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 오직 당신만의.
W. JPD
13
멍했다. 그냥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모든 게, 전부 다, 소름이 돋았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들도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했다, 언제일지 모르는 예전부터 그래왔지만 오늘도 역시나였다. 내가 기자랑 이야기하는 걸 듣고 눈치챘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엔 내게 이렇게 기타를 전해주고 있고, 내가 늦은 이유를 뻔히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왜 늦었냐고 물었다. 준비한 선물이 기타일까 싶어서 마음 졸였던 것도, 그래서 표정이 어두웠던 것도, 평상시보다 말투가 딱딱했던 것도, 다 알고 있었으면서, 내가 일부러 마카롱 핑계 대면서 내보낸 것도, 그런 의도도, 내 마음도, 전부 다 알고 있었으면서, 여태 나를 그렇게 가지고 논 거다, 농락한 거야 나를.
"욕 해도 돼요?"
"때려도 돼."
"... 됐어요, 그냥 갈게요."
뒤를 돌아 그 방을 나오려고 했다, 더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제 이 남자를 안 볼 자신도 있었고, 방해가 되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그런 나를 붙잡는 손길이 다급했다, 급한 손길에 힘이 실렸다. 내가 뒤돌아서자 그제야 미안하다며 손목을 놔주는 남자였다. 어쩌면 나는, 이 남자를 원망하고 싶지 않아서 나오려고 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냥 그게 다야, 도청만 했어."
"... 뭐요?"
"그냥 그 케이스가 전부라고."
거짓말. 이 남자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 남자는 지금, 나에게, 내가 도청한 사실만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래서, 지금,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내가 어디까지 눈을 감아줘야 이 짓을 끝내려는 생각일까. 화가 솟구쳐 방을 나와 내가 방금까지 있었던 작업실로 향했다. 문을 세게 열어 들리는 둔탁한 소리는 신경도 쓰지 않고 마지막 서랍장을 열었다. 아까와 같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상태, 내가 봤을 거라곤 예상도 못했겠지. 근데 아니야, 아니라고. 난 이미 이걸 다 봤어요, 이미 다 봤다고.
"도대체 언제부터, 언제, 도대체, 왜."
서랍장 안에 들어있던 내용물들을 벽과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지며 중얼거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바닥에는 나의 사진들이, 나에 대한 서류들이, 그렇게, 나뒹굴고 있었다. 정말 이대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공중에 흩날리는 이것들처럼 나도 그냥 이대로, 이렇게 사라져버렸으면.
"내가 몰랐으면 계속할 생각이었어요? 내가 몰랐으면, 내가 계속 눈치채지 못하고 병신같이 굴었으면!"
"..."
"나는, 나는 그래도 다 이해하려고 했어, 다 용서할 수도 있었고, 눈감아주려고 했어요."
"..."
"근데 그거 짓밟은 건 그쪽이에요."
"..."
"여태 재밌었겠다, 사람 병신 만들면서."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미웠다, 전부 다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것 같아서, 그게 스스로 밝힌 잘못이 아니라 내가 밝혀낸 잘못이어서 더 미웠다. 분노, 슬픔, 원망, 그런 감정들이 뒤섞여 누를 수가 없었다. 쏟아져내리는 눈물을 닦아낼 생각도 못하고 그저 그렇게 흘려보내면서, 가만히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 남자를 노려보기만 했다. 더는 말을 이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끊지 않으면 그 뒤에는 나를 막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더 무서웠다. 마지막 남은 이성이 발악하고 있었다.
"우리 관계가 워낙 애매하긴 했지만, 그만 만나요."
"..."
"그래도 내가 이런 말할 수 있는 위치인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니까."
"..."
"잠깐이나마 선물 받아서 기분 좋았어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핸드폰 케이스를 벗겨내 바닥에 내던졌다, 항상 목에 차고 다녔던 목걸이 또한 손에 힘을 줘 뜯어냈다. 아마 목덜미에 상처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다, 그런 아픔을 느낄 틈도 없었던 거겠지. 뜯어낸 목걸이를 남자의 손에 얹어주곤 미련 없이 작업실을 나왔다. 소란스러웠던 건지 아까 그 남자가 나와있었다. 내가 나가는 모습을 아무 말 없이 보기만 하기에 나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대로 건물을 나섰다.
-
"남준아."
"네, 왜요."
"지금 내가 듣고 있는 게 무슨 소리지."
"..."
"나서지 말라고 했잖냐."
"다 형을 위해서예요."
"지랄 말고."
"정신 좀 차려요, 형 지금 제정신 아니야."
"나랑 싸우자고 시비 터는 거면 하지 마라, 내가 지금 존나 피곤하."
