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닉 = 노을/섹도
따라다니긴 해도 사생은 아닌데? (닷새) +완결. |
아마 딱 보름이 지났나. 멍하니 달력만 바라보던 경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버지에게 크게 혼나고 나서부터 백현에게 관련된 생각은 모두 접고 (사실 그러려고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 일에만 몰두했다. 그러니 일주일 만에 성과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지사, 덕에 상사님에게도 칭찬 받았고, 상사와 친분이 있으신 아버지에게도 용서 받았다. 처음으로 백현을 쫓아다니는 것을 관두고 일주일 동안은 계속해서 고개가 시계를 향해 돌아가고, 일 분에도 몇 번씩 계속해서 그 날의 일정을 확인하면서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보름이 지나고 나니 괜찮다고 느껴진다. 이제서야 연예인을 좋아하지 않았던 예전의 자신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하지만 완전히 끊어낼 순 없다고 생각했다. 가끔가다 사람들이 틀어 놓은 TV 프로그램에서 백현의 목소리만 들려도 몸이 멈칫하는 것이다. 오늘도 아무 생각도 나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힘들게 만든 후 집으로 돌아왔다. 다른 날보다 특히 더 힘든 것 같았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침대로 직행해 엎어졌다. 오른쪽으로 돌아간 고개가 불편한 것도 느껴지지 않을만큼 노곤했다. 그 때,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휴대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아직 바꾸지 못한 배경화면. 그래서 웬만하면 휴대폰을 잘 들여다 보지 않는다.
"아…피곤한데…"
익숙하게 백현의 생일로 이루어진 비밀번호를 누르고 카카오톡에 들어가자, [경수씨]
"……어……?"
경수는 방금 전까지 밀려오던 잠이 모두 달아나는 듯 했다. 백현이었다.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분명 백현이 보낸 카톡이다. 백현의 번호를 가지고 있는 건 매니저 형만 아는 비밀이었는데. 혹시 그걸 알게 된 백현이 화가 나 먼저 연락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잠시만… 백현이는 내 번호 모르잖아? 손톱을 앙앙 물며 고민을 하는데 백현이 메시지를 몇 개 더 보내왔다.
[경수씨, 요즘 왜 얼굴을 안보여요] [혹시 이제 저 싫어서 안와요?] [그렇다고 아예 발길을 끊으면 어떻게 해요] [그리고, 먼저 번호를 가져갔으면 연락을 먼저 하시던지.] [이런식으로 제가 먼저 하게 할거에요?]
혼란의 연속. 백현이 보낸 내용을 계속해서 읽던 경수는 결국 화면을 끄고 벽에 몸을 기댔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있자, 방 문 밖으로 부모님이 TV를 보며 웃으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다시 경수의 손에서 울리는 휴대폰. 이번엔 전화였다. 백현임을 확인하고 놀란 경수가 전화를 끊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곧바로 메신저 알림이 떴다.
[전화.] [받으세요]
경수가 메시지를 확인 한 것을 본 순간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경수는 이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휴대폰을 들고 방을 나섰다.
"경수야, 어디 가니?" "아… 저 잠시만 전화 좀 받고 올게요." "전화는 방에서 받으면 되잖니?" "아……그게 들으면 곤란한 내용이라…혹시 몰라서요…" "……그러니? 알겠다."
그렇게 현관까지 나선 경수는 아직 불안함을 떨치지 못했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그러곤 발걸음을 비상 계단 쪽으로 옮겼다.
"…여보세요…" [경수씨, 왜 답장 안해요?" "…네…?" [모르는 척 해도 안먹혀요. 내가 읽은 거 다 봤는데?] "아……그게…죄송합니다…" […아니 뭐 죄송할 것 까지는 없고요…] "……" [요즘…왜 안 보여요…무슨 일 있어요?] "…아…아니…없어요…" [……무슨 일 있네요.] "……" [심각해요? 나도 보러 못 올만큼?] "…네…죄송합니다" […앞으로도…쭉?] "…아마…" […하…그러면 내일 딱 하루만 와줘요.] "네?" [앞으로 못 온다면서요.…내가 틀렸을 수도 있는데…아마…] "……" [아마 부모님이……. 아니면 죄송해요. 제가 주제를 넘었네요.] "아…아녜요." [그러니까, 내일 딱 하루만 나와주세요. 그래도… 저랑 친하게 지낸 팬은 경수씨 하나 뿐인데… 이렇게 마지막 인사도 없이 발길 끊으면 제가 많이 서운하죠…] "…아…" [오실거죠?] "………네." [그래요, 그럼. 내일 봐요…] "네…"
먼저 끊으라는 백현의 말을 끝으로 경수가 먼저 전화기를 내렸다. 비상계단에 있는 창문을 열고 몸을 기대자 불어오는 바람에 괜히 마음이 먹먹해졌다. 또 갑자기 코 끝이 찡해져오고, 고개를 젖히고 참아보려 했지만 솟구치는 눈물을 막을 순 없었다. 그래도 나름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식으로 통화를 하게 될 줄이야. 경수는 한참을 소리없는 눈물을 떨구어내다 집으로 돌아갔다.
부모님께는 친한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백현을 보러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지만 무거웠다. 아니, 발걸음은 날아갈 둣 가벼웠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조심스럽게 일정 장소에 도착하자, 저 멀리 있던 여학생들이 자기들끼리 이야기보따리를 풀다 말고 경수 쪽을 바라봤다.
"경수오빠!!!!!!!!!!!!!!!!!!!!!!!!!!"
