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클래식 음악회가 열리며, 노벨상 수상식이 거행되는 곳이기도 한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의 콘서트 홀 앞에 있는 조각상은 스웨덴의 대표적인 조각가 밀레스의 작품인 <오르페우스의 분수> 라는 작품이다. 광장에서는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아침에 벼룩시장이 열리며 꽃, 과일, 선물용품 등이 거래 되지만 평소와는 약간 다른 특별한 날인 오늘, 콘서트홀에서는 한 동양인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쇼팽의 즉흥 환상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본디 빠른 템포의 곡을 슬로우 템포로 바꾼 웅장하고 음울한 곡이었다. 2000명의 관객은 숨을 죽이고 피아니스트의 공연을 관람했다. 그의 연주는 열정적이지만 차가웠고, 화려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투박하다. 그의 팬들은 대체로 섬세하고 정형화 된 연주를 하는 다른 피아니스트들과는 달리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며 거칠게 연주하는 것이 그의 매력이라고 입을 모았다.
피아니스트가 마지막 순서인 곡을 끝으로 연주를 마쳤을 때, 콘서트홀이 떠나갈 만큼 우레와 같은 함성이 그를 향해 쏟아졌다. 관객은 환호했고, 그의 공연에 열광했으며 충분히 박수를 보내왔다. 피아니스트의 얼굴이 박혀있는 공연 팜플렛이 무대를 향해 날아오기도 했다. 북유럽의 관객들은 대체로 찬사를 보내는 데 적극적인 편이다. 우아하고 고상한 척 유난 떠는 서유럽과는 달리. 하지만 우습게도 그를 찾는 국가들은 대개 서유럽인 편이었다. 아주 이중적인 나라들. 그는 겉과 속이 다른 모습에 질색했다. 그는 아주 직설적이고 노골적이며 솔직한 편이었다. 말수는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그르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입 밖으로 뱉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리고 엄격한 연주자인 그에게는 앙코르 공연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관객석에서 앙코르를 외쳐대도, 그는 자신의 플랜대로 짜여 진 순서 이외의 연주는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만의 룰이었고, 철칙이었으며 그의 팬들은 그러한 그의 모습을 사랑했다.
“TREVLIGT ATT TRÄFFAS. Mr jeongtaek tur. Det var en mycket bra prestation. (반갑습니다, 정택운씨. 아주 훌륭한 연주였어요.)”
‘천재 피아니스트’ 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그의 이름은 정택운이었다. 택운이 땀을 닦으며 대기실로 들어왔을 때, 멀끔한 차림의 스웨덴 신사가 택운에게 다가와 살갑게 말을 걸었다.
“Vem är du? (누구시죠?)”
“Åh, jag ‘Aftonbladet’ arbete vid Journalist. Mr Tur jeongtaek innehåller den här artikeln vill jag visa en kort intervju.. (아, 저는 'aftonbladet -스웨덴의 신문사-' 에서 근무하는 기자입니다. 정택운씨의 이번 공연을 기사로 담고 싶어 잠깐 인터뷰를..)”
“Jag är ledsen, men jag gör inte intervjuer. (죄송하지만 저는 인터뷰를 하지 않습니다.)”
“Tar inte lång tid. Mr Tur Jeongtaek bara tur jag skulle vilja sätta i tidningsintervju.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꼭 정택운씨의 인터뷰를 신문에 싣고 싶습니다.)”
사전에 아무런 약속도 없이 무턱대고 펜과 노트부터 들이대고 보는 건, 러시아 기자나 스웨덴 기자나 다를 바 없군. 택운은 똑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 하는 각기 다른 신문사의 인터뷰들에 일일이 응해야 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 눈에 보기에도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한 택운에 그의 매니저인 재환이 정중하게 기자에게 인터뷰를 할 수 없다며 거절하였고 그 뒤로도 숱하게 택운의 대기실로 찾아드는 기자에 결국 택운은 직접 나서 대기실 문을 잠가버렸다. 공연을 끝마치고도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니. 덩달아 진땀을 뺀 재환이 한 숨 돌렸다는 듯 자리에 털썩 소리가 나게 주저앉았고, 택운은 지끈 거리는 편두통에 상비약인 타이레놀을 주머니에서 꺼내 입 안에 털어 넣었다.
