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대로
09
시간은 흘러갔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시간은 자꾸만 흘러갔다.
회사일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낸 성운이와 여전히 집에 틀어박혀 커피를 내리고, 책을 읽고, 첼로 연습을 하며 일상을 보낸 나도 스물일곱 살을 맞았다.
우리는 여전히 함께 주말을 보냈다. 소파에 앉아서 나는 ‘해리포터-아즈카반의 죄수’ 중 2권을 읽고 있었고 성운이는 바닥에 누워 영화를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 말해야겠다 싶어 책을 덮었다.
“성운아 나 첼로 그만하려고.”
뜬금없는 나의 말에 놀랐는지 성운이는 몸을 일으키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고 싶은 게 생겼어.”
“뭔데?”
“커피 만들고 싶어.”
취미로 시작했지만 커피는 어느새 내 일상 깊숙이 자리 잡았고 진지하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며칠을 혼자 고민하다가 성운이에게 얘기를 꺼냈다.
성운이는 소파로 올라와 내 옆에 앉았고, 잠시 음- 하더니 입을 열었다.
“응, 프랜차이즈 말고, 작은 내 카페.”
“지금 당장?”
“아니, 메뉴도 연구하고 사업이니까, 원두 원가나 그런 공부도 해야겠지?”
성운이는 음,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난 이름이 커피 좋아, 내가 단골손님 해줄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내 손에 깍지를 낀다.
다정하게 바라보는 저 눈빛은 봐도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성운 시점
‘It will be a good opportunity.’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팀장이 말했다. 이번에 한국에 지사가 생기는데, 그곳에 본사 직원 몇을 보내야 된다고, 각 부서에서 추천해 명단을 보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한다.
팀장은 당연히 한국인인 나를 추천 했다. 한국에서는 이런 분위기에서 일하긴 힘들 텐데. 이름이가 여기 남아있겠다고 할까.
여러 고민이 앞섰지만, 한국 지사로 간다면 바로 승진 할 수 있다는 말에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커피를 만들고 싶다는 이름이의 눈이 반짝였다. 빈말이 아니라, 이름이의 커피는 다른 어떤 커피 전문점의 커피들보다 따뜻한 커피다.
검은색 보온병에 담긴, 달지는 않고 부드러운 그 커피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조그만 손으로 원두를 갈고, 초집중 상태로 뜨거운 물을 붓는 이름이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온다.
무대에서 연주하는 모습도 예뻤는데,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아쉬웠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어쩌면, 같이 한국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또 등장한 성운이의 아빠적 모먼트에 반강제적으로 밖에 나가게 되었다.
나가서 밥만 먹고 오자는 말에 대충 틴트를 꺼내 슥슥 바르고 패딩에 목도리까지 완전무장을 한 뒤 문을 열었다.
훅, 하고 들어오는 찬바람에 눈을 살짝 감았다 떴다.
“응응, 가자.”
덜덜 떨며 고개를 끄덕이자 성운이는 많이 춥냐며 손을 꼬옥 잡아왔다.
“맨날맨날 주말이었으면 좋겠어.”
“혼자 있는 거 심심하지.”
“우웅. 근데 괜찮아. 네가 계속 연락해주니까.”
“더 많이 해야겠네.”
“안돼, 일해야지.”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나누다보니 벌써 도착했다. 성운이는 들어가자마자 내 뒤에 서더니 양손으로 내 귀를 잡고 주물주물거렸다.
웃겨서 뭐하냐며 고개를 돌리니 귀 차가워, 라고 말하고는 내 앞으로 와 이번엔 손을 양쪽 볼에 대고 녹여준다.
직원이 와서 자리를 안내했고, 그제야 얼굴에서 손을 떼고 다시 내 손을 잡았다.
성운이와 마주 보고 앉은 뒤 주위를 둘러보니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들, 한 테이블에 앉아 재밌게 수다를 떠시는 할머니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할머니께 스테이크를 먹여주시는 할아버지가 눈에 띄어 웃으며 바라봤다. 몇 십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습이 행복해보였다.
잠시 60대, 70대가 된 나와 성운이를 그려보았다. 솔직히 늙는 건 싫지만, 기왕이면 성운이와 함께 늙었으면 좋겠다,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파스타··· 먹고 싶은데 음, 뭐 먹지.”
결정장애 말기 환자 나야나...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크림파스타를 선택했고, 성운이는 스테이크를 골랐다.
“분위기 진짜 예쁘다.”
