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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샤이니 온앤오프
연우 전체글ll조회 869l 1

 

 


다음부터 잘할게

 

 

 

*

 

 

 

"수정이한테도 안부 전해주고, 담에 보자. 간다"

 

지호는 우산을 접고 택시에 타는 재효에게 손을 흔들며 가볍게 웃어보였다. 재효가 탄 택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지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후두둑 내리는 비는 지호의 운동화를 적셨다. 지호는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11시. 수정이와 약속한 귀가시간이 2시간이나 지났고 지금 아무리 빨리 집에 간다고 해도 12시는 다 되어야 도착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지호는 서두르지 않았다.

 

 

 

*

 

 

 

지호의 예상대로 12시가 되기 12분 전에 현관 앞에 도착했다. 지호는 수정의 잔소리와 야단에 대비하는 쉼호흡을 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12시가 다 된 야심한 시각에 초인종을 누르는 것은 이웃에 피해가 되는 일이지만 지호는 사랑하는 수정이 화를 풀고 문을 열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초인종을 눌렀다. 그 바람이 무색하게 초인종 소리는 생각보다 매우 크게 울렸고 집 안에서는 열어주려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지호는 민망함에 다시 한 번 벨을 누르려다 잘못한 게 있으니 그러지는 못했다. 지호는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려 열쇠를 찾았다. 비에 젖은 손 때문에 열쇠가 미끄러웠고 술기운 때문에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는 것이 어려웠다. 5분 가량을 열쇠와 씨름하는데도 수정은 결국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열쇠를 떨어뜨리고 다른 열쇠를 구멍에 억지로 쑤셔 넣으려는 등 우여곡절 끝에 지호는 집 안에 들어 올 수 있었다. 집 안은 지호가 어두운 걸 싫어하는 수정을 위해 모든 방의 불을 켜 놓아 아주 밝았다. 지호는 신발을 벗고 젖은 우산을 현관문에 세워두웠다. 우산에서 떨어지는 물들이 현관에 웅덩이를 만들었다. 수정이 잔소리를 하겠지만 웃으면서 걸레로 닦으면 그만이기에 지호는 신경쓰지 않았다. 술냄새를 조금이라도 없애기 위해 지호는 겉옷을 벗어 털었다. 오늘 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산 껌을 씹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한 지호는 텅빈 거실을 지나 안방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수정은 안방에 있는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역시나 책을 읽고 있는 수정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지호는 수정의 옆에 조심스레 다가가 그 옆에 섰다. 수정은 화가 많이 났는지 지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미안함에 지호는 수정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미안해. 오늘 많이 늦었지? 재효 자식이 자꾸 못가게 하는거야. 다음부터는 안 늦을게. 수정아."

 

"......"

 

 

 

화가 나도 단단히 났는지 수정은 대답이 없었다. 지호는 미안함에 어쩔 줄을 모르다가 좋은 생각이 난 듯 작게 웃음지으며 수정이 읽고 있던 책을 조심스레 덮고 책장에 집어 넣었다. 그런데도 수정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다. 지호는 민망한 웃음을 짓고는 수정을 안아 들어 거실로 나가 소파에 앉혔다. 다른 건 몰라도 귀가 시간에는 엄격한 수정이기에 이런 반응은 충분히 예상했다. 지호는 소파에 앉아 있는 수정과 눈높이를 맞춘 후 작게 미소지었다.

 

 

 

"수정이가 좋아하는 파스타 해줄게. 그러니까 화 좀 풀어. 응?"

 

 

 

수정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긍정의 의미라고 받아 들인 지호는 수정이 심심하지 않도록 티비를 틀어주고는 부엌으로 갔다. 쌀쌀 맞은 수정의 태도에 술은 깨버린지 오래였다. 지호는 수정의 마음이 어서 풀어지기를 바라며 정성을 쏟아 요리를 시작했다. 모든 방 전등의 밝은 빛, 개그 프로그램의 방청객 웃음소리와 파스타가 요리 되는 소리는 커다란 집 안을 가득 채우려고 노력하는 듯 했다. 파스타가 요리 되는 동안에도 지호는 혼자 하루 일과를 읊었고 수정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파스타가 다 만들어지고 지호는 테이블에 꽃병까지 놓고 냅킨도 꺼내 놓는 등 고급 레스토랑 못지 않는 상차림을 완성했다. 지호는 완벽한 자신의 요리 실력과 데코레이션 등에 감탄하며 티비에만 집중하고 있는 수정을 조심스레 불렀다. 수정아.

