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윤팀장은 친절해요
내가 입사해서 팀장님을 본 첫인상은 잘생겼다예요. 잘생긴 사람이 눈웃음까지 지으며 잘해보자고 하니, 거의 자동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라고요...ㅎㅎ
팀장님은 약간 엄친아 느낌..?이었지요. 팀원들과도 거리감 없이 지내구..일도 잘 하셔서 그 나이에 벌써 팀장직을 하시구 말이예요.
저는 하루가 멀다하고 사고를 치기 다반사 였어요. 지금도 뭐 별반 다른 거 같진 않지만...아무튼 그땐 진짜 너무 죄송해서 고개도 못 들고 다녔었는데, 하루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제 눈높이까지 다리를 굽혀 맞춘 팀장님이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어요.
"여주씨, 뭘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어요 ㅎㅎ처음에는 다 그런거죠 뭐."
"그래도.. 진짜 죄송해요"
"정 그렇게 죄송하다면 이따 저녁에 밥 좀 같이 먹어줘요. 저 오늘 야근이거든요.."
"아. 네네 그럼요"
"그럼 이따 퇴근하지 말고 잠깐만 기다려요 ㅎㅎ"
팀장님은 내 어깨를 두어번 토닥 거리더니 방으로 쌩하니 들어가버렸어요, 퇴근이 늦어져서 살짝 슬펐지만, 잘생긴 팀장님과 단 둘이 밥을 먹는다는 생각에 내심 기쁘기도 했지요.
저에게 주어진 유일한 업무인 오타찾는 일을 한참 하다보니 목이 너무 아파왔어요. 스트레칭이나 할까 하는 찰나 뒤에서 팀장님이 오셨어요.
"어, 팀장님."
"여주씨 우리 밥먹으러 가요. 다들 퇴근했어요."
"아...정말요?"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다들 퇴근하셨더라고요...오타찾기에 너무 빠져있었나봐요. 가방 챙겨서 갑시다, 하시기에 대충 책상에 올려놓았던 것들을 쓸어담아 팀장님 뒤를 총총 따라갔어요. 도착한 곳은 회사 근처 식당이었어요. 자주 오는 단골집인지, 주인 이모와 반갑게 인사를 하더라구요. 참, 어딜 가든 사랑받는 사람이구나..싶었어요. 밥을 먹으며 요즘 일은 괜찮은지, 우리 팀 분위기는 어떤 지 따위의 얘기를 나눴지요. 사실 같이 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팀장님과 할 이야기는 이런 것 밖에 없겠지요? 그래도 직장 상사와 밥을 먹는 것 치고는 정말 편하게 먹었어요.
팀장님은 그 뒤로도 저를 정말 잘 챙겨주셨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친해지기도 친해져서, 거의 제엄마였죠. 윤엄마.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매너가 좋은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저에게 유독 살뜰히 굴었던 거 같아요. 그 때는 그냥 아, 내가 막내고 신입이라서 그러신가 보다 했는데 사심이었어..^^..뭐, 그래서 지금은 좋다 이거죠. 근데 그 당시엔 좀 부담스러웠어요. 팀장님 자체가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자꾸 언급하고 엮고 그런 게 부담스럽고 그랬지요. 특히 회식 때 제일 심했는데, 저는 술을 못해서 팀장님이 한번 마셔주시기라도 하면 엮는 걸 계속 물고 늘어져서 하하.. 하며 웃어 넘기는 것도 한계가 임박했어요. 저도 저지만, 팀장님도 곤란하실꺼라 생각했지요, 그래서 그 날 회식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며 빠져나왔어요. 나가는 길에 슬쩍 팀장님을 쳐다보니 부장님께 붙잡혀 술을 연거푸 들이키고 있더군요. 그래서 인사도 못하고 도망치듯 집에 가버렸지요.
다음 출근해서 부터는 팀장님과 조금은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어요. 나중에 물어보니 자기는 이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하네요. 고백도 못해보고 차이는 건가 해서 심장이 하루에도 몇번씩 한강까지 갔다왔다며 호들갑을 떨었어요, 무슨 말을 못해,,,아무튼 엮이면 팀장님이나 나나 서로 곤란할 거 같기에 거리를 둔 거였는데 그렇게 할 때마다 죄송해서 죽는 줄 알았지요 저도.. 참, 남의 시선 인식하다 단명할 뻔 했어요. 팀장님과 거리두기 프로젝트가 며칠이 지나 팀장님도 조금은 체념했을 즈음, 퇴근 직전에 신나게 울리던 친구들과의 단톡을 확인했어요.
