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루민] 새벽이 싫은 사슴 03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4/a/e/4aec0b9ab0d9608b5b60876c39ee6cd7.png)
[루민] 새벽이 싫은 사슴
W. 아카시아
장마가 시작되었다. 요근래에는 햇빛을 본 기억이 잘나지않는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회색빛의 먹구름이 가득 있었고, 희뿌연 물안개가 자욱했다.
베란다에 널어놓은 빨래들은 잘 마르지 않았다. 에어컨을 틀어논 실내에 널어 놓아도 습한 공기 때문에 건조하게 마르지는 않았다.
씻고나온 민석이 서랍에서 하얀 와이셔츠를 꺼내 입었다. 볼은 붉게 홍조를 띄고 있었고, 몸에서는 안개같은 연기가 났다.
씻고 나와도 찝찝하기는 마찬가지 였다.
노트북으로 주가를 확인하던 경수가 신경질적으로 마시던 음료수 캔을 구겼다. 캔이 찌그러지면서 듣기 싫은 쇤소리가 났다.
장마철이라 그런지 시세들은 하루가 다르게 뚝뚝 떨어졌다. 저런 경수의 심정이 이해가 가기는 한다.
말끔하게 옷을 차려입은 민석이 나갈 준비를 했다. 의뢰인과 만나기 위해서 였다.
뭐 필요한거 있어? 아니.
경수는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한채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민석도 그러려니 하며 우산을 챙겨 들었다.
그날 이후로 루한과 만난적은 없었다. 항상 보이던 스타벅스 앞 벤치에도 루한은 없었다. 언제 두고간것인지는 모르지만 다음날 우산만 가지런히 현관앞에 놓여져 있었다.
뭐, 이젠 아무렇지 않다.
호기심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게 된다. 사람에게 강렬하게 기억되는건 한순간이지만 잊혀지는것 또한 빠르다.
내가 기억하는것은 루한 이라는 이름과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는 그의 체취였다.
밖을 나서니 더운 습기가 온몸을 감싸안았다. 씻고 나온것이 헛수고가 되었다. 바짓단을 적시는 빗물이 발목에 느껴졌다. 서늘하다.
민석은 우산을 탈탈 털은뒤 스타벅스 안으로 들어왔다. 원두를 로스팅하던 찬열이 종대에게 로스팅을 맡기며 주문을 받기위해 카운터로 걸어갔다.
민석의 가지런한 옷차림을 보니 변호사라는 직업이 새삼 느껴지기도 했다.
"카페라떼… 스몰 두잔이요."
"오늘은 일하시나봐요?"
"네."
무엇을 주문해야할지 고민을 하던 민석의 미간은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쓰디 쓴 아메리카노를 다른 사람들도 다 좋아하란 법은 없다.
짧게 고민을 하다 가장 흔히 마신는 카페라떼를 시켰다.
매번 민석을 볼때마다 눈썹으로 감정을 나타내는것 같기도 하다. 고민하는 고양이. 찬열은 낮게 웃으며 주문을 받았다.
어느순간부터 창가 자리에 앉는것이 익숙해졌다. 버릇이란게 참 무서운건가보다.
빗물이 빠른 속도로 하수구를 타고 내려갔다. 그만 좀 내리지. 달달한 시럽 냄새와 쓴 원두의 냄새가 코끝에 스쳤다.
찬열이 민석에게 라떼 두잔을 건내며 자연스럽게 민석의 앞자리에 앉았다. 약속 시간도 십분이나 남았으니 크게 신경을 두진 않았다.
요즘은 자주 안오시네요. 찬열은 테이블에 턱을 괴고 나른하게 물었다.
장마철이잖아요. 이제 관심을 거둔건가? 찬열의 물음에 민석은 대답하지 않은채 라떼 한입을 마셨다. 달다.
평소 단것을 자주 먹지않는 민석은 라떼를 내려놓고 서류를 꺼냈다. 민석의 모습을 보던 찬열이 푸스스 온화하게 웃었다.
