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대에서 살아남기
04
“이 수업이 도대체 왜 팀플인지 아시는 분…?”
팀플이라는 청천벽력이 떨어진 이 수업은
전공필수인 건강학개론 수업이었다.
과 특성상 아무래도 실기과목이 많기 때문에
이론수업은 일부였고 팀플은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 꼭 필요한 경험이라며 갓 입학한 새내기들에게
팀플과제를 주신 교수님이었다. 그것도 랜덤으로 뽑는단다.
“제발.. 아는 사람 한 명만이라도 같이 있게 해주세요..”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하는 여주였다.
3조 강다니엘 김여주 박성호 황민현
기도를 들어주신 것에 기뻐해야하는건지 모르겠지만
분명 랜덤이랬는데 왜 저기에 저 두 명이 껴있을까..
조끼리 모여 앉아 통성명이라도 하라는 교수님의
말에 각자 조원들을 찾아 이동했다.
3학년이라는 성호 선배는 재수강이라고 했다.
한 번 들어봤으니 잘 아는 수업이고 학점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다만, 자신은 지금 대회 준비 중이라 훈련때문에 조모임에는
참여를 못할 거라는 것. 그 말인 즉슨.. 얘네랑 셋이서 만나야한다는 것.
알 수 없는 기시감에 여주는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댔다.
그래도 고딩친구가 평생친구라는데 싸우지는 않겠지.
혼자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흔든 여주는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두 사람을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내가 단톡방 만들게.”
성호선배는 주도적으로 나서며 조장을 자처했다.
단톡방도 만들고 자료조사 파트도 배분해주었다.
오빠는 피피티와 발표를 맡겠다고 했다.
조과제는 누가 절대 피하라고 했었는데..
이렇게 도와주는 선배가 한 팀에 있어 너무 든든했다.
조과제에 다음주는 쪽지시험까지 ..
교수님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씀하시곤 수업을 마치셨다.
“어우, 야.. 얘들아 나 너무 힘들어”
성우네 조는 성우 빼고 다 여자 조원이었다.
벌써 여자애들에게 탈탈 털리고 왔는듯
성우는 힘빠진 얼굴로 우는 소리를 했다.
“...나랑 조 바꿀래?”
웃는건지 우는건지 모를 재환은 성우에게 되물었다.
“하.하. 난 우리 조 너-무 좋아 너어무!”
성우는 이상하게 웃으며 말하곤 재환의 어깨를 두들겼다.
“왜 저래?”
여주는재 환의 조원이 누구길래 저러나 싶었다.
“고학번 복학생 형들”
“세 명 다??!!”
이 수업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1학년 수업인데 이렇게 재수강이 많을 줄이야..
재환은 세상이 무너진 표정으로 신음했다.
“난 망해써어어.....”
여주는 차마 이런 재환을 놀릴 수가 없어서
그냥 가만히 등을 두들겨주었다.
이 조과제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고 말이다.
체대에서 살아남기
조과제의 똥을 밟은 것은 성우네도,
재환이네도 아닌 바로 여주네 조였다.
성우는 잘생긴 얼굴 때문인지 여자애들에게
이리저리 시달리긴 했지만, 똑부러지는 여자애들
덕분에 자신이 맡은 것만 여유롭게 하고 있었다.
제일 걱정이었던 재환이는....
복학생 형들의 부름을 받고 대타로 축구 한 판
뛰고 오더니 형아들의 엄청난 캐리를 받고 있었다.
그 시합이 엄청 중요한거였는데 재환이 3골이나
넣었다나뭐라나.. 중고등학교때도 축구로는 날고 기던
재환이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결론은 이 둘은 이렇게 행복한 조과제를 하는데..
우리 조가 문제였다.
첫 날 분명 뭐라도 다 해줄 것 같던 성호는 그 날 이후
드문드문 연락이 닿았다. 피피티와 발표는 마지막에
할 일이었으니까 불안한 생각을 애써 지우며 믿었는데..
당장 내일모레면 발표인데 연락두절되버린 상황이었다.
“하-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한숨을 내쉰 셋이었다.
일단 자료조사를 마치긴 했으니 한 명이 전담해서 피피티를
만들고 발표는 분담해서 하는게 낫다고 판단했다.
“피피티는 내가 만들게. 나 발표하는거 잘 못하는데
발표 분량만 좀 줄여줘.”
여주는 자진해서 피피티를 맡았다.
그냥 자신이 더 하는게 속편하니까.
“니 하루만에 우예 다할라고.”
“도와줄게.”
두 사람 성격을 말해주듯 같은 말에도
참 다른 대답이었다. 말에 담긴 의미는 같겠지만..
“아 근데 이 선배 괘심해가..우야지.”
“그러게... 진짜 이런 사람 말로만 들었는데..”
여주는 어쩔 수 없다는듯 시무룩하게 답했다.
화낼만한 상황임에도 팔짱을 낀채로 말이 없는 민현이었다.
참으로 차분한 성격이었다. 원래 화가 없나.
“쟈도 지금 화 많이 난 것 같은데.”
