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아
도경수가 나를 부른다.
왜
어… 라면 먹을까 하는데 너도 먹을래?
도경수가 손으로 목을 긁적인다. 민망하거나 어색할 때 나오는 행동이다. 나는 한숨을 쉰다.
먹을래
내가 대답하자 도경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부엌으로 사라진다. 나는 보던 TV를 끄고 리모콘을 소파에 던져버린다.
저번 일 이후로 도경수는 이상해졌다.
눈치를 보며 내 주위를 어슬렁거린다던가, 터무니없는 주제로 대화를 시도하기도 하고,
그러다 황당한 타이밍에 말을 끊곤 혼자 안절부절못하다가 끝내 울상을 짓는다.
물론 나는 그런 도경수에 매우 짜증이 났다.
나는 라면을 한 젓가락 크게 들이키고 후,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맛있네, 라고 말한다.
'우리 말 좀 하자' 라는 간접적 요구였지만 언제나 그렇듯 도경수는 눈치가 없다.
근데 준면이 형은?
나는 다시 한 번 시도해본다.
방에서 자
하지만 도경수의 대답은 간단하다. 나는 답답한 심정으로 커다란 김치를 집어 입에 우겨넣는다.
아삭아삭 씹히는 시원한 김치. 표정이 없는 도경수. 유난히 크게 들리는듯한 식기 부딪치는 소리.
괜스레 모든 것이 신경에 거슬렸다.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신경질적으로 머리도 헝클어 뜨린다.
요즘은 혼자있자있을 때면 기분이 한없이 추락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 사이에 섞이면 또 언제그랬냐는듯 밝고 수다스럽게 행동한다.
가끔 헷갈렸다. 내가 지금 정말 혼란스럽고 힘든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그런 기분에 도취되어 버리는 건지.
심각하게는 조울증인가 싶기도 하다가, 또 어느순간 머리가 텅 비고 모든 게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그리고 버릇처럼 곱씹어 부르는, 도경수 도경수 도경수.
이상한 도경수. 더 이상 내게 조잘거리지 않는 도경수. 내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않는 도경수.
시간이 지날수록 도경수는 멀어져만 간다. 왜 점점 꼬여 가는 걸까.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정말 아무 것도 안 했어?'
또 다른 내가 묻는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복잡하다. 머리가 아파. 나는 단지… 도경수를 좋아하는 걸 그만두지 못할 뿐인데…….
……그래 그게 제일 문제지
나는 또 자조적으로 중얼거린다.
백현아
도경수 목소리. 나는 고개를 돌려본다. 얼굴이 불그스름한 도경수가 서있다.
백현아
나를 한 번 더 부르며 가까이 오는 도경수에게서 술냄새가 훅 풍겨왔다.
회사식구들이 잔뜩 모인 회식자리. 안은 아직도 한창이라 왁자지껄하다.
난 적당히 틈을 타 빠져나왔지만, 분명 도경수는 주는대로 다 받아먹었을 게 뻔했다.
괜찮냐
응…
어떻게 나왔어
려우켱이 바람 좀 쐬다 오래서…
말 끝이 축축 처지긴 하지만 발음은 꽤 양호하다.
하나 뽑아 줘?
나는 앞에 있는 커피자판기를 툭툭 두드리며 물었다. 도경수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거 마시고 들어가자 춥다
…백현아
어?
이거…
도경수가 뭔가를 내민다. 손에 꼭 쥐어주는데 줄이 엉킨 이어폰이다.
풀어달라고?
도경수는 또 고개를 끄덕끄덕.
나는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입에 물고, 이어폰을 풀기 시작한다.
시린 밤바람을 맞으며 굳이 왜 지금 이걸 풀어야하는지 모르겠지만 술 취한 도경수가 해달라니까 해줄 수 밖에.
이성과 통제력이 약해진 도경수. 그리고 나는 그런 도경수에 약하다.
아 나 술 취한 거 같아
도경수가 말을 한다
백현아 그치…
나는 도경수를 흘깃 쳐다보고 다시 이어폰에 열중했다.