 

 

 

"......"

 

 

 

대답이 없는 수정의 앞으로 다가선 지호는 수정의 옆에 앉아 수정의 예쁜 눈을 가리는 수정의 머리카락을 귀에 꼽아주었다. 화나면 무서운 건 알았는데 막상 이렇게 화난 모습을 보니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지호는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수정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수정아. 파스타 먹자. 오빠가 맛있게 만들었어."

 

"......"

 

"벌써 2시가 넘었네. 피곤하지? 미안."

 

 

 

수정의 냉랭한 반응에 지호는 한숨을 내쉬며 리모컨을 들어 티비를 껐다. 그 때 조용해진 집 안에 날카롭게 울리는 전화 벨소리에는 지호는 미간을 찌뿌렸다. 이 시간에 누구야. 안방에서 정신없이 울리는 벨소리는 지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골이 울리도록 나는 벨소리에 지호는 내일 당장 전화를 없애버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안방으로 들어가 신경질 적으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수정이 집 맞아요?"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한 것도 모자라서 죄송하다는 말도 없이 다짜고짜 수정의 얘기를 꺼내는 여자의 목소리에 괜히 성질이 난 지호는 수화기를 꽉 쥐고 앞에 놓여있는 메모지에 볼펜으로 거칠게 선을 그었다. 그래도 최대한 공손한 어투로 여자의 질문에 응하려 노력했다. 누구신데요.

 

 

 

"수정이 친군데요. 혹시 지호오빠세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떨리는 손을 바라보며 지호는 생각했다. 여자친구의 친구들 앞에 서는 남자들 마음이 이런거구나. 지호는 침이 바짝바짝 마르는 걸 느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상태를 들키지 않게 조심하며. 네. 제가 수정이 남자친구 입니다.

 

 

 

"수정이가 몇 일 동안 연락이 안 되더라구요. 핸드폰도 꺼져 있고. 무슨 일이라도 생긴게 아닌가 걱정이 되서 이 시간에 전화 드렸어요. 죄송해요."

 

 

 

지호는 다리까지 아니, 온 몸이 떨리는 게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방이 뒤에 칼을 숨기고 있다는 게 느껴져 얼른 수화기를 내려 놓고 싶었다. 지호는 통화를 빨리 끝내기 위해 수정은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말라는 말과 함께 수화기를 내려 놓으려 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통화를 끝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수정이가 많이 힘들어 했어요."

 

"......"

 

 

 

"이런 말 하는거 주제 넘는다고 생각하지만, 죽고싶다고 했었어요. 새장에 사는 새가, 어항에 갖힌 물고기가 된 것 같다고. 죄송하지만 수정이 좀 바꿔주세요."

 

 

 

듣지 말고 바로 끊어야 했다. 지호는 토할 것 같은 느낌에 볼펜을 내려놓고 입을 막았다. 상대방은 칼을 꺼내고 휘두르기 시작했고 지호는 무방비 상태로 그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포기 할 수는 없었다. 지호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수정이, 자고 있어요.

 

 

 

"잠깐이면 되니까 깨워주세요."

 

"자고 있다고요."

 

"깨워주..."

 

"자고 있다고, 씨발!!!!!"