다니엘은 조용히 여주에게 속삭였다.
예상치 못한 말에 여주는 갸우뚱했다.
“전혀 안그래보이는데..”
“저런 아가 더 무섭다아이가.”
“그..그런가.”
민현은 긴 침묵을 깨고 말했다.
“일단 시간이 없으니 빨리 시작하자.”
다니엘과 덩달아 여주까지 눈치를 보며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밖을 보니 깜깜해진지 오래전이었다.
24시 까페를 선택한 건 현명했다.
벌써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으아-“
몸이 찌뿌둥해 기지개를 펴는 여주였다.
다니엘도 엎드려 찡찡댔다.
“아 디지긋다. 디지겄어...”
오랜 시간에도 변하지 않는 정자세로 노트북 자판을
타닥타닥 두드리던 민현이 둘을 바라봤다.
“발표 대본은 마무리됬으니 피피티는 내일 마무리하자.”
“오, 황미년이~”
다니엘은 민현의 등을 두드리며 이제 빨리 가자고 보챘다.
여주도 웃으며 짐을 챙겼다.
셋 다 자취를 해서인지 집 방향이 같았다.
나란히 걷다가 집 앞에서 헤어질 때가 다다랐다.
“그럼, 내일 보자.”
여주가 인사하자 둘은 나란히 서서 동시에 답했다.
“어여 드가라.”
“내일 보자. 수고했다.”
여주는 자취방 건물 계단을 올라가며 창 넘어로 보이는
두 사람을 잠시 바라보다 집으로 들어갔다.
체대에서 살아남기
발표 당일, 눈치를 보며 옆에 낑겨 앉은 성호를 보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일단 가만히 있으라는 민현의 말에
다니엘은 몇 번이고 발끈하는 성미를 죽이고
성호를 째려볼 뿐이었다.
역시 만만한게 여주였는지 성호는
여주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얘들아 진~짜 미안, 알다시피
내가 훈련 때문에.. 진짜 미안하게됐다.”
학점이 중요하긴 했는지 웃으며 말하는
저 얼굴이 아주 얄미웠다. 자신의 어깨를 잡고 말하는
성호의 손이 불쾌해지려는 찰나에.
다니엘의 정색하는 목소리에
깨갱한 듯 성호는 손을 내렸다.
민현은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다 대본을 나눠주었다.
“선배는 마지막 파트만 마무리로 발표해주시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성호에게 대본을 건네는 민현이었다.
다니엘은 할 말이 백 개는 있는 얼굴로 민현을 쳐다보았다.
그 얼굴을 가볍게 무시하는 민현이었다.
“이야~ 역시 민현이다. 고마워! 내 파트는 걱정마! 아무렴~”
기껏 만들어놓은 대본은 들추어보지도 않고
싱글싱글 웃으며 말하는 성호였다.
수업 전 성호가 담배를 태우러 나가자
다니엘은 그제서야 참았던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저 새키한테 와 대본을 주는데, 그냥 저대로 냅둘기가.”
씩씩대는 다니엘과 여전히 차분한 민현에 여주는 괜히
더 눈치를 보게되었다. 자신도 억울하긴 했지만
이걸로 우리끼리 싸우는건 더 아니라고 생각했다.
“니엘아, 저 선배가 잘못한거지
민현이가 잘못한건 아니잖아. 진정해 진정.”
여주는 애써 다니엘을 달래고는 민현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이 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웃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여주는 발표만 잘 끝내자라는 생각이었다.
“3조 발표하세요.”
교수님의 말씀에 단상에 선 네 명이었다.
민현부터 차례차례 발표를 하고
여주도 자신의 파트까지 무사히 잘 마쳤다.
이제 마지막으로 성호의 파트였다.
“아.. 이..그러니까..”
갑자기 발표를 잇지 못하고
더듬거리는 성호에 시선이 모두 쏠렸다.
“뭡니까?”
교수님은 눈썹을 찡그리며 성호에게 물었다.
“아, 그니까 이 신체의.. 어..”
“제가 마저 발표하겠습니다.”
성호의 말을 막고 태연히 발표를 잇는 민현이었다.
성호는 얼굴이 새빨개져 부들거리고 있었다.
“이상으로 3조 발표 마치겠습니다.”
민현의 마무리로 발표가 끝났다.
“질문하겠습니다.”
갑작스런 교수님의 질문에 여주는 긴장했다.
“건강에 영향을 주는 변수들과
그 요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죠?”
“그 변수들에는..”
“박성호 학생이 답하세요.”
대답하려던 여주의 말을 가로막고
교수님이 성호에게 질문했다.
“아.. 그..변수는 그러니까..”
당연히 답을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과
주기별 생리특성에 대해 설명해보세요.”
“….”
“박성호 학생?”
교수님의 질문세례에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교수님은 정적을 깨고 말씀했다.
“성호 군. 재수강이라 만만하게 생각했나보죠?
지금 답을 하나도 못하는 걸보니
학생이 얼마나 참여를 안했는지 보이는 군요.”
