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나는 너에게도 나무가 되고 싶었다. 지칠 때는 기댈 수 있고, 태양이 뜨거우면 너를 가려줄 수 있고, 선선한 바람이 불면 그렇게 좋을 수 없는. 너가 나에게 그렇듯, 나도 너에게 그러한 존재이고 싶었다.
옆 집 동생
해가 바꼈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갈 때, 다니엘의 집에서 서로에게 Happy new yearㅡ 과 함께 짧은 입맞춤으로 새해를 시작했다. 나이 들어서 무슨 주책이냐고 하겠지만, 둘이서 새벽 일찍 나가 해돋이를 보겠다며 동해까지 갔다. 추위를 많이 타는 저를 위해 목도리에 장갑, 핫팩까지 잔뜩 챙겨서, 거기에다 안 그래도 큰 파카에 파묻힌 나를 꼭 껴안은 채로 기다렸기에, 덕분에 따뜻하게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행히도 날씨가 좋아서 선명한 해를 볼 수 있었고 누구 하나 말 하지 않고 간절하게 두 손 모아 소원을 빌었다. 소원을 빌고 눈을 뜨자 아직도 눈을 감고 소원을 비는 다니엘이 보였다. 생일 때도 그러더니, 저렇게 간절하게 빌 소원이 있나.
" 무슨 소원을 그렇게 빌어? "
당연히, 비밀이죠. 내 물음에 곧 소원을 다 빌었는지 눈을 뜨고 안고 있던 팔에 힘을 주어 제 품에 나를 파묻히게 한다. 요즘 날이 추워서인지, 아님 이 녀석의 버릇인지, 만날 때마다 빈틈 없이 나를 껴안고는 한다.
" 누나."
" 응? "
" 내년에도, 우리 여기 해 보러 올까요? "
" 뭐, 오늘처럼 날 좋으면 보러 오자. "
" 누나의 30대의 처음을 함께 해야죠. "
" ... 죽고 싶냐. "
이 녀석과 내년에 오는 건, 음, 조금 생각해봐야...
*
요즘, 다니엘이 이상하다. 새학기가 시작된 후, 일 끝나고 만나도 집중 못 하고 휴대폰을 하거나 멍 때리는 건 당연하고, 연락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무슨 일이 있냐며 물어봐도 걱정하지 말라며 아무 일 없다며 넘기곤 했다. 계속 표정도 안 좋고, 컨디션도 안 좋아 보여 걱정이 되지만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주니, 뭐...
퇴근 시간에 맞춰 다니엘에게 카톡을 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힘들어 보이니 맛있는 밥이라도 사주고 싶었다. 이렇게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었고.
1 깡다니엘
1 많이 바빠?
1 오후 5:55 오늘 시간 되면
1 오후 5:56 우리 데이트나 할까?
이 시간대에는 한 번도 답이 없던 적이 없었는데. 퇴근 시간이 지나고, 혹시나 집에 가다가 연락이 올까 회사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한참 앉아있었다. 하지만 30분이 지나도, 1시간이 지나도 답장은 커녕 카톡의 숫자도 없어지지 않았다. 전화해도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가는 건 당연했다. 화가 조금 나기도 했지만 혹시나 약속이 있었는데 내가 일방적으로 약속을 잡은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에 조금 났던 화를 삭히며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
이 정도면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는데, 왜 나한테 말을 못 하는지, 아니, 안 하는 건가. 끊임없는 생각, 또 생각. 속이 답답해져 창문을 열어버렸다. 아직 날이 따뜻해지지 않아 조금은 찬 바람이었지만, 바람을 맞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찬 바람에 볼과 귀가 빨개지는 게 느껴졌다. 이런 저런 생각의 끝은, 다니엘은 나를 사랑은 하지만, 나를 의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 수 있지만,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데 어떻게 그 아이의 생각을 알 수 있을까.
어느덧, 집 가까이 도착한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다 커피라도 한 잔 마셔야 할 것 같아 집 앞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저녁 생각이 뚝 떨어져, 커피라도 안 마시면 술이 생각났기에. 카페로 들어서려는데, 카페 안에서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참 얼굴 보기 힘든 강다니엘.
