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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감정이 정말 존재하기는 할까. 만약 정말 존재한다면, 그 감정은 어찌 그리 쉽게 다가와 쉽게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 감정이 손에 잡혔으면 좋겠다. 내 손으로 잡아 가둬두고 다시는 내 곁을 떠나지 못하도록 만들었으면. 더 이상 다가오지 말아야 할 사랑이라면 내 손으로 떠나보낼 수 있게 만들어졌으면. 눈으로 보이지 않아 사랑이고, 손으로 만져지지 않아 사랑이다. 학연은 그 진리를 깨닫고도 우스운 상상을 했다. 침대에 누워 허공으로 손을 뻗어보았다. 환하게 켜져 있는 전등을 향해 손아귀를 쥐었다 펴본다. 학연은 눈이 부실 듯 쏟아지는 불빛을 금방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이 느껴져 몇 번 더 손을 움직였다.

모두 부질없는 짓임을 학연은 안다. 아무리 붙들어 봐야 붙들리지 못할 것들은 결국 제 손아귀를 떠나고 만다. 이미 자신을 모두 지워버린 택운. 학연의 눈물에도 택운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에게 무엇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택운이 자신을 잊었음을 온 몸으로 실감하자 학연은 서러움이 북받쳤었고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의 앞에서 눈물을 보인 것이 창피했다. 타인 앞에서 눈물이라는 치부를 드러냄으로 인하여 오는 창피함이 아닌, 그것이 택운이 학연 자신을 잊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함으로서 흘린 눈물임을 들켰다는 것이, 창피했다.

“오늘 기분은 어때요?”

모든 걱정 근심을 단박에 날려주는 부드러운 목소리다. 원식은 부엌에서 잔과 생과일들을 꺼내 놓은 채 학연에게 물어왔다. 학연은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 오늘 기분이 어떻지..사실 학연은 지난 8년간 유달리 택운의 생각으로 인하여 괴로운 날이면 원식의 집을 찾았다. 원식을 희망으로서 고문하고 싶지 않다는 것쯤이야 학연 스스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다른 사람을 사랑함에서 오는 아픔을 토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 무척이나 잔인한 짓임을, 학연은 알았다. 하지만 8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것은 마치 짜여 진 것처럼 이제 너무나 당연해져버린 원식과 학연 사이의 보이지 않는 루트였다.

“우울해. 끔찍할 정도로.”
“끔찍할 정도로 우울하다라..”

과일을 고르던 원식은 이내 우유가 담긴 믹서기에 딸기와 설탕을 넣었다. 철도 아닌 과일이 원식의 집에 항상 있는 이유는 카페를 운영하는 원식이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학연을 위해 항상 생 과일 주스를 판매하기 때문. 제 집같이 원식의 집과 카페를 들락거리는 학연의 그 날 기분에 따라 원식은 과일을 골라 주스를 만들어 학연에게 대접했다. 학연의 어린 애 같은 입맛은 8년이 흐르도록 변하질 않았다. 원식의 집과 카페에 가장 많은 과일은 딸기였다. 학연은 우울할 때마다 원식을 찾았고, 원식은 우울한 학연에게 딸기 주스를 만들어 주었다. 원식 역시 학연이 택운으로 인하여 우울한 기분이 들 때마다 자신을 찾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집이나 카페에 딸기를 가장 많이 두었고, 가끔은 학연의 기분이 우울해지길 바랐던 철없을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앞에서 우울해하거나,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 학연을 안아줄 때 마다 학연이 우울해지길 바랐던 자신의 마음을 원식은 금세 탓하게 되었다. 학연이 아파하는 모습은 결국 자신에게 독이었다. 학연의 눈물은 마치 방심한 사이 온 몸을 적셔오는 가랑비처럼 느껴졌다. 원식 자신을 향한 학연의 마음이 사랑이 아님을 알면서도 원식은 학연에게 자꾸만 자신의 마음을 내어주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허락했다. 술을 마시고 원식에게로 와 택운의 이름을 부르며 울던 학연도, 원식은 이해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원식은 희망을 만들어 내었다. 이미 제 손으로 끝내버린 사랑에 아쉬워 10년 째 그를 잊지 못하는 학연보다는, 언젠가는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는 가망이 있는 제 8년간의 짝사랑에 건투를 빌었다.

