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챠루그레이
백현은 조용히 턱을 괴고 창문 밖 지는 노을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타는 노을빛에 비춰진 백현의 머리칼이 노랬다. 백현은 지그시 눈을 감고 고독을 반려한다. 가슴 가득 담아두었던 감정이 지는 노을을 보고 있자니 차오르는 것 같아서, 그래서 백현은 눈을 감았다. 익숙한 향내가 풍겨왔다. 이 향은 분명했다. 환각이야, 환각. 백현은 자신이 환각 속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 향내를 들이켜 조용히 맛보았다. 하아. 도망치는 백현에게 자꾸만 한 그림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지우고 싶어. 지우고 싶다. 가. 이제 좀 가 버려. 백현은 모든 것을 불사르고 싶었다. 싫다고 내저어도 빨려들어가듯 선명해지는 기억. 그 그리운 추억에 백현은 결국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상대를 바라보고 소위 말하는 첫눈에 반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2초라고 했다. 백현은 찬열을 처음 마주한 그 때가 언뜻 떠올랐다. 찬열의 눈빛, 표정, 행동 그리고 모든 것들. 그는 백현에게 짧은 시간에 첫 눈에 반했었다. 가만히 책상 옆 벽에 기대어 눈을 감은 백현의 모습, 희고 긴 손가락을 버릇처럼 앙 물던 모습, 떨어진 펜을 주워주려다 스친 백현의 손. 가슴이 울렁이고 공허한 마음에 광풍이 일었던 그 감정을- 찬열은 분명 그것을 사랑이라 이름짓고 보듬었던 그때.
"너 나 좋아해?"
벚꽃이 만개하는 그런 완연한 봄날이었다. 체육시간이 끝나고, 백현은 수도꼭지를 틀어 고개를 숙이고 물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 선 인영은 찬열이었다. 백현은 굳이 찬열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그가 저를 보고 있음을 알아챘다. 자주 그랬으니까. 반 아이들이 하나 둘 씩 계단 위를 올라가지만 찬열은 제 앞에 선 그대로였다. 백현이 수도꼭지를 잠그고 입에 묻은 물을 팔로 닦아내며 농담으로 그렇게 물었다. 너, 나 좋아해? 왜 그렇게 맨날 쳐다보냐 너? 말은 한 마디도 안걸면서. 백현이 찬열을 흘긋 보고 웃음 지으며 그를 스쳐지나갔다. 진 벚꽃들을 소복하게 밟으며. 찬열은 잠시 넋을 잃은 듯 보이다가 곧 백현이 스쳐간 뒤를 돌아보았다. 동그란 뒷통수, 가벼운 걸음걸이, 잔상이 남는 웃음기 어린 얼굴. 멀어진 백현의 뒷모습에 대고 찬열은 정확하게 이렇게 말했다.
"어, 나 너 좋아해"
"거기 밑에 있는 물 빼야지. 어, 아니 다시 위에다 부으면 어떡해! 이걸로 칠판 닦으면 존나 뿌옇다고!"
"아 그래? 미안"
"주번 처음 해봐? 아 몰라 너 혼자 해!"
"알았어 알았어"
백현이 앙칼지게 말하고는 팔짱을 끼고 찬열을 보고만 있었다. 찬열은 아랑곳 않고 웃음을 띤 채 자꾸만 백현을 살짝 보면서 물 칠판 지우개로 물을 조금씩 뺐다. 찬열과 백현은 주번활동뿐만 아니라 짝이기도 했고, 운동장이 아닌 강당에서 체육할 때라던가 그 말고도 많은 것을 같이 해야 했다. 빌어먹을 번호순. 백현은 가끔 그 사실에 짜증이 솟구쳐서 이를 갈았다. 아놔 나 쳐다보지 말고 제대로 물이나 빼라고. 아 알았다고요, 까칠하긴. 찬열의 눈은 당연스럽게 항상 백현을 따르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 너 좋아해. 사실 백현은 언뜻 작게 그 말을 들었다. 뭐 그리고 찬열도 그것을 아는 듯 했다. 백현은 그 황당한 고백에 생각보다 당황하지 않았다. 그래? 왠지 그럴 줄 알았어 싶었다. 항상 저를 보는 눈빛이 너무 강해서, 그냥 백현은 가끔 그렇게 생각하곤 했기 때문이다.