"라떼가 달죠?"
"네."
"일부로 달게 한건데.."
찬열이 민석을 보며 쿡쿡 웃었다. 싫다.
하지만 찬열의 얼굴을 보면 미워할수가 없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찬열이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민석은 찬열이 일어나도 관심 없는듯, 서류에만 집중했다. 찬열은 비가오는 창밖을 한번 바라본뒤 로스팅을 하기위해 조리실로 돌아갔다.
찬열이 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의뢰인이 도착했다. 이번 사건은 고위 간부층 사람의 직접적인 의뢰인지라, 나이가 있는 사람이 올줄 알았는데 의뢰인은 꽤 젊어 보였다.
많아야 나와 세네살 차이일것 같았다.
의뢰인은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다. 긴 다리를 꼬은채 민석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압도적인 분위기 였다.
갑을 관계가 명확한 이상 기분이 상해도 티를 내지 않아야 한다. 민석도 짧게 목례를 했다.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 카페라떼를 시켜놓았습니다.
민석의 말에 커피만 바라보던 의뢰인이 잔을 들어 빙글빙글 커피를 돌리며 여유롭게 웃었다.
예쁘게 장식되있던 라떼 아트가 마블링 처럼 혼합되었다. 다른 의뢰인들과 다르게 이상하게 목이 탔다.
이렇게 분위기에 눌려본것은 초반 일을 시작할때 이후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었다. 라떼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민석은 라떼를 마시며 타들어가는 목을 축였다.
"라떼 좋아하세요?"
"아니요. 별로 좋아하진 않습니다. 제 기준에 맞춰 시키면 안돼니깐요."
민석의 대답을 들은 의뢰인은 만족한듯 들고있던 라떼를 마셨다. 입안에서 달달한 커피 시럽이 혀를 간지럽혔다. 달다.
의뢰인은 커피를 내려 놓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크리스 입니다. 크리스는 민석의 눈을 응시하며 느긋하게 다시 커피잔을 들었다.
김민석 입니다.
민석도 크리스의 눈을 똑바로 흥시하였다. 크리스는 강한 인상에 큰 키로 찬열과는 정반대의 이미지 였다. 크리스는 들고있던 서류를 민석에게 건냈다.
흔한 대기업과의 재산 소송 문제였다. 이런 일에 관련하면 골치 아프긴 하지만, 액수가 상당하니 거래를 파기할수는 없었다.
크리스는 대기업의 뒷배경에 있는 조직 같았다. 등잔밑이 어둡다는게 이런 말인가. 이바닥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민석도 몇건의 비슷한 소송을 맡은적이 있었다.
비는 점점 거세게 내려왔다. 스타벅스 안 사람들의 목소리도 거센 비소리에 묻혀졌다.
잘부탁드립니다. 김변호사님.
서류만 바라보던 민석이 고개를 들었다. 크리스는 서류를 마주 보라는 식으로 눈짓을 한 뒤 민석에게 양해를 구하고 담배를 피우러 갔다.
저 조직이 뒷바닥에서 얼마나 유명한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재판은 꽤 힘든 소송이 될것 같다.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민석은 서류를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게 앉아있을 이유는 없었다. 때마침 크리스도 담배를 피운 뒤 들어오던 참이었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비가 많이 오네요. 김변호사님."
"다음에 연락 드리겠습니다."
민석은 먼저 자리를 피했다. 크리스는 민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수화기를 들었다. 멀어지면서 얼핏 통화 내용중 '흑록' 이라는 단어를 들은것 같다.
나와는 관련없는 뒷세계의 일이다.
민석은 우산을 펼쳐 비사이를 걸어갔다. 잠시 말라있던 바짓단이 다시 축축히 젖어들어 갔다. 맥주나 사갈까? 민석은 경수에게 전화를 걸기위해 가방을 열었다.
