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추워?"
"괜찮아. 추위도 많이 풀렸는데, 뭐."
종인이와 떡볶이로 굶주린 배를 간단히 채우고 우리들의 집인 보육원으로 향하는 길
3월이라 추위가 많이 풀리긴 했지만 아직은 쌀쌀한 공기에 종인이는 내가 걱정이 됐는지 춥지 않냐며 물어온다.
그런 종인이를 보며 괜찮다며 웃어줬지만 종인이는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지 뾰루퉁한 표정을 짓더니 내 손을 잡아온다.
"... 고마워ㅡ 종인아-"
"뭐... 고마울 것 까지야. 그건 그렇고 여자애가 이렇게 손이 차서 어떡해."
"괜찮아, 하루이틀인가, 뭐? 니가 잡아주면 되잖아!"
".... 우면 말해.."
"뭐라고?"
"앞으로도 손 차가우면 말하라고... 잡아줄테니까."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사시사철 차가운 내 손을 아는 종인이기에 잡아줬음에 틀림 없었다
그리고 내 손을 잡으며 투덜투덜대는 종인이가 귀여워 웃으며 니가 잡아달라고 말하자
잠시 표정이 굳더니 이내 중얼거리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들리지 않아 되물어보자
저런 멋진 말을 뱉어놓고는 이내 부끄러운듯 다른 손으로 머리를 헝크러뜨리며 고개를 푹 숙인다.
"...... 춥다, 얼른 가자."
"응!"
오늘따라 종인이가 왜 이렇게 예뻐보이는지, 그런 종인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살갑게 대해주고 싶어
이미 맞잡은 손을 폈다가 깍지를 껴서 꽉 잡았다.
그런 내 행동에 놀란 종인이는 눈을 크게 뜨고는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예쁜 미소를 보여주었고
순간 아직 쌀쌀하게 느껴지던 공기가 어느새 따뜻하게 느껴졌다
"다녀왔습니다!"
"어이구, 우리 아들, 딸 왔어?"
"네-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반가운 목소리로 우리를 반겨주시는 원장님
우리에겐 생명의 은인이자 엄마와 다름 없는 분이시다
종인이가 나 외에 유일하게 웃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밥 먹어야지?"
"우와- 밥이다, 밥!"
밥이란 말에 좋아라 뛰어가는 내 뒤를 종인이 역시 들뜬 걸음으로 따라왔다
식탁에 차려진 소박하지만 정성 가득한 음식들에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종인이와 나는 아까 먹은 떡볶이는 잊은마냥 아무말 없이 이것저것 흡입하다가
서로 눈이 마주쳤고 그런 서로가 우스워 눈이 휘어지도록 마주보며 웃었다
'따라랑-'
"뭐지.."
점심 식사를 마치고 잠시 원장님과 종인이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원장님은 일이 있다며 나가셨고,
종인이 역시 종현이와 약속이 있어 저녁 늦게야 들어올거 같다며 먼저 밥 먹어라는 말을 남기고 나갔다.
종인이도 나가고 없고, 딱히 할 것도 없어서 공부나하자 싶은 마음에 방에 들어와 책이나 읽을 심산으로 책을 들었다.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열심히 책을 읽는 도중에 울리는 문자 소리에 시계를 보니 이미 저녁 8시가 넘었고
저녁을 먹지 않은 걸 알면 또 잔소리를 할 종인이를 떠올리며 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응시하자
'우리종인이' 라는 익숙한 글자가 눈에 들어왔고, 그 익숙함에 나도 모르게 푸스스- 웃음이 나왔다
문자를 확인하려고 메세지 창을 켜자 보이는 글자에 또 다시 한번 기분 좋은 웃음이 터져나왔다
[우리 아가 또 저녁 안 먹었지? 나와라, 오빠가 쏜다]
김종인, 아무튼 나에 대해서 모르는게 없다니깐.
"쫑!!!!"
"왔어? 따뜻하게 입고 나오지."
"괜찮아, 괜찮아-"
종인이는 내가 자신을 불러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게 이름이든, 별명이든 상관 없이 애정이 느껴지는 것 같아 좋다고 말했다
그런 종인이를 알기에 가끔은 일부러 종인이에게 연락을 미리 하지 않고 종인이가 수업이 끝날때까지 교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종인이가 나오는걸 보고
'종인아' 하고 부르면 동그란 눈을 하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 이내 나를 발견하고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로 다가오곤 했다.
그런 종인이를 보고는 더 자주 불러줘야겠다고 생각해서 가끔은 대화 아닌 대화를 하고는 한다.
'김종인'
'왜'
'종인아'
'응, 다솜아'
'인아'
'응'
'쫑'
'쫑인'
'조니나'
'니니야'
'... 좋다, 다솜아'
"윤다솜, 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무말 없이 그저 길을 걷다가 옛 생각에 푸스스 웃는 나를 보고는 종인이 물어온다
"어?어- 그냥"
"............"