백현이 찬열의 그 황당한 고백에 순순히 응해주었느냐-라고 한다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사실이 점점 극명해질수록 백현은 찬열이 짜증났다. 그래, 같은 거 달린 놈이 나 좋아한다고 한 거까진 이해할 수 있어. 근데, 아 좀 짜증나잖아. 백현은 옆에서 턱을 괴고서 필기하는 저를 보는 찬열의 시선에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각사각 끊임없이 필기하던 손이 어느순간 멈췄다. 뭘 보냐고. 저기 너 좋아하는 쟤한테나 좀 그렇게 쳐다봐줘라. 알지 너때문에 쟤 나 싫어하는거? 찬열의 얼굴을 손으로 밀어버리면서 백현이 말을 뱉어냈다. 정말 짜증난다니까. 인기도 많고 얼굴도 잘생겨서, 키도 크고 또 재수없게 공부도 잘하는 놈이. 나 좋다고 자꾸 이렇게 집적거리니까, 왠지 점점 짜증난다니까. 지 좋아하는 애들은 널렸는데. 왜 하필 나야. 백현은 자신이 찬열을 지겨워한다고 생각했다.
그 잘난 얼굴을 돌아보면 항상 먼저 저를 향해있던 그 시선, 그 새까만 눈동자가 항상 저를 담고 있었기에 백현은 그것이 만족스러운 동시에 부담스럽고 또 지겨웠다. 장난 삼아 좋아하냐고 물었던 그 말이, 이제 이렇게 당연하게 다가올 줄이야. 백현은 새삼 자연스럽게 느끼는 자신에 웃겼다. 근데, 넌 나 왜 좋아하는데? 언제 한 번 물은 말에 찬열은 반문했다. 왜? 사귀어라도 주게? 내가 미쳤다고. 백현은 헛웃음치며 고개를 휙 돌리고. 그랬다.
"내가 알려줄까?"
수학문제 하나를 못풀어서 끙끙대는 백현에게 찬열이 부드러운 투로 물었다. 백현은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너한테는 안물을거니까 네 할일이나 하지? 또 하나, 백현은 찬열의 과잉친절이 싫었다. 아주 작은 예로 수학문제 푸는거 도와주기 같은 것. 사실 그 마음을 싫다고 표현해야 하는지 잘은 모르겠으나 백현이 느끼기에 '싫다'싶었다. 백현은 왜 그럴까-곰곰히 생각해보곤 했다. 그냥,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친절이라서 그런가. 낯설어서. 울 엄마도 그렇게 안해주는데. 백현이 그런가, 했다.
그렇게 억지를 부리면서 끙끙대다가 결국 백현은 문제집에 잔뜩 엉망으로 샤프질을 하고는 안해! 하고 샤프를 던지듯 책상에 내려놓곤 했다. 그러면 찬열이 그것을 보고 계속 웃음짓고만 있다가 제 분에 못이겨 씩씩대는 백현에 내가 도와준다니까, 하고 도와주려고 했다. 그럼 또 곧바로 떼 쓰듯 싫어, 싫어! 하고 백현이 문제집을 확 덮어버리고 고개를 돌리곤 했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찬열의 욕을 조근거렸다. 재수 없다 진짜 박찬열, 재수 없어. 하면서. 하지만 찬열은 그런 엉뚱한 백현의 투정에도 얼굴 한 번 굳히는 법이 없었다.