" ... 뭐야, 쟤. "
혼자였어도 화가 났을텐데, 맞은 편에 다른 사람과 함께 있었다. 그것도, 여자.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문 밖에 서서 다시 강다니엘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고, 휴대폰을 들어 화면을 바라보는 다니엘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한숨을 쉬듯 몸이 들썩이더니 휴대폰을 엎어버렸다. 머리를 감싸쥐는 다니엘을 위로해주는 여자.
아, 나를 사랑은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이렇게 쉽게 변할 사랑이었구나. 나를 오래 좋아했다고 하더니, 막상 사귀고 보니 질리는 사랑이었나보다. ... 그냥, 평생 옆 집 누나로 남아있을 걸 그랬나. 너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나쁜 생각은 꼬리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길어진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단골 손님인 나를 알아본 알바생이 내게 먼저 인사를 해오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지체할 틈 없이 다니엘과 여자에게 향했다. 여자는 다니엘을 위로해주다 갑자기 나타난 내 존재에 의아한 듯 올려다봤고, 그림자가 지는 게 느껴졌는지 숙였던 고개를 드는 다니엘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놀란 눈으로 벌떡 일어났다.
" ... 여주 누나. "
" 하루 종일 연락 안 되더니, 여기서 이러고 있었어? "
" 누나, 누나. 오해하지 말고, "
" 내가 무슨 오해를 해. 오해가 아니라 진짜 같은데. "
" 아니, 아니다. 누나. 제발, 내 말 좀... "
내 팔을 잡으려던 다니엘의 팔을 밀어냈다. 상처 받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입술을 꾹 깨물더니 조심스레 내 손을 잡는다. 네 표정에 차마 손은 뿌려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 왜, 너가 상처 받은 표정이야? 왜? "
" ... ... "
" 너가 내 전화 안 받는 것까지 내 눈으로 본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오해를 하지 말까, 응? "
내 손만 꼭 잡고 아무 말 하지 않는 다니엘. 어린 아이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는 것처럼, 놓치기 싫다는 듯 꼭 잡고 있었다.
" 아, 저, 다니엘 여자친구세요? "
갑자기 들리는 여자 목소리에 고개를 홱 돌렸다. 다니엘 맞은 편에 앉아있던 사람이었다. 당연히 감정이 좋지 않았기에 좋지 않은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나를 이해한다는 눈으로 일어서며 나를 바라보는 여자.
" 저는 박우희라고 합니다. 다니엘 학과 조교예요. "
" ... 네? "
" 요즘 다니엘이 취업 관련으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서요, 저랑 자주 만나고 그랬었어요. "
" ... ... "
" 여자친구 분께는 다 확정되고 나면 말하고 싶다고 해서, 말을 아직 안 한 것 같아요. "
" ... 아, 네. "
" 오늘 서로 말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다니엘, 학교에서 봐. "
조교님이 우리를 지나쳐 나가시고,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운 적막이 우리 사이를 둘러쌌다.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확 쓸어올리고 다니엘을 바라보자 여전히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 ... 일단 앉아. 앉아서 얘기 하자. "
*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사장님께서 서비스라며 가져다 주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벌컥벌컥 마셨고, 다니엘은 여전히 내 손만 꼭 잡고 있었다. 아까는 느끼지 못했지만, 잡은 다니엘의 손이 잘게 떨려오고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반 이상 마시고 나서야 조금 마음이 진정되었다.