“형! 언제까지 이렇게 나더러 맨몸으로 기자들 쫓아내라고 할 생각이에요? 나 진짜 도저히 더는 못해먹겠어요.”
“못해먹겠으면, 매니저 자리 내 놓을래? 너 대신 한다는 애들은 줄 섰는데.”
“아, 형..언제까지 그렇게 스폰해주는 출판사나 잡지사 하나 없이 지낼 건데요! 전속 하나 잡고 하나로 밀고 나가면 좀 좋아요?”
“그러니까 귀찮으면 자리 내 놓으시던지.”
결국 택운은 이길 수가 없다. 재환은 택운에게 언제나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되어 있다. 그걸 알면서도 빽빽거리며 기어오르는 재환을 놀리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는 생각을 했다.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의 공연을 마쳤으니 이제 한 동안 자유로운 몸이 될 것이다. 택운은 공연을 한 번 끝낼 때 마다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쏟았다. 잡념은 조금도 없이 오로지 눈앞에 있는 건반에만 온 신경을 몰두하다보니 땀이 얼마나 흐르는지도 감 잡지 못했고 자신이 얼마나 힘을 쏟고 있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공연을 마치고 내려올 땐 두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걷지 못할 때도 많았다. 오늘 역시 다른 공연 날과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온 몸에 진이 빠져 택운은 옷을 갈아입기가 약간 힘에 부쳤고 물을 마시기 위해 잔뜩 진열되어 있는 생수를 한 병 집어 들었다.
“그리고 형, 다 다음 주에 한국에서 리사이틀 공연 있어요. 곡 플랜은 오늘이랑 똑같이. 알고 계세요?”
순간 택운은 제 귀를 의심했다. 어느 나라에서 리사이틀을 한다고?
“형이 싫어하실 거 알긴 아는데 어쩔 수 없었어요. 그쪽에서 공식 초청으로 콜을 해 오니까..”
“취소해.”
“택운이 형!”
“난 한국엔 안 가. 예전에 말 했을 텐데? 오지를 가는 한이 있어도 한국엔 발 안 들이겠다고.”
두려울 것 하나 없이 승승장구하는 피아니스트인 정택운에게, 단 한 가지 약점이 있었다.
“안 그래도 형 한국에서 이미지 안 좋잖아요. 혐한 한국인 피아니스트라고 암암리에 소문 쫙 퍼졌는데.”
“……”
“대체 왜 그렇게 한국을 싫어하는 거 에요? 한국에서 예술고도 졸업했다면서요. 어렸을 땐 국립교향악단이랑 협주곡도 했었다는 거 내가 다 아는데.”
택운은 문득 떠오르는 10년 전 기억들에 작게 실소했다. 그다지 다시 기억해내고 싶은 것들은 아니었는데. 재환은 계속해서 택운을 콕콕 쪼아온다. 택운은 간이 의자에 앉아 재환의 손에 들린 자신의 공연 스케줄 표를 빼앗아 왔다. 약 보름 뒤의 날짜에 정확히 박혀 있는 ‘한국-서울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 공연’.
“내 첫사랑이 한국인이고, 지금 한국에 있을 테니까.”
“…에? 뭐요?”
“날 두고 사라져버렸었어. 흔적도 없이.”
“……”
“악몽이거든, 나한테. 그 때 기억 전부.”
커피를 홀짝이던 재환은 헛기침을 몇 번 하며 이내 아무런 일도 없었던 척 택운을 향해 오늘 공연이 최고였다는 둥, 저녁은 크림 파스타를 먹자는 둥, 실없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택운은 소파에 기다랗게 몸을 뉘였다.
자그마치 10년이었다. 이쯤이면 모조리 잊을 만도 되었건만, 우습게도 택운은 아직까지 그 기억의 파편을 밟고 서 있었다. 악몽의 파편들은 칼날이 되어 택운을 찔렀고, 택운은 여전히 그에 무뎌지지 않은 채였다. 어쩌면 제 첫사랑은 자신을 완전히 잊고 사는 지도 모르는 일이다. 택운은 다시 지끈거려오는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
“학연아, 배정미씨 인터뷰 원고 언제까지인지 체크했어?”
