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정택운과 헤어졌다. 5년을 친구로 지내왔고, 2년을 사겨왔던 정택운과 헤어졌다. 친구인지 연인인지 분간조차 가지않는 정택운과 헤어졌다. 그게 너무 좆같아서 처음엔 화를 내다가, 중간쯤에 가서는 김원식과 술을 마시면서 울어도 보다가, 종국에는, 그냥, 손을 놔버렸다. 정택운에게 휘둘려서 이러고 있는 내가 너무 한심했다. 정택운은 내 인생의 전부인 것마냥 굴어봤자 달라지는건 없었다. 정택운은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내 인생의 어느 부분에서 스쳐지나갔을 어떤 아무개씨보다도 쓸모없는 먼지조각 하나가 되었을 뿐이다.
일찍 일어났다. 새벽 한시반. 일어난 게 아니라 안잔건가. 좁디좁은 소파에서 뒤척뒤척 몸을 움직이다가, 결국에는 더듬더듬 리모컨을 잡아들었다. 전원버튼을 누르니 흐릿한 잔상에서 점점 선명해져가는 TV화면이 보였다. TV에선 예능프로가 한창이었다. TV에선 감정을 토해낸다. 웃음을 토해낸다. 웩. 어디선가 창밖으로 술에 취해 토사물을 토해내는 소리가 들렸다. 우웩. 웩. 웩. 연이어 들리는 소리는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토를 할거면 곱게 하던가.
-그러면, 바나나 먹으면 나한테 반하나?
-아….
킬킬거리며 웃었다. 더 이상 웩웩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TV화면엔 한심한 얼굴로 쳐다보는 진행자와 진행자의 시선에 되레 적반하장으로 '뭐요 뭐!' 하고 소리치는 출연자가 있었다. 나는 또다시 킬킬거리며 웃었다. 웃음을 토해냈다. 그들의 행위에 동조했다.
한참을 그렇게 개그를 주고받던 둘은 다음주에 만나자는 약속을 기약해놓고서 TV속에서 사라졌다. 웃음을 토해내던 인간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영화 광고가 흘러나왔다. 차를 타고 도로를 내달리는 남자 주인공과 그런 남자 주인공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여자 주인공. 그리고 30초. 그 짧은 시간동안 그들은 화를 냈고, 울었고, 사랑했다. 왜그랬는진 모르지만. 원래 영화 광고란 그런거 아닌가. 왜그러는진 모르는데, 아무튼 어떤 행동을 하는. 그게 영화광고 아닌가.
영화광고가 끝난 다음에는 방향제 광고가 나왔다. 친구를 데리고 온다는 아내와, 냄새를 체 지우지 못해 당황하고 있는 남편. 그리고 방향제. 방향제 하나에 그 요상한 냄새들이 지워졌다. 저 남편은 얼마나 귀찮았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추측하건데, 저 남편은 분명히 귀찮았을 거다. 아내의 친구들이 몰려올 때까지 냄새를 치우는 것 뿐만 아니라 저 남자는 제가 엄두도 못내는 계란찜같은 요리들을 차려내야 했을거고, 제 방에 널부러져있는 옷도 치워야 했을거다. 상당히, 귀찮았겠다. 어쩐지 남편에게 사과를 하고싶어졌다.
남편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네니, 이상한 다이어트 상품 광고가 나왔다. 작은 네모 속에서 소비자로 추정되는 한 여자가 나와 해맑게 웃었다. 이 상품, 정말 좋아요! 제가 한 달 써봤는데, 효과가 바로 나오더라니까요! 지랄하네.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여자는 신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라도 되는 양, 해맑게 웃으며 감탄했다. 그 모습을 가만가만 보고있으니 문득 소비충동이 드는 것도 같았다. 정말인가. 진짜 그렇게 효과가 좋나. 그렇게 신세계였나. 분명히 저가 원래부터 해오던 다이어트 방법이 있었을텐데. 그것보다 좋았나. 여자에게 묻고싶었다.
광고가 끝이났다. 이윽고 해당 방송사의 인기 드라마 예고가 나왔다. 예고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는 문득 울었다. 씨발. TV를 보고있던게 아니라, 정택운을 보고있었다. 결국엔 정택운에게 휘둘리고 있구나. 먼지 조각에게 휘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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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엔] 그 이후의 이야기 : 차학연의 이야기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9/f/d/9fdeea091c2af70f31bee2e1819928bf.jpg)
글잡 공기 오랜만에 맡으니까 너무 좋네요ㅎㅎㅎㅎ아주그냥 핫한 공기가 훅!
아마 이걸 읽으신 독자분들은 ????이게 뭐여???? 하시겠죠? 그 심정 잘 압니다. 저도 이게 뭐여ㅋㅋㅋㅋㅋ했거든요.
사실은 글 속에 택엔이들의 연애사가 담겨있다는게 함정.
그 연애사에 대한 요니 감정이 담겨있다는건 2차 함정.
이 글의 인물설정은
5년지기 친구 요니랑 연애하다 여자랑 바람나서 헤어진 택운이X그런 택운이한테 차인 요니 라는건 보너스 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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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이 애슐리 가자는데 좀 정떨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