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 오직 당신만의.
W. JPD
10
"뭐 해."
문이 열리기에 급하게 소리를 원래대로 줄여놓았지만 켜져 있는 컴퓨터 화면은 설명이 불가능했다. 굳어진 얼굴에 낮게 깔린 목소리가 나에게 실망한 것 같아 괜히 속상해 고개만 푹 숙이고 있으면 다가와 턱을 올려 눈을 맞춘다.
"컴퓨터는 왜, 궁금해서?"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머리를 굴렸다. 답이 안 나왔다, 답이 없다, 나는 정말 답이 없다. 어쩌자고 겁도 없이, 그렇게 작업하는 사람 컴퓨터를 막 만지다가 뭐 하나 잘못 눌러서 다 날려버리면, 만약에 그러면 진짜 큰일 나는 건데, 나는 어떻게 겁도 없이.
"... 그냥 CCTV 음성만 따놓은 거야, 너도 들었을 거 아냐. 대화소리."
불안해하는 게 티가 난 건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설명하는 그의 모습에 그저 다시 고개를 숙이곤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냥 미안한 감정밖에 없었다. 항상 그런 말들을 들었었다. 예술 하는 사람들은 예민해서 자신의 작업 공간에 들어오는 것도, 그 작업물을 구경하는 것도, 건드리는 것도, 전부 다 날을 세우고 달려든다는 말을. 그런데 이 남자는 그렇지도 않았다. 내가 멋대로 컴퓨터를 건드렸는데, 그저 제 표정만 유심히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갈 뿐이다.
"내가 워낙 귀찮아하는 성격이 심해서, CCTV 음성만 실시간으로 들리게 해달라고 부탁했어, 급할 때 소리 키워서 듣고 대답은 핸드폰으로 하면 되니까."
그랬구나, 이런 생활을 이어왔구나. 이 작은 공간에서 계속 생활했구나, 적응했구나. 귀찮은 게 많구나, 그럼에도 나라는 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내준 거구나. 나를 데리러 오고, 나랑 대화하고, 연락하고. 참 고마운 사람이구나, 이 사람은. 이렇게 나를 위해주는데, 나는 뭘 해 줘야 하지.
"자, 그리고 이거. 핸드폰 놓고 들어갔더라."
"아..."
"허당이야, 아주. 울먹거리지 말고 마카롱 먹어, 좋아할 것 같아서 산 건데."
"근데 내가 마카롱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았어요."
"색깔 예뻐서 샀다니까, 사고 보니 네가 좋아했던 거고. 아까 네가 좋아한다고 대답했잖아?"
"아, 그랬구나... 그랬죠, 맞아."
"그래도 다음부터는 컴퓨터 건드리지 말고."
"네, 당연하죠, 미안해요, 다음엔 절대로, 진짜 절대 안 건드릴게요."
"그래, 너무 신경 쓰지는 말고."
"알았어요..."
"목걸이 예쁘다, 핸드폰 케이스는 귀엽고."
"아, 맞다. 진짜 고마워요. 아침에 보고 놀랐어요, 진짜 고마워요."
"잘 가지고 다녀, 잃어버리지 말고."
"물론이죠."
그렇게 계속 대화를 이어갔던 것 같다, 마카롱을 거의 다 먹어가면서 말이다. 오늘 다 못 먹을 것 같던 양이 얘기하면서 먹으니 언제 다 사라진 건지. 몇 개 남지 않은 마카롱을 양손으로 소중히 감싸곤 조금은 어두워진 밖으로 나왔다. 이미 안에서 인사를 하고 나와 혼자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방향의 지하철을 사람들 사이에서 쓸려 들어가듯 타면 뭔가 긴장이 풀린 듯한 기분에 오늘 하루의 일들이 영화 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 잠깐.
그런데 내 집은 어떻게 알았지?
-
집으로 오는 지하철은 혼돈 그 자체였다. 택배, 택배가 내 집으로 왔다. 주소를 정확히 알고 있지 않는 한 나에게 도착할 리가 없는 택배가, 나에게 도착했다. 아침에 택배를 돌리나? 왜 벨을 누르지도 않았지? 그 택배를 발견한 사람이 나인 것도 우연인 걸까. 택배 업체가 아닌 그 남자가 직접 왔다면, 아니 그렇지 않다고 해도 이건 문제가 있다. 나는 그 남자에게 내 집 주소를 알려준 적이 없다, 그렇다고 전부터 알았던 사이도 아니다.
"... 아까... 아까 그."
아까 내가 들었던 음성. 그 실시간 음성에는 나머지 멤버들의 대화소리가 들렸었다. 이것들은 너희들이 치우라는 그 남자의 목소리와 싫다고 난리 치는 다른 목소리들. 그리고 핸드폰 놓고 들어간 것 같다며 전해주라는 낯선 목소리와 지지직 거리는 소리가 이어지고 마치 그 음성이 내 핸드폰에서 녹음되는 듯 알겠다고 대답하는 그 남자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만약, 그 음성이 CCTV 음성이 아니라 내 핸드폰에서 나는 소리라면, 아니 근데 내 핸드폰은 그 남자가 준 게 아닌데, 나는 핸드폰을 내가 직접 구입했었는데. 아, 핸드폰 케이스. 핸드폰 케이스는 그 남자가 줬었다. 맞아, 핸드폰 케이스를 그 남자가 택배로 나에게 줬다. 주소도 모르면서 택배로 내게, 핸드폰 케이스를. 그리고 그 핸드폰 케이스에는 도청 장치 같은 게 있었던 거고. 그래서 그 음성들이 실시간으로 들렸던 거고.
아니야, 오해일 거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지금.
"아니야, 아닐 거야."
만약 그렇다면? 도청장치로 하루 동안의 내 일들을 다 엿듣고 있었다면. 그래서 내가 오늘 친구들이랑 분식집에 가려고 했었던 거, 마카롱을 좋아하는 거, 그거 전부 다 알아서 분식 메뉴들을 사온 거고, 마카롱을 사온 거라면. 그 남자의 모든 행동들이 우연이 아니라면. 이 좆같은 추측이 들어맞는다면. 이 좆같은 추측이 들어맞아서 아까 나를 달랜 게 아니라 내 눈치를 본 거라면. 아니, 아니야, 아닐 거야, 말도 안 돼.
그래, 증명하자, 아니라는 거, 아니라는 것만 증명하자.
"그래, 그럴 리가 없지. 난 또 아빠가 진짜 기타 사준다는 줄 알았잖아. 기대했는데..."
만약 도청이 사실이라면 이미 이상한 말을 너무 많이 했다,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위해선 이게 최선이야, 나도 참 창의력 한 번 거지 같네. 근데 제발 아니었으면 좋겠어, 그냥 나는 진짜, 나는 다른 건 바라지도 않으니까 제발, 제발 내 앞에 기타 들고 나타나지 마요. 선물이랍시고 들고 나오지 마요, 그러면 정말 나 무너질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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