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은 자신을 정보통이라 지칭하며 떠들어대던 찬열의 말을 곱씹었다. 지휘자님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본인보다도 키가 크고, 금방이라도 돌맹이를 씹어 먹을 듯한 우락부락한 비주얼의 '낙하산' 전학생.
"나는 광주에서 전학왔고, 어, 이름은 도경수야. 앞으로 잘 부탁해."
어리버리하게 고개를 꾸벅 숙이는 동그란 정수리를 보며 백현은 바람빠지는 웃음을 흘렸다. 역시, 박찬열 주둥이는 믿을만한게 못 된다. 큰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서 있는 전학생은 어디하나 박찬열의 말에 부합하는 곳이 없었다. 그러니까, 꽤 귀염상인 것 같기도 하고.
"경수는 관악부 때문에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어. 우리반에서는 백현이가 관악부 맞지?"
백현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반 안을 배회하던 경수의 눈과 줄곧 경수를 향하던 백현의 시선이 마주친다. 어긋남 없는 곧은 시선에 잠시 당황한 경수가 서글한 웃음을 지어보였지만 백현은 요지부동이었다. 경수의 등에서 땀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이게, 말로만 듣던, 서울놈들의 텃세인가…?
"그러면, 경수는 백현이 옆에 앉는게 좋겠다. 모두 마찬가지지만 특히 백현이는 경수 잘 챙겨주고."
"네."
경수는 마른침을 삼키며 발걸음을 옮겼다. 신기하다는 듯한 아이들의 시선이 따라붙었지만 경수는 제 앞에 보이는 백현 한명의 덤덤한 시선이 더욱 버거웠다. 끝이 내려간 민눈은 건조함이 묻어난다. 경수는 의자를 빼내어 앉을 때 까지 백현의 시선은 경수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안녕. 이름이 백현이야?"
"어, 변백현."
턱을 괴고 샤프를 이리저리 돌리던 백현은 경수에서 미련없이 시선을 떼며 제 앞에 펴놓은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야, 이게 끝이야? 서울 놈들은 정말 원래 다 이래? 전학생만 오면 취미부터 즐겨입는 팬티 색깔까지 모조리 물어보며 친해지는 고향과는 판이한 모습이었다. 가방을 옆에 건 경수가 몸을 일으키며 백현의 눈치를 살폈다. 그냥 반 친구도 아니고, 앞으로 3년을 붙어지낼 관악부원인데. 친해져야 할 의무가 있다. 경수는 속으로 제 자신을 다독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백현아. 너는 악기 뭐 다뤄? 나는 플루트인데."
"뭘 것 같은데?"
"엉?"
예상치 못한 답변에 경수의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튀어나왔다. 뭐,뭘것 같냐니. 사실 생긴 것은 전혀 악기를 다룰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다시금 자신을 향하는 무심한 눈초리에 경수는 얼음이 되어 머리를 굴렸다. 자신과 같은 풀룻은 절대 아닐 것 같고, 바이올린? 그것도 생각하니까 소름이 끼치네. 호른? 오보에? 멘사 문제라도 푸는 듯 고심하는 주름진 미간이 깊은 웅덩이를 만들어냈다. 경수가 도무지 답을 알 수 없다는 듯 백현을 바라 본 순간,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본 오징어 캐릭터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세상만사 재미없다는 듯한 눈이 빼다박은 듯 닮았다고 경수는 생각했다.
"…클라리넷?"
"땡."
단호한 대답이 떨어지자 암 말기 진단이라도 받은 듯 절망하는 경수에 백현은 설핏 웃었다. 다이나믹한 표정변화가 꽤 볼 만 하다. 놀려먹는 재미가 있는 것 같기도. 옆에두면 심심하지는 않겠다. 갓 눈 뜬 비글새끼같은 박찬열,김종대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SYMPHONY BAND
W.다올
"이 반 전학생이 누구냐?"
