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닉
노을/섹도
따라다니긴 해도 사생은 아닌데? (사흘) |
"응……?"
아, 역시 안되는구나… 하긴, 매니저 형이랑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연예인 번호를 어떻게 함부로 주겠어. 그것도… 요즘 한창 주가 올리기 바쁜 변백현을. 분명 집에서 나올 때는 어떤 억지를 부려서라도 백현의 전화번호를 받아내고 만다며 의지를 불태웠지만, 막상 당황하는 매니저의 얼굴을 보니 괜시리 의기소침해지고 또 미안해져서 경수는 눈빛을 가라앉혔다.
"아,아녜요. 그냥 잠깐 도를 넘어서 생각했어요…죄송해요."
매니저 입장에선 사실 좀 놀란 발언이긴 했지만 잠깐 사이의 고민 끝에 (일 분도 채 걸리지 않음) 백현이도 경수가 싫지는 않은 눈치, 아니 굳이 얘기하자면 요새 백현이가 경수에게 관심을 좀 많이 보이는 것 같길래 줘도 상관 없겠다 싶어서 준다고 말하려던 찰나 경수가 혼자 포기해버려 오히려 더 당황했다. 아니, 얘 뭐야… 뭔데 나를 들었다 놨다…
"혼자 달랬다가 말랬다가, 뭐 하는거야?" "……네……?" "뭐, 어차피 백현이 성격에 이런 걸로 화 낼 애도 아니고, 요즘 관심도 좀 보이는 것 같고…" "………?"
경수는 매니저 형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순간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 그것이 '백현의 번호를 너에게 주겠노라' 라는 뜻임을 알게 된 후, 광대가 저도 모르게 승천하는 것이다. 아, 지금 내 앞에 서서 커피를 빨고 계신 이 분이 과연 그 후줄근하게 생긴 백현이의 매니저가 맞는가? 지금 이 순간 경수의 눈에는 매니저가 흰 날개를 달고 있는 천사로만 보였다. 매니저는 괜히 고개를 두리번대며 눈치를 보다가, 경수의 겉옷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ㅇ,어……!"
경수가 급하게 휴대폰을 사수하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매니저가 휴대폰의 홀드키를 누른 순간, 셀 수 없이 많은 백현의 얼굴이 휴대폰 액정 화면에 둥둥 떠다녔다. 아 설마 나를 정말 감당 못 할 씹오덕으로 보는 건 아니겠지…? 괜히 등줄기에 땀이 한 방울 흐르는 것 같아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하지만 전혀 놀랍지 않다는 듯, (경수는 잠시 이 반응을 좋게 해석해야 하나 나쁘게 해석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능숙하게 번호를 친 뒤 경수에게 다시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휴대폰을 돌려받은 경수는 이름을 무엇으로 저장해야 하는지에 대해 행복한 고민을 하며 번호를 외우기 시작했다. 백현이? 아냐, 너무 친한 척 하는 것 같잖아… 그럼… 변백현? 그건 또 딱딱해보여…어쩌지…?
"그런데 갑자기 백현이 번호는 왜?" "네?" "지금까진 번호 달란 소리 한 적 없었잖아. 뭐 아는 사람이 다른 연예인 번호라도 받았대?" "아…흐흐…그건 아니고 그냥…" "그래? 너니까 주는거야… 하루에도 몇 번이나 애들이 연락이 오는데." "네? 저만 달라고 한 거 아니었어요?" "당연히 아니지, 지금 백현이 인기 제일 크게 실감하는건 너 아냐?" "아, 그렇죠…"
그래, 갑자기 나를 넘어선 백현수니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 같아서 마음이 불안하다고… 백현이도 남자니까 당연히 나 말고 예쁜 여자 팬들한테 더 관심이 갈 것 아니야… 아 이렇게 꽃다운 나의 덕질도 마무리를 하는거구나…
"나 완전 무시하던 년들이 내가 백현이 매니저란 거 알고 갑자기 연락하는거야." "저런, 그런 사람들은 번호 주면 안되는데…" "당연하지, 내가 미쳤다고 그걸 주냐?" "하긴…형도 성격이 그리 좋지는…" "뭐? 번호 지울래?" "아녜요, 형. 감사합니다!"
그렇게 둘은 서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슬슬 싸인회가 끝날 시간이 다 되어가고 경수와 매니저는 인사 후 헤어졌다. 경수는 진짜 발만 구른다면 날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을 했다. 아니,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그래, 굳이 백만장자가 되지 않아도 성공한 팬은 생기기 마련, 암. 근데 그 성공한 팬의 대표적인 예가 내가 되는거야……!! 생각만 해도 자동 승천하는 광대를 죽이느라 혼자 킥킥댔다. 갑자기 찾아온 조증은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경수가 집에 돌아와 씻고 침대에 엎어질 때 까지도 입가엔 미소가 걸려있었다. 혹시라도 잘못 눌러 번호가 날라갈까 손가락의 움직임에 신중함을 가하며 카카오톡을 들어갔다. 반대쪽 손으로 눈을 가렸다가 손 틈 사이로 빼꼼 내다보니, 친구 목록에 새 친구가 노란 빛을 내며 떠있었다.
"으아아아아아!!!!"
백현이다. 저게, 변백현이야. 지금 내 친구목록에 떠 있는 저 사람이 내가 쫓아다니던 백현이라고!! 맘같아선 창문을 열어 제끼고 뛰쳐나가 지나가는 사람을 다 붙잡아 두고 이 사실을 자랑하고 싶었다. 심지어 길가에 돌아다니는 강아지에게도 '안녕, 멍멍아? 너 그거 아니? 내가 백현이 번호를 땄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들바들 떨리는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시킨 후 프로필 사진을 누르니, 저번에 자신에게 주었던 모자를 쓰며 활짝 웃는 백현의 모습이 보였다. 와… 이게 바로 아직 인터넷 상에 퍼지지 않은 백현이의 셀카사진…! 경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캡쳐를 했다. 반복해서 프로필 사진을 눌러 들어가던 경수는 다른 사람들이 무슨 어플이냐며 물었던 Quick pic을 눌렀다. 아니, 무슨 요즘 사람들은 이 어플도 몰라? 완전 구세대네! 스크린샷 폴더에는 방금 자신이 캡쳐한 백현의 셀카가 들어있었다. 경수는 앞으로 계속 따끈따끈한 백현의 사진을 저장할 생각을 하니 자연스레 몸이 떨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한참을 휴대폰을 잡고 행복한 기분을 잔뜩 느끼다가 입가에 미소를 내걸고 잠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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