없다. 아무리 뒤져도 핸드폰은 나오지 않았다.
이나이 먹어서 이런 기초적인 실수를 하다니. 민석은 신경질적으로 가방을 닫고 스타벅스로 발걸음을 돌렸다.
스타벅스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빗물이 팔에 닿을때마다 서늘하게 소름이 돋았다.
왜이러지. 크리스는 아직 카페안에 있을려나. 달달한 커피 시럽이 침과 함께 목으로 넘어왔다.
얼마만일까, 거의 이주가 지나간거 같다.
스타벅스 문앞에서 각잡힌 정장 차림에 초점없는 눈빛으로 비가오는 하늘을 바라보는 하얀 피부에 무표정한 남자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여전히 그의 손에는 담배가 들려있었다. 자욱한 물안개 사이로 희뿌연 담배연기가 피어올랐다. 이상하게 우산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루한의 눈을 마주보지는 않았다. 그 눈을 보면 꼭 빨려들어 가는것만 같아 두려웠다.
민석은 우산을 더욱 내려쓰며 스타벅슬 향했다. 한걸음 한걸음이 다리에 추를 단것처럼 무거웠다.
루한의 옆에서 우산을 접을때, 머리가 강렬하게 기억했던 그의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달큰한 담배냄새.
민석은 애써 태연하게 루한을 지나치며 스타벅스 안으로 들어갔다. 문 앞에는 찬열이 기대서서 민석을 반겨주었다.
개구지게 웃고있는 그의 손에는 민석의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변호사가 이런 실수도 하나요?"
"못하라는 법은 없죠."
민석은 찬열의 손에 들려있는 핸드폰을 받아들며 가볍게 웃었다. 루한을 본 뒤로 웃는게 웃는게 아니었다.
이주 동안의 공백이 무색할 정도로 표정 관리가 되질 않았다. 핸드폰을 쥐고있는 손에 땀이났다.
루한은 담배를 지려밟은 뒤 스타벅스 안으로 들어왔다.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것일까, 내심 걱정하긴 했지만 다행이도 루한은 크리스의 맞은편에 앉았다.
민석은 얕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두사람은 무슨 관계일까, 루한도 조직원 중 한명 인건가? 꺼져가던 호기심의 불씨가 다시 피어올랐다. 루한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
민석은 루한의 야윈 뒷모습만 바라보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크리스와 눈이 마주쳤다. 크리스는 작게 웃으며 민석에게 인사를 건냈다.
자신을 바라보았다고 오해한것 같다. 민석은 기계적으로 크리스에게 인사를 했다. 루한도 크리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비를 맞지않아 머리는 건조하게 말라 있었다. 얼굴은 어디서 맞고 온것인지 잦은 상처와 입에는 피가 굳어 있었다. 루한은 많이 지쳐보였다.
"커피 마시고 가요."
"아니요. 괜찮아요."
"Vip를 위한 서비스에요. 입가심 해야지요."
찬열은 얼음이 가득 들은 아메리카노를 민석에게 건냈다. 민석도 어쩔수 없다는듯 픽 웃으며 커피를 받아 들었다.
잠시 찬열하고 대화를 하는 사이 알싸한 스킨냄새가 에어컨 바람에 실려왔다.
민석과 찬열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루한이 서있었다. 가까이에서 본 루한의 얼굴은 많이 망가져 있었다. 생기가 없는 볼은 안쓰러울 정도로 말라 있었다.
"무슨 문제 있으신가요?"
"주문하게요."
"주문은 카운터에서 하면 되요."
아메리카노 벤티 한잔. 루한은 찬열의 말을 넘기며 주문을 했다.
찬열은 어쩔수 없다는듯 서비스 정신을 보이며 가식적인 웃음을 지은채 잠시만 기다리세요, 라고 하며 카운터로 향했다.