말죽거리 잔혹사가 제 인생의 영화인 찬열의 투박한 고함에 경수가 작은 어깨를 떨며 흠칫했다. 호환마마같은 우렁찬 등장의 박찬열과 이미 교내에서-여학생들 사이에서-는 유명인사인 남자 관악부원들에 이미 반 아이들의 이목은 집중된지 오래였다. 몇몇은 경수를 향한 애도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박찬열의 불꽃놀이 같은 성격은 이미 백경고의 학생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으니. 큰 눈을 부라리던 찬열이 자신이 생각한 몽타주의 인물을 찾지 못하자 끝 쪽에 앉아있던 백현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야, 변백. 그 낙하산 새끼 누구야?"
한심하다는 표정의 백현이 턱짓으로 제 옆에 앉은 경수를 가리켰다. 찬열은 표정을 구기며 제 아래 있는 생명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이 놈 시키 옆에 있었…? 음? 안 그래도 큰 눈을 왕방울만하게 키운채 마른 침을 삼키는 경수와 눈이 마주치고, 정적이 이어졌다. 떵떵거리는 찬열이 쪽팔려 뒷문에서 상황을 관전하던 관악부원 종대가 그대로 굳어버린 찬열에게로 다가왔다.
"야 박찬열 왜그러는… 뭐야, 이 귀요미는?!"
찬열의 등 뒤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은 종대가 동그란 생명체에 경악하며 경수의 뺨을 그러쥐었다. 종대의 외침에 종인과 세훈도 차례로 안으로 들어와 경수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일순간 덩치큰 사내놈들에 둘러쌓인 경수는 안절부절 못하며 눈만 도르륵 굴렸다. 사실, 정말 귀여운 외모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은 모두 찬열의 근거없는 소문들을 며칠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뒤라 그 시너지효과는 가히 대단했다. 어느새 짊어지고 온 전투의지는 사라지고, 무장해제된 그들은 온화한 표정으로 경수를 내려다 보았다. 딱 한명, 모든 소문의 근원 박찬열을 빼고. 찬열은 여전히 석고상마냥 굳은채로 경수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이름이 뭐야?"
"나,나는 도경수."
"박찬열, 지휘자님 숨겨진 아들은 무슨. 성 부터 다르네. 내 이름은 김종대야. 이 병신은 박찬열이고, 여기는 김종인, 오세훈. 얘는, 인사 했지? 변백현이고."
"아,반가워. 잘 부탁해."
"박찬열 뭐하는 새끼야. 깍두기는 무슨."
세훈이 타박하며 찬열의 머리를 밀었지만 찬열은 여전히 멍한 얼굴이었다. 종대를 비롯해 말수가 적은 종인까지 나서 경수에게 두서없는 질문들을 던졌다. 아, 이제야 좀 전학 온 것 같네. 경수는 최대한 성의를 담아 대답해주며 해끔하게 웃었다. 그 순간, 박찬열의 눈이 번쩍하며 커다래졌다. 낌새를 눈치챈 백현이 그를 막으려 했지만 폭주하는 박찬열은 총알보다 빨랐다.
"카와이!!!"
"읍…"
찬열은 이상한 일본어를 외치며 경수의 목을 조르듯 끌어안았다. 예로부터 박찬열은 그렇게 안 생겨서 귀여운것에 사족을 못 썼는데, 키티부터 뽀로로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캐릭터들이 없을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경수는 최근 찬열의 덕후 레이더망에 걸려든 버스 캐릭터인 타요와 둥그런 눈이 매우 흡사했다. 경수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덫에 걸린 고라니마냥 찬열에게서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썼다. 백현이 한숨을 쉬며 찬열의 이마를 힘주어 밀자 그제서야 떨어진 몸뚱아리에 경수는 숨을 돌렸다. 엄마, 서울놈들은 정말 이상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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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보기 어떠셨나요? :)
심포니 밴드는 백경고등학교의 관악부 이야기 입니다 ^-^
싱그러운 백도를 어떻게 써내려가야할지...막막하긴 하지만 열심히연재할게요 함께해봅시다!
소설에서 언급했다시피, 경수의 포지션은 플룻이고, 백현이는 어떤 악기를 다룰까요?0?
백도 말고도 모두 출연하는데 각자의 캐릭터를 살린 악기들을 쥐어주었어요ㅎㅎㅎㅎ
비루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구ㅎㅎㅎㅎ다음편에서 뵈용 ⊙♡⊙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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