도경수가 내옆에서 종알거리는 게 오랜만이라,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상하지… 왜 이상할까
발음은 정확한데 도경수 정신은 맛이 간 것 같았다. 이어폰은 줄이 얼어서 더럽게 안 풀린다.
이거 들어가서 풀어주면 안되냐
나는 입에 문 종이컵을 그대로 들이키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다 식은 커피는 달고 묘하게 맛이 없다.
여기서…
도경수가 들어가기 싫다는듯 푹 쭈그려 앉는다. 나도 후 한숨을 쉬고 도경수를 따라 같이 쭈그려 앉는다.
아오 진짜 손가락 떨어질 거 같아
괜찮아 내가 호 해줄게…
괜찮다며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는 도경수는 패딩속에 폭 파묻혀 손도 야무지게 주머니속에 넣어놨다.
한 대 때려버릴까 싶다가도 픽 웃음이 새어나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백현아
왜
너랑 이렇게 얘기하니까 좋다…
…그래
백현아
…왜
토끼…
어 토끼가 왜
네가 준 토끼 인형…
어… 그게 왜
나는 겨우 다 풀어낸 이어폰을 도경수에게 쥐어줬다. 하지만 도경수는 몸을 일으킬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안 들어갈거야?
그 토끼…
그래 토끼가 왜
나는 점점 저려오는 다리를 톡톡 두들겼다. 이제 더 이상 이런 도경수는 잘 볼 수 없으니까.
하는 수 없이 나는 조금 더 도경수와 쭈그려 앉아 있기로 한다.
토끼…
그래 토끼
네 꿈 속에 나온 토끼…
…?
내 꿈. 토끼. 나는 즉각 떠오르지 않는 기억들을 천천히 살피다 불현듯 훅 숨을 멈췄다.
꿈… 토끼…….
그건, 갑자기 왜…
그냥 생각났어 그때 네가 재수없는 꿈 꿨다고 막 그치…
그래…
너 그때 엄청 막 이상했는데… 화난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하고…
…그랬나
근데 저번에도
저번?
난 싫어
내가 했던 말. 저번…. 화난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하고…….
'난 싫어.'
가슴이, 두근거리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그 날도 너는 그래서 내가, 거였는데…
술 취한 도경수. 눈을 느리게 깜박이면서 중얼거리듯 말하는 도경수.
백현이 넌, 항상 혼자서만…
…도경수
도경수는 대꾸없이 고개를 숙인다.
춥다. 손이 시리고, 볼은 얼얼하고. 그리고 이상하게 목까지 메어온다.
경수야…
한 번 더 부르는데도 도경수는 말없이 고개만 더 푹 숙인다. 그러다 이내
변백현
하고 입을 여는데, 그 목소리에 물기가 있어서 나는 심장이 덜컥했다.
도경수…
백현아
너 괜,
도경수가 고개를 든다.
빨간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넌 모르지
내가 얼마나 힘든지 넌 모르지.
도경수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고개를 숙인다.
바닥에, 후두둑 눈물 방울이 떨어진다.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식당안에선 여전히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오고,
자판기는 지잉거리며 불빛을 비춘다.
지극히도 일상적인 상황인데 지독히도 현실감은 없다.
도경수가 운다.
입술을 꾹 깨물어보지만 동떨어진 감각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도경수
이제 도경수의 앞에는 커다란 눈물자국이 생겼다.
도경수는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운다.
도경수
나는 떨리는 손으로 녀석의 볼을 감쌌다.
그만 울어
내 말에 고개를 든 도경수는 제 손으로 눈물을 벅벅 닦아낸다.
그래도 눈물은 멈춰지지 않는지, 입에서 흐- 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도경수
나는 울음을 터트리듯, 쓰게 웃었다. 그리고
미안
녀석의 이마에 입을 촉 맞췄다.
그 짧은 일련의 동작들이 너무도 힘겨워서 나는 거세게 얼굴을 쓸어내린다.
도경수…
눈물을 멈춘 도경수는 당혹스러운 듯한 얼굴.
도경수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좋아해
겨우 소리내어 말한다.
도경수, 좋아해
이제 정말,
더는 버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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