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급함에 경수에게 작게 말했다.
"미안한데 경수야. 이번엔 아빠가 경수 부탁 못들어주겠네. 얼른 초코우유 사고 짜장면 먹으러 가자."
"으응.. 아빠.."
심각해진 내 표정에 경수는 내 눈치를 보며 계속 뒤에서 우릴 쫓아오는 남자를 힐끔거리자 나는 경수가 그 놈을 보지 못하도록 막았다.
"경수야 보지마. 아빠만 봐. 알았지?"
빠르게 걸어 그 놈의 시야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며 한 손으로는 휴대폰을 꺼내 112를 입력하고 지체없이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거기 경찰서 맞죠? 여기 SM마트 2층 식품매장인데 아까부터 검은 옷을 입고 마스크랑 모자를 쓴 남자가 계속 쫓아옵니다. 아니요. 모르는 사람입니다. 지금 아들이랑 같이 있는데 아무래도 제 아들을 납ㅊ.. 아니, 데려가려는 것 같습니다. 네. 4층에 있는 카이라는 중식당에 있을테니 최대한 빨리 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전화를 끊고 주머니에 넣자 내 말을 들은 경수가 불안한지 내 옷깃을 쥐며 물어왔다.
"ㅇ.. 아빠.. 아빠 경수 안버릴꺼지? 저 아.. 아저씨가 경수 데려가려하면 지켜줄꺼지? 응?"
나는 경수의 눈물 맺힌 눈에 스스로를 자책했다.
겉으로는 경수를, 내 아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웃으면서.
"걱정마. 저 아저씨는 절대로 경수 못데려가. 아빠가 경수 지킬꺼야. 아까 전화했는데 경찰아저씨들이 곧 올꺼래. 아무일도 없을꺼니까 우린 짜장면 먹으러 가자."
"아빠.. 경수 무서워.. 안아줘. 응?"
"무서울게 뭐 있어. 괜찮아. 아빠 여기 있잖아."
불안해하는 경수를 안고 식당으로 가 일부러 밖이 잘 보이는 곳에 경수와 나란히 앉아 종업원이 건네는 메뉴판을 경수의 손에 쥐어주었다.
"경수야 뭐 먹고싶어? 먹고싶은거 다 골라."
"진짜? 경수가 먹고싶은거 다 골라도 돼?"
"그럼. 당연하지."
경수가 메뉴판을 뚫어져라 보는 동안 나는 경수를 쫓아오던 그 놈이 들어오는지 안들어오는지 문쪽을 계속 봤다.
들어오는 사람들을 훑어보는데 휴대폰에서 들리는 문자 알림 소리에 나는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아동성범죄 담당 오세훈 형사입니다. 지금 SM마트에 도착했습니다. 정확히 12시 47분에 말씀하신 중식당 카이에 들어가겠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제 사진을 보시고 12시 47분에 제가 들어가면 수저를 떨어뜨려주십시오.]
문자와 함께 온 사진을 보고는 시간을 확인했다.
12시 45분.
2분만 기다리면 경수는 안전해진다.
그제서야 나는 안심하고 경수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경수야 다 골랐어?"
"아니. 아직 못 골랐어. 맛있는게 너무 많아."
"그럼 코스 요리 시킬까? 탕수육 나오는 걸로."
"응! 탕수육이랑 짜장면!"
"알았어. 저기요. 여기 코스 A 할꺼구요. 식사는 짜장면 2개로 할께요."
종업원이 메뉴판을 들고간 후 시계를 보려는데 경수가 내 옷깃을 잡아끌었다.
"아빠.. 경수 화장실 가고싶어.. 같이 가자.."
"같이?"
고개를 끄덕이는 경수에 잠시 망설이다 테이블 위에 수저와 물티슈를 올리고 화장실로 가며 형사에게 문자를 했다.
[제 아들이 화장실이 급하다고 해서 화장실 좀 갔다오겠습니다. 저희 자리는 창가 바로 옆 자리이며 테이블 위에 물티슈 2장과 수저를 올려놨습니다. 저희 자리에 일행처럼 앉아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아빠 화장실 다 왔는데 안들어가?"
"어? 어.. 들어가야지. 들어가자."
경수의 손을 꼭 잡고 화장실에 들어가 혹시나 그 놈이 있는지 확인하고는 경수와 함께 화장실 칸 안으로 들어갔다.
경수는 변기위에 앉히고 옷을 내려주려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빠 경수가 바지벗을래."
"그럴래? 혼자 할 수 있겠어? 아빠가 안도와줘도 돼?"
"응! 혼자 할 수 있어."
"어구. 우리 아들 착하네."
"아빠 닮아서 착해."
"왠일이야? 평소엔 안했잖아. 혹시 뭐 바라는거라도 있어? 바나나우유도 사줘? 아님 뽀로로 인형?"
"그런거 아니야. 이리와봐."
경수의 입에 귀를 갖다대자 경수는 웃으며 내 귀에 속삭였다.
"경수 소원은.. 아빠랑 오래오래 같이 사는거야. 나중에 경수가 아빠만큼 커지면.. 그땐 경수가 아빠 안고 다닐꺼야."
"에이.. 아빠가 얼마나 무거운데. 경수는 아빠 못들어."
"아니야! 경수 할 수 있어! 지금 할 수 있어!"
"어어.. ㄱ.. 경수야 다쳐!"
변기에 앉은채 나를 들어올리려는 경수를 말리며 웃었다.
"경수야 아빠가 옷입혀주면 손씻고 나가서 자리에 가있어. 자리에 가면 아빠 친구들이 있을꺼야."