달달한 커피향이 가득한 카페가 루한의 알싸한 냄새로 변해갔다. 적어도 민석에게는 그랬다. 점점 진하게 느껴지는 루한의 향기에 머리가 아찔해졌다.
민석, 왜 인사 안해요.
이주만에 다시보는 루한의 첫마디였다.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왜 인사를 안하냐고? 우리가 인사할정도로 편한 사이였나? 목을 넘어오는 말들을 애써 삼켰다.
머릿속에서는 수만가지의 말들이 떠올랐지만 막상 입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민석은 애꿎은 스트로만 물며 바닥만 바라보았다. 아무리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셔도 타들어가는 속은 진정이 되질 않았다.
"민석."
"……네."
"같이 밥이라도 먹을래요?"
"제가 바빠서요."
민석이 자리를 피하자 루한이 민석의 팔목을 잡았다. 마른몸과 다르게 루한의 악력은 강했다. 손이 저릿할정도로 아파오는 통증에 민석의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내가 지금 힘들어서 그래요.
루한의 목소리는 먹먹하게 잠겨 있었다. 낮은 미성이 민석의 귓가에 맴돌았다. 그 목소리가 슬프게 들렸다. 나는 사람에게 꽤 냉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루한에게 만큼은 이상하리만큼 냉정하게 대하지 못한다. 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루한의 표정이 밝아진거 같기도 하다.
루한과 민석이 스타벅스를 나서려고 하자 크리스가 몸을 일으켜 천천히 루한에게 다가왔다.
크리스의 표정은 굳어 있었지만, 루한의 표정은 여유로워 보였다. 걸어오는 크리스는 영화의 한장면처럼 시끄러운 카페와 벽이 있는것 같았다.
"김변호사님, 핸드폰은 받으셨나요?"
"아… 네."
"빠른 시일내로 연락 부탁드릴께요."
무거운 중저음이 민석에게 묵직할 정도로 강하게 와닿았다. 크리스는 루한을 한번 돌아본 뒤 그대로 지나쳐갔다.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둘이 아는사이 아닌가? 방금까지 대화한거 아니야? 영 짐작이 되질 않았다. 무언가가 강하게 짖누르듯 머리가 아려왔다.
루한은 민석을 이끌고 스타벅스를 나왔다. 비는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카페문을 나서려 할 때 찬열의 이중적인 웃음이 떨올랐다.
루한, 커피…안받아요? 괜찮아요. 민석도 아메리카노잖아요.
루한은 커피를 들고 문쪽으로 오는 찬열에게 비릿한 웃음을 지은 뒤 익숙한듯 민석의 우산을 펴 발걸음을 옮겼다.
차가운 빗물이 서늘하게 와닿았다. 루한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어색하게 떨어져있는 민석을 자신의 쪽으로 당기자 민석이 머뭇거리며 루한의 쪽으로 왔다. 루한의 왼쪽 어깨가 젖어갔다.
벤티 사이즈의 아메리카노는 어느새 얼음밖에 남지 않았다. 오고가는 대화없이 민석은 애꿎은 스트로만 물었다.
그저 루한이 이끄는대로 한참을 걸어가기만 했다. 더운 습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서늘한 한기가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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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붝스~스타붝스~ 오늘 루한이의 분량은 개똥이네요... 다음주에 등장시켜줄게!!!!
댓글 달아주신 새우만두님♡ 눈사람님♡ 새송이님♡ 녹턴님♡ 후니님♡ 빠오즈님♡ 으갸갹님♡ 호빵님♡ 백오십님♡ 첸첸님♡
댓글 달아주신 다린 독자님들도 너무 감사드려요ㅠㅠㅠㅠㅠ 저한테 암호닉신청 묻지 않으셔도 되요!!
이런 망글을 읽어주시고 신청해주시는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해요ㅠㅠㅠㅠ
마음대로 신청하셔도 됩니다!!
구회장님을 전부터 넣어보고 싶어서....개인적인 사심이......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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