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 써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호닉 '-^♡ → 노을 / 섹도
따라다니긴 해도 사생은 아닌데? (하루) |
감춰둘 내용을 "자, 단역 분들 이제 촬영 들어가실게요! 모두 모여주세요!"
목에 작은 확성기를 달고 있는 스태프의 외침에 자신의 일들에 빠져 있던 단역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물론, 게 중에는 입을 헤 벌리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변백현(24세/연기자 겸 밀당장인)을 주시하는 도경수도 있었다. 오늘 하는 단역 아르바이트도 당연 백현 때문에 신청했던 경수는 한겨울의 시린 바람에 손 끝이 얼어가는 것도 모르고 마냥 좋아했다. 뒷짐을 지고 걸어가는 백현의 주위에서 서로 갈 길을 가면 되는 간단한 단역이었다. 이렇게 한 공간에서 함께 이 좁은 곳의 공기를 나눠 마실 수 있다는 게 크나큰 행복이지만…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촬영을 하는 동안엔 백현에게 시선을 둘 수 없다는 것이었다. '씨발, 다음엔 더 좋은 자리로 가야겠다…!' 경수는 아무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며 굳게 다짐했다. 촬영 할 분량이 적었다는 이유로 생각보다 너무 빨리 끝난 촬영에 다른 아르바이트 지원자들은 쌍수 들며 환영했지만, 단 한명. 경수만은 왜 이렇게 빨리 끝난 거냐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수고했단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잠시 후 몇 명의 여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백현에게 뛰어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저것들이 어디서 나의 백현이를…!' 질세라 미리 챙겨왔던 공책(첫 장부터 총 30장이 넘는 페이지가 백현의 싸인으로 채워져 있는)과 펜을 꺼내 달려갔다. 추운 날씨에 코가 얼어 빨개졌지만 연신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팬들을 맞이하는 백현이었다. "역시.." 어쩜 애가 생긴 것도 말끔하고 연기도 잘하는데 착하기까지! 역시 도경수가 괜히 좋아하는 게 아니라니까? 백현을 높이며 애써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경수가 어느 새 백현의 바로 앞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공책과 펜을 내밀었다. 기계적으로 웃으며 이름을 묻고 싸인을 해 주던 백현은 불쑥 내밀어진 공책을 잡고있는 손이 남자 손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입가에 미소를 내걸고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경수는 자신을 쳐다보는 백현에 놀라(솔직히 말하면 설렜지만 자신이 백현을 좋아하는 게 단순한 팬심인지 혹은 그 이상인지 헷갈리므로 일단은 팬심이라고 생각했다)눈을 크게 뜨고 '왜 빨리 싸인을 하지 않냐'는 눈빛을 쏴 주었다. 춥다 이새끼야… "안녕하세요." 공책을 넘겨 백현의 마지막 싸인이 그려진 곳의 다음 페이지로 넘긴 백현이 웃으며 인사를 건네왔다. 사실 앞서 싸인을 받았던 여학생들과 다른 사람들에게는 해준 적 없는 인사였지만 그것을 알 리 없는 경수는 의례적인 인사인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뭐야, 얘 왜 내 이름은 안 물어봐? 공책을 받은 경수는 백현이 새로 싸인해 준 페이지를 열었다. 「To.경수씨, 오늘 날씨는 많이 춥죠?」그냥 싸인이 잘 되었나 확인만 하려던 경수는 표정이 딱 굳은 채 고개만 올려 백현을 바라보았다. "자주 뵙네요, 도경수씨." 씨발, 내가 방금 들은 게 환청은 아니지? 그래. 일 년 동안 쫓아다니며 내가 똥빠지게 일해서(정확히 말하자면 까이고 또 까이며)번 돈을 투자한 보람이 있구나… 방금 백현이가 내 이름 불러준 거 맞지?… 여러분 보고 있어요!? 제가 그 유명한 성공한 팬의 표본입니다-!