백현이 보기에 찬열은 그냥 병신이었다. 병신중에서도 상병신. 내가 도대체 왜 좋지? 이해할 수가 없어. 자존감이 낮았던 백현은 찬열의 애정에 고마운 마음 대신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아이들에게서도 들은 적이 있었다. 박찬열의 전적. 뭐 사실 예상은 했었던 백현이다. 물론 그 전적은 현재진행형이었고. 박찬열을 좋아하는 애들 팬클럽명이라도 만들어 줘야 할 기세였다. 또 날티나게 생겨선 중학교때부터 착실히 공부만 하고 살아왔다는 건 조금 믿기지 않았지만, 그런 그가 저에게 빠져 허우적거린다는 사실은 더욱 믿기지 않는 것이기도 했고. 아무튼 아이들의 이런저런 말들을 머릿속에 눌러담고 정신을 차리자 걔는, 도대체 왜 날 좋아해? 하는 물음이 가득했다. 난 너처럼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많은 것도 아니고, 뭐 딱히 잘생긴 것도 아니고 너한테 살갑게 굴 성격도 안돼. 근데 왜? 백현은 생각할수록 나락이었다. 나보다 한참 잘난 이가 나를 좋아해주는 것. 그건 비참하다고 생각했다. 백현은 열등감이라고 인정했다.
벚꽃 만발하던 봄이 어느새 끝나고 강렬한 햇빛 내리쬐는 여름이 다가올 때 즈음, 찬열의 백현을 향한 애정은 더 깊어졌다. 그는 자주 백현에게 고백했다. 좋아한다고. 물론 답을 바라진 않았다. 왜, 왜일까? 난 항상 너를 내치고 미워하는데. 어째서 그럴 수 있지? 백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가지 않았다. 그래도 아주 조금 뿌듯하긴 했다. 뭐 그것도 잠깐이었지만.
찬열이 백현을 향한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 백현은 잘 짐작할 수 없었으나, 그의 행동으로 보아 단단히 미치긴 한 것이라 결론내렸다. 예를 들면 매일 밤 백현의 학원 앞에서 백현이 마칠 때까지 몇 시간이건 기다린다던가, 아니면 백현의 집 앞에서 백현이 올 때까지 계속 기다린다던가. 처음 찬열이 학원 앞에서 자신이 마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모습을 봤을 때 백현은 당황스럽기만 했다. 야, 다리도 안 아프던? 답지 않게 걱정도 조금 해주었다. 걱정해주는 거야? 씩 웃는 얼굴에 금세 때려 쳐버렸지만, 처음엔 백현은 몇 시간동안 자신을 기다린 찬열에게 조금 미안했다. 강조하지만, 처음엔 그랬다.
"너 나한테 집착하는거야?"
무슨, 아이돌 사생 팬도 아니고 이렇게 따라다니니. 백현은 찬열이 소름 돋는다고 생각했다. 사실 집착이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한 면이 있긴 했다. 찬열은 제 할일은 다 하면서 백현을 좋아했으니까. 그래도 이것은 단순히 좋아한다는 것을 넘어선 상상 밖이었다. 백현의 집 앞 어두운 밤 가로등 아래 비친 인영은 언제나 찬열이었다. 그와 불빛 아래 마주할 때 마다 그는 백현의 얼굴을 보고 살짝 웃음 짓는 게 다였다. 왜 왔냐고 물어보면 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시발 로맨티스트네, 널 좋아하는 걔들은 알긴 할까? 백현이 생각하다 살풋 비웃음 지었다. 얻는 것도 없는데 맨날 기다려서 뭐하냐 넌. 응? 백현은 자주 그런 말들을 하고 찬열을 지나쳐갔다. 그럼 백현의 등 뒤로 낮고 고요한 목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잘 들어가.
백현은 생뚱맞게, 잘 들어가라고 말해주는 찬열의 목소리가 꽤나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도 변한 것은 없었다. 찬열은 언제나처럼 백현을 기다리고 바라봐주었고 백현은 그것을 당연하게 밀어내곤 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무시였다. 나중에는 찬열의 집착 아닌 집착에 익숙해져서 빵을 먹으며 집으로 돌아오다가 가로등 밑의 찬열의 인영에 너 밥 안 먹었지? 하고 먹던 빵을 쥐어주기도 했다. 사실 좀 맛없어서…. 어쨌든 찬열이 좋아했으면 된거다. 백현이 먹기 싫어 쥐어준 빵에도 얼굴이 웃음이 밸 만큼, 그렇게 찬열은 맹목적으로 백현을 좋아했다. 언젠가 부터는 매일 밤마다 집에 들어가는 백현의 뒷모습을 보고 사랑고백을 했다.
