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단
-서로 매우 심하게 거리가 있거나 상반되는 것-
시간을 달리는 소녀-Day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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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이 환하게 뜨던 날이었다. 어둠 속에서 저를 빛내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워 한참을 쳐다봤다.
"영민아, 뭐해?"
"달 봐, 예뻐서."
"보름달이네."
"예쁘지."
"응."
얼음을 동동 띄운 레몬에이드를 타온 주는 영민에게 건내고 옆에서 같이 보름달을 보았다. 영민이 원래 풍경을 자주 보던 건 아니었는데 가만히 밖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주때문에 영민도 같이 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주야, 너는 달 같아."
"왜?"
"예쁘게 빛나서."
"달이 빛나는 이유는 태양때문이래 내가 달이면 너는 태양일까?"
웃으며 답하는 주에 영민은 말 뜻을 잠시 생각하다 이내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그럼 내가 없으면 너는 사라져?"
"응, 그러니까 계속 빛나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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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민아, 오늘은 달이 없어."
시무룩한 표정으로 달이 없다고 말하는 주에 하늘을 쳐다보니 진짜 달이 없었다.
"오늘이 월식인가봐."
달이 보이지 않는 날은 극히 드문데 오늘은 달이 보이지 않았다.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고 다시 하늘을 쳐다보는 주의 모습에 영민은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내일은 달이 보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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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는 하루였다. 아침에 일어나 소파에 앉아있는 영민에게 인사도 했고 밥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었다. 칫솔 두 개를 들고오는 영민에게 칫솔 한 개를 받아 들어 입에 물기도 했다. 분명 정말 잔잔한 하루였다.
"주야, 나 슈퍼 좀 다녀올게."
"뭐 사게?"
"삼푸가 다 떨어졌어."
"같이 갈까?"
"더워, 금방 갔다 올게."
금방 돌아온다던 영민은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한없이 손톱을 물어 뜯으며 시계만 바라보던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전원이 꺼져있어 삐-소리 후 음ㅅ...
원하는 영민의 목소리가 아닌 기계적인 여자 목소리가 들리는 핸드폰에 신경질적으로 종료 버튼을 눌렀다.
마른 세수를 한 번 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민이 있을만한 곳은 다 돌아다녔다. 아까 간다고 말했던 슈퍼도 가보았고 혹시 저 앞 마트에 갔을까 싶어 마트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땀으로 등이 다 젖을 때까지 돌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영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태양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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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찾아왔다. 오늘따라 더 어둡게 느껴졌다. 우습게도 달은 환히 빛나고 있었다. 태양이 없는데 왜 빛나고 있는 거야. 짜증이 났다. 계속 영민을 찾다 결국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집 앞에 보이는 남자 실루엣에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너, 어디있다 지금 오는 거야. 영민이 아니었다.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왜 전화를 안받아."
"아, 집에 두고 나왔나봐. 왜?"
큰 소리를 내는 동현에 머리가 울려 눈을 감았다.
"영민이 병원에 있어."
"뭐?"
"교통사고 났대. 너한테 먼저 전화했는데 계속 통화중이라서 나한테 전화했대. 알잖아 영민이 핸드폰에 우리 둘 번호만 저장 돼 있는 거. 지금 수술 끝났고 아직 누워있어. 우선 너 좀 씻고 가ㅈ...야, 울어?"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대로 주저앉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운적이 없는데 펑펑 울었다. 동현은 말 없이 등을 토닥여주었다. 한참을 울었다.
더 어두워졌다. 이대로면 달까지 삼켜버릴 것 같은 어둠에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 집으로 들어왔다. 제대로 씻지 못 했다. 그냥 물 한번 뿌리고 나온 것 같다. 내가 뭘 입었는지 모른다. 그냥 손에 잡히는 것을 입고 나왔다. 동현과 택시에 탔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동현은 날 한 번 바라보더니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택시에서 내려 동현에게 몇 층인지 묻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임영민....임영민... 지끈거리는 이마에 손을 올리고 영민의 이름을 찾았다. 몇 개의 방을 지나니 영민의 이름이 보였다. 몸이 휘청거렸다. 뒤에서 따라오던 동현이 뛰어와 잡아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할 여유가 되지 않았다. 눈을 꼭 감았다 뜨곤 문을 열었다. 영민이 산소호흡기를 달고 새근새근 숨을 쉬고 있었다. 머리와 팔에는 붕대가 감겨있었다. 참았던 숨이터져나왔다.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내 이름을 부르는 동현의 목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영민에게 다가갔다. 눈을 감고 있는 영민에 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바라만 보았다. 가만히 서있는 날 보던 동현은 의자를 가지고 와 나를 의자에 앉혔다.
"늦었다. 이제 가도 돼, 동현아."
"괜찮겠어?"
"응, 고마워."
지금까지 옆에서 말없이 날 바라보던 동현을 억지로 돌려보냈다. 그냥 단 둘이 있고 싶었다. 걸음을 옮기는 동현을 한 번 쳐다보고 다시 영민을 바라보았다. 상처를 찌르는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뻑뻑한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내가 눈을 떴을 때 너도 같이 뜨길 바랐다. 야속하게도 너는 눈을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뜬 눈으로 밤을 보냈다. 너무 울어서 붓고 충혈 된 눈은 보기 좋지 않았다. 눈물 자국이 나다 못 해 얼굴을 뒤 덮은 탓에 풀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화장실로 향했다. 대충 얼굴을 씻고 영민이 있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영민이 있을 방에서 나오는 의사 선생님에 발을 멈췄다. 저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는지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보호자냐고 물었고 영민이 방금 눈을 떴다고 말해주었다.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고 손잡이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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