원식이 익숙하게 만든 주스를 들고 학연이 있는 침실로 향했을 때, 학연은 평소와 같이 자신의 침대에 누워 멍한 눈빛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학연은 감정을 표현함에 있어 솔직한 사람이었다. 숨기려 해도 원체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금방 탄로나버리고 마는. 원식은 저 어리숙한 거짓에도 모른 척 눈감아주며 자신을 찾는 학연을 매일 같이 받아주었다. 침대 옆 작은 수납장 위에 잔을 올려두고 원식은 침대의 가장자리에 앉았다. 자신의 몸을 따라 한쪽만 푹 꺼지는 매트리스 느낌이 생경했다.

“나 아침에 택운이 인터뷰 따고 왔어.”

학연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잔에 가득 담긴 달콤한 생 과일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원식은 항상 여유롭고 느긋한 편이다. 학연은 그러한 원식이 편했고, 한없이 다정하면서도 연인이 아닌 자신들의 사이에 확실히 학연이 원하지 않는 선은 넘어오지 않는 모습이 좋았다. 누가 될 진 몰라도 이 녀석 애인은 퍽이나 행복할 텐데. 내가 이런 남자를 8년이나 발아래에 붙들고 있었다니.

“긴장했겠네요. 실수는 안 했어요?”
“어쩌면 정택운을 전속으로 담당한 것부터 실수였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그렇게 생각 안 하잖아요.”
“넌 나를 너무 잘 알아서 탈이야.”
“형이 너무 솔직한 거죠.”

원식은 학연의 바지 밑단 아래로 드러난 흉터를 보았다. 숨기고 싶어도 절대 숨길 수 없다는 것이 가난과 기침, 사랑이라던데. 택운의 앞에서 그 마음을 애써 숨겨야 하는 학연이 얼마나 고통스러울 지, 원식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적어도 자신은 학연에게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숨기지는 않았다. 굳이 숨겨야 할 필요도 없었고, 숨기고 싶지도 않았다. 그가 택운을 사랑하는 마음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쯤이야 자신의 짝사랑에 있어 걸림돌이라고 여긴 적은 없었다. 자신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누군가를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학연에게 마음을 진실로서 보여주기 위해 노력할 뿐이었다.

학연은 그러한 원식이 진중하고 남자답다는 생각을 했다. 8년 내내 다른 사람의 뒷모습을 사랑하고 있는 학연을 짝사랑하면서도 자존심 상해하지 않았다. 그만큼 원식은 자신의 마음에 떳떳해 했고, 누구보다도 당당했다. 미국에서 재활치료를 마치고 학연이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던 며칠 전, 원식은 미리 한국으로 돌아가 공항에서 학연을 맞았었다. ‘Thank you for your entry to Korea’ 라는 자필로 적은 플랜카드를 들고 서있던 원식이 떠올라 학연은 작게 웃었다.

“라비.”

라비는 원식이 학연과 함께 미국에 있을 때 원식의 친구들이 붙여준 애칭이었다. 학연은 한국에 돌아온 뒤로도 종종 원식을 라비라고 부르곤 했다. 원식은 학연이 어떤 기분일 때 자신을 라비라고 부르는 지 가끔 진지하게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곧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

“나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까?”
“……”
“칼럼은 미국에서도 얼마든지 쓸 수 있는데.”
“……”
“택운이는 이미 나를 다 잊었어. 내가 커피 못 마신다는 것도 기억 못 하더라.”

학연은 한국으로 돌아온 것을 후회할 때 원식을 라비라고 불렀다. 하지만 원식은 그것이 학연의 진심은 아님을 이미 알고 있었다.

“형은 얼마든지 다시 돌아갈 기회가 있었어요.”
“……”
“그래도 형은 아직 한국에 있잖아요.”
“……”
“미국에서 칼럼은 쓸 수 있을지 몰라도, 정택운씨는 거기 없어요.”