백현아 사랑해-
그리고 백현이 찬열을 돌아보면 작게 미소지으며 잘 들어가라고 마지막 인사를 해주었다.
백현은 항상 대답도 않고 찬열을 등졌다. 쟤는, 창피하지도 않나…. 나같으면 자존심 상해서 진작 포기했겠다. 백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집으로 들어갔다. 민망한 그 고백도 얼마 안가 백현은 익숙해졌다. 나 울 엄마보다 너한테 그 말 더 많이 들었을 거야. 백현이 책상 옆 벽에 팔을 기댄 채 턱을 괴고 찬열에게 중얼거렸다. 더 해달라고? 찬열이 또 얄궂게 반문했다. 말을 말자, 말을 말아. 백현은 찬열에게 향했던 고개를 돌렸다. 그랬다. 그 당시 찬열은 하늘 위에 떠 강하게 내리쬐는 여름날의 해처럼, 그렇게 저를 항상 따라다녔던 것 같다고, 백현은 추억했다.
"그거 뭐야?"
찬열이 백현의 손에 들린 것을 보고 넌지시 묻는 말에 백현이 기다렸다는 듯 찬열을 힐끔 보며 눈웃음 지었다. 흐흥. 백현의 잇새로 소리가 새어나왔다. 어쩐지 기분이 좋아보이는 백현에 찬열의 입가에도 어느새 조그만 미소가 걸려 있었다. 흐흐, 흐. 야 박찬열. 배시시 웃으며 백현이 찬열의 이름을 불렀다. 백현의 부름에 찬열이 백현을 더 빤히 쳐다봤다. 왜? 백현이 다시금 눈꼬리를 휘며 예쁘게 웃었다. 뭔데 그래. 찬열은 자꾸만 웃음 짓는 백현이 귀여워 그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 왜 뭔데. 찬열이 백현을 보채기 시작했다.
"이거 봐"
나, 고백받았어. 백현이 우쭐하며 말했다. 백현은 웃음을 참고 싶어도 자꾸만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소리가 새어나왔다. 나 고백 받았다고. 앙? 제 말을 듣고 조금 멍해보이는 찬열의 얼굴에 백현이 분홍 편지지를 톡톡 쳤다. 백현은 기분이 좋았다. 너만 고백 받는 거 아니거든. 나도 받았다고. 들뜬 백현이 속으로 생각했다. 백현의 입에선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나오는데 찬열의 얼굴엔 어느샌가 웃음기가 싹 가셨다. 백현은 왠지 그게 더 기분 좋았다. 그냥, 찬열에게 평소 시달리던 열등감에서 잠시나마 해방된 기분이어서였다. 찬열이 한참 말이 없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버릴거지?"
"뭐?"
"난 그런 거 다 네 앞에서 버렸었잖아"
찬열의 진지한 음성에 백현이 잠시 멍하다가 곧 헛웃음을 픽 터뜨렸다. 내가? 왜 버려 이걸. 미쳤다고 버려? 찬열이 채가기라도 할까 싶어 백현은 금세 편지를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백현은 진심으로 기분이 좋았다. 그게 단순히 여자애에게 받은 고백때문인지 찬열에게 느꼈던 열등감의 해방때문인지 자신도 잘 알 수는 없었으나 어쨌든 붕붕 뜨는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은 처음인지라 백현은 자꾸 새어나오는 웃음을 막을 길이 없었다. 피식, 피식 얼마동안을 계속 웃어댔다. 그러다가 문득 찬열을 돌아보았는데 찬열의 표정이 싸했다. 평소엔 좀처럼 볼 수 없던 찬열의 딱딱한 무표정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조금 화를 품은 무표정같았다. 백현은 그런 찬열을 잠시 바라보다가 대수롭지 않게 결론짓곤 고개를 돌렸다.
뭐야, 박찬열 질투도 해?