 

 

 

지호는 전화기를 들어 바닥에 있는 힘껏 내던졌다. 전화선이 뽑히고 전화기는 산산조각이 났다. 그런데도 지호는 분노에 휨싸여 씩씩거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지호는 침대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머리가 아픈듯 머리를 감싸쥐었다. 급하게 헐떡거려지는 숨을 참으려 노력하며 지호는 천천히 일어섰다. 수정에게 이런 바보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지호는 거울에 비치는 흐트러진 자신의 모습을 보며 머리를 정리했고 마음을 가라 앉히려 노력했다. 안방에서 나가 부엌으로 곧장 가 물병을 꺼내어 벌컥벌컥 마셨다. 그 와중에도 지호는 물병에 입을 대고 마시는 걸 싫어하는 수정의 눈치를 봤다. 다행히 수정은 보지 못 한듯 하였다. 물을 마시고 거실로 가려던 지호는 식탁 위에 차갑게 식은 파스타를 응시하다가 파스타 접시를 들어 싱크대에 던지 듯이 집어 넣었다. 접시한테라도 화풀이를 하고 싶은 심정이였다. 지호는 최대한 밝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수정의 앞으로 다가섰다.

 

 

 

"장난전화가 왔었어. 내일부터는 안 올거니까 걱정 말고."

 

"......"

 

"푹 자고 나면 화도 풀릴거야. 수정아."

 

"......"

 

"뭐야. 자고 있었구나."

 

 

 

지호는 피식 웃으며 수정을 안아 들었다. 수정은 하얗고 가벼운 것이 정말 깃털 같았다. 그리고 너무 가벼워서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지호는 수정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안방으로 들어오니 아까 집어 던진 전화기와 파편들이 보였다. 지호는 수정이 알아채지 못하기를 바라고 내일 일찍 일어나 청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침대에 수정을 눕히고 그 옆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물론 수정에게 이불이 잘 덮어졌나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수정에게 잘자란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지호는 잠들었다.

 

 

 

지호는 천천히 눈을 떴다. 커튼 사이로 햇빛이 나른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새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지호는 습관적으로 옆자리를 살폈다. 옆에서 곤히 자고 있어야 할 수정이 보이지 않아 지호는 다급하게 침대에서 일어섰다. 안방 문을 열고 주위를 살폈지만 수정은 보이지 않았다. 수정의 이름을 부르려는데 화장실의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지호는 자신도 모르게 조심스레 화장실 문을 열었다. 화장실 안은 빨간 장미로 가득 했다. 화장실 벽, 거울, 세면대, 바닥 등 모든 곳이 빨간 장미로 채워져있었다. 지호는 멍청하게 그 것들을 바라보다 욕조에 팔 하나가 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르고 흰 손은 수정이 분명하였다. 지호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그 팔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지호는 그 팔을 잡지 못하고 굳었다. 하얀 팔목에는 빨간 선이 그어져 있었고 그 선에서는 끊임없이 빨간 물이 흘러 나왔다. 그 물들은 흐르기도 하고 새빨간 장미로 변하기도 하는 것이였다. 지호는 미친듯이 울부짖으며 욕조안에 가득 차있는 장미들을 퍼내었다. 지호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지호는 미친듯이 수정을 찾았다. 마침내 수정의 얼굴이 보였다. 수정은 웃고 있는지 화가 난건지 알수 없는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지호는 악을 쓰며 욕조 안에서 수정을 꺼내려했다. 그러나 수정은 점점 그 안으로 들어갔고 지호는 점점 더 많아지는 장미들을 치워내며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수정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도 지호는 미친 듯 욕조 안으로 들어갔고 온 몸이 빠져 어딘가로 떨어지는 걸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

 

 

 

"아아아아아악!!!!!!"

 

 

 

지호의 격렬한 비명과 달리 집 안은 매우 고요했다. 시계바늘이 돌아가는 소리만 공허하게 울려퍼졌다. 지호는 흐르는 땀과 눈물을 팔로 대충 닦아내고 시간을 확인했다. 4시 10분. 아직 모든 것들이 깨어나지 않을 시간이였다. 지호는 두려운 마음을 감추고 조심스레 옆자리를 확인했다. 수정은 그대로 있었다. 지호는 수정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수정의 손을 잡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수정만이 들을 수 있게 작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부터 잘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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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으아앙 처음부터 뭔가 낌새가 야리꾸리했는데 수정이가 죽었군요
아 이런글 너무 좋아요 ㅜㅜ♥ 신알신하고 갈게요

10년 전
연우
감사합니당!^^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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