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angle
05. How do you think ?
"무슨 일 있어?"
"뭐가."
"오늘따라 유난히 더 못생긴 거 같아서."
윈윈에서 인생 마감해볼래? 살기가 가득한 내 말에 옆에서 조잘거리던 나유타의 말이 뚝 끊겼다. 가만히 있어도 짜증나 죽겠는데 깝치면 죽어 진짜. 이어진 내 말에 나유타는 내 눈치를 슬금슬금 봤다. 아니 시바. 우리 조의 조합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아니잖아. 자주 가는 카페에 썰이라도 맘껏 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님들아 들어봐여. 진짜!! 열심히 피해 다니고 있는 동기 하나랑 구남친이랑 같은 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죠? 님들이 생각해도 이건 진짜 아니잖아요…(눈물) 저번에 한 번 모였다가 새우(=나)등 터질 뻔했단 말입니다.
"김도영 네가 발표 자료 좀 찾고."
"왜 네가 정해?"
"왜 내가 정하냐고? 내가 조장이잖아."
"파트 분배가 좀 불균형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불만 있으면 니가 조장하던가."
하하 시발…… 떠오르는 고래 싸움에 나는 머리를 세차게 저어댔다. 나유타는 중간에서 눈치 없이 끝나고 곱창 콜? 이따위 말을 내뱉곤 했지. 그러고 보면 나유타도 진짜 넌씨눈이다. 저런 애가 어째 친구가 많은 건지? 왜 아싸가 아닌 거지? 수많은 의문이 들었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나유타를 파고 드려면 하루는 무슨 한 달은 더 걸릴 듯.
아무튼 그런 심적 힘듦에 나는 요즘 윈윈을 자주 갔는데. 뭐 동반자는 항상 나유타였다. 나유타 아니면 내가 친구가 어디있어…? 성경이는 남자친구 만나느라 정신없고. 울컥해지는 마음에 손에 든 맥주를 꼴깍꼴깍 원샷 해버렸다. 아아, 취하면 안돼. 시민아 정신 차려! 저번에 한 번 민형이한테 민폐를 끼치고 난 뒤로는 취할 때까지 마시지 않았다. 내가 언제 또 민형이를 불러낼지 몰라…… 그럼 진짜 민폐갑이잖아? 안 그래도 민형이랑 아직 어색한데…. 떡실신녀 이런 이미지로 찍히고 싶지 않단 말이지.
"너 그러다 취해도 안 데려다 줌."
"누가 데려다 달래? 혼자 갈 수 있거든?"
네네. 혼자 갈 수 있다고 큰소리 떵떵 치던 사람이 누구냐고요? 접니다. 저예요. 옆에서 나를 부축해준 나유타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궁시렁댔다. 이럴 줄 알았다 혼자 가긴 뭘 혼자 가. 중간중간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이럴 때 곁에 있어주는 게 진정한 친구! 지!"
"야야 버리고 가기 전에 조용히 해라?"
"우리 유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뻐어?"
"단단히 취했네 진짜."
축축하고 차가운 공기가 뜨거운 얼굴에 맞닿았다. 아- 시원해. 그렇게 유타는 내 허리를 단단하게 받쳐주었다. 언제 고꾸라질지 몰랐으니 뭐 그럴 만도 했다.
"다 왔어. 정신 좀 차려 봐."
"으응? 벌써?"
언제 도착했대. 걸음도 참 빠르네. 고개를 치켜들었다. 2층의 불빛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지금 몇 시야? 내 질문에 나유타는 짧게 답했다. 12시. 아아, 그럼 아직 민형이 안 자겠네. 나는 손에 든 비닐봉지를 들고는 씩 웃었다. 집 오기 전에 편의점에서 뚱바랑 뚱딸 두 개씩 샀다. 갑자기 무슨 우유냐며 나유타가 물었고 나는 바로 대답했다. 민형이 꺼. 같이 마시려고! 헤헤. 그때 나유타가 뭐랬더라… 존나 한심하게 쳐다본 거 같기도 하고. 나유타는 문 앞에 짐짝 던지듯 나를 던져두곤 홀랑 사라져버렸다. 저 자식이? 나는 비닐봉지를 든 손으로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비밀번호를 치고 집으로 들어갔다.
내 방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민형이의 방문을 살짝 열었다. 들어가도 돼? 민형이는 침대 위에서 폰을 하다가 낯선 사람. 아니 내가 들어가자 손에 든 폰을 바로 꺼버린다.
"이미 들어왔잖아요."
"히- 그런 가?"
"또 술 마셨어요?"
"티 나?"
"네. 냄새나요."
"허얼. 나 냄새나?"