원식은 학연의 마음을 꿰뚫듯 들여다보았다. 투명한 유리로 된 상자 안의 마음을 꺼내어 보고 있는 것 마냥. 학연은 단숨에 잔을 들이켰다. 달큰한 딸기 향이 입 안 가득 퍼지자 좋지 못했던 기분도 순간적으로 좋아지는 것처럼 나른한 기분. 원식의 단호한 목소리에 학연은 다시 한 번 새삼 깨닫게 되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10년 전 택운에게 상처를 주었던 것처럼 택운을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학연은 제 스스로 발을 한국에 묶었고, 택운의 곁에 묶었다.

“그 말을 네가 해서 신뢰도가 떨어져.”
“왜요. 나는 형 좋아하니까?”
“뭐, 그렇지..네 말만 들으면 나더러 지금 당장이라도 택운이한테 사실대로 말하라는 것 같잖아.”
“형이 계속 혼자 상처받는 게 싫어서요.”
“…네 눈에도 내가 상처받고 있는 것처럼 보여?”
“그걸 말이라고 해요. 나는 차라리 형이 왜 정택운씨를 떠나야했는지 솔직하게 다 말하고 제대로 까였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내가 확실히 형을 데려가죠. 뒷말은 차마 꺼내지 않았다. 아마 충분히 학연에게 제가 어떤 심정인지 전해졌으리라. 원식은 달력을 뜯어내면서 지나는 세월을 체감하기보다, 택운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학연의 목소리에서 그것을 대신 느꼈다.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을 하라니..학연 역시 10년 전 사랑하는 택운을 잃어야만 했던 그 이유를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사랑 앞에 감정을 숨기는 일이 서툰 학연이라 할지라도 그것만큼은 차마 택운에게 전할 수 없었던. 결국 학연은 10년 전 자신의 손으로 택운을 내친 꼴이 되었다. 택운을 두고 자신은 도망쳤다. 아무런 말 한 마디 없이 한국을 떠났고, 택운을 떠났다.

‘운아, 잘 봐.’

학연은 공원에 자리 잡은 의자에 택운을 앉히고 필사적으로 며칠 동안 날 밤을 새가며 연습해온 춤을 추기 시작했다. 관객은 오로지 택운 한 명이었고 노래는 핸드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열악한 무대였지만 그 어느 곳보다 가슴 벅차고 행복했었다. 오로지 택운이 보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Elisa의 ‘Dancing’ 이 흘러 나왔고 택운을 바라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느릿한 노래에 학연의 몸이 박자를 맞춰 움직였고 택운은 그런 학연을 줄곧 바라봤었다. 손 끝 하나, 동작 하나, 표정까지 홀로 연습 했을 때 보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노래가 끝이 나고 학연이 가쁜 숨을 고르자 택운이 다가왔다. 학연이 흐르는 땀을 닦으며 택운을 향해 웃어보이자 택운은 그런 학연을 제 품안에 꼭 안았었다.

‘부담가지지마. 넌 언제나 나한테 최고야.’
‘대회 나가기 전에 너한테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었어.’
‘이대로만 하면 우리 학연이 우승하겠다.’
‘대회 날 꼭 와. 나는 너 있어야 마음 놓고 잘 한단 말이야.’
‘걱정 하지 마. 무슨 일이 있어도 갈게.’

그 대회는 결국 학연이 참가하지 못했다. 학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원식을 지나쳐 침실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벗어진 제 신발을 발에 꿰어 넣었다. 원식은 신발을 신는 학연의 뒷모습을 보았다. 말이 너무 심했나. 하지만 나서려는 학연을 굳이 붙잡는 건, 학연에게 실례였다. 원식은 이렇게 의도치 않게 학연에게 상처를 주었다 생각했지만 사실 학연은 원식에게 상처받지 않았다. 기대하는 것이 없으니, 그만큼 상처를 받기도 어려웠다. 사랑하지 않으니 오해하기도 어려웠다. 원식은 학연이 자신에게 상처받지 않으리라는 것 역시 안다.

