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가씨'를 각색했지만
내용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15.
료우토 씨가 서양화를 가르친다는 것은 조금 믿고 있었지만 도련님의 '말동무'라는 점에서는 완전히 불신하고 있었던 터라 도련님 앞에 마주앉은 채 미소를 짓고 있는 료우토 씨를 본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 료우토 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며 차를 대령하라는 여자의 말에 처음에는 정말인가 싶어 눈썹을 찌푸렸지만 앞에 펼쳐진 장면은 오히려 그런 나를 비웃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홍차가 담긴 찻잔이 올려진 쟁반을 꽉 쥐게 되었다. 그냥 찻잔만 두고 나오자, 하는데 오늘 처음으로 보는 것같은 도련님의 모습에 가슴이 조금 두근거렸다. 바보같이. 쟁반을 쥔 탓에 문을 두드릴 수 없어 무례함을 무릅쓰고 쟁반을 내려놓고 문을 열자 동시에 두 남자의 시선이 나를 향했는데 나에게 향한 똑같은 시선의 방향과 달리 두 남자 반응이 모두 달랐다. 역시 나를 보자마자 시선을 아래로 내리는 도련님과 마치 지루한 차에 재미있는 사냥감을 발견했다는 듯 눈을 접어 웃는 료우토 씨의 반응에 저절로 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다가가 찻잔을 탁자 위에 놓는데 뱀처럼 진득한 시선이 자꾸 나의 몸을 얽어매어서 식은땀이 저절로 났다. 솔직히, 그때 서양화 수업 이후 딱히 그때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평소(아, 어느새 도련님께서 나를 무시하는 것이 평소가 되어버렸다)처럼 지냈기 때문에 그저 료우토 씨가 나를 건들어서 괜히 사람 잠 못자게 하는 일 따위 만들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우리 초면인가요?"
"..네?"
"낯이 익네"
턱을 괸 채 장식품을 바라보는 화가처럼 나의 발끝부터 머리까지 훑어보는 료우토 씨에 순간 찻잔을 잡은 손이 살짝 떨려왔다. 애석하게도 아직 도련님께서 나와 료우토 씨가 서양화를 그리는(?) 장면을 바라보지 않았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가뜩이나 나에게 좋지않은 감정을 품고 있는 도련님께 더이상 나의 결점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의 차가운 시선을 받을 때마다 괜스레 예민해지는 나라 지금 도련님 앞에서 무슨 말을 하려는건지 전혀 걷잡을 수 없는 료우토 씨의 입이 열리지 않기만을 바라고 또 바랄 뿐이었다. 여기에 있으면 안되겠다. 직감적으로 몸이 알아차렸고 곧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네요,라는 말이 담긴 어색한 미소를 띄운 채 일어서려고 하자 그런 나의 손목을 붙잡는 손길에 저절로 육두문자가 터져나올 뻔했다. 항상 이성을 잃지 않고 함부로 말을 내뱉지 않는 나의 입이 그나마 내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상하네"
"..."
"이렇게 낯익은 손목은 처음이거든요"
향긋한 홍차와 숨막히는 정적이 공존하는 분위기 속 울리는 그의 낮은 목소리에 아, 머리가 저절로 아파왔다. 나의 손목을 한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마치 아무 의도가 없다는 듯 미소를 짓는 류우토 씨에 진땀을 빼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더 세게 옥죄어오는 악력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손길이 닿자 그때 불순한 의도와 함께 서양화를 가르쳤던 류우토 씨의 행위가 상기되어 저절로 귓가가 내 마음과 다르게 빨갛게 물들여졌다. 누가보면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좀, 놓으라고요. 복화술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 나와 료우토 씨를 바라본 도련님의 시선을 차마 마주할 수 없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 채 고개만 내저으며 바보같은 상황을 내보이고 있는데 탁. 찻잔이 탁자 위에 놓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료우토 씨의 시선이 찻잔을 내려놓고 나와 료우토 씨 사이 그 어딘가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도련님에게 향하였다.
"스미레"
"네"
"..나가줄 수 있어?"
"..네?"
