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알람을 맞춰놓은 시간보다 빠른 시간에 저 스스로 떠지는 눈에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앉은 택운은 긴 팔을 머리 위로 높이 뻗어 기지개를 크게 한 번 폈다. 늦은 밤까지 잠이 오지않은 탓에 오늘 입고 나갈 옷을 고르려 옷장을 전부 헤집어놨더니 택운의 방은 전쟁터마냥 어지러웠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옷가지들을 주워 침대 위로 던져놓은 택운은 눈을 비비며 눈곱을 떼더니 그대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기분 좋게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를 마친 택운은 가볍게 샤워가운을 걸치고 나와 부엌으로 가 먹다남은 식빵을 토스트기에 넣어 굽고는 냉장고에서 사과잼과 우유를 꺼내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떼우고 방에 들어와 어지럽게 널브러져있는 옷들을 들춰보았다. 택운은 어젯 밤 옷을 고르느라 꽤 늦은 시간에 잠이 들었지만 아침에 일어나보니 왠지 모르게 입기싫어진 탓에 전신거울 앞에 서서 이 옷 저 옷 몸에 대보며 옷을 고르기에 정신이 없었다. 오늘은 택운에게 꽤나 의미있는 날이였다. 얼마 전 오랜 짝사랑의 마침표를 찍은 원식과의 첫 데이트 날이였기 때문이다. 몇 년동안 봐왔던 원식이고, 정식으로 사귀게 된 후에도 자주 만났지만 그건 학교에서고 오랫동안 짝사랑만 하던 원식이 아닌 제 연인이 된 원식과 제대로 된 데이트는 처음이니까, 리며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떠는 제 행동에 변명 아닌 변명을 해대던 택운은 저도 모르게 떠올린 '연인'이란 단어에 얼굴이 붉어졌다. 옷장에 있는 옷이란 옷은 다 꺼내 이리저리 매치해보던 택운은 즐겨입던 블랙 진과 아이보리색 니트를 입었다. 옷을 입고 오른 쪽, 왼 쪽 몸을 돌려가며 거울을 보던 택운은 아직 덜 마른 머리카락을 드라이기로 바싹 말리고는 사귀기 전 원식이 사줬던 검은 비니를 썼다. 어느 날 저도 인식하지 못한 채로 멍하게 원식을 바라보던 택운에게 원식이 왜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냐며 웃으며 말을 건 탓에 멍하니 있다 화들짝 놀란 택운은 그 때 원식이 모자를 쓰고 있어서 모자가 예뻐서... 라며 둘러댔고, 원식은 그런 택운을 모자가 갖고싶어서 그런 것이라고 인식했는지 얼마 뒤 저와 비슷한 디자인의 모자를 택운에게 선물했었다. 원식이 준 것이라 매일같이 쓰고 다니고 싶었지만 차마 아까워서 함부로 손도 대지못했던 택운은 날이 날인지라 큰 맘 먹고 모자를 꺼낸 것이다. 모자를 쓴 후에 학연과 재환, 원식과 함께 쇼핑하러 가서 원식이 골라줬던 검은 코트를 걸치고 원식을 따라 비슷한 디자인으로 샀던 워커까지 신고 나니 니트를 제외하곤 전부 다 검은 색이라 첫 데이트인데 너무 칙칙한가, 싶었지만 원체 무채색을 좋아하는 터라 그다지 밝은 색의 옷도 없었고 무엇보다 저가 좋아하는 옷들만 입은 탓에 다른 옷을 입고 싶진않았다. 들뜬 마음에 부지런을 떤 택운은 약속시간보다 20분이나 빨리 약속 장소에 도착했고 근처 벤치에 앉아 휴대폰을 꺼내 원식과 했던 카톡 대화들을 입꼬리를 잔뜩 올린 채 읽고 있을 때, 누군가 택운의 앞에 멈춰 섰고 원식과의 카톡을 보느라 정신없던 택운이 뒤늦게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제 앞에 서있는 사람을 올려다보자 그 앞엔 제가 기다리던 원식이 저를 보고 웃으며 서 있었다. 저와 같은 모자를 쓴 채로. "일찍 왔네요?" "응." "안 추웠어요? 근처 카페라도 들어가서 기다리지 그랬어요." "괜찮아, 온지 얼마 안됐어." 너를 기다리는 시간은 추위를 느낄 새도 없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려는 말을 눌러담은 택운에게 원식은 뭘 보는데 내가 온지도 모르고 그렇게 웃고 있어요? 