손을 들어 킁킁 냄새를 맡았다. 술 냄새 많이 나나? 그렇게 많이 안 마셨… 많이 마시긴 했지만…. 한참을 킁킁거리고 있던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민형이가 입을 열었다.
"손에 든 건 뭐예요?"
아 이거? 손에 든 비닐봉지를 흔들거리며 웃었다. 이거 너꺼! 그리고 비닐봉지를 책상 위에 올려두면서 말했다. 그냥 이런 거 좋아할 거 같이 생겨서. 이어지는 내 말에 민형이는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 곁으로 느릿하게 다가섰다. 그리고 비닐봉지 안에 있던 뚱바와 뚱딸을 꺼내든다.
"제가 이런 거 좋아할 거 같이 생겼어요?"
"싫어해…?"
으음? 아닌가? 싫어하면 모…… 내가 마시면 되니까……. 비닐봉지를 손에 쥐고 슬쩍 내 쪽으로 끌며 민형이의 눈치를 살폈다. 민형이는 아무 표정 없이 서 있다가 조심스러운 내 말에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입을 뗀다.
"아니에요. 좋아해요."
고맙습니다. 짧게 떨어진 민형이의 감사 인사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 고맙? 고맙습니다…? 갑자기 밀려오는 뿌듯함에 나도 모르게 실실거리며 민형이에게 잘 먹어! 라는 말을 끝으로 방에서 나왔다. 그래도 처음보단 많이 풀어진 거 같아서 다행이다. 처음엔 솔직히 약간 어떻게 친해지나 걱정했는데. 성경이 말대로 싸가지 없고 나쁜 애 같지도 않고.
그런 생각 따위를 하며 나는 옷을 갈아입고 대충 화장을 지운 채 침대에 풀썩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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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sub>〈sup>〈/sup>
"어제 내가 어떻게 들어왔지?"
으으… 골이야… 깨지겠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부시시한 머리를 헝클여뜨렸다. 그니까 나유타가 집까지 데려다주고, 그리고 민형이 방에 들어갔고… 그리고…… 미친?!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스멀스멀 떠오르는 어제의 기억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 했다. 그러니까 민형이한테 우유를 주면서 내가 뭐, 좋아할 거 같이 생겼다느니 이딴 이상한 소리를 지껄인 거 같은데.
"… 안녕?
방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민형이의 얼굴에 나는 슬쩍 시선을 피하며 인사를 건넸다. 놈은 고개를 한 번 까닥하고는 바로 1층으로 내려가 버린다.
"일어났니? 민형이가 콩나물국 먹고 싶다고 해서 했는데, 시민이도 콩나물국 좋아해?"
"네네. 좋아해요!"
"다행이네!"
손바닥을 딱 치시며 아주머니는 그릇을 넘칠 듯 국을 퍼다 주셨다. 그나저나 타이밍이 기가 막히네. 안 그래도 속이 말이 아니었는데. 아주머니의 콩나물국을 금방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저 많은 걸 어떻게 다 먹지? 하고 잠깐 고민했던 과거의 나 반성해라.
"속 괜찮아요?"
"으응? 뭐라고?"
"속 괜찮냐고요."
빈 그릇을 싱크대에 갖다 두느라 차마 민형이의 말을 못 듣고 다시 되물으니 한 글자씩 힘을 주며 말하는 민형이의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풉 하고 웃어버렸다.
"지금 나 걱정해주는 거야?"
"그런 거 아닌데."
"속 괜찮아! 덕분에!"
"술 좀 그만 마셔요."
"으응… 그래야지."
오랜만에 좀 훈훈한 분위기 만드나 싶었는데 민형이의 따끔한 일침에 나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럴 때 보면 나보다 어른스러운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제는 좀 자제해야겠다. 어째 멀쩡한 상태로 민형이를 마주한 것보다 술에 취할 때 더 많이 만나게 되네. 그렇게 밥을 다 먹고 방으로 들어왔는데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핸드폰이 지잉- 하고 불빛이 번쩍거린다. 홀드키를 눌러 톡방을 확인해보니 왜 안 오냐는 나유타의 톡이 와있었다. 아직 시간 많이 남았…
"발표 얼마 안 남았으니까 내일 다시 모이자. 시간은 내가 단톡방에 써둘게."
아, 오바. 그렇게 말했던 어제의 정재현 목소리가 아른거렸다. 망했네, 망했다.
"늦었네. 시간 미리 알려줬을 텐데."
"아, 미안…."
"에이! 분위기 또 왜 이래!"