나를 부른 목소리에 순간 심장이 쿵, 조금 좋은 뜻으로 내려앉았지만 그 다음 들려오는 차가운 말투에 순간 잘못 들은건가 싶어 고개를 들자 나를 눈썹을 찌푸린 채 바라보는 도련님이 계셨다. 아. 도련님의 소중한 시간을 내가 방해하고 있었구나. 도련님의 차가운 계절이 담긴 그 고동색 눈동자를 보니 누가 망치로 나의 머리를 세게 때린 듯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여졌다. 예전같았으면 질투라도 할까 생각을 했겠지만 지금 나와 도련님의 상황을 빗대어보면 그는 나와 료우토 씨의 사이에서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순전히 '나'에게 화가 났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때 사랑하게 되실거라는, 그 잡종 개소리를 건넸을 때 돌아온 표정과 엇비슷해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게 되었다. 순간 지금 내 앞에서 인상을 구긴 남자가 내가 알던 도련님이 맞을까 헷갈렸던 것 같다. 지금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을 드러낸 것을 알면서도 그런 도련님이 재미있다는 듯 다리를 꼰 료우토 씨가 턱을 괸 채 웃음기 가득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여우같이 길게 찢어진 눈에서 어린아이가 사탕을 받을 때 어떤 맛일까, 궁리를 하게 되는 그 '흥미로움'과도 같은 감정이 엇비슷하게 비추어졌다. 약간 그의 장난감이 되는 기분이라 뒤를 도려는데 그런 나의 발목을 붙잡는 낮은 목소리가 있었다.
"왜, 여기 좀 더 있어도 되는데?"
"..료우토"
"알았어. 우리 초면이잖아요. 그렇죠?"
초면인데 이런 대화를 하는게 더 이상한데요. 이 방을 나가더라도 대답을 하고 나가라는 듯 낮고 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건넨 료우토에 입술이 저절로 깨물어졌다. 괘씸하게도 나에게 거짓말을 유도하는 류우토에 입을 꾹 막고 눈을 굴렸지만 지금 여기서 '예'라고 하면 도련님께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되고 '아니요'라고 하면 도련님 외 다른 사람과 접촉을 했다는 것을 말하는 셈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우물쭈물 대답도 못한 채 쟁반을 꼭 쥔 내가 답답한지 도련님은 완전히 다른 사람을 보는 것처럼 날카롭고 또 신경이 곤두세워져 있어 나도 모르게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여전히 나에게 시선을 옮긴 채 찻잔을 손에 꼭 쥔 도련님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오랜만에 올곧은 시선으로 마주한 그 밤색 눈동자 안의 파도는 겨울을 맞이한 듯 차갑게 몰아치고 있었다. 괜스레 그 파도의 영향에 가슴 속까지 바람이 스며들게 된 것 같아 먼저 그 시선을 피했다.
"휘둘리지 마"
"...아'
"난 지금 스미레가 누구 하녀인지 잘 모르겠어"
누구의 하녀인지 잘 모르겠다라, 라. 아마 자신의 명령대로 나가지 않은 나의 행동을 지적하는 뼈있는 도련님의 말씀에 귓가가 빨갛게 물들여지는 것 같았다. 저렇게 단호하실 수가 없었다. 역시 나와 한공간에 있는 것이 싫으신건가. 상대방은 그럴 의도가 아닌데 만약 둘 사이가 틀어진다면 충분히 예민해질 수 있고 또 어쩐 말을 듣던간에 비극적인 방향으로 끌고가기 마련인데 지금 내가 그 꼴이었다. 입술을 깨문 채 죄송합니다, 중얼거리자 다시 찻잔을 입에 가져다댄 도련님이셨다. 나에게 차가운 말을 내뱉고도 아무렇지 않은 도련님의 단정한 모습을 보니 유난을 떤 내가 수치스러울 뿐이었다. 또. 전에 언급한 적이 있지 않은가, 요즘따라 가슴이 아파오는 때가 많다고. 이대로 나가면 또 문앞에 꿇고 앉아 시큰해지는 눈가를 벅벅 긁게 될 것 같아 재빨리 고개를 뒤로 돌렸다.
"아- 이렇게 나가면 또 방문 앞에서 울텐데"
"..?"
"그때도 울고 있었잖아요."
"아니, 제가 언제.."
"그래서 내가 달래줬었는데?"
