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이홍빈이랑 입싸움이 끝나고, 서로 입맛은 서로가 더 잘 아는 탓에 메뉴는 힘 들이지 않고 고를 수 있었어. " 냄비우동 2인분이랑, 음.. 새우튀김도 먹을까? " " 마음대로 해. 다 먹어 다. " " 아.. 고민되네. 그냥 먹고 모자라면 라면 끓여먹자. 콜? " " 그래 뭐, 콜. " " 근데 누구네 집으로 갈래. 우리 집엔 엄마아빠 다 있는데. " " 그럼 우리집으로 가지 뭐. " " 너네 집? 이모는 안계셔? " " 아, 있나? 전화 해볼까? " " 당연하지. 안그러면 여기서 먹어야 돼. " " 그럼 집을 비우지요- " " 에? " " 아니아니야! 전화하고 올께! " " 그려- " 그렇게 이홍빈이 잠깐 나가고 너 혼자 멀뚱멀뚱 의자에 앉아 홍빈이를 기다리고 있었어. 얼마 안걸려 홍빈이가 들어오고 집이 비었다며 냄비우동 2인분 테이크아웃을 주문했고. " 너네집 비었어? " " 어 그렇다네? 지금 아직 집인데 이제 곧 나갈거래. " " 이제 저녁인데? 밤에? " " 우리도 밤에 만나잖아. 뭔상관. " " 그런가.. 아무튼, 가자! " 오랜만에 찾아간 홍빈이네 집은 변한게 참 많았어. 식탁도 무슨 바 마냥 긴 테이블로 변하고, 소파도 바뀌고 티비도 바뀌고. 한 몇달 안온것 같은데 이렇게 변하다니, 집을 요리조리 둘러보다가 너도 항상 홍빈이네 집에 놀러오면 앉았던 작은 의자에 쭈구리고 앉아 이것 저것 말을 시키며 홍빈이를 기다려. " 음식 세팅 그냥 내가 해? " " 어 아니아니 손도 대지마 꺼져. " " 무슨 옷을 삼백년동안 갈아입냐 " " 아 썅 나 나간다 " " 우야 " 이윽고 방 문이 열리자 낑낑대면서 옷에 머리를 집어넣는 이홍빈이 네 눈 앞에 서있어. 최근에 운동은 좀 했는지 아직 희미하게 배에 자리잡아 있는 복근을 확인하고는 아무렇지 않게 옷을 당겨 입혀주는 너야. 옷도 한 번 툭툭 털어주고. 하긴, 진짜 이홍빈을 좋아했다면 이런 거에도 설레야 할텐데. 너무 아무렇지 않게 옷을 입혀준 너는 또 한 번 둘의 사이를 직감하고 낮게 한숨을 쉬어. 안 이루어질 꿈은 상상도 하지 말자며. " 맥주? " " 소맥? " " 맥주. " " 소오매애애애액- " " 술도 약한게 누굴 죽일라고. 맥주. " 힝 하는 표정으로 숟가락을 입에 물고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널 바라보며 홍빈이가 자연스럽게 네 옆에 앉아. 괜히 일식집 분위기를 내자며 불도 다 꺼놓고, 어두운 집안에 테이블 국부조명만 켜져 있으니 뭔가 로맨틱하다고나 할까. 물론 옆에 앉은 남자가 병신이지만 테이블 구조 상 맞은편으로 꺼지라 할 수도 없고, 그냥 현실에 순응하며 우동을 먹던 도중 " 천천히 먹어. 물도 좀 먹고. 체해 니. " " 남이사 체하던 말던 " " 체하면 또 누굴 죽일라고. 아무튼 지 생각만 존나 한다니까. " " 넌 진짜 내가 편해서.. 말을 그따구로 하냐? " " 너야말로. 호의를 베풀어도 지랄. 먹어. " 투닥거리며 싸워도 오분 뒤면 결국 " 홍빈아아, 먹을 거 더 없어? 안주? " " 안주빨 세우지마. 안주도 없어. " " 그냥 술만 먹으면 취하는데에. " " 이미 약간 정신이 간 것 같은데? " " 아니? 아닌데? 나 미쳤나봐 헐 어떡해 야 나 화장실 좀. " 맥주 몇 잔 마셨다고 벌써 정신이 로그아웃 하려는걸 냉수마찰로 겨우겨우 붙들고 다시 나오자 어느새 안주로 삼던 새우깡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어. 개새끼 안주빨 세우지 말라더니. " 어쩌자고 이걸 다 먹어? 술이 아직 이만큼인데? " " 그럼 내 얼굴보고 먹으면 되겠네. 눈도 호강하고 술 맛도 좋고. " " 디질라고 진짜 " " 얼른 더 마셔. 쭈욱 쭉쭉 쭉 " 그땐 왜 그렇게 보챘나 눈치도 못챘던 너인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홍빈 참 머리 좋아. " 그래서 내가 그 여우년을 기선제아압- 빠압! " " 그랬어? 