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몽[白日夢]
* * *
멍한 눈이 나를 향했다. 나는 그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와 연관 되어서 좋을 일 없으니까…. 난 그저 여기까지가 제일 적당한 선이라고 느꼈을 뿐이다. 이틀 뒤면 종인이 돌아온다. 더 이상 너는 나를 아는 체 해서는 안되…. 내 마음을 알아 채기라도 한듯 날 뚫어져라 보던 백현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이젠 더 이상 아는 척 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계속 말을 걸어올 리가 만무했다. 그렇게 자기 자리로 돌아간 백현은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1교시, 2교시, 3교시, 4교시….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점심시간 종이 울렸다. 종이 치자마자 백현은 혼자 교실을 나가버렸다. 그저께처럼 또 다시 교실에 혼자가 되었다. 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엔 잠이 가장 효율적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책상에 엎어져서 눈을 감았다.
...
점심을 먹고 돌아왔는지 삼삼오오 모여 앉은 아이들이 다시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잠에서 깨 뒤척이다가 팔꿈치쪽에 뭔가가 있는 것을 느꼈다. 몸을 일으켜 책상 한 켠을 바라보니 흰 우유 하나와 크림빵이 놓여있었다. 이게 뭐지…. 빵 위에 붙어있는 노란 포스트잇에는 글씨가 휘갈겨 적혀 있었다.
- 사람한테 더럽다는 말 하는 거 아냐. -
……. 백현이었다. 뒤를 돌아 백현의 자리를 확인해봤지만 온데간데 없었다. 포스트잇을 떼 그 아래에 연필로 또박또박 한글자씩 써 내려나간다.
그리고 빵과 우유를 같이 들고 교실 뒤로 향했다. 맨 뒷자리에 있는 백현의 책상에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그 옆에 빵과 우유를 내려놓았다. 반 아이들이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뭐야, 저 아까운 걸 왜 안 먹어?"
"저거 아까 변백현이 놓고 간 거 아냐?"
"뭐야, 뭐야-. 둘이 무슨 사이야?"
지나치게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놈들을 지나쳐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기분이 몹시 불쾌했다. 쓸데 없이 입을 놀리는 새끼들….
- 알려고 들지마. 다쳐. -
* * *
변백현은 그동안 어디에 있던건지 종례시간이 되어서야 교실에 돌아왔다. 변백현의 자리는 뒷자리였기 때문에 내가 쓴 포스트잇을 봤을지 안 봤을지, 무슨 표정을 지었을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내 뜻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전달 되었으리라 믿었다. 담임의 긴 종례가 끝났고, 담임이 살짝 내 이름을 불렀다. 도경수…? 네. 내가 대답하자 담임은 잠깐 따라와. 라고 말하곤 먼저 교실을 나가버렸다. 아마도 어제 결석 때문이겠지…, 가방을 싸고 교실을 빠져 나왔다. 교무실로 들어가자 담임이 심각한 표정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경수야. ……네?. 영문을 모르는 나는 그 옆에 서서 대답했다. 담임이 보고 있던 종이를 뒤집고는 내게 물었다.
"종인이랑…, 사이는 괜찮니?"
"……."
"편하게. 편하게 말해도 되. 혹시나 무슨 일이 있을까봐 그래서…."
"지금 중학교 때 일 때문에 이런거 질문하시는 것 같은데."
"……."
"그 때 일이라면 아주 예전에 합의 보고 끝낸 일이예요. 지금은 아무 사이도 아니예요. 괴롭힘 같은 거 당하지도 않고요."
손이 살짝 떨렸다. 아직도 그 때 생각을 하면 몸이 먼저 거부반응을 했다. 다른 생각을 하자, 다른. 다른 생각을 하자.
"그럼 더 이상 용건 없으시면 먼저 가 볼게요."
벙쪄 있는 담임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교무실 문을 열고 나왔다. 그 때 그 일은 김종인이 잘 처리했던 게 아닌가…. 문을 열자 문 바로 옆에 기대고 서있던 사람의 형태에 깜짝 놀라 뒤로 한발짜국 물러섰다.
"……뭐야."
변백현이었다. 그 전에 봐왔던 표정과는 조금 다른 표정이었다. 항상 웃기만 해서 잘 몰랐는데 얼굴을 굳히니 다른 사람 같았다. 변백현과 키 차이는 많이 나지 않았지만 변백현은 덩치가 있는 편이어서 몸이 위축되었다.
"너 잘 모르나 본데."
"……."
"나 궁금한 거 되게 못 참거든."
"……."
"내가 다치던 죽던간에. 나는 꼭 좀 알아야 겠다."
"……."
"너가 누군지."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대체 나한테 왜…. 너는 내가 누군지 알게 되는 순간 나를 피해 저 멀리 도망가 버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변백현의 눈에서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어렸을 적, 내가 그 아이에게서 보았던 그 눈동자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는 그 아이와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이건 니가 가져 가시고-."
손에 들려있던 빵과 우유를 억지로 내 손에 들게 했다. 엉겁결에 받아든 빵과 우유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거 필요 없…."
"그거 아냐, 너 거짓말 되게 못쳐."
"……야."
"숨기고 있는 것도 너무 많고."
그 말을 끝으로 백현은 혼자 계단으로 향했다. 잠시 멍해져 있던 나는 내 손에 들린 빵과 우유를 다시 한 번 쳐다봤다.
* * *
집에 도착해 옷을 벗고 변백현이 준 빵과 우유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일이 골치 아프게 됐다. 생각보다 변백현은 만만한 상대가 아닌 모양이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미지근한 물이 온 몸을 적셔 내렸다. 아무리 씻어도 깨끗해질 몸은 아니란걸 알았지만 물줄기가 몸을 타고 흘러내릴 때 기분이 좋았다. 문득 아까 백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다치던 죽던간에. 나는 꼭 좀 알아야 겠다. 너가 누군지….'
이미 시작되 버린 것 같다.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해야 우리 모두가 다치지 않고 끝날 수 있을까….
내가 어떡해야 그 때 그 악몽같은 일들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을까….
세면대에 물을 가득 담고 얼굴을 묻었다.
죽음,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물 속에서 죽는다면 참 행복할 거 같아, 그치?
로션 |
안녕하세요 로션입니다! 오늘 무려 두편을 들고 왔어요 헤헤헤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머네요...또르르.. 그러나 여러분들 댓글 덕에 힘을 얻구 있습니다! 으쌰으쌰쌰 근데 조회수랑 댓글의 괴리가....엄청나네요...ㅠ ㅠ... 댓글을 바라고 쓰는 건 아니지만.. 조금 씁쓸해져요ㅠㅠ.. 아무래도.. 그치만 열심히 연재하겠습니다!!!!!!!!!!화이쨔!!!!!!!!!!!!! - 암호닉 - 우유 백똥 낭랑찬혤 횬이 쇳대 토너 님 감사드립니다! 하트하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