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소년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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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몇 분, 몇 시간이 지났는지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산 속으로 더 깊이, 더 깊이 파고들어가고 있었다.
택운은 달빛조차 비추지 않는 깜깜한 하늘과 자신을 감싸고 있는 단단한 팔, 그리고 자신을 뒤덮어오는 졸음 때문에 자꾸만 눈이 감겨 견딜 수가 없었다.
어디로 가는지 보고 싶었는데. 택운은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소년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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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깜박였다.
눈을 뜨니 쏟아져 들어오는 환한 햇살에 택운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두 손으로 눈을 비비며 상체를 일으키려던 택운이 자신의 몸 위에서 느껴지는 무게 때문에 다시 풀썩 뒤로 쓰러졌다.
이게 뭐지, 택운이 자신 위에 얹혀진 것을 빤히 쳐다보았다. 탁한 회색, 엉킨 털뭉치.
…앞발. 앞발이었다.
"…엄마야!"
택운이 깜짝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무거운 앞발을 낑낑대며 몸 위에서 치운 택운이 옆을 쳐다보았다.
늑대였다. 그제서야 어젯밤의 일이 떠오른 택운이 멍하니 잠들어 있는 늑대를 바라본다.
순간 등 뒤에서 서늘하게 불어오는 찬 바람에 택운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제 소년이 자신을 데리고 온 곳이 여기였구나…
얼기설기 나무판자로 엮인 판잣집이었다. 분명히 누군가가 살았음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폐가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나무는 썩어서 집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고, 바닥에는 짚이 푹신하게 깔려 있었다.
뚫린 벽 구멍으로 바람이 들어왔구나, 택운이 몸을 감싸며 생각했다.
"그럼 왜 어젯밤에 잘 땐…"
안 추웠던 거지?
잠깐 고민하던 택운이 자신에게 얹혀져 있던 솥뚜껑마냥 커다란 앞발과 꼬리를 생각해냈다.
아하, 이유를 알고 나니 커다란 늑대가 아주 조금, 귀여워 보이기 시작한 택운이 작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도망칠 때도, 자신이 다칠까 온 몸으로 자신을 감쌌었다.
택운이 곤히 잠들어 있는 늑대에게 살금살금 다가갔다. 낮게 우는 늑대의 뺨에 손을 슬쩍 올렸다. 따뜻했다.
조금 과감하게 그 뺨을 쓰다듬었다. 손가락에 엉긴 털이 걸려왔다. 좀 관리 받아야겠네. 택운이 생각했다.
택운이 살살 털을 쓸어내렸다. 늑대가 갑자기 눈을 떴다.
"……!"
노란 눈동자가 이리저리 데구르르 구르다가 자신을 쓰다듬고 있는 택운에게로 고정되었다.
놀란 택운이 어, 어… 하며 늑대의 뺨에서 황급히 손을 뗐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조금 무서웠다. 무엇보다 늑대는… 상당히 컸다.
늑대가 고개를 슬쩍 들었다. 자신을 빤하니 바라보는 노란 눈동자가 부담스러웠던 택운이 괜히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어, 음… 깨, 깨워서 미안. 그러니까…"
택운이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해 어물쩡거리는 동안, 늑대가 앞발로 제 옆자리를 툭툭 쳤다.
뭐지? 누우라는 건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멍하니 늑대를 바라보고 있자, 길고 풍성한 꼬리가 살랑대며 자신을 간지럽혔다.
작게 웃은 택운이 다시 몸을 눕혔다. 짚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눈을 마주치자 노란 눈동자에 자신이 희미하게 비치는 것이 보였다.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띈 채로 두 손을 뻗어 늑대의 볼에 다시 올려놓았다.
늑대가 끼잉,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제 몸으로 택운을 감싸듯 커다란 앞발과 꼬리를 얹었다.
"무거워…."
택운이 무겁다며 중얼거리자 늑대가 잠깐 당황하는 듯 하더니 앞발을 들었다.
웃기기도 하고 무엇보다 말을 알아들었다는 것에 조금 놀란 택운이,
"뭐야… 너 말 알아들을 수 있는 거였어?"
하자, 늑대가 작게 우는 소리를 냈다. 대답이겠지?
"아냐, 안 무거워. 장난이었어."
택운이 그러자 택운의 눈치를 보는 듯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던 늑대가 다시 앞발을 턱 하고 몸 위에 얹었다.
분명히 때릴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조금 아팠던 택운이 아야, 하고는 웃었다.
문득, 어젯밤의 그 소년이 생각이 났다. 덩치도 컸고, 키도 컸다. 상당히.
"있잖아, 질문이 있는데…"
택운이 늑대를 누운 채 올려다보았다.
"왜 계속 사람으로 변해 있지는 않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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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돌쇠입니다.
독방에서 틈틈히 짧게 연재하던 썰인데 글잡 연재를 원하시는 독자분이 계셔서 옮겨왔어요.
4편까지는 독방에서 연재하던 거라 분량도 짧고 보신 분들도 있으실 테니 구독료를 걸지 않고 진행하며,
정식 글잡 연재가 될 5편부터는 분량도 길어지고 구독료가 걸릴 예정입니다 :)
좋아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