남들이 보기엔 허우대도 멀쩡하고 돈도 부족하게는 벌지 않는 정상적인 이 나라의 건장한 청년인 경수는 한 가지 흠이 있었다. 그건 다름아닌 연예인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라는 사실. 참, 여기서 말하는 '광적인 집착'은 개인 집과 사무실에 들이닥쳐 피해를 주는 그런 몰상식한 사생들의 행동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 빠진 연예인은 죽어라 쫓아다니며 좋아하는 행동'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이면 다들 알겠지만, 그런 경수의 첫 타겟이 바로 백현이고 경수는 현재 일년 조금 넘게 백현을 졸졸 따라다니며 보고 있다. 그동안 백현이 드라마나 영화를 찍는다고 하면 힘들게 아는 인맥을 동원하거나 직접 전화를 걸거나 인터넷을 이용해서 단역 아르바이트르 했고, 공개 라디오에 나온다 하면 본래 있던 약속들을 다 뒤로 미루고 이른 시간부터 줄을 서서 당당히 맨 앞자리에서 편하게 백현을 감상했다. 또 게릴라 인터뷰를 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오는 순간 아빠의 차를 빌려 엑셀을 밟을 수 있을 정도까지 밟아 그 장소로 갔고, 어쩌다 카페나 식당에서 사람들이 백현의 얘기를 할 때마다 끼어들고 싶어 다리를 달달 떨기까지 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항상 백현의 스케줄을 따라다니는 무리들 중 우두머리는 경수가 되었고, 또 그 무리에서 당당히 맨 앞자리 (백현이 가장 잘 보이고, 무슨 말을 하는지 다 들을 수 있는 로얄석)가 경수의 공식적인 자리가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계속 쫓아다니면 어느 순간 백현이 자신을 알아보고 말을 걸지 않을까하며 하루하루 부푼 마음을 안고 살았지만, 일 년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자신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백현을 보며 이미 기대는 버린 지 오래였다. 그런데 오늘, 정말 기적적인 일이 벌어져 버렸다. 경수는 속으로 감격의 눈물을 닦아내며 집에 가자마자 달력의 오늘 날짜에 하트를 잔뜩 그려 넣으리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멍때린 경수의 뒤에는 줄을 서 있던 사람이 없었고, 퍼뜩 정신을 차린 경수가 백현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지금…저…알아 보신거에요…?"
아오 왜 말은 띄엄띄엄 나오고 야단인지, 이러다가 백현이 자신의 이미지를 좋지 않게 굳히는 건 아닌가 하고 걱정했다. 하지만 백현은 무엇이 그렇게 유쾌한지 입을 네모나게 벌리며 웃었다.
"네." "어,어…그…저……" "네?" "내일…5시에…인터뷰 맞죠…?"
백현은 순간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까딱했다가 그것이 자신의 스케줄임을 깨닫고 다시 한번 박장대소했다. 일 년 동안 쫒아다니다가 드디어 말을 섞게 되었는데 고작 한다는 말이 다음 날의 스케줄 확인이라니. 사실 백현은 경수의 존재를 경수가 쫓아다니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 알고 있었다. 아니, 당연히 알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중·고등학생이나 이십대 후반을 달리는 누나들에게 인기가 절정이었던 백현을 따라다니던 무리들도 그 또래의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물론 그들은 적은 수도 아니고 (백현의 입장에서 보기엔) 다 똑같이 생겼기 때문에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다른 남자들에 비하면 좀 왜소한 체격을 가진. 하지만 외모 하나만큼은 동글동글 잘생긴 남자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매니저에게 그가 누군지 물어보자, '얼마 전부터 너 쫓아 다니던 애' 라고 대답해 당황했었다. 꿈에서도 남자가 자신을 쫓아다닐 것이라곤 생각해 본 적 없기 때문에 처음엔 많이 낯설고 또 경수를 애써 무시해왔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처음 그 느낌처럼 백현을 보고 좋아해주는 경수에게 감사할 뿐이다.
"네, 맞아요. 경수씨 내일 오실 건가요?" "네…저 아마…갈 것 같은데…" "네, 그래요." "호…혹시!" "네?" "제가…백현씨 따라다니는 거…싫으세요?" "아뇨."
짧은 단답이었지만 자신이 쫓아다니는 것에 대해 반감이 없다는 것 자체가 좋았기 때문에 경수는 커다랗게 하트를 만들어 보이며 웃었다. 그 순간, 백현은 경수가 웃음과 동시에 접혀 올라가는 눈이 귀여워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워낙 순식간이라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고 경수를 따라 함께 웃었다. |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조인성은 나래바 초대 거절했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