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 오직 당신만의.
W. JPD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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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았다. 주말, 항상 기다려왔던 날인데. 예전엔 쉬는 날이라 행복했다면, 이제는 그 남자를 볼 수 있어서. 그런 날인데, 오늘은 원래 기뻐야 할 날인데, 왜. 왜 나를 이렇게 만들어요, 왜 일어나기 싫게 만들어. 생각해보니까 내가 잠깐 착각했나 봐. 내가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받고 있었는데, 내가 매달리고 있었는데.
이제 나 어떡해요.
"여보세요."
"일찍 일어났네, 오늘 보고 싶어서 연락했어. 시간 돼?"
"뭐가 그렇게 급해요, 오늘 스케줄 많아요?"
"아니, 그냥. 빨리 보고 싶어서."
"저 오늘 시간은 많은데, 어디서 만날 거예요?"
"나 멀리 못 가는 거 알잖냐, 연습실 지겨워?"
"아뇨, 괜찮아요. 제가 갈 테니까 나오지 마세요."
"... 미안, 최대한 빨리 대책 세울게."
"그런 말 안 해도 괜찮아요."
최대한 평소처럼. 그러니까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대화를 이어가는지. 그런 건 하나도 모르게, 그 남자가 알지 못하게, 그냥 그렇게. 이 관계가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건 여전하니까, 나는 계속 만나고 싶으니까. 들춰낼 마음은 전혀 없고, 차라리 덮어주고 싶을 정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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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길, 어쩌면 이미 나의 일상이 되어버렸을 수도 있을, 그런 풍경. 이것들도 다 그 남자가 만들어준 하나의 추억일 텐데. 오늘따라 생각이 많다, 그만큼 걸음도 느리고, 또 그만큼 우리의 거리도 먼 것 같은 착각이 생겨서 또 우울해진다.
"안녕하세요, 이런 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땅만 보고 걷는 내 앞을 막아선 낯선 사람, 여자였다. 말투 자체는 상냥한 것 같았는데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경계했다. 여자가 건넨 건 자신의 명함, 자세히 들여다보니 기자, 기자라고 쓰여있었다. 그 단어가 보이자마자 다른 건 신경 쓰이지 않았다. 들켰다는 직감에, 내가 그 남자에게 피해를 줄 것 같은 느낌에, 나 때문에 일이 꼬였다는 불안감에.
"아, 표정 푸세요. 그건 그냥 신뢰를 주기 위한 도구, 기자로서 온 거 아닙니다."
"...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보는 눈이 많을 텐데 잠깐 제 차로 가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
"납치하실 건 아니고요?"
"제가 미쳤다고요?"
지금 내가 이런 걸 따질 상황이 될까. 나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이, 아니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무너져내릴 수도 있는데, 고작 차에 같이 타는 게 무서울 수 있을까. 설령 정말 납치를 당한다고 해도 피하면 안 되는 거잖아, 그렇게 해서라도 해결될 수 있다면 기꺼이 다 내려놔야 하는 거잖아. 병신, 끝까지 이기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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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 이러면 안 되는데."
"용건만 말씀하세요."
"아, 예민하시구나. 내가 나이 훨씬 많으니까 말 놔도 되나?"
"네."
"네 말대로 용건만 말할게. 방탄소년단 슈가, 그러니까 민윤기, 그 사람이랑 거리를 둬."
"... 그쪽이 뭔데요?"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그냥 동생 같아서."
"그러니까 무슨 이유로요."
"아, 아직 모르는구나. 충격받지 말고 들어."
"... 스토킹?"
"... 너, 알아?"
"... 하실 말씀 끝났으면 갈게요, 다시는 이렇게 찾아오지 마시고요."
"명함에 적힌 번호로 언제든지 연락해, 범죄니까 지켜줄 수 있어."
대답도 하지 않고 그냥 차에서 내렸다. 이 여자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다, 오히려 기자면서 이런 빅뉴스를 언론에 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니까. 게다가 지금 이 행동은 정말 한 학생을 걱정해서 하는 행동들이 분명하니까. 나는 할 말이 없다, 이 여자가 질타를 받을 이유도 없고. 근데 왜 나는 이 여자가 싫지? 나는 왜 지금 이 상황이, 이 여자의 행동이, 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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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늦었어? 걱정했잖아."
"미안해요."
"미안해하라는 소리는 아니고."
"근데 오늘 왜 그렇게 급하게 보자고 한 거예요?"
"아, 그거? 오늘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한 게 있거든."
"... 뭔데요?"
제발.
"그건 너 갈 때 알려줄게."
"... 아. 근데 진짜 죄송한데요."
"왜?"
"저 그때 그 마카롱 다시 사다 주시면 안 돼요...? 아, 나갔다 오기 좀 그렇죠."
"아니야, 아침이라 괜찮아, 갔다 올게. 혼자 있을 수 있겠어?"
"물론이죠, 여긴 안전하잖아요."
"금방 갔다 올게."
그렇게 그 남자를 보냈다. 지금 나는 내가 예상하는 게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가 너무 필요해서, 너무 절박해서, 제발 아니었으면 해서, 그래서 이러는 것뿐이야. 나는 그냥, 정당화할 이유를 찾는 거고, 그건 그 남자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아니, 어쩌면 나만을 위해서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딴 거 신경 쓸 시간이 없다.
"아니야, 아닐 거야."
미친 듯이 부정하며 서랍을 열어젖혔다. 첫 번째, 두 번째, 그리고 마지막인 세 번째 칸. 세 번째 칸에 서류봉투들이 있었다, 갈색의 큰 봉투가 여러 개. 불안감이 나를 덮쳤다, 하지만 난 떨리는 손으로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들을 꺼냈다. 손의 떨림이 종이를 버티지 못했다. 바닥에 흩어진 내용물들은 나의 신상정보들이 정리된 종이를 비롯해 내가 학교에 제출했던 나를 소개하는 안내문, SNS에 올렸던 사진들, 더불어 일상적인 사진들까지.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 내 눈앞에서 펼쳐졌다. 아니라고 부정했던 사실이 나를 흔들고 있었다.
그래, 처음부터 너무 잘 맞는다 싶었어.
"이렇게 엉망으로 해놓으면 뒷감당 어쩌려고."
"... 오지 마세요."
"도와줄게, 정리하는 거."
"... 그쪽도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으면서."
"멤버들 다 아는 거 아니니까 조용히 해, 그리고 나도 전부 다 아는 건 아니니까 걱정 말고."
"뭐가 그렇게 당당해요?"
"내가 안 당당할 이유는 없잖아."
"당신 처음 볼 때부터 기분 나빴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 물론 나는 훨씬 전부터 그랬고."
"... 뭐요?"
"왜 나타났어, 우리 눈에. 아니, 형 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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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 3까지 나온 마당에 이나은은 진짜 불쌍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