당황스러움에 황급히 고개를 돌린 나와 적갈색 눈동자를 마주했다. 마치 연극을 하듯 탄성을 내뱉은 료우토 씨가 고개를 뒤로 젖혀 순간 맹수에게 쫓기는 사냥감마냥 뒤로 발걸음을 조심스럽고 살짝 빠르게 옮기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상당히 노골스러워서 입술에 성할 데 없이 깨물게 되었던 것 같다. 아니라고 말을 해야하는데 그의 기선에 완전히 눌려 아무 말도 못한 채 입술만 오물거렸다. 또 무슨 계획인건지 의자에서 일어나는 소리와 함께 나에게 다가오는 료우토 씨의 발걸음이 들리자 속으로 육두문자를 내뱉게 된 나였다. 애초에 이 차를 가지고 온 것이 아니였는데 도련님 얼굴 한 번 보자고 이런 행동을 한 과거의 나 자신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상황수습을 어떻게 하려고 저렇게 막말을 내뱉는건지. 마치 울고 있는 나를 다정히 달래주며 친분을 쌓았다는 듯한 그의 말에 헛웃음이라도 날려주고 싶었다. 나에게 위로도 아닌 경고와 비슷한 말을 건네주고 서양화 수업을 받을 도련님의 수업에 초대해놓고 사기를 친 주제에, 이 말이 입속에 굴려졌지만 그의 체면이라도 지켜주고 싶었던 나의 선량한 마음에 차마 내뱉지는 않았다. 그리고 바로 나의 뒤까지 다가온 료우토 씨에 눈을 부라리며 조용히 속삭였다.
"지금 뭐하는 건데요?"
"여인의 눈물을 한 번 보고 무시할 수 없는 게 저의 특성이라서"
"네?"
"혹여 또 이 문 앞에서 처량하게 울까봐 당신이 복도에서 사라지는 모습까지 지켜보려고요"
당신이라니, 여인의 눈물이라니. 마치 관심있는 남자가 여자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웃음을 띄우고 말하는 료우토 씨의 행동에 골이 다 울리는 것 같았다. 료우토 씨의 뒤에서 입술을 깨문 채 찻잔을 바라보는 도련님을 흘긋 바라보았다. 아마 내가 료우토 씨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자꾸만 방해해서 그런지 표정이 별로 좋아보이지 않으신데, 이러다가는 정말 오해라도 할 것 같아 거침없이 속도를 내는 료우토 씨의 팔을 붙잡고 뭐하는 거냐고 속삭였다. 애석하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지금이라도 거짓말이라고 소리라도 지를까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도련님 앞에서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는 그임을 알기에 온몸으로 거부의 뜻이 담긴 손짓을 했다. 빨리 돌아가라고. 도련님께서 표정이 좋지 않다고. 하지만 난 아직도 내 앞에 있는 남자가 도련님의 감정을 보고 싶어 안달난 사람임을 깨닫지 못한 모양이었다. 솔직히 도련님 앞에서 이렇게 낯선 남자와 소란을 피우고 있는 것도 보여주는 것이 수치스러웠고 내가 그의 팔을 잡자 도련님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빨리 상황을 일단락시키자, 다짐과 함께 방문을 열었다. 제발 가만히 있어라, 나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건지 비웃음과 함께 나를 따라 나가려는 료우토 씨에게 밖으로 나가면 정말 한소리 하자고 다짐을 했었는데
"...."
쨍그랑-
뒤에서 들려오는 귓가를 찢는듯한 파멸음에 놀라 뒤를 돌아보자 시야에 가득 들이찬 장면에 누군가 돌덩이라도 던진듯 심장이 쿵 내려앉게 되었다. 산산조각. 완전히 형태를 잃은 채 바닥에 부서진 찻잔과 양탄자를 적신 선혈인지, 차인지 모른 붉은 액체 그 앞에서 눈동자를 굴리는 도련님. 찻잔이 깨졌다는 점과 저 파편이 혹여 도련님의 손을 다치게 하지 않았을까, 저 양탄자를 적신 액체에 나의 머릿속을 사로잡았다. 나의 뒤에 있던 료우토 씨의 어깨를 칠 정도로 뒤를 돈 다음 빠른걸음으로 도련님께 다가갔다. 그대로 무릎을 꿇은 채 눈썹이 찌푸려질 정도로 가루가 되어 잔인하다고 생각된 파편들을 바라보았다. 이 파편들을 치우기도 전 혹여 도련님의 손에 조금이라도 상처가 났을까, 라는 생각을 가득 채운 채 도련님의 하얗고 고운 손을 바라보자 역시나 깨지면서 튄 파편에 의해 붉은 액체가 흐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도련님, 괜찮으세요?"
