복잡해지도록 생각을 많이 했던 내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중간 중간에 김남준이 키득거리는 웃음 소리도 들려왔다.
아. 그리고 앞으로 나랑 같이 작업할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저 애인 있습니다.
그러니 저랑 작업하는 분들, 특히 여자분들하고 엮는 쓸데없는 기사가 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저기 카메라로 나 찍고 있는 저 새끼가 내 애인이라서.
이 말과 동시에 김남준은 손을 들어보였나보다.
카메라 앵글이 잠시 달라졌던 걸 보면...
하아... 그러니까 지금 민윤기는 기자회견을 한 것도 모자라서 기자들 앞에서 커밍아웃까지 해버린 것이었다.
너무나도 명확하게 반박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동영상을 다 보자마자 민윤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민윤기의 핸드폰은 꺼져있었다.
이 새끼를 내가 진짜...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이번에는 김남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얼마 가지 않아 전화를 받았다. 김남준이 아니라 민윤기가.
"미쳤지?"
(아니. 존나 속 시원해.)
"아니... 기자회견 한 거는 그렇다 치는데 커밍아웃은 왜..."
(준이가 질투해서.)
"뭐?"
(기자들 중에 분명히 있을걸? 걸그룹 모 멤버와 핑크빛 교류 어쩌고 저쩌고 지랄지랄.)
"..."
(그 딴 개소리 듣기 싫어서 미리 말해둔 거야. 될대로 되라지.)
"하아..."
(왜.)
"너는 괜찮아?"
(뭐가.)
이상할 정도로 민윤기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나는 내 머리카락 끝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정말 괜찮은 걸까? 그냥 내가 노파심에 한 부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닐까?
평화롭게 잘 지내던 민윤기를 내가 억지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한 것은 아닐까?
속이 시원한 마음도 들기는 했지만 한 편으로는 마음에 걸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아니었으면 너도 민윤기도 이렇게 피해를 보지는 않았을 테니까.
(야. 성이름.)
"응."
(착각도 유분수라고 했지.)
"..."
(정호석은 네 남친이기 전에 내 동생이라니까?)
"..."
(있지도 않는 팀인 척 하면서 준이만 고생시키는 것도 신물나던 참이었어.)
"그래도..."
(이럴 시간에 목 관리나 더 하지? 너 요즘 밥 안먹는다고 성량 준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
(이따 녹음실에서 봐.)
"응. 알았어."
전화를 끊고 다시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
스텝들 역시 기사를 모두 봤는지 다들 웅성거리고 있었다.
방금 전 나에게 처음 기사를 알려준 코디 언니는 어머어머를 외치며 호들갑을 떨고 있었고
다른 코디 언니들은 나에게 혹시 알고 있었냐며 물어오기도 했다.
나는 그저 푸스스 웃으며 몰랐다고 대답을 하고는 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댓글들을 읽어보았다.
민윤기의 외모를 보고 감탄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럴 줄 알았다면서 너를 옹호하는 사람도 있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이건 모두 자작극이라고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민윤기에게 게이 새끼라면서 욕을 퍼붓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너에게 미안하다 라고 말을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다 기억하고 있었다.
너에게 악플을 퍼부었던 사람들의 아이디와 그 내용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 사람들은 민윤기에게 게이라며 손가락질을 했고 너에 대한 언급은 전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구나.
이 사람들은 인터넷이 아닌 평소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
조용했던 핸드폰이 울려왔다.
전화가 아닌 문자였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확인했다.
[010****@@@@]
최기영입니다.
잠시 만날 수 있을까요?
스케줄 괜찮은 날 매니저를 통해서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개새끼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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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제 글의 분위기는 bgm만 들어도 대충 예상이 가는 거 같네요...ㅋㅋㅋㅋㅋ
오늘도 제 글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