학연은 원식의 집 앞에 주차되어 있던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막 시동을 걸었을 때 핸드폰 벨이 울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꽤 야심한 시간에 누구인지 싶어 발신인을 살피니 다름 아닌 택운의 매니저인 재환. 공연 전 까지 인터뷰는 하지 않기로 했는데..

“네. 차학연입니다.”
- 학연씨! 저 이재환입니다.
“예,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 시간에 무슨 일로..”
- 저 그게..혹시 지금 집이세요?
“아뇨, 밖에 나와 있습니다.”
-  그럼 잠깐 좀 뵐 수 있을까요? 드릴 게 있는데.

밤 10시가 넘은 시간. 이 시간에 굳이 그를 만나 무언가를 받아야 하는 입장인가? 아마 인터뷰에 필요한 자료들임이 분명하였다. 하지만 상대측쪽의 부탁을 확실히 거절 할 수 없는 입장임에는 틀림없이 학연은 난감한 목소리를 내며 기어를 넣었다.

“아..어지간한 건 저희 사무실 팩스로 보내달라고 요청 했..”
- 아뇨, 그게 아니라 택운이 형이 학연씨께 직접 전해드리라고 부탁해서요.
“..택운씨가요? 그게 뭔데요?”
- 모르겠어요. 봉투에 들어있는데 뭔지는 말 안 해주더라구요. 개인적인 물건일 수도 있어서 제가 보기는 좀 그렇고..
“제가 거기로 갈게요. 지금 어디세요?”

우습게도 손끝부터 조금씩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굳이 직접 주지 않고 재환을 통해 제게 무엇을 전해주려 하는 것 인지. 학연은 떨리는 마음으로 차를 몰았다. 지금까지 에이전시에 있다가 이제 막 퇴근을 했다는 재환에 학연은 원식의 집에서 멀지 않은 택운의 에이전시를 찾았다. 이렇게 사소한 것만으로 떨려하는 자신이라니. 신호 앞에 멈춰선 차 안에서 학연은 망연히 스스로에게 자조했다.

택운의 에이전시에 도착해 학연은 차를 주차하고 안으로 들어서기 전 미리 학연을 마중 나온 재환을 마주칠 수 있었다. 학연이 직접 오겠다는 말에 진즉 나와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

“괜히 늦은 시간에 죄송하네요.”
“아뇨, 제가 더 죄송하죠. 퇴근 시간이신데.”
“그럼 저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다음 인터뷰 때 뵐게요.”

재환의 손에 들려있던 봉투가 학연의 손으로 넘어오고, 자신을 지나쳐 퇴근하는 재환을 보며 학연은 파란 봉투를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뜯었다. 그리고 열린 봉투에서 나오는 며칠 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릴 택운의 리사이틀 VIP석 티켓과 백만 원짜리 수표 한 장. 아무리 봉투를 탈탈 털어보아도 그것 외에 더 이상 들어 있는 것은 없었다.

어쩌면 그 짧은 찰나의 순간, 학연은 자신이 이성을 잃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맥이 탁 풀리는 기분에 학연은 에이전시 앞에 주저앉았고 제 손에 들려있는 티켓과 수표를 매만지며 열이 올라오는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택운은 자신을 무시하고 있었다. 오로지 공적인 관계로만 학연을 대하겠다는 말이 허투루 뱉은 말은 아니었던 듯. 이런 티켓쯤이야 택운이 학연에게 직접 주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는 일부러 재환을 향해 전해주도록 하였을 것이고 택운은 언제나 자신을 처절하게 밀어낸다. 학연은 망설이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어 저장되어있던 택운의 번호를 눌렀다. 공적인 관계로 만난 학연과 사적인 통화는 하고 싶지 않다던 택운. 학연은 택운이 전화를 받기까지 무료한 컬러링을 들으며 이 전화는 분명 공적인 통화임을 머릿속으로 상기시켰다.

- 여보세요.