“네, 선배님. 19일까지요!”
“차군! 아직 팩스 안 갔다는데?”
“아, 맞다, 팩스! 지금 빨리 보낼게요!”
마감일이 닥쳐오는 잡지사는 여느 잡지사나 그렇듯 다들 발바닥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사무실 내부를 오고 가기에 바빴다. 학연은 내로라하는 국내 잡지사에 소속되어 있는 말단 팝 칼럼니스트였다. 가끔은 자신이 칼럼니스트인지, 잡지사 내의 잡일을 담당하는 아르바이트생인지 헷갈릴 때가 종종 있는. 하지만 어느 회사를 가도 말단은 그저 ‘말단’ 일 뿐이다. 가만히 앉아서 인터뷰나 따고, 원고나 작성하는 다른 칼럼니스트들과는 조금 다른. 팀장은 그러한 제게 현장에서 직접 뛰어다닐 수 있는 기자직으로의 이직을 권해왔지만 학연은 그저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퇴근할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지만 학연은 홀로 사무실에 남아 마지막 업무를 처리했다. 인터뷰를 다니느라 바쁜 다른 선배들의 원고를 직접 대신 작성해주기도 하고,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원고를 정리하기도 했다. 벌써 어두워진 바깥과 몰려오는 피로. 오늘은 이것만 끝내면 집에 갈 수 있겠네..학연은 감기는 눈에 잠을 쫓기 위해 잔에 물을 채우고 믹스 커피 한 개를 따랐다.
“학연씨 아직 집에 안 갔네요?”
그리고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사무실에서 입고 있던 옷과는 다른 편안한 차림의 팀장님이 학연을 향해 물어왔다. 학연은 정수기에서 물을 한 잔 더 뺀 뒤 커피를 탔고 그에게 익숙하게 내밀었다.
“잔무가 좀 있어서요. 팀장님도 아직 퇴근 안 하셨었어요?”
“아뇨, 나는 진작 퇴근했죠. 아마 내가 우리 사무실에서 제일 빨리 퇴근 할 걸요.”
“완-전 좋으시겠네요.”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지나가다가 불 켜있는 거 보고 들어왔어요. 왠지 학연씨가 남아있을 것 같더라.”
그는 사무실 내부를 몇 번 둘러보며 학연이 내내 처리한 쌓여있는 업무를 보곤 학연을 향해 꽤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학연도 입사한지 어언 3년차였다. 하지만 여전히 학연은 기자직으로 넘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고 언제나 잡지사에 남아 말단을 자진했다.
“뭐, 이젠 이 시간까지 남는 건 익숙해서 괜찮아요.”
“그러게 내가 현장 자리 하나 봐준다니까. 왜 그렇게 피하는 거 에요?”
“……”
“다른 이유가 있구나.”
‘두 번 다시 춤을 출 생각 못하게 부셔버려.’ 틀어 막힌 입에서 살려 달라는 말은 틀어 막힌 채 밖으로 새어 나오지 못했다. 오른쪽 다리가 딱딱한 막대기 위에 올려졌다. 두 눈이 커졌고 제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지만 그 누구도 귀 담아 듣지 않았다. 발버둥을 치며 엉금엉금 기어가며 도망치려는 제 몸을 사내들이 거칠게 잡았다. ‘그러게 왜 말을 안 들어.’ 차갑게 내뱉는 그녀의 말에 울부짖었다. 안 돼. 다리는 안 돼요. 내 간절한 외침은 들리지 않았고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울려 나갔다. 사지가 결박당한 채 단단히 다리는 고정 되었고 나는 두려움에 떨었었다. 처리해. 마치 처형 신호가 울린 듯 그녀는 뒤돌아 나갔고 사내들 중 한 명이 쇠파이프를 질질 끌며 나타났다. 안 돼! 내 절규와 함께 사내는 망설임 없이 내 오른쪽 발목위로 쇠파이프를 내리 꽂았다.