[야 오늘 알지? 다들 남친 데리고 와라 안오면 삼대가 고자]
[뭔 또 고자씩이나ㅋㅋㅋㅋㅋㅋㅋ]
[아니 1년이나 지났으면 다들 있겠지 뭐. 하다못해 썸타는 남자라도]
[ㅇㅈ오늘 뫄뫄호프 ㄱ]
[남친 안데려오면 오늘 술값 몰아내야함]
[야 설마 김여주 없는 거 아님?ㅋㅋㅋㅋㅋㅋ]
[아 맞아 그럴수도. 이거 안읽는 거 보니까 잠순가]
[야 설마 ㅋㅋㅋㅋ]
아, 이거. 아. 오늘로부터 딱 1년전에 친구들과 한 약속이 있었네요. 그때 다들 뼈아픈 이별을 하기도 했고, 한동안 연애를 안해서 좀이 쑤시던 그 무렵에 1년후에 다들 남자친구를 만들어서 만나기로 했었지요. 다들 기억하고 난리...저 아직 월급도 못받았는데 술값 몰아내기는 좀...그렇게 멘붕에 빠져서 다들 퇴근한 지도 모르고 한참을 앉아있었을까요..오늘 저에게 처음 말을 거시는 팀장님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여주씨 퇴근안해요?"
"아, 네. 해야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어기적 어기적 준비를 하는 저를 게슴츠레 쳐다보시더니 무슨 일 있냐고 물으셨어요. 제가 여기서 도와달라고 하면 뺨 맞을 지도 모르겠지요? 근데 일단 살고 볼랍니다. 자초지종 설명한 뒤 한숨을 푹 내쉬고 팀장님 반응을 살피자 팀장님은 뭐가 그렇게 웃긴지 책상을 잡고 꺼이꺼이 웃었습니다. 지금 팀 막내가 전재산이 털리게 생겼는데.. 그게 웃긴걸까요? 자기 일 아니라고 웃는게 얄미워서 내일뵙겠습니다, 하고 지나쳐 가려는데 한마디로 저를 붙잡으셨어요.
"그럼 저라도 데려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앗, 그렇게 먼저 말해주신다면 일단 저는 땡큐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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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밀어내기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약속장소로 함께 가는 차 안에는 정적만 맴돌았어요. 괜히 그딴 거 해서 휴,,,오늘도 편하게 부탁 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예요. 호프집의 문들 열자마자 제일 시끄러운 테이블을 찾았더니 역시. 제 친구들 테이블이네요. 어쩜 약속들은 이렇게 잘 지키시는지 다들 남자친구를 데리고 있더라고요. 어지간히 몰아내기 싫었던 모양이예요.
"안녕하세요. 여주 남자친구 윤지성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얼른 앉으세요!"
남자친구라고 까진 안해도 되는데, 기분이 좀 이상했어요. 몽글몽글? 어색하기도 하고.. 그 후로 술게임이 이어졌는데, 커플끼리 만난 만큼 커플끼리 벌칙을 받더군요. 예를 들어, 러브샷이라던가 좀 민망한것들... 진짜 식은땀 나서 죽는 줄 알았어요. 그것도 그런 게, 빼빼로 게임 처럼 과자 먹는 벌칙 같은 것도 팀장님은 제 눈을 끝까지 쳐다보면서 먹더라구요. 괴롭히는건가.....아무튼 팀장님 말처럼 심장이 한강에 갔다왔어요. 그러다가 뽀뽀 벌칙까지 받았는데, 진짜 눈 앞이 하얘지는 거 있지요?...지금이라도 사실대로 말할까 어쩌지 하고 있는데 팀장님이 말 없이 벌주를 원샷하고서는
"여주가 부끄러워해서요ㅎㅎ...다음에 하겠습니다, 다음에"
으으아ㅏ아ㅏ아아아ㅏㅇㅇ 오랜만에 왔지요?ㅠㅠ뭐 얼마나 썻다고 머리가 꽉 막혀서 초콤 쉬었답니다..
오늘편도 똥글이네여..본격 똥싸지르는 글.
오늘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 감사해요!
댓글 남겨주시는 분들도 감사해요!충성충성^^7
제 밥알 [쿠쿠]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