잘했네. 수고했어. " 항상 이런 식이었던 것 같아. 너가 취해서 뭐라뭐라 나불거리면 홍빈이는 옆에서 턱을 괴고 그랬구나- 그랬어- 이런 식. " 혼비니 너 나 조아해? " " 응? " " 너 나 좋아하냐거, 나. " " 갑자기 그건 왜? " " 흐아어, 취해.. 이거 쏘맥? 아 아닝가, " " 응. 맞아. 너 화장실 간 사이에 소주도 탔어. 잘했어? " " 탔어? 잘해써.. " " 취했네. 살짝. " 미소를 짓는가 싶더니 꾸벅꾸벅 쓰러져가는 너의 헝클어진 머릿결을 정돈해주고는 다시 아까 그자세로 널 바라봐. 설레게시리. " 응. 너 좋아해. " " 에허? 죠아해? 넌 남자로도 안보여 새꺄 " " 그럼 이제부터 보던지. " 흐릿하게 희미해진 주홍빛 조명 사이로 홍빈이가 그대로 네 목을 감싸안고서 입을 맞춰. 차가운 맥주향이 감도는 네 입술과는 다르게 따듯하게 감싸오는 홍빈이의 입술이 도통 떨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떼기도 싫은 느낌. 어쩌면 너도 바래왔던 거니까. 혀와 혀가 끊임없이 얽히고 나서야 겨우 먼저 입을 떼어버린 네가 그대로 테이블에 엎드려버렸어. 이제 어떡하지 싶어서 말이야. 고개들기 쪽팔린데. 아 그냥 떳떳하게 들까. 또 시작됐다 내적고민. 미치겠네 진짜. 생각해보면, 여자는 분위기의 노예라는 말을 누가 한 거였는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다가오는걸 알면서도 피할 수가 없었으니까. " 벌써 열한시 사십분이다. 집에 가야지. " " 응? 아 어어! " " 우리집에서 자고가려고? " 풋하고 살짝 웃는 홍빈이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푹 숙여버렸어. 그리고 그런 너의 뒤로 커다란 코트하나가 널 감싸. " 술 안마셨으면 내 차로 가는건데. 여자 혼자는 택시 위험하니까 택시도 같이 타줄게. " " 아닌데? 나 안위험해! 너 내 뼈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나 이래봐도 태권도 3 " " 잔말 말고 갑시다 아주머니. " " 힝... 알겠어. " " 춥다. 앞에 잠궈. " " 이거 니꺼 아니야? " " 입어. 내일 가지러 갈테니까. " " 오케이.. " 택시도 같이 타고. 타고 가는 내내 택시 안에선 재미없는 라디오만 흘러나와. 아저씨 취향인듯 자꾸만 나오는 트로트에 너도 모르게 하품을 해버렸어. " 졸려? 피곤해? 들어가서 얼른 씻고 자. " " 응? 아 응.. " 어색해지면 안된다. 어색해지지 말자. 그토록 다짐했건만 홍빈이와 너 사이의 적막은 흘러나오는 사랑의 배터리만이 간간히 깨주고 있어. 그저 한숨만 푸욱 푹. 어느새 도착한 너의 집 앞. 혼자 가도 된다니까 구지 택시 밖으로 나와서 네가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간다고 떼를 쓰는 이홍빈이야. " 들어가서 문자해. 잘들어갔다고. " " 응. 커피는 나중에 살께. " " 조심해서 들어가. 춥다. " " 가 " 아, 그리고 말 못해준거 있는데. 이홍빈 택시탈때 니 손 계속 잡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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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도 봐줘요 힝힝 여러분이 바라는대로 드디어 진도를 나갔으니까!!! 끊을 수가 없었어요!! 어디서 끊던 어중간해서!!어디서 끊던 병맛이야!!! 으아아아ㅏ아아아 제맘 알져 지루해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해여어어어어!! 아그렇다고 썰이 다 끝난건 아니구.. 이번 화가 끝났다는.. 뭐그런그런... /짜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