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단
-서로 매우 심하게 거리가 있거나 상반되는 것-
시간을 달리는 소녀 중 변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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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끝나고 얼마 안 지나서 갑자기 주가와의 연락이 끊겼다. 집에 찾아가도 돌아오는 건 주가 자고 있다는 영민이의 말 뿐이었다. 주는 연락이 안 돼도 영민이는 그래도 답이라도 있었는데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답이 없는 핸드폰을 보고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집으로 찾아갔다. 초인종을 눌렀음에도 아무런 답이 없어서 집에 없나하고 다시 돌아가려는데 주가 나왔다. 인상을 쓴채로 이마를 짚으며 나오는 주의 모습에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지만 아무 일도 없다는 대답에 입을 닫았다. 어디 들어가자는 주의 말에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주를 못 봤던 사이 일어났던 얘기를 열심히 하고있는데 집중을 하지 못하는 주였다. 계속 핸드폰만 보는 주의 모습에 무슨 일이 있는 게 맞구나 싶어 이만 돌아가자고 했다. 데려다준다고 했지만 혼자 조금 걷다가 집에 가고싶다는 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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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났어?"
"어? 응"
"뭐래?"
"아무 일 없대"
집에 오자마자 형이 만났냐고 물어왔다. 요즘 계속 허탕만 치고 오는 내 모습을 봤기때문이다. 사실 연락이 안 되는 주가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보고는 싶은데 항상 엇나가는 타이밍에 보지도 못 하고 그렇다고 영민이한테 매일 전화를 걸어 주의 안부를 묻기에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때문이다.
주를 그 날 만난 뒤로는 계속 연락이 됐다. 오늘도 평소처럼 문자 몇 개를 주고받고 침대에 누웠다. 다시 울리는 진동 소리에 주가인줄 알고 눈을 감고 전화를 받으니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야 김동현 그거 진짜야? 뭐가 너 영민이랑 친하잖아 응 너도 알고 있었어? 그러니까 뭘 둘이 같이 사는 거 뭐? 너도 몰랐어? 나도 오늘 알긴했는데 아는 애들 꽤 되는 것 같더라 마지막 말을 듣고 대답도 안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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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진짜야 영민아?"
"아...미안해..."
친구의 전화를 끊고 바로 주가와 영민이의 집으로 찾아왔다. 들은 얘기를 다 해주니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다가 이내 아아악... 소리를 내며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는 영민이었다. 혹시나싶어 오해한 거 맞냐고 물어봤는데 진짜 그거때문에 날 피한 걸 줄이야... 그러니까 이게 무슨 일이냐면 방학이 끝나고 학원을 가다가 우연히 영민이와 주가 같은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본 반 아이가 친구들에게 둘이 집 같이 들어가는 거 봤다고 둘이 같이 사는 것 같다고 말 한 것이 시작이었다. 아무리 방학이지만 보충때문에 학교를 나오는 아이들에 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결국 확인 사살을 위해 한 명이 영민이에게 물어본 것 같다. 근데 둘이 같이 사는 걸 아는 건 나뿐이었고 내가 말하고 다녔다고 오해한 영민이는 나를 피했던 것이다.
"별 것도 아닌데 말 안 해준 거야?"
"미안해..."
나와 연락은 안 되고 집에 이상한 사람이 찾아오고 영민이는 저를 집 밖으로 안 내보내려 한 것때문에 무슨 일 있나싶어 물어봤음에도 답이 없어서 둘이 살짝 다툼이 있었다고 했다. 근데 그게 오해해서 그런 거였다는 걸 알고 나서 주는 별 것도 아닌데 왜 말을 안 해줬냐고 물어왔고 영민이는 주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에 주는 동현이한테 맞냐고 먼저 물어보는 게 순서야, 영민아-라고 말했다. 사실 나를 못 믿고 그건 건가 속상했는데 그랬으면 안 됐다고 영민이에게 말하는 주의 모습에 속상한 마음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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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같이 밥 먹으러 가자는 주의 말에 우리는 근처 음식점에 왔다. 전에 병원에 갔다 온 뒤로 웬만하면 밥을 먹으려고 노력하는 주는 필라프를 시켰고 나와 영민이는 파스타를 시켰다. 음식이 나오고 나서 영민이는 파스타를 돌돌 말아 후후 불어 조금 식힌 후에 주의 입에 가져다댔다. 주는 다시 한 번 후- 불곤 입을 벌렸다. 오물오물 먹는 주의 모습을 보고 살며시 웃다가 영민이와 눈이 마주쳤다. 눈을 피하지 않는 영민이에 입모양으로 작게 왜?-라고 하니 고개를 젓고 다시 파스타를 돌돌 말기 시작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포크를 들었다.