" ... 말해봐. 무슨 일이야? "
" ... .... "
" 너 학기 시작 되고 나서 계속 그랬어. 무슨 일이 있는데, 말도 안 해주고. 어느 순간 연락도 뜸해지고. "
" ... ... "
" ... 다 설명해줘. 속 시원하게. "
" 사실은, "
" ... ... "
" 학기 시작하고, 취업이나 미래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지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고 많이 흔들리는데, "
" ... ... "
" 누나한테는 알리고 싶지 않았어요. ... 그냥, 그냥 내는... "
" ... ... "
" 누나한테 늘 의지가 되는, 든든한 사람이고 싶었어요. 이런 모습 보여주기 싫었어... "
말이 끝남과 동시에 고개를 푹 숙여버리는 다니엘. 너는 내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고 했지만, 난 다 상관 없었다. 너가 내게 든든한 사람이고 싶듯이, 나도 너에게 적어도 쉼터 같은 사람이고 싶었다. 함께 고민도 해 보고, 생각 할 수도 있을텐데. 가만히 앉아서 다니엘을 바라보다 곧 몸을 일으켜 다니엘의 옆자리에 앉았다. 갑작스런 내 행동에 놀라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하는 다니엘. 네 옆에 앉아 가만히 보다 팔을 뻗어 다니엘을 껴안아주었다. 내 품에 가만히 안겨 있는 다니엘.
" 그런 게 무슨 상관이야. "
" ... ... "
" ... 우리 사랑하는 사이인데, 왜 그런 걸 신경 써. 응? "
" ... ... "
" 너는 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든든해. 그러니까, 다 얘기해줬으면 좋겠어. "
다니엘의 말을 들으면서, 오늘 하루 종일 내가 했던 고민, 생각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네 너른 어깨가 오늘만큼은 작게 느껴졌다. 등허리를 토닥토닥 두드려주자, 곧 내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아온다.
" ... 미안해요. 진짜로."
" 다음에 또 아무 말 안 하고 혼자 끙끙 앓기만 해봐. 아, 이번에는 다른 여자랑 같이 있었지? "
" 아니, 그게 아니라, "
" ... 아까 진짜 화 났었거든. 또 그런 일 있으면, 진짜 죽는다. "
" 응, 알겠어요. "
허리를 꼭 끌어안더니, 곧 내 어깨에 고개를 파묻는다. 왠지 어린 아이와 같은 모습이었다. 누나가 헤어지자카는게 제일 싫다. 그런 말 하지 마요. 내가 어떻게 너한테 그런 말을 하냐. 아직도 너는 모르니. 나도 너를 네 생각보다 많이 사랑한다니까.
잠깐만요! 꼭 읽어주세요 0x0 |
안녕하세요, 댕뭉이입니다! 변덕이 심한 날씨에, 모두 잘 지내셨는가요ㅠㅠ 요즘 날이 엄청 더운데 모두들 더위 조심하셔요! I편을 적고 나서 J편을 어떻게 적어야 할까 정말 고민 많이 했어요. 음, 그냥 J편으로 끝낼까 고민도 많이 했었는데, 원래 생각했던 약간의 갈등의 내용을 결국 넣기로 혼자 결심하고 요래저래 써내려왔답니다. 앞뒤가 쪼오금 안 맞는 것 같지만, 그래도 다니엘과 여주 두 사람 사이에는 필요한 갈등이라고 혼자 생각했어요ㅜㅜ 다니엘 외전(G화)에서도 잠깐 나왔지만 다니엘은 늘 여주에게 든든한 사람, 버팀목이 되고 싶어해요. 본인이 처음 겪는 취업, 미래에 대해서 흔들리는 모습을 여주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어요. 여주는, 다니엘 자체가 나무 같은 사람이라고 이미 마음 속에서 단정짓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 말 없이 끙끙 앓는 다니엘을 많이 걱정하고, 생각하고 있고요. 그런, 서로에 대한 마음이 조금 어긋나서 생긴 해프닝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꿈보다 해몽인가 싶기도 하네요. 이번 화에서는 대형견 같은 다니엘을 보실 수도 있겠습니다ㅎㅎ 드디어, 다음이 마지막입니다ㅠㅠ 정말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차기작을 사실 고민하고 있는데요. 주인공은 정해져 있습니다! 내용 짜는 게 정말 힘들어서ㅠㅠ 다른 작가님들 정말, 진짜, 완전, 헐, 레알 대단하십니다! 암호닉은 이번 J화까지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너무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암호닉도 신청해주셔서 볼 때마다 늘 감사하고 사랑스럽고 막 그렇습니다. ♡ 아, I화도 초록글에 올라왔더라고요! 사실 잠결에 봐서 처음에는 꿈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까 진짜였어요...(부끄)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번 J화도 읽어주신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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