그런 종인이가 귀여워 골려주려 대충 대답을 해주자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걸음을 멈추고 나를 마주본다
그런 종인이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자
가만히 나와 눈을 맞추고 쳐다보던 종인이가 이내 나를 자신의 품에 가두곤 내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묻는다
그리고는 내 귓가엔 종인이의 낮은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졌다
"... 윤다솜"
"응"
"다솜아"
"왜, 종인아"
"... 나랑 있을땐, 다른 생각하지마.."
"..........."
"나랑 있을땐.. 그냥 나만, 나만 보면 안되냐...."
"... 바보"
".........."
"나 니 생각 하고 있었는데?"
"...... 진짜?"
"어. 아까 내가 니 이름 불렀을때 니가 웃는거 보니까 예전 생각이 나서."
"..... 진짜?"
"그럼. 당연한거 아냐? 내가, 어? 천하의 김종인이랑 같이 있는데 감히 어떻게 다른 생각을 해?"
"........ 다행이다."
내 대답에 종인이는 안심이 됐는지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는 살짝 웃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나는 종인이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줄때가 제일 좋다
종인이의 긴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빠져나가며 부드럽게 쓸어내릴때면
긴장으로 잔뜩 뭉쳐있던 근육들이 스르르 풀리면서 차분해진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이런 느낌일까하는 생각에 행복해진다
"그나저나"
"그나저나?"
"잊고 넘어갈뻔 했네."
"뭘?"
"밥, 밥 왜 안 먹었어?"
"어? 아.. 너 나가고 심심해서 책 읽다가,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줄 몰랐어!"
"어린애냐, 책이 얼마나 재미있었길래 밥 먹는걸 깜빡해"
"어린애 맞지, 뭐. 니가 걸핏하면 나한테 아가- 아가- 그러니까 내가 진짜 어린애가 된건가보지, 뭐."
"그게 뭐야"
"종인이 오빠- 다솜이 배고파요, 맛있는거 사주세요-"
나를 어린애 취급하는 종인이가 내심 싫치 않은 나이기에
종인이가 보여달라 보여달라 애원을 해도 보여주지 않던 애교를 부리자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종인이에 이내 무안해져
"아, 미안. 방금건 내가 생각해도 소름 돋았어. 밥이나 먹으러 가자.."
라며 먼저 앞장서서 걸어가자
이내 뒤에서 종인이 특유의 화통한 웃음 소리가 들리더니
어느새 내 옆에서 같이 걷고 있는 종인이
"우리 아가, 배고파?"
"........."
"아가야-"
"그만해..."
"왜, 아가-"
"... 이 씨..!! 김종인!!"
계속해서 아가라며 나를 놀려오는 종인이에 민망해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서 종인이에게 화 아닌 화를 내자
그런 나를 보고 씩 웃더니 내 어깨를 감싸 안고는
"오빠가 맛있는거 사줄게, 가자-"
이런 김종인을 어떻게 미워할수가 있겠나
"맛있어?"
"응!"
"내꺼 더 먹어."
"아냐, 너 먹어."
"괜찮아, 난 종현이랑 밥 먹고 왔어."
자그마한 파스타집에 도착한 우리
종인이가 나와 오기 위해 종현이에게 부탁해 알아낸 집이라고 한다
가게가 작긴 하지만 오히려 은은하고 아담한 디자인에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주문한 파스타가 나왔고, 그 맛은 꽤나 좋았다
책 읽는 동안은 배고픈줄 몰랐는데 막상 음식이 입 안에 들어오니 끊임 없이 들어갔고
그런 나를 보던 종인이는 맛있냐며 물어오더니 이내 자신의 파스타를 내 접시에 덜어주었다
반도 채 먹지 않은 종인이에게 그럼 너는 어떡하냐며 묻자
자신은 종현이와 저녁을 먹고 왔다며 괜찮다고 웃으며 답했다
"아, 배부르다-"
"맛있었어?"
"응, 여기 완전 좋다. 김종현한테 고맙다고 인사해야겠네."
"다행이다"
"우리 여기 다음에 또 오자! 그때는 내가 쏠게!"
"그럴까? 나 계산하고 나갈게, 먼저 나가 있어"
"알겠어-"
종인이가 계산을 하는동안 먼저 가게 밖으로 나와서 문 앞에 서있었다
어느새 깜깜해진 하늘을 바라보며 종인이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기요"
누군가가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내려 앞을 바라보자
이제 막 입학한 대학생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앞에 서있었다
"네? 저요?"
"네"
"무슨..?"
좋은 인상이였다.
종인이가 무뚝뚝하고 왠지 모를 묘한 느낌에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거라면,
이 사람은 따뜻하고 자상한 느낌에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것 같았다.
"저기, 그러니까... 제가 이상한 사람은 아니고요..."
"........?"
남자가 운을 떼자, 그 뒤에 일행으로 보이는 4명의 남자들이
'오오-'라며 탄성 아닌 탄성을 내뱉었다
"사실.. 제가 그쪽을 보고.. 그러니까, 첫 눈에.. 반했거든요.."
"........ 네?"