"아뇨, 지금 형 안 막으면 진짜 큰일 날 것 같아서 그래요, 그리고 후회 안 합니다."
"야."
"형이 어떤 마음인지는 알아요, 근데 표현 방식이 틀렸어요."
"씨발, 야."
"기자까지 따라붙은 상황에 뭘 더 해요, 우리들도 다 같이 죽자고? 나는 그렇다 치고 나머지 애들은, 생각 안 해요?"
"..."
"이 자리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그건 형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 아니에요."
-
[민윤기]
데뷔, 그러니까 내가 원했던 건지 아닌지 모르겠는. 목표인지, 과정인지. 아니면 그저 수단인지. 나도 나를 모르겠었다, 수많은 고민들이 나를 계속 괴롭혀왔다. 아무것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마음 덕분에 발악하는 노래들이 잘 맞았다. 좋은 말로는 사회 비판, 뭐 그런 거. 멤버들의 평균 나이를 따라 주제를 정했던 것 같다, 시작은 학교, 대충 그렇게 계속.
"... 형, 뭘 그렇게 집중해서 봐요."
"그냥 멍 때리는 거다."
데뷔 때는 딱히 이렇다 할 반응을 얻지 못했다. 단지 멤버 한 명이 유명 아이돌을 닮았다는 이유로 조금의 관심을 받기는 했었다만, 그것뿐이었다. 아직은 방탄소년단의 슈가이기보단 스물한 살 민윤기에 가까웠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을 비롯한 세상이 그랬다. 유명하지 못한 게 이유라면 이유였고, 딱히 속상하진 않았다. 그냥 하라는 대로 하고, 하지 말라면 안 하고, 그런 생활을 이어갈 뿐이었다.
"멍 때리는 거 아닌 것 같은데?"
"지랄."
그러다 너를 봤다, 연습실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분명 창밖을 바라보며 의미 없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새 너를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잠시 멈춰 선 차에 네 걸음을 눈으로 좇았다. 하나로 묶은 머리, 동그란 안경, 잠시 꺼내 시간을 확인하는 듯한 행동, 핸드폰은 폴더폰, 쌍꺼풀, 교복 치마 길고, 다리 예쁘고. 미쳤구나, 내가. 어린애 데리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고등학생이라 지금 끝난 건가, 10시 좀 넘은 걸 보니 야자 했나 보네, 위험하게 왜 혼자 가는 거지, 보통은 친구랑 같이 가던데.
"... 아."
"왜요?"
"아니야."
평소답지 않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데 갑자기 출발한 차에 강제로 정리되었다. 어둠 속에서도 유난히 기억에 남는 얼굴, 어느 학교 교복이었는지는 며칠만 둘러보면 알 수 있을 것이었다. 마침 이번 활동도 오늘이 끝이고, 다음 앨범은 내년 초에 예정이니 잠깐은 괜찮겠지.
"형, 작업하게요?"
"어, 잠이 안 와서."
"그럼 전 먼저 들어가 볼게요."
연습을 끝내고 하나둘 연습실을 나갔다, 나는 나만의 공간에 들어섰다. 의자에 앉자마자 또다시 네가 생각이 났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네가 떠올랐다. 그리고 놀랍게도, 너를 생각하면 곡이 만들어졌다. 처음엔 그저 우연이라 생각했지만, Danger를 낼 때쯤 우리는 꽤나 반응을 얻고 있었다. 너를 만난 뒤에 처음 작업했던 상남자부터 이어진 관심이 말이다. 사실 그날 밤, 떠오르는 멜로디들이 주체가 안돼서 그런 것들을 다 작업하다 보니 네 학교가 어딘지 알아볼 시간도 없이 정규앨범을 내는 8월까지 쉴 새 없이 달렸던 것 같다. 그러니까 어느새, 겨울도 봄도 지나고 여름, 너를 다시 찾으러 차에 올라탔다.
"... 찾았다."
너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기에 그저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적처럼 네가 나타났다, 그때와는 다른 교복을 입고선.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너는 그때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내가 처음 봤을 땐 중학교 3학년이었고. 그날은 학원 때문에, 이제는 야자 때문에 10시 조금 넘은 시간에 같은 길을 걷는 너였다. 충분히 잡혀가고도 남을 상황이지만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리웠었던 건지 너를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나왔다, 귀엽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저런 여동생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
하지만 나는 욕심이 있었다.
암호닉
땅위 / 윤기윤기 / 굥기 / 봄 / 굥기윤기 / 왼쪽 / 민슈가천재짱짱맨뿡뿡 / 슉아 / 쿠크바사삭 / 김까닥 / 레드 / 찡긋 / 호비호비뀨 / 윤맞봄 / 둘셋 / 1472 / 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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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 3까지 나온 마당에 이나은은 진짜 불쌍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