라고 물었고 너랑 했던 카톡을 보며 니가 내 꺼가 된 게 사실인 게 실감이 나질 않아서 웃었다고 할 수 없었던 택운은 그냥... 이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근데, 그 모자..." "아, 이거 형 모자 살 때 제 것도 샀었어요. 오늘 처음 썼는데, 의도치않게 커플 티내게 됐네요?" 원식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커플'이란 단어에 택운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자 원식은 그런 택운을 보며 귀엽다고 웃었고, 그 말에 택운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 밖에 오래 있어서 춥겠다며 원식은 택운의 손을 붙잡고 근처 카페로 택운을 이끌었고, 택운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보다 원식에게 잡힌 제 손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금세 도착한 카페에 원식이 창가 자리에 택운을 앉히고 주문을 하러갈 동안 택운은 하염없이 원식에게 붙잡혔던 자신의 손만 바라보고 있었다. 주문하고 곧 바로 커피를 받아온 원식에 멍하게 손만 바라보던 택운은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원식을 바라보았고, 저를 보며 웃고있는 원식을 보고 화답하듯 웃어주었다. 늘 먹는 특별할 것 없는 라떼였지만 원식과 먹어서인지 어째서인지 평소보다 더 맛있게 느껴졌고 카페에 울려퍼지는 잔잔한 음악도, 옆 테이블에서 과제를 하는지 두꺼운 책을 펴놓고 인상을 찡그리고 노트북을 바라보는 한 남자의 신경질적인 타자소리도, 잔잔한 카페 음악소리와 함께 카페에 울려퍼지는 어려보이는 네 명의 여학생들의 수다도, 전부 다 기분좋게 느껴졌다. 연인들의 전형적인 데이트 코스라고 할 수 있는 '카페-영화-식사'를 마친 원식과 택운은 어느 새 마주잡은 손을 차가워진 저녁 바람에 자연스레 원식의 외투주머니에 넣은 채 멀지않은 택운의 자취방으로 빠르지않게 천천히, 급하지않게 느긋하게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느릿하게 걸어온 탓에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려 택운의 자취방 앞에 도착했지만, 둘은 그 시간조차 짧았던 듯 붙잡은 두 손을 놓칠 못했다. 아무 말도 오가지않은 채, 붙잡은 두 손을 가만가만 작게 흔들던 둘은 한참이나 자취방 앞에 서 있다가 원식이 춥겠다며 얼른 들어가라고 택운을 재촉한 덕에 택운이 원식을 바라보지않고 고개를 숙인 채 숨김없이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마주잡은 원식의 손등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내리자 작게 웃음을 터트린 원식이 택운의 손을 놓고 큰 손으로 택운의 양 볼을 붙잡아 고개를 들어올려 눈을 맞추었다. "우리 택운이형 코 빨개졌다, 감기 걸리겠어요. 얼른 들어가요." 택운은 여전히 아쉬운 표정이였지만 원식의 말인지라 싫다 소리 한 마디 못하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귀여워 죽겠어. 차마 뱉어내지 못한 말을 꾸역꾸역 눌러담은 원식이 시무룩한 표정인 택운의 이마에 버드키스를 하자 택운이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선 원식을 쳐다보자 그런 택운을 보고 웃음이 터진 원식이 그대로 택운을 품에 안았다. 갑작스레 이어진 이마키스-포옹 콤보에 놀라 굳어버린 택운과 그런 택운을 품에 안은 원식의 심장박동 소리가 얼추 비슷하게 들려오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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