짭새 |
마약 밀매범이 나타난다고 한 시각인 새벽 2시를 훌쩍 넘겨, 4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폐공장에는 사람 인기척 하나 없었다. 처음으로 하는 잠복 수사라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이 쯤 되니까 긴장이 탁 하고 풀려버리는 게 한숨이 절로 터져나왔다. 바짝 세우고있던 허리도 구부정하게 구부리게 되고, 지호형의 눈치를 살살 보면서 조금씩 시트를 제끼면서 누워버리니 지호형이 미친놈, 시발놈 별의 별 놈들을 불러가며 나에게 달려들길래 어쩔 수 없이 망원경에 눈을 딱 붙이고 밖을 관찰하는 척 했다.
그러기를 10분 째, 입술을 비죽이며 조심스럽게 망원경을 내려놓았다. 하도 눈에 딱 붙이고 있어서 동그랗게 자국이나 안 남았으면 다행이라며 룸 미러로 잘생긴 얼굴을 확인하니 보란듯이 시뻘겋게 자국이 남아있었다. 아, 씨. 절로 터져나올 뻔한 육두문자에 스스로 깜짝 놀라며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평소라면 ‘씨’라는 말 하나에도 꼬투리를 잡아 끈질기게 잔소리를 늘어놓았을 지호형인데, 다행이도 별 말 없는 걸 보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다시 룸 미러를 통해 자국을 확인하고는 눈가를 손가락으로 꾸욱, 꾹 누르며 능청스럽게 지호형에게 말을 건냈다.
“형. 경찰 뜬 거 알고 있는 거 아녜요? 벌써 2시간 넘게 지났는데 마약 밀매범은 무슨, 개새끼 꽁무늬 하나 안보입니다. 예? 이만 철수하고 갑시다. 저 국밥이나 하나 사먹으렵니다. 지금 열린 곳이 있으려나. 아, 물론 형님도 같이‥”
아니, 근데 이 사람이 죽었나. 왜 대답을 안해. 내가 철수하자 그래서 화나셨나? 눈가에 고정되어있던 시선을 돌리는데, 룸미러 너머로 눈을 꼬옥 감고 주무시고 계시는 지호형이 보인다. 순식간에 맥이 풀려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한 눈 팔라치면 으르렁거리면서 죽이려고 들땐 언제고 자기는 주무시고 계시네. 찌뿌둥한 어깨를 돌려가며 답답한 차안의 공기 좀 환기시킬 겸 창문을 살짝 내렸다. 추운 새벽공기가 훅, 하고 들어오자 찬 물이라도 뒤집어 쓴 듯 잠이 확 깨버렸다. 아, 창문 괜히 열었다. 뒷머리를 헤집으며 고개를 돌리는데, 강아지 앓는 소리를 내며 인상을 찌푸리는 지호형이 눈에 들어왔다.
맨날 매섭게 노려보던 얌생이같은 눈은 잠들어도 여전하다. 사람들이 자는 모습은 누구라도 천사같다는데, 지호형은‥ 아니, 뭐 그래도 조금은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지호형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저 형은 맨날 나만 갈군단말이지. 응? 괜히 심통이나서 시트를 확 제끼고 곱게 잠들어있는 지호형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찹쌀떡같은 지호형의 볼따구를 툭, 툭 치다가 반응이 없길래 손가락으로 살짝 꼬집었다. 그러자 끄응거리며 뒤척이는 지호형이 꽤나 귀여웠다. 터져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은 채 반대쪽 볼에도 손을 뻗었다.
“고분고분하게 말하면 좀 예뻐. 한 번만 더 승질내면 확 그냥‥”
시선이 입술에 그대로 박혀버렸다. 보통 사람들보다 통통한 입술, 지호형은 뭘 챙겨바르는 성격도 아닌데도 입술은 뭐라도 바른 것마냥 유난히도 반짝이고 있었다. 침을 꿀꺽 삼키자 목울대가 울렁였다. 아, 목은 또 왜 지랄이야‥.
“‥뭐하냐?”
지호형이 눈을 떴다. 깜짝 놀라 황급히 볼에서 손을 떼고 몸을 돌렸다. 좆됐다. 놀란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거리기를 반복했다. 얼떨결에 잡은 운전대와 손 사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게 느껴졌다. 느릿하게 몸을 움직인 지호형이 턱을 시트에 괴고서 룸미러를 통해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쳐다봤다.
“아, 놀랬잖습니까! 갑자기 그렇게 일어나는 게 어디있습니까‥” “그럼 내가 너한테 일어난다는 신호라도 줘야하냐?”
괜히 멋쩍어 턱을 긁적이며 적반하장으로 따졌더니 지호형이 나의 투정을 그대로 받아쳐냈다. 그러고는 내 머리를 후려갈겨버린다. 아, 진짜. 내가 무슨 동네북인 줄 아나. 나도 우리 집에선 귀한 아들인데‥ 일부러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머리를 빗겨쳐버리는 바람에 서서히 아픔이 몰려온다. 머리를 감싸쥐며 앓는 소리를 냈더니, 사내 자식이 뭐가 아프다고, 근데 얼굴이 왜이리 얼얼하냐. 하며 꽁시랑거린다. 얼굴을 쪼물딱거리며 휴대폰을 확인하던 지호형이 다시 시트에 등을 눕힌다.
“야. 시동 걸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밀매범 분들께서 다른 곳에서 안전히 거래하고 가셨단다.” 예? 아, 아‥ 진짜. 괜히 운전대를 주먹으로 내려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여전히 졸린 듯, 눈을 느리게 꿈뻑이는 지호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국밥 드시러가시지않겠습니까?” 지호형은 아무 말없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괜히 실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야, 너 솔직히 나 자는 동안 내 얼굴에 뭔 짓 했지?” 아닙니다! 하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자 지호형이 오호라,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라. 지훈아? 하며 목에다 헤드락을 걸었다.
“아, 진짜! 운전중이지않습니까!” “얼굴은 왜 빨개지는데?” 아, 입술을 그렇게 들이대는데 안빨개지고 뻐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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