완전히 겁을 먹은 듯 동그란 눈동자가 경직되어 있었다. 그가 나의 손길을 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놀란 마음에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되어 다짜고짜 도련님의 떨리는 손을 속상하게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역시 아무리 차가운 태도를 보여도 여린 마음은 변하지 않았던건지 나의 한숨에 따라 어깨가 살짝 떨리는 것이 도련님의 얇은 기모노 사이로 여실히 느껴졌다. 왜, 제 눈치를 보세요. 속상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고 손과 파편들을 바라보며 다시 미어지는 가슴에 한숨을 나도 모르게 쉬자 위에서 처음 들어보는 도련님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고통에서 우러나오는 것보다는 불안감에서 나오는 것 같아 살짝 의아하기도 했지만 그때 나는 그것을 고려할 정도의 뛰어난 정신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아파"
"네?"
"손이 아파"
경계를 띄운 눈으로 료우토 씨를 한 번, 깨진 컵을 한 번, 마지막 나에게 시선을 머무른 도련님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마치 이런 사고를 당할동안 너는 뭐했어?라는 말을 담고 있어 순간 머릿속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물들여진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도련님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고 상처를 바라보았다. 핏줄이 비칠만큼 하얀 손을 가지신 도련님이라 그런지 조금한 상처가 나도 붉은 핏물이 잔인하게 그 색을 띄우곤 했는데 그 장면을 직접 보자니 괜히 마음이 미어져서 그 손을 꼭 잡았다. 그런 나의 손을 조심스럽게 마주잡는 도련님의 행동에 그 찰나의 순간에도 도련님의 온기를 오랜만에 나누었다, 라는 생각이 들어 울컥 가슴에서 꾹꾹 눌렀던 감정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나의 손을 덮은 하얀 손을 물끄러미 바라본 내가 '치료 해드릴게요'라는 말과 함께 일어서자 그런 나의 치맛자락을 잡은 도련님의 약한 손길이 느껴졌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그의 다급한 손길에 놀라 밑을 내려보자 마치 나 보란듯 손을 눌러 괜스레 피를 더 보인 도련님의 모습이 시야에 들이찼다. 나와 눈을 마주치자 도련님께서 고개를 양옆으로 저으셨다.
"나 아픈데"
"...도련님"
"왜 자꾸 나가려고 해?"
오랜만에 들어본 투정인데 이상하게 가슴이 아팠다. 도련님의 눈망울에 물기가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또 눈가가 빨갛게 물들여진 모습에 탄성을 내뱉은 내가 뒤를 돌아 도련님의 울먹임의 주체가 될 것이 분명한 료우토 씨에게 나가라는 눈짓을 했다. 아마 내가 료우토 씨를 따라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도련님은 불안해하시는 것 같았다. 도련님에게 불안감을 안겨다준 내 잘못도 있으니깐 더이상 도련님께 나간다고 말을 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벽에 기대어 마치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마냥 팔짱을 낀 채 그런 나와 도련님의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본 료우토 씨의 입꼬리가 어느새 비웃음으로 물들여져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금 엄연히 자신이 가르치는 도련님이 다쳤다는데 걱정은커녕 마치 어이없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뜨린 료우토 씨가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
현실과 꿈속을 분간을 못할 정도로 생생한 감촉을 전달하는 꿈을 꿀 수 있다, 창녀촌에 끌려갔던 내 친우는 그 이유 때문인지 매일 잠을 못 이루곤 했다.
'정말 그렇게 생생해?'라고 눈치없이 물었을 때 나를 노려보며 눈물을 글썽인 그녀는 생생하다못해 현실 같다고, 아니 현실인게 분명하다고 비명을 질렀는데 난 그 꿈을 꾼 적이 없어 항상 궁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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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모든 촉감에 둔한 나였지만 그 감각은 잠결에 헤어나오지 못한 나를 깨울 정도로 간지러웠고 어설펐으며 또 야릇했다. 원래 잠을 자다가 누가 납치를 해도 눈치를 못 챌 정도로 잠을 잘 자는 나였다. 하지만 끈질기게 나의 손목에 느껴지는 축축하고 간지러운, 살짝 따끔한 감촉에 생전 한 번 부린 적 없는 투정을 부리며 옆으로 돌려눕자 그런 나를 제지하는 부드러운 손길이 있었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는 단순한 점에 눈썹을 찌푸리며 짜증을 조용히 내자 그런 나의 옆머리를 넘겨 귀 뒤에 꽂아주며 볼을 쓰다듬어주는 손은 따뜻했다. 마치 잠에 방금 깨어난 아기를 달래듯 볼을 쓰다듬는 손길에 편안함을 느낀 몸이 다시 잠에 빠져들 무렵
"..."