“교수님.. 그게 아니라..”
“후배들 앞에서 부끄러운 줄 아세요.
변명은 듣지 않겠습니다. 학점 문의도 하지마세요.”
단호한 교수님의 말에 성호는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이 빨개진 채로 고개를 떨구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상황에 태연한건 민현 뿐이었다.
성호는 수업이 내내 고개를 숙이다 민현을 째려보다
번갈아하더니 끝나자마자 교수님을 쫓아갔다.
“진짜 우예된 일이고.”
“그러게.. 저렇게 보내도 괜찮은거야?”
동시에 민현에게 질문하는 다니엘과 여주였다.
민현은 성호가 버리고 간 대본을 건넸다.
페이지를 넘겨보던 여주는
자신이 잘못 본 것인지 아닌지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마지막이 없는데???”
원래라면 있어야할 성호의 마지막 파트가 대본에 없었다.
다니엘은 뭔가 깨달은 표정으로 민현을 봤다.
“일부러 뺐나.”
“똥이 무서워서 피하진 않지.”
“대애박..”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민현에 여주는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니엘은 여주에게 작게 속삭였다.
“저 놈이 제일 무섭다고 내가 말했제.”
“그러게”
자신을 앞에 두고 다 들리게 속닥이는
둘을 보며 민현은 피식 웃었다.
“근데 우리한테 왜 말 안했어?”
“맞다. 와그랬노.”
이 정도 일이면 의논했을 법도 한데
민현 혼자서 생각하고 실천한 것이 의아했다.
발표하는 중에는 정말로 놀랐으니까.
“아마도, 박성호가 악감정 갖을테니까.”
“뭐?”
“그래도 선배는 선배잖아.”
“그카믄 니는, 니는 우얄낀데.”
민현의 말에 다니엘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여주도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엘은 이 상황이 익숙한듯 말했다.
“말 안하고 일벌리는데 뭐있다아이가. 내 진짜 답답해가..”
민현은 씩 웃으며 다니엘의 목에 팔을 걸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여주는 둘이
자신의 생각보다 엄청 친하구나 생각했다.
둘이 싸울까 걱정했던 자신이 바보같을 정도로.
이렇게 상반되는 성격인데도 서로를 잘 아는 것을
보면 마치 김재환과 자신을 보는 듯했다.
생각해보면 재환과 다니엘, 그리고 여주가
친해지게 된 것은 특별한 계기가 아니었다.
그 또래 아이들이면 모두 같은 유치원을
나왔을 정도로 작은 동네였다.
그런 곳에 이사를 왔으니 친구를 쉽게 사귀지 못한 것은
비단 여주의 성격 탓만은 아니었을것이다.
같은 서울이라도 외곽에 위치해서 그런지
고개를 돌리면 논밭이 있는 그런 곳이었다.
여주가 회상하길, 그 어렸을때도 느껴질 정도로
재환과 다니엘의 첫인상은 참 촌스럽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촌스러움은 웃음이 나올 정도로
순수했었던 것이었다.
같은 골목에서 다니엘과 재환은 옆집에 살았었고
여주가 그 맞은편 집에 이사왔었다.
이삿짐을 옮기고 있는 집 안을 기웃기웃대던
두 남자아이는 구석에서 홀로 발끝을 차며 서있던
여자아이를 보게되었고 그게 우리의 첫만남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만 해도 여주는 말이 없고
숫기가 없어 부모님이 걱정하실 정도였다.
그 성격이 남아있긴 해도, 다니엘과 재환과
다니엘의 발차기에 물개박수를 치던
어린 자신의 모습이 생각나기도 했다.
금방 흥미를 잃은 자신과 재환과 달리
다니엘이 지금까지도 태권도를 했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초등학교 6년 동안 하루도 떨어질 날이 없었다.
그 나이 때 아이들이 남자 여자 편갈라먹고 싸울 때도
셋은 한번도 싸운 적 없었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아무리 눈을 씻어봐도 다니엘은 보이지 않았다.
재환에게 물어봐도 답지않게 묵묵부답이었을 뿐.
재환이네와 식사하러 간 자리에서 어렵게 꺼낸 엄마의 말에
숟가락을 떨구고 울고 말았다.
나쁜 자식.. 인사도 안하고 가버렸어.
아직도 궁금했다. 왜 자신에겐 아무 말하지 않고 가버렸는지.
김재환에겐 말했으면서 왜 나한텐 인사도 없이
그렇게 가버려야했는지.
몇 년이 지난 지금, 다니엘과 다시 만났던 그 날.
막상 보고싶었던 그 얼굴을 마주보니
마음 속에 담고 있던 수 많은 질문들은
왠지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
안녕하세요 포도블입니당 ?
저번에 발암선배에 이어 이번엔 발암조원이네요ㅋㅋ
진짜 대학다니다보면 별의별 사람들 많이 만나게 되죠.. 암요..
독자님들 막 이케 댓글도 이쁘게 써주시구 신알신도 그렇구..
아 제가 쫌 사랑합니다!!
또 언넝 다시 올게유 ?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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