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우유의 비밀
앞으로 학창시절이 핑크빛 봄날이 아니라 우중충하다 못해 습하기 그지없는 장마에 아주 오래 시달릴 것 같다는 걸 직감했던 2월의 예비소집일로부터 시간을 계속해서 흘러 어느새 3월 개학날이 밝아버린 지금 난 시계를 쳐다보면서 숨만 쉬고 있었다.
“탄소야! 아직도 자니? 어머! 일어났으면 학교 갈 준비해야지 왜 그러고 누워있어?”
그리고 떠오르기만 해도 암울해지는 2학년의 시작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작년과 다르게 지각하기 전까지만 집에서 시간을 보내겠다는 내 야심찬 계획은 평소와 다르게 늦잠을 자는 것 같은 날 깨우러 방에 들어온 엄마한테 침대에서 뒹굴뒹굴 하던 걸 들켰고, 엄마의 잔소리와 함께 학교에 등교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등교하고야 말았다.
2학기 때, 갑작스럽게 일찍 등교하는 나한테 저게 얼마나 갈지 아빠랑 내기를 하던 엄마는 내가 한 학기 내내 등교시간보다 일찍 등교하자, 2주쯤 되자 날 말리기 시작했었는데, 중간고사 성적이 오른 걸 보고는 오히려 더 일찍 가라며 내 등을 떠밀곤 했었다.
“작년이랑은 사정이 달라졌는데, 차라리 처음 일찍 등교할 때처럼 말려주지.”
성적이 오른 후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생활패턴을 적극 권장하는 엄마에 대한 서운함을 곱씹으며 아무도 없는 교정을 잠시 뱅뱅 돌던 난 교과서가 가득 든 가방에 시간 때우기를 포기하고 지금쯤이면 텅 비어있을 새로운 반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반 앞에서 학생증으로 잠겨있을 교실 문을 열려던 나는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있는 인영을 발견하고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아무도 없는 게 정상일 등교시간이 한참 남은 이 시간에 사람이 있는 것도 모자라서, 그 사람이 민윤기라니. 그냥 집에 다시 갈까?
“지금 집에 가봐야, 다시 와야 하는데, 게다가 나 제 옆자리잖아.”
결국 현실과 타협한 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문을 열고 교실에 들어가면서 남준쌤이 예비소집일날 마지막으로 던졌던 폭탄인 민윤기의 옆자리로 다가가 가방을 조심스럽게 내ㄹ...
쿵
“헉.”
가방을 조심스럽게 내려야겠다는 내 생각과 다르게 쿵 소리를 내면서 떨어진 가방에 숨도 멈춘 난 민윤기가 깨지 않길 기도하면서 고개를 내렸고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던 민윤기와 눈이 마주쳤다.
“미안, 조심해서 내려논다고 했는데.”
눈이 마주치자마자 반사적으로 사과하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잘 때 건드리지만 마. 너 민윤기가 1학기 때 교실에서 싸운 거 알지? 그것만 조심해. 그거 자는 거 깨워서 남자애가 맞은 거래.’ ‘나도 들은 거 있어. 어떤 여자애가 민윤기 자는 거 깨워서 고백하려다 욕 듣고, 울면서 뛰쳐나왔다던데. 그래놓고 나중에는 욕하는 것도 섹시하다고 다시 쫓아다녔데.’
안나와 호연이가 민윤기랑 짝꿍이 된 나한테 말해주던 소문들이 머리를 미친 듯이 헤집기 시작했다. 오늘이 민윤기가 처음으로 여자를 때리는 날이 되는 거 아닐까. 표정 엄청 살벌한데. 아니면 옥상에 끌려 올라가는 거 아냐? 이대로 빵셔틀이 되는 건가? 나 어쩌지. 한강물 많이 차가울까.
“됐어. 지금 왔냐.”
조심스럽게 건넨 사과에 인사를 건넨 민윤기는 뚫어질 듯이 날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 시선 때문에 덩달아 눈을 뗄 수가 없던 난 내 얼굴에 뭐가 묻진 않았는지. 아니면 아침을 먹다 옷에 뭘 흘렸는지를 고민하다가 민윤기의 표정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멍한 눈빛과 매치시켜보니 화가 난 것 보다는 잠이 덜 깬 것처럼 보이는 표정과 팔에 부볐는지 헝클어진 앞머리까지. 근데 언제까지 쳐다볼 생각이지. 뭐 할 말 있나? 아. 나 얘한테 대답했나? 그거 질문 맞겠지?
히익. 지금 얼굴 찡그린 거지. 그거 질문 맞나봐. 일단 그러니까 질문이 지금 왔냐는 거였지?
“ㄴ,,,,난 원래 이 시간에 등교해! 넌?”
하..미친. 응이라고 대답하기엔 늦은 것 같아서 길게 대답한 건데, 말은 더듬고, 삑사리까지. 죽을까. 민윤기랑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만나기만 하면 흑역사 적립이야.
“사촌형이 데려다준다고 해서. 그보다 자리.”
“자리?”
“어. 담임이 맨 앞이라고만 하고, 자리는 안정했잖아. 일단 내가 안에 앉았는데, 너 불편하면 내가 바깥쪽에 앉을까?"
말하고 나서 쪽팔려서 고개를 돌린 나와 다르게 잠이 덜 깬 듯 눈을 비비던 민윤기는 아까 내 생각대로 단순히 잠이 덜 깨서 표정이 굳어있었던 게 맞는지 소문만큼 무섭지 않았고, 오히려 자리가 불편한지 물어볼 정도로 섬세한데다, 좀, 귀여운 것... 아니야. 잊자. 귀엽긴, 얜 아주 무서운 애라고.
그보다 바깥쪽에 앉을 건지 물어봤지? 쉬는 시간에 맨날 잔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내가 안쪽에 앉으면 나갈 때마다 얘를 깨워야 할 테고. 바깥쪽이 좋을 것 같은데.
“아니. 난 바깥쪽이 편해.”
"그래 그럼. 아, 담임쌤이 너랑 같이 연구실로 오래."
딱히 바깥쪽 자리에 앉고 싶었던 건 아닌지. 금방 고개를 끄덕인 민윤기는 남준쌤이 우릴 불렀다며 자리에서 일어난 민윤기는 걸음을 옮기다 움직이지 않는 내가 이상했는지 따라오라는 듯 멈춰 서서 날 쳐다봤고, 난 얼결에 그 애를 따라 걸음을 옮겼고 일분이 천년 같은 어색한 동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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