만나기로 했던 카페에 들어가자 나를 뺀 남정네 셋이서 테이블을 동그랗게 둘러 앉아있었다. 테이블을 흘끔흘끔 쳐다보는 여자들의 시선도 간간이 보였다. 내 등장에 정재현은 작년의 그 얼굴로 나를 마주했고 착 가라앉은 분위기에 당황한 건 나뿐만이 아닌, 정재현을 뺀 모두가 그런 듯 보였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뛰어보려 나유타는 미소 지은 표정을 유지한 채 말도 안 되는 농담 따위를 툭툭 던졌고 옆에 앉아있던 김도영은 자기가 주문하고 오겠다며 이 자리를 떠났다. 아니 이 자리를 피하고 싶은 건 당연 내가 1순위 아닌가? 네가 그렇게 가버리면… 난 어떡해?
"다음부턴 늦지 마. 우리도 시간 맞추기 힘드니까."
"응응. 진짜 미안…."
진짜 까먹을 게 따로 있지 어떻게 모이기로 한 약속 시간을 잊고 그러냐 김시민!! 딱딱하게 굳은 정재현의 낯에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옆에서 나유타의 눈동자가 도르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저 멀리서 주문한 음료를 들고 오는 김도영의 모습이 보였다.
정재현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유타는 키위 스무디, 김도영과 나는 카페모카로 시켰다. 목이 타는 느낌에 커피가 나오자마자 한 입 쭉 들이켰다. 근데 이게 무슨, 쓰읍- 생각보다 쓴 맛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커피 시킬 때부터 알아봤다. 바꿔, 나랑."
"역시 너 밖에 없다."
옆에서 그런 내 표정을 흘깃 쳐다본 나유타는 제 손에 들린 키위 스무디를 내게 주곤 내가 들고 있던 카페모카를 휙 빼갔다. 그리고 그때였다. 계속 아무 말 않던 정재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새 빨대를 들고 와선 키위 스무디에 꽂혀 있던 빨대를 빼고는 새 빨대를 푹 찔러 넣어버린다. 으응? 뭐야? 나와 나유타는 서로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우리 넷은 내일 발표 순서부터 시작해서 세세한 것까지 다 정하고 나서야 헤어질 수 있었다. 물론 나는 바로 알바에 가야 했기 때문에 김도영과 나란히 걷게 되었지만 말이다.
지잉- 가방 속에 넣어둔 핸드폰이 짧게 진동이 울린다.
[누나 수박 먹어도 돼요?]
저번에 태일 오빠한테 받았던 수박인가? 그나저나 민형이한테 온 첫 문자가 수박 먹어도 돼요? 라니. 수박 좋아하나? [먹어도 돼!]라는 답장을 짧게 보냈다. 그 이후로 민형이에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수박을 먹고 있으려나? 아, 아니다. 아직 자르고 있겠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수박을 자르고 있는 민형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나 보다. 무슨 생각해? 옆에서 걷고 있던 김도영이 물었다.
"응? 아니 뭐… 그냥."
"하숙집에 남자애 하나 있다며."
"어? 그런데 왜?"
"몇 살이야?"
"19살."
"아, 그렇구나."
뭐, 뭔데? 김도영 설마 우리(이민형 님께서 '우리'라는 호칭을 획득하셨습니다.) 민형이한테 관심이 있는 거니? 그래도 이어주긴 좀 힘들 거 같은데…. 저 멀리 카페가 보인다. 다 왔다는 생각 때문인지 우리는 점점 걷는 속도가 느려졌고 카페가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즈음 김도영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그 남자애랑."
"응?"
"많이 친해?"
"…?"
뜬금 없는 질문에 나는 멀뚱멀뚱 김도영의 옆선만 쳐다보았다. 갑자기? 너무 뜬금 없는데. 아! 안 말해줘도 돼. 아무 대답 없이 서 있던 내게 김도영은 그렇게 말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혼자 카페로 쏙 들어가 버린다. 상기된 두 귀가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우리 분명 안 좋게 헤어졌잖아. 분명 그랬는데.
근데 지금 네 행동이 꼭 작년의 너 같아서 그때의 네가 떠올라서 나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어니언's
주말 안으로 올리기 성공입니다 독자님들! 더 늦게 올릴까 봐 급하게 그래도 열심열심.. 썼읍니다...
초록 글 올라가게 해주신 것도 감사드려욥. 남자 주인공 투표 글도 잘 읽었습니다.
사실 의견들이 다양해서 아직도 못 고르고 있지만 많은 도움이 됐어요!
내일 월요일인데ㅠ 그래도 독자님들의 월요일은 행복한 하루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편엔 뭔가 다 등장한 거 같아요. 모두 모두 고르게? 아 태일이가 안 나왔구나. 킁.
쓰면서 생각한 건데 전 왜 유타가 그르케 좋을까요...?
암호닉 정리글도 빠르게 가져오겠습니다. 그 편이 좋을 거 같아서요! ^____^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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