창가에 자리를 잡아서 레스토랑 앞 정원이 잘 보였다. 하늘은 서서히 어둠이 내리고 있었고, 은은한 조명까지.
완벽한 분위기에 감탄하며 주위를 계속 둘러보다가 성운이를 봤는데 핸드폰을 애매한 각도로 들고 있는 게,
“아 왜 찍어, 화장 안했는데.”
“이뻐서 찍지, 왜 찍어.”
“아 하나도 안 이뻐-”
“이뻐, 이뻐.”결국 나도 핸드폰을 들어 레스토랑 조명도 찍고, 하늘도 찍고, 성운이도 찍었다.
“아, 자연스러운 표정-”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오랜만이라 재밌어서 계속 찍어대는데 음식이 나왔다.
큽- 괜히 민망해져서 핸드폰을 내려놓고 Thank you, 하자 직원 분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셨다.
파스타는 정말 파스타 맛이었다. 대신 스테이크가 정말정말 맛있어서 성운이가 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어, 눈 온다!”
어둠이 완전히 내린 하늘에서 하얀 눈송이가 떨어졌다. 완벽한 저녁식사였다.
집에 돌아가는 길엔 손바닥을 쫙 펴서 내리는 눈을 받아보기도 하고,
눈 내리는 거리를 찍어보기도 하면서 신나게 놀았더니 도착해서는 온몸이 꽁꽁 얼어있었다.
성운이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내 앞에 서서 내 얼굴을 손으로 녹여주었다.
흐흥, 하고 웃었는데 갑자기 진지한 얼굴을 하고 바라보는 성운이에
왜 그러냐는 표정을 짓자 절레절레 하고 고개를 젓더니 손을 떼고 들어가 불을 켠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언제 다 씻었는지 성운이는 거실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도 냉장고에서 맥주를 성운이 옆에 털썩 앉아 한 모금 마셨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게 기분이 좋았다. 성운이가 나를 잡고 말을 건네 왔다.
“ - 갈까?”
“응?”
“한국 갈까?”
“··· 한국? 왜?”
어리둥절해 하는 나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성운이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한국에 가면 승진할 수 있다는 건가.
갑작스러운 일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여기서 평생 있을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빨리 떠나게 될지는 몰랐다.
물론 카페를 열려면 여기보다는 한국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일단 지금 당장 하성운과 절대 떨어질 수가 없었다.
“같이 가.”
“···.”
“갈거면 같이 가.”
“··· 사랑해.”그 말을 끝으로 성운이와 나의 입술이 포개졌다.
숨을 쉴 때마다 느껴지는 술 냄새가 싫지만은 않았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거친 숨결이 들어왔다.
잠시 입술을 떼고 서로를 바라봤는데 살짝 풀린 눈을 한 성운이가 그렇게 섹시할 수 없었다.
“나 많이 참은 거 알지.”
한 집에 사는 남녀 사이에 키스가 진도의 끝일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마음의 준비는 끝낸 지 오래였고
성운이가 그동안 많이 참은 것도 알고 있었지만, 빨개지는 볼까지는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입술을 앙 문채로 고개를 끄덕이자 나를 안아 올려 자기 방으로 데려가는 성운이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성운이의 침대에서, 성운이와 마주 본채로 아침을 맞았다.
내 몰골이 추할 것이라고 당연히 예상했기 때문에 등을 돌리자 뒤에서 허리를 꼭 안아오는 성운이다.
흐흥, 하고 기분 좋게 웃자 성운이는 내 품을 더 파고들어 내 어깨에 자기 얼굴을 걸쳐놓았다.
“완벽해.”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을까, 지금 이대로, 너무나도 완벽한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
쓰고 나니 부끄부끄 하네여 꺆,,,,, 진짜 이런 남친 왜 없죠 현실엔 ,,, 일단 남친이 없지만 ,,,, 여주 부럽당
이제 정말 1-2편 정도? 남은 것 같네요 ! 텍파 메일링 공지도 해야되구,, 우리의 성운이 떠나보내기 아쉽지만 ~ 차기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
브금 깔고 싶은거 진짜 많은데 뭔가 이거 듣자마자 꽂혀서,, 응팔 진짜 좋아했는데여..
그리고 외전으로 보고싶은 에피소드나 Q&A 있으시면 댓글로 달아주세용!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여❤❤
?최종 암호닉?
0209 데이 뿜뿜이 강캉캉 구르밍 하핫종현 옹히 군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