"아빠 친구? 찬열이 삼촌이랑 백현이 삼촌?"
"아니. 오랜만에 보는 친구야. 화장실 나가서 세훈이 삼촌하고 부르면 돼. 할 수 있지?"
"응! 할 수 있어! 근데 아빠는? 경수랑 같이 안가?"
"아빠도 경수처럼 오줌이 마려워서 오줌 누려고. 혼자 가기 무서우면 아빠랑 같이 갈까? 조금만 기다릴래?"
"아니야. 경수 혼자 갈래. 세훈이 삼촌 맞지?"
"맞아. 경수 똑똑하네. 가서 세훈이 삼촌이랑 짜장면 먹고 있어."
문을 열고 경수를 보낸 뒤 경수가 손씻고 나가는걸 지켜보다 문을 닫으려는데 그 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문닫으면 경수는 죽을텐데. 킥킥."
화장실을 뛰쳐나가는 그 놈의 손에 들린 칼을 보고 나는 그 놈을 막기위해 필사적으로 달렸다.
막아야했다.
절대 경수가, 내 아들이 죽지않게 그 놈의 손에 들린 칼을 뺏어야했다.
"경수야 도망쳐!"
내 다급한 목소리에 경수는 뒤돌아 나를 봤고 나는 소리쳤다.
"도망쳐! 도망치라고!! 뛰란 말 안들ㄹ.."
하지만 내 간절한 소리침은, 경수를 살리고자 했던 내 노력은 경수의 몸 속으로 자취를 감춰버린 칼에 의해 묻히고 말았다.
"ㅇ..아빠.."
나는 뛰어가 그 놈을 밀치고 경수를 안았다.
"괜찮아. 경수야 괜찮아. 살 수 있어. 아.. 아빠 믿지? 응? 경수야 아빠 봐봐. 아무일도 없을꺼야."
"아빠.. 경수 배 아파.. 너무 아파.."
그 놈을 잡는 형사도, 119에 신고하는 사람들도, 놀라 어쩔 줄 몰라하는 종업원들도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눈에는 오직 내 아들, 경수만이 있었다.
"아빠.. 경수 죽는거야..? 경수.. 엄마한테 가는거야?"
"아니야. 경수 안죽어. 아빠가 살릴거야. 죽으면 안돼. 아빠랑 오래오래 살기로 했잖아. 이렇게 죽으면 안돼."
"근데 아빠.. 경수 졸려.. 자고싶어.."
점점 거칠어지는 경수의 숨소리를 들은 나는 경수를 끌어안았다.
"자면 안돼. 경수야.. 내 아들.. 착하지? 아빠 말 들어야지. 응? 경수야 아빠 봐봐. 조금만.. 조금만 참자. 조금만 있으면.. 경수 데리러 구급차 올꺼야.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줘.. 제발"
"아빠 안아줘야 되는데.. 아빠랑 오래오래 살아야 되는데.."
"그래. 아빠 안아줘야지. 아빠랑 오래오래 살아야지.."
나는 끝내 눈물을 참지못하고 경수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런 내 모습에 경수는 작은 손을, 아픔에 떨리는 손을 뻗어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아빠.. 경수 없어도 잘 살아.. 울지말고.. 응?"
"제발.. 경수야 제발.. 아빠두고 가지마.. 아빤 경수 없이 못살아.."
"미안해, 아빠.. 그리고.."
"아빠.. 사랑해.."
내 볼에 입맞추며 속삭이고는 이내 눈을 감으며 내 품으로 쓰러지는 경수의 마지막 한 마디를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싶지 않았다.
"ㄱ.. 경수야? 아들? 경수야 아빠 놀리지마. 재미없어. 얼른 일어나야지. 경수야. 아들. 착하지? 얼른 일어나. 지금 안일어나면 아빠 화낸다. 아빠 화내면 엄청 무서워. 그러니까 일어나. 제발.."
"아버님 일단 병원에 가서 시체ㅅ.."
"안죽었어! 우리 경수.. 내 아들 안죽었다고! 니가 뭔데.. 니가 뭔데 우리 경수가 죽었다고 하는거야!! 시체라니!! 내 아들.. 경수 아직 살아있어!!!"
죽지않았다.
죽었을 리 없다.
잠시.
아주 잠시 자고있는 것이다.
깨우면 일어날 것이다.
분명.. 일어날 것이다..
"경수야.. 내 아들.. 내 귀여운 아들.. 일어나야지. 일어나서 짜장면 먹자. 점심 때 아빠가 그거.. 그거 구워준다고 했잖아. 초코우유도 안샀고.. 아들.. 아빠 초코우유 사야되는데.. 같이 사러갈꺼지? 응? 경수야 왜 답이 없어? 그렇게 졸린거야?"
"하아.. 준면이형 가서 경수아버님 휴대폰 찾아봐. 찾아서 가족한테 전화 좀 해봐. 저 상태로는 아무것도 못해."
"알았어. 저.. 아버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들이 뭐라고 하는지, 무엇을 하는지 전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알고싶지도 않았다.
"세훈아 경수어머님 번호가 없는 번호라는데?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번호도 3개뿐이고. 아무한테나 전화해봐?"
"어. 부탁할께."
점점 차가워져가는 경수를 안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깨어나지 않는경수를 안고 내가 할 수 있는것은 그저 경수가 깨어나길 바라고 또 바라는 것 뿐이었다.
오로지 경수만을 내 두 눈에 담은채 눈을 감았다.
이대로 경수를 따라가길 바라면서.
이대로 경수와 함께 가길 바라면서.
경수의 옆으로 무너지는 나를 느끼면서.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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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유지태 못알아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