벌써 10년이 가까워오는 이야기이지만, 학연은 가끔 당시의 악몽을 생생하게 꾸곤 했다. 항상 그날의 기억을 꿈꾸고 나면 오른쪽 발목은 어김없이 시큰 거렸고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길게 흉터가 나있는 발목. 산산 조각 난 오른쪽 발목을 이 악물고 재활치료를 해서 일반인들처럼 걸을 수 있었지만 손 끝, 발 끝 하나하나 사용하며 섬세한 감정을 표현해야 했던 학연은 더 이상 무대에 오를 수 없었다. 우습지만 비오는 날은 노인네처럼 발목이 아파왔고 절뚝거렸다.
“저 뛰어다니는 직장엔 못 있어요. 발목이 좀 안 좋아서..”
“아..그랬구나. 그럼 이제 전속 인터뷰를 잡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언제까지 말단으로 남아 있으려고 그래요.”
“신경 써 주시는 건 정말 감사한데, 그러면 아무래도 선배들이 절 안 좋게 볼 거 에요. 자기가 원해서 말단으로 남아있는 주제에 편히 전속이나 잡으려고 하고..”
“그런 건 부담스러워 안 해도 돼요. 여기 든든한 빽이 있잖아.”
사실 학연이 속한 잡지사의 팀장인 홍빈은 학연에게 말 그대로 백그라운드나 다름없었다. 쫓겨나듯 미국을 갔던 제가 평생 오지 못할 것 같던 한국에 입국 해 잡지사에 입사하게 된 것도 원식과 홍빈이 아주 절친한 선후배 사이였기 때문. 원식은 미국에서 만난 아이였다. 지인 한 명 없는 타국에서 홀로 외롭게 전전긍긍하던 학연에게 있었던 유일한 동양인 친구이자 마음을 두고 의지할 수 있었던 사람. 원식은 학연에게 무조건적인 친절을 베풀었다. 중학교까지 한국에서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는 원식은 몇 번이고 학연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해왔었다. 나는 너를 처음 봤던 순간부터 반했고, 앞으로도 쭉 반해있을 예정이라는 식의. 하지만 학연은 그러한 원식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좋은 기회가 생기면요. 아직은 딱히 제가 전속을 맡을 만한 팝 가수도 없고..”
“그럼 약속 한 거 에요, 내 말 듣기로. 그러니까 원식이 좀 만나줘요. 몇 년 째 학연씨만 줄창 따라다니고 있는데.”
“..그건 좀 생각해 보구요.”
학연은 자신에게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린 지 오래였다. 과정이 어찌되었든, 자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고 떠난 빌어먹을 개자식이나 다름없었기 때문. ‘밖에 원식이 와 있는 거 알아요? 몇 시간 전부터 학연씨 끝나기까지 기다렸대요.’ 학연은 홍빈의 말에 블라인드 사이로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사무실 밖에 주차되어 있는 원식의 차. 학연은 그저 홍빈을 향해 가볍게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8년 가까이 자신을 해바라기처럼 짝사랑해온 원식. 그리고 그 마음을 받아줄 수 없는 학연.
“그럼 이만 퇴근 할 게요, 팀장님. 내일 봬요.”
그리고 학연은 도망치듯 자신의 짐을 챙겨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자신의 등 뒤로 따라붙는 홍빈의 가볍지 않은 한숨소리에 발걸음 역시 무거워진다.
다음날 학연이 출근 했을 때, 사무실의 공기가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처음엔 그저 마감일이 얼마 남지 않아 다들 바쁜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와는 또 다른 기류. 선배들의 눈치를 봐가며 원고를 작성하던 학연은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에만 몰두했지만 결국 자신의 귓가를 스쳐가는 이름에 하던 일을 순간 모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럼 우리 잡지사가 앞으로 정택운을 전속으로 맡아야 된다는 거야?”
“미쳤지, 진짜. 그 피아니스트 이 바닥에서 완전 유명하잖아. 성격 드러운 걸로.”
“거기에 혐한이라며. 웃겨..자기도 뼛속까지 한국인이면서.”
“사장님 지시인데 무를 수도 없고..편집장님도 은근 좋아하는 눈치시던데? 이슈는 보장 될 거라고.”