그 중 한 명이 거의 울 듯한 표정을 지으며 경수를 향해 달려왔다. 그러더니 어안이 벙벙한 경수를 잡곤, 그간 왜 안 왔냐며 한탄을 했다. 경수는 어색하게 웃으며 집안에 일이 좀 있다고 변명했다.
"어…그게, 나 앞으로 못 올것 같…" "왜요!!!!!!!왜요!!!!!돈이 없어요? 제가 다 마련 해줄게요!!!!!!"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럼 왜요…우리 정신적 지주가 이렇게 사라지면 어쩌라고…"
뭐라 해 줄 말이 없어 괜히 씁쓸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그 때,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들리고 저 멀리서 백현이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맞다. 오늘은 야외 인터뷰 일정이 있던 날. 자신이 보름동안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경수에게 가장 좋은 자리를 넘겨 주었다. 아, 새삼 감동. 얼마 전 아버지에게 크게 혼이 나 다시는 백현을 보러 다니지 못한다는 것을 잊은 채 오랜만에 백현의 인터뷰를 보며 예전과 다름 없이 해맑게 웃어댔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벌써 예정된 2시간이 지나갔고, 백현이 자리를 뜨는 것을 기점으로 그 많던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던 경수는 슬슬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발길을 돌리는데,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인터뷰 장소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뒤로 돌면 제 차 있어요.] "네?" [거기서 봐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끊긴 전화를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 계속 들고 있기만 했다. 아, 거기로 오라고? 그제서야 상황 파악이 된 경수가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좋았다. 하지만…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와요. 빨리 타요."
땅만 보고 걷던 경수는 갑작스레 자신의 팔을 잡고 당기는 백현 덕에 넘어질 뻔 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중심을 잡고 백현의 차에 탔다. 와…이게 연예인들이 타는 벤이라는 거구나…되게 좋다… 경수를 먼저 들이고 그 다음으로 탄 백현은 벤의 창문을 닫고 안에 달린 작은 블라인드까지 치고 나서야 숨을 돌렸다.
"경수씨." "네…?" "정말…안 올거에요?" "……" "왜 그래요. 정말 부모님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게 저한테 죄송 할만한 일은 아니에요." "……" "사실…경수씨 처음 봤을 땐 그냥 신기했어요." "…네?" "아, 나도 말로만 듣던 남자 팬이 생기는구나. 그렇게만 생각했죠. 죄송하지만 그 땐 그냥 경수씨가 그 정도였어요.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남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근데…" "……" "경수씨 얼굴이 계속 보이다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원래 낯을 좀 많이 가려서 친해지기까지 오래 걸리는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니까 제가 경수씨랑 이런 저런 얘기들도 많이 했더라고요." "아…" "제가 언제 어디서 스케줄을 하던지 경수씨 얼굴이 항상 보이니까 안심도 됐어요. 아, 오늘도 왔구나 하고… 그런데 갑자기 경수씨가 안보이기 시작하는거에요. 솔직히 처음에는 무슨 일이 있나보다 했죠. 그러다가 일주일이 지나도 안보이니까 걱정이 됐어요. 사실 매니저 형한테 경수씨가 혹시 제 전화번호 물어보면 주라고 시켰거든요…" "……네!?" "계속 들어봐요. 제 전화번호 갖고 있으면서도 연락도 안 하고 오지도 않는 건 당연히 제가 싫어져서 그런거라고 생각했죠. 제가 지금 긴장해서 되게 횡설수설 하는 것 같은데 이해해 주세요. …솔직히 처음에 경수씨 안보이기 시작할 때 제가 경수씨를 걱정한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기 싫었어요.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친한 팬과 연예인 사이인데 내가 뭐 이렇게까지 걱정 할 필요 있나. 했는데 시간이 이 주 정도 지나고 나니까 알겠더라고요. 제가 평소에 하던 일반적인 걱정과는 뭔가 다르다는걸." "……." "경수씨." "네…" "아마" "……" "제가…" "…네…" "경수씨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가만히 이야기를 들으며 설마설마 하던 경수는 백현의 마지막 말에 놀라 고개를 확 들어올렸다. 설마.
"저 진짜 인정하기 싫었어요. 아무리 오픈마인드여도 제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 "왜…대답이 없어요…싫으세요……? 혹시… 제가 경수씨 좋아한다고 해서 비위 상하신 건 아니죠…?"
경수는 턱 하고 말문이 막혀 도리질 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다시금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 경수가 울 줄은 꿈에도 몰랐던 백현은 고백을 들은 경수보다 더 놀라 급히 휴지를 찾았다. 경수는 자신이 왜 우는지 몰랐지만, 그저 눈물이 났기에 계속 울었다. 처음에는 그저 눈물만 흘렸지만, 옆에서 백현이 달래주자 결국 울음을 크게 터뜨렸다. 백현이 급하게 경수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하고 경수를 감싸안았다. 그러곤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경수의 울음이 좀 잦아들 때 즈음, 경수를 품에서 빼낸 백현이 조심스레 경수의 입술에 입맞췄다. 작은 베이비 키스.
"앞으론 저 보러 올 때 부모님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애인 만나러 간다고 하고 나와요."
백현을 물끄러미 올려다 보던 경수는 작게 웃었다.
뭐, 가끔은 불효자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
아, 드디어 완결이네요.
그리 재미있던 글이 아니라서 꾸준히 봐 주신 독자분이 계실진 모르겠지만, 만약 계시다면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그냥 한번이라도 봐 주신 독자님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글이 드디어 완결입니다 ㅠㅠ 다소 허무하긴 하지만 조만간 불마크를 달고 있는 번외가 나올 듯 해요 (ㅇㅅㅁ)
읽어주셔서 갑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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