"첫 눈에 반했는데, 저도 사실 이런 건 처음이라... 어... 그러니까... 그냥 이렇게 가기는 아쉬워서요.."
"............"
"휴대폰 번호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정말 놓치기 싫어서 그래요."
갑작스레 내게 첫눈에 반했다며 전화번호를 요구하는 남자에 당황스러워져 어쩔줄 몰라하고 있자
내 손목을 잡아오며 정말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며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꽤나 끈질기게 요구한다.
"저기, 저... 죄송합니다. 저 남자친구 있어요.."
사람들과의 교류,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교류, 특히 모르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병적으로 싫어하는 나이기에
어떻게 이 상황을 떨쳐내야할까 고민하다가 내 딴에는 최고의 해결책이라는 남자친구를 내놓았는데
그 사람에게도 나의 서투른 핑계가 보였는지 잠시 당황하더니 이내 웃으며
"거짓말 하는 거 티나요. 저 정말 나쁜 사람 아니에요."
라며 살며시 웃고는 끝내 내 손목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런 남자에 당황해 어쩔줄 몰라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데
"놔."
뒤에서 들리는 낮으면서 묘하게 남성다움을 풍기는 목소리
그렇다, 종인이였다
종인이의 등장에 깜짝 놀란 남자는 안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더니
아직 상황파악이 덜 됐는지 내 손목을 잡은 그대로 종인이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을 뿐이였고
그런 남자를 바라보는 종인이의 사나운 눈빛이 왠지 모르게 낯설었다
그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종인이는 그저 그 남자의 손에 잡힌 내 손목을 바라보더니
이내 이쪽으로 다가왔고, 망설임 없이 그 남자의 팔을 잡아 강하게 뿌리쳤다
"... 으윽..."
".. 종인아...!"
종인이가 잡은 부분이 벌겋게 달아올라 아픈듯 이 사이로 낮은 신음을 뱉는 그 남자를 바라보던 종인이가
이내 그 사람의 멱살을 잡았고, 종인이의 그런 사나운 모습을 처음 보는 나는 놀라 종인이의 이름을 불렀다
"남자친구 있다고 했잖아."
"ㅇ... 이... 이것 좀, 푸...풀.. 으윽!"
"놔라고 했잖아."
"... 사,.. 살려....!"
남자는 새파랗게 질려 종인이를 보며 그저 풀어달라 애원했지만
종인이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지 그저 그 남자에게 자신의 할 말만 내뱉을 뿐이였다
그런 종인이를 본 그 남자의 친구들은 종인이를 말릴 생각은 차마 하지 못한채 멍하게 뒤에서 서있었을 뿐이었다
말려야 한다, 종인이를 말려야 한다.
"........!"
"종인아... 그만, 그만하자..."
"........"
그 남자의 멱살을 풀어줄 생각을 않는 종인이의 뒤에 서서
종인이의 넓은 등에 얼굴을 묻고 두 팔을 들어올려 종인이의 단단한 허리를 감싸 안았다
뒤에서 느껴지는 내 온기에 종인이는 흠칫 놀랐고
그런 종인이를 눈치 챈 나는 그저 종인이를 더 꽉 끌어안고 달래주었다
"그만, 그만하자. 나 괜찮아, 종인아. 그러니까 우리 이제 집에 가자."
"............."
"인아, 나 추워. 얼른 집에 가자."
계속해서 종인이를 타이르자 이내 종인이의 몸에 힘이 빠지더니
그 남자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풀었고 그 남자는 풀리자마자 뒤돌아서 도망쳐버렸다
그 남자가 도망치고 나서도 한참을 종인이의 등에 얼굴을 부비며 종인이를 달래자
이내 뒤돌아서 나를 말 없이 쳐다보더니 두 팔로 내 어깨를 감싸 꼭 안아주었다
"너 정말, 하..."
"........"
"윤다솜"
"응"
"다솜아"
"응, 인아"
"너 정말 나 없으면 어떻게 살래.."
나를 안은채로 말하는 종인이의 몸이 미묘하게 떨렸고
자신이 없으면 어떻게 살거냐는 물음을 내게 물어온다
전에 자신이 없으면 어떻게 살거냐는 물음에는
미쳐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였기에 당황하며 웃어 넘겼지만
오늘은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난 너 없으면 못살아. 니가 내 곁에 있어서 다행이야, 종인아."
| 혈루화(血淚花) |
안녕하세요, 혈루화(血淚花) 입니다! 오늘도 역시 종인이와 다솜이의 학창 시절 이야기네요. 종인이의 다솜이에 대한 소육욕이, 다솜이의 종인이에 대한 익숙함이 서서히 수면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네요. 서로에 대한 마음이 그저 익숙함일 뿐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인지는 아직도 눈치를 채지 못한것일까요, 아니면 알면서도 애써 아니라 부정하고 있는걸까요 : ) 상상은 독자님들에게 맡기겠슶니다 ㅎㅎㅎ 댓글은 사랑입니다♡ |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선정성 논란으로 기사까지 났던 지하철 스크린도어 시 3개...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