피아니스트 정택운. 10년이 흘러도 하루라도 떠오르지 않는 날이 없었던 기억들. 자신을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할 수 없도록 만든 장본인. 학연이 재활치료를 받고 있을 때, 어렸을 적 약속처럼 그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어 성공했고 학연은 그토록 꿈꿔왔던 무용수로서의 삶을 살지 못한 채 좌절감을 느꼈다. 모든 재활치료가 끝나고 한국에 입국 했을 때 그는 파리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고 학연은 그렇게 그의 소식을 간간히 기사로 접하며 그를 그리워했다. 오로지 춤 밖에 모르던 학연이 팝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을 얻을 줄은 십년 전의 우리는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춤으로서의 다리를 잃고 찾아낸 이 직업은 다행스럽게도 학연과 잘 맞았다. 춤을 추기 전 노래에 대한 이해와 분석을 해야 하는데 그 작업을 수 백 번도 더 해오던 학연이 노래에 대해 평가를 하고 제 생각을 내뱉어 칼럼을 작성하는 이 직업이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던 것.
이미 한국 언론계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었고, 어린 나이로 성황리에 초청 순회공연을 돌던 그가 어느 날 훌쩍 한국을 떠나 근 10년 간 한국에는 발조차 들이지 않게 되고, 해외로만 공연을 다니게 되자 이미 언론사 쪽에서는 그에 대한 평판이 좋지 못하게 흘러 있었다. 기껏 한국에서 띄워주었는데 ‘천재’ 타이틀을 달고 난 뒤로 변했다느니, 백인 우월주위에 휩싸였다느니. 하지만 학연은 그가 더 이상 한국에 발을 들이지 않게 된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마 당사자들인 그들과 모든 사연을 알고 있는 원식을 제외하고는 이 세상 어느 그 누구도 모를 비밀.
“적어도 5주분 인터뷰를 맡아서 해야 한다던데?”
“나는 절대 안 맡아. 아무리 인센티브를 준다고 해도 성격 뭣 같은 사람 데리고 전속으로 인터뷰 하는 짓거리만큼 스트레스 받는 일도 없잖아.”
“당연하지. 솔직히 나는 잡지사 들어온 뒤로 일보다 사람 상대하는 게 더 힘들더라니까.”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으로 서류철을 정리하는 여 선배들. 그리고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학연. 학연은 곧 홍빈이 있을 팀장실로 향했다. 업무를 보고 있던 홍빈은 학연이 홀로 업무 시간에 자신을 찾아온 일은 몇 번 되지 않아 반가운 얼굴로 학연을 맞았다.
“어, 학연씨. 웬일이야?”
“저기..정..택운씨 전속 말인데요..”
“아, 그게..진짜 미안하게 됐어. 아니, 나도 오늘 갑자기 편집장님한테 얘기 들은 거라..이미 사장님께서 그쪽 에이전시랑 계약도 해뒀다고 그러고..”
“그게 아니라, 제가 맡고 싶어서요.”
생각지도 못한 학연의 제안에 당황한 홍빈이 재차 되물었지만 여전히 학연의 주장은 확고했다. 자신이 정택운의 5주분 인터뷰를 맡겠다는 의견.
“어제 내가 학연씨한테 얘기한 것 때문에 그래? 아무리 그래도 첫 전속을 그렇게 힘들게 시작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아뇨,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그냥 제가 하고 싶어서요. 이런 기회가 흔한 게 아니잖아요. 정택운이 한국에서 리사이틀을 갖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이고..”
“학연씨가 꼭 맡고 싶다면 어쩔 수 없는데, 정말 괜찮겠어? 그 사람 평판 학연씨도 알 거 아니야.”
아마 학연은 이 세상에서 택운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괜찮아요. 제가 꼭 하고 싶어요.”
첫사랑. 10년간 단 한 번도 벗어날 수 없었던 자신의 죄. 학연은 그 보이지 않는 굴레에서 이제 빠져나가고 싶기도 하였다.
*
안녕하세용 빅스 팬픽 카페에서만 활동 하다가 지금 카페에서 연재하고 있는 글 글잡에두 올림미당 부끄러우니까 저는 도망가유(ㅎㅅ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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