조용하고 또 조심스럽게 입술에 내려앉은 말캉한 촉감은 현실감각에 무뎌진 꿈속에 빠진 나에게 한없이 달콤하게 다가와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 주체의 형체를 알아보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 나의 손을 겹쳐오는 크고 따뜻한 손이 마치 도련님이라는걸 알려주는 것 같았지만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기에 바람빠진 웃음을 내뱉었다. 도련님께서 침대에 누군가와 같이 누워야 악몽을 덜 꾼다는 것을 알기에 그와 나란히 침대에 눕기는 했지만 그 냉랭한 분위기는 예전과도 같다고 하기에는 우스울 정도였다. 나를 등진 채 주무시는 도련님과 그런 그의 등을 바라보다가 겨우 잠을 청하는 나. 그 가슴아픈 현실을 신께서도 알았는지 꿈에서라도 만족하라, 이 모양인가보다. 이제는 꿈에서까지 도련님을 그리워하는건가? 무슨 남편을 그리워하는 상사병 걸린 여자도 아니고 이런 생생한 촉감을 느끼는 내가 부끄러워지기도 했지만 어차피 꿈이라고 치부한 나였다. 마치 소중한 물건을 대하듯 얼굴을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이마부터 천천히 느껴지는 말캉한 감촉에 발끝에서부터 전율이 끼쳐올라오는 것 같았다. 몽롱하면서도 달콤했다. 꿈속에 있는 것처럼 몸은 붕 떠있는데 얼굴 곳곳에 느껴지는 온기와 감촉 그리고 형용할 수 없는 달콤함은 꿈이 아니라고 일러주는 것 같아 미소가 지어졌다.
"..예뻐"
"...흐으"
귓가에 내려앉는, 그토록 듣고싶었던 잔잔하고 낮은 목소리에 꿈속에서라도 들으니 얼마나 다행이라는 바보같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도련님의 온기가 필요했던건지 빈틈없이 맞물러진 상체에서부터 도련님의 체향이 은은하게 코끝을 스치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아 뜨고싶은 눈을 억지로 참으며 감았다. 그 사이 이마에 머물러있던 입술이 떼어졌고 과일향을 머금은 그 부드러운 입술은 조심스럽게 미간, 코끝을 스쳤고 나의 입술에 머무르게 되었다. 쪽.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작지만 귀여운 소리와 함께 말캉한 감촉이 빠르게 입술 위에서 흩어졌다. 괜스레 아쉬움이 들어 꿈에서라도 투정을 부리자는 생각에 떨어지지 말라고 웅얼거리니 위에서 잔잔히 들려오는 오르골같은 웃음소리가 있었다. 아, 정말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이 아닐 수가 없었다.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주는 의젓한 꼬마아이, 아니면 신사처럼 나의 입술을 꾹 누르는 손길이 나를 약올리는 것 같아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귀여워"
"..."
만약에 이 상황이 꿈이라면 도련님은 아마 입꼬리를 올리고 나를 내려다보고 계실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정말 바보처럼 몸이 베베 꼬였다. 어딘가 나사가 빠진 아이처럼 웃음을 흘리고 있는데 그런 나의 옆으로 돌려진 고개를 다시 긴 손가락으로 정면으로 향하도록 옮기는 손길이 느껴졌다.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도련님 특유의 숨결이 가깝다고 생각이 들 무렵 코끝이 닿았고 곧 나의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사탕을 빠는 것처럼 느리게 탐하는 행동에 발가락이 오므라졌다. 아랫입술을 머금다가 곧 윗입술을 살짝, 마치 부드러운 푸딩을 한 입에 담는 것처럼 부드럽게 마찰하는 입술의 촉감에 하마터면 눈을 뜰 뻔했다. 정말 이런 꿈을 다 꿀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달콤했고 간지러웠으며 또 가슴이 아팠던 것 같다.
*
난 정말 이걸 글이라고 쓴걸까(혼란스러움)(동공지진)
그냥 오늘은 두 남자에게 시달리는 스미레가 쓰고 싶었어요
그리고 저번화에 저와 같은 뜻을 품은 독자님들 많이 봤답니다!^ㅁ^
호호호 우리 독자님들..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순수하지(?) 않으셨어(코쓱)
변태인 저와 함께 달려주실 천사분들은
암호닉 신청을 최신화에서 해주시면 됩니당
비록 좋은 글은 못드리지만 제 사랑을 드릴 수 있어요(진지)
+가끔 BGM 추천해주시는 독자님들이 계시는데 흐앙 감사드려요
듣고 감탄한 노래도 많아서 하녀 브금리스트에 다 넣었답니당 헤헤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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