그냥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그리고서 백현은 보란듯이 고백한 여자애와 사귀었다. 하교도 같이 하고, 데이트도 몇 번 하곤 했다. 한, 한달동안. 백현은 자신이 그 여자아이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처음 수줍게 편지를 내밀며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모습에 분명 몽글몽글 묘한 감정이 피어오르고 설레었던 것은 맞는데, 어째 사귀면 사귈 수록 처음만 못했다. 처음엔 마냥 설레고 귀엽게 느껴졌다가 점점 감정이 식어가더니 키스 직전까지도 별 감흥이 없었다. 아, 미안. 백현이 거의 닿을 듯 말듯 한 입술을 떼어내며 한 말이었다.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눈을 꼭 감는 그 얼굴이 처음만 하질 못했다 이거다. 백현은 자신이 나쁘다고 생각했지만 별 수 없었다. 점점 그 애와 하는 것들이 더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얘랑 있는 것보다 박찬열 시시껄렁한 농담 듣는 게 더 재밌겠어….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뭐 찬열은 제가 누구를 사귀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고 백현은 생각했다. 고백 받았다고 할 때는 생전 처음 보는 딱딱한 표정을 짓고, 사귄다고 말해주었더니 아예 백현이 말을 못들은 척 씹어버렸던 찬열이었다. 그래서 무언가 찬열의 마음에도 변화가 있을 줄 알았던 백현이건만 그는 딱히 변한 것이 없었다. 그냥 가끔 집 앞에서 기다리지 않고, 또 가끔 제가 집에 들어갈 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정도였다. 으음.. 음…. 아무리 생각해도 박찬열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한 백현은 조금 재미가 식었다. 키스 직전까지 갔던 것을 부풀려 일부러 키스까지 했다고 말해주어도 찬열의 어색한 웃음이 돌아올 뿐이었다. 진짜 신경도 안쓰나 보네. 길길이 날뛸 줄 알았는데. 찬열의 반응에 백현이 입술을 삐죽였다.
백현이 곧 그 여자애와 깨진 것은 50일을 채 넘기지 않아서였다. 단순히 감흥이 떨어져서였다. 나, 걔 좋아했던 거 아닌 것 같애. 백현이 혼잣말처럼 찬열에게 말했다. 그래, 분명 고백 받았을 땐 무진장 설레고 좋았었는데…. 그냥 고백 받았다는 게 좋았나봐. 한 번도 그래본 적 없으니까. 그랬던거야. 턱을 괴고 백현이 중얼거렸다. 한참을 오물거리며 중얼대다 백현이 찬열에게 시선을 돌리자 그의 똑바른 눈과 바로 마주쳤다. 찬열은 미소 짓고 있었다. 웃겨? 나 지금 존나 진지한데 왜 웃냐 너? 백현이 얼굴을 구기며 역정을 냈다.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긴 왜 없어?"
"뭐?"
"내가 맨날 해줬잖아"
아 그건…. 뭐라 반박을 하려다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백현이 눈동자를 도르르 굴렸다. 찬열의 시선이 진득하게 백현을 따라왔다. 나는? 찬열이 반듯한 눈으로 백현을 올곧게 쳐다보며 물었다. 뭘. 백현이 퉁명스레 물었다.
"백현아"
"아 왜"
"나 너 좋아한다니까"
응? 찬열의 눈이 대답을 바라는 눈치였다. 백현은 부러 입을 더 꾹 다물었다. 네가 날 좋아하는데, 그래서 뭐. 답을 기다리는 찬열을 무시하고 백현이 고갤 돌렸다. 말 걸지마, 심란하니까. 나 잘거야. 건들면 죽어. 선전포고하고는 책상에 냅다 엎드려버렸다. 야, 백현아. 변백현. 제 등을 툭툭 치는 찬열에 건들지 말라고 했지! 하고 짜증을 내려다 말고 백현은 그냥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쩐지 찬열에게 말려들었던 것 같다고 생각하는 백현이었다. 그래, 내가 언제부터 쟤한테 연애사까지 말해주고 털어놓고 그랬지. 미쳤네. 생각하며 눈을 더 꾹 감았다.
* *
불협화음 연재중에 몰래 틈틈이 썼던 거 보충해서 올립니다ㅋㅋㅋ
장편 아니에요 가볍게 읽어주셨으면.. (가볍게 썼으니)
제목 추측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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