밥을 다 먹고 옆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갔다. 밥 먹을 땐 별로 먹고 싶지 않다는 티를 내더니 아이스크림 고를 땐 눈이 초롱초롱하게 변하는 게 귀여워서 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 먹을 거야?"
"초코나무숲이랑 체리쥬빌레랑 고민 중이야"
"내가 초코나무숲 할게 너는 체리쥬빌레 시켜 나눠먹자"
두 개 중 뭘 먹을지 고민하고 있다는 주의 말에 둘 다 주문하라니까 반짝거리는 눈으로 날 올려다보며 웃었다. 아, 이렇게 예쁘게 웃으면 반칙 아니야?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고 마른 세수를 하니 주가 왜 그러냐고 물어왔다. 네가 너무 예뻐서-라고 말 할 순 없으니 손을 내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내 대답에 주는 눈썹을 한 번 꿈틀 거리고 주문을 하러 갔다. 눈썹은 왜 꿈틀 거리는 건데- 혼자 키득키득 웃다가 머리를 쓸어 넘기는데 영민이와 눈이 마주쳤다. 오늘 되게 자주 마주치네. 이번에는 내가 눈을 먼저 피했다. 그럼에도 계속 날 따라오던 시선은 주가 우릴 부르고서야 거두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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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야 나도 그거"
"응"
"..."
"안 먹어?"
"어? 아니 먹어 먹어"
다른 거 두 개를 시켜서 나눠 먹기로 했기에 숟가락을 들고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하니 컵이 아닌 숟가락이 내 입 앞으로 왔다. 내가 떠 먹을 생각으로 숟가락을 들었던 건데 조금 퍼서 내 입으로 들이미는 주가에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 맛있네- 웃으며 말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주곤 다시 아이스크림 먹는데 집중하는 주였다. 열심히 입에 아이스크림을 넣는데 머리카락도 같이 넣는 주를 보고 키득키득 웃다가 손을 뻗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주가와 마주보고 앉아있어 거리가 있는 탓에 옆 자리에 앉은 영민이가 먼저 주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줬다. 내가 뻗은 손은 허공에서 조금 머물다가 영민이의 시선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제가 치우겠다며 컵을 차곡차곡 쌓아 가져가는 주였다. 영민이와 단 둘이 남은 자리는 꽤나 어색했다. 원래 이렇지 않았는데... 목을 긁적 거리며 어색한 공기를 풀어보려 입을 열려고 했을 때 영민이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주가 좋아해?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영민에 당황해서 어버버거리고 있는데 주가 돌아왔고 이제 와 대답하기도 애매한 상황에 그냥 입을 닫았다.
그 날 이후 영민이가 조금 달라졌다. 예를 들어 날 계속 쳐다본다던가 내가 말을 걸면 당황한다던가 셋이 같이 있을 땐 안절부절 못 하는 모습이라던가... 주가도 그걸 느꼈는지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고개를 저으며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 만 하는 영민이었다. 뭔가를 숨기는 듯한 영민이에 주가 인상을 쓰고 영민이는 눈치를 보다 입을 열었다.
"아니, 그냥..."
"응"
"그냥 갑자기 든 생각인데..."
"응"
"어제 드라마 보가다 궁금해진 건데..."
"왜 이렇게 뜸을 들여 뭔데"
"이 세상에 나랑 동현이랑 딱 둘이 있으면 누구랑 사귈거야...?"
계속 뜸을 들이다가 말한 영민이의 질문에 주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다가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이미 이 세상에는 둘 밖에 없는데 그런 가정이 필요할까?-라고 말했다. 저 말을 끝으로 본래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않은 주의 모습보단 진지한 표정으로 주만 바라보고 있는 영민이가 눈에 들어왔다. 맨 처음 영민이를 봤을 때 주를 바라보던 그 눈빛이랑은 사뭇 달랐다. 그 때 눈치 챈 것 같다. 이 질문을 괜히한 게 아니구나 전에 주를 좋아하냐고 물어봤던 게 의미없는 질문이 아니었구나 영민이도 주를 좋아하구나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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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고 신알신 눌러주신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영민이가 그런 행동을 한 이유는 그리 큰 일때문이 아니었습니다.(뻘줌)
원래 다음 화에서 완결을 낼 생각이었는데 글을 쓰다보니 영민이와 동현이 얘기가 조금 더 나오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완결을 조금 미루게 됐습니다.
혹 보고싶으신 소재가 있다면 댓글 달아주시면 반영해서 남은 화 마무리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화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암호닉은 따로 신청 없이 댓글 앞에 [체리맛토마토] 이렇게 달아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