그리고 택운을 향한 분노로 끓던 머릿속은 핸드폰을 타고 넘어오는 택운의 나른한 목소리에 회로가 끊긴 듯 마비되고 만다. 그렇게 모두가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재환씨께 전해주신 것 받았습니다.”
- 아. 그것 때문에 이 시간에 전화까지 해주시고.
“그런데 무슨 의미로 저한테 이런 걸 주시는 겁니까.”
- 표야 그때 제 공연 칼럼도 쓰신 다기에 드렸고, 수표는 오시는데 기름 값이라도 보태시라고..

무미건조한 택운의 목소리에 학연은 참았던 실소가 터졌다. 학연의 웃음소리를 들은 택운이 잇던 말을 멈추었고, 둘 사이에 미묘한 정적이 흘렀다. 학연은 별 하나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10년 전 만해도 택운이랑 같이 골목길에 앉아서 별 구경 하고 그랬었는데..

“이렇게까지 신경써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면 되나요?”
- 제 전속이신데, 그 정도는 해드려야죠.
“그동안 보고 싶었어요.”

문득 입에서 진심이 튀어 나갔다. 학연이 놀란 만큼 택운 역시 당황하였는지 아무런 말이 없었고 학연은 차분하게 뒷말을 이었다.

“정택운씨 공연 말이에요.”
- ……
“택운씨 덕분에 VIP석에서 공연도 보고, 좋은 칼럼 나올 것 같아요.”
- 뻔뻔하시네요, 차학연씨.
“……”
- 어쩜 그렇게..10년 전이랑 달라진 부분이 하나도 없으신지.
“……”
- 제가 사적인 감정을 넣지 않으려 해도, 학연씨가 웬만해야 조절 할 수 있을 텐데. 참, 대단하세요.

나는 지금 슬플까? 아님, 통쾌할까? 어쩌면 기뻐해야 할 일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 공연 날 뵙죠.
“……”
- 제가 공연 전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돼서.

택운이 괴로워하고 있다. 자신을 모조리 잊은 줄로만 알았던 택운이, 괴로워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모순이었다. 택운을 사랑하는 학연. 학연에게 상처받은 택운. 괴로워하는 택운에 기뻐해야 하는 학연. 그리고 결국 괴로운 학연.

끊어진 전화 액정을 들여다보며 학연은 티켓과 수표가 든 봉투를 주머니에 넣고 차에 올랐다. 어차피 오지 않을 잠이니 사무실로 향해 자진 야근을 하는 편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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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이고...ㅠ 택운이도 학연이도 서로ㅢㅁ아음을 모르니까 아쥬 답답합니다 ㅠㅠㅠㅠ 그냥 괴거에대해 모르지만 확 털어났음 좋겠네요 ㅠㅠㅠㅠㅠㅠ하지만 가장 불쌍한건 우리 원식이...ㄸㄹㄹ★웡시가퓨ㅠㅠㅠㅠㅠ. 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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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어후ㅠㅜㅜㅠㅠㅠㅜㅜㅜㅠㅠ다털어내!!!!!!!털어내란말이야ㅡㅜㅠㅜㅠㅠㅠㅜㅜㅠㅠㅜㅠ학연이 불깡해ㅜㅜㅠㅜㅜ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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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으아아아아ㅏ아아아아ㅏㅠㅠㅠㅠㅠㅠㅠㅠ완전 엉켜버렸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사이에 끼인 원식이는 됴륵..☆★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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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헐 아 녹색의자님... 아 대박 여기서 뵐줄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괜히 반갑고 그러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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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으어엉 대박이네요 앞으로도 꼭꼭 다읽고 댓글도 꼭꼭 달테니
계속 글꼭 써주세요 ㅠㅠ 글이너무 아련해서그런가
글이 뚝 끊길것같아서 무서워요 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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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
그동안 보고 싶었어요. 계속 글을 읽어내려오다가 그 순간 뚝 멈춰서. 그동안 보고 싶었어요. 보고 싶었어요. 보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건반을 밟는 남자 속에서 택운이 편만 들던 제가 너무 못나보일 정도로, 학연이는 단숨에 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네요. 보고 싶었다는 그 한 마디로, 저를 멈추고, 자신도, 그리고 택운이마저 숨을 죽이게 만들고. 잡히지도 않는 감정을 그리면서 얼마나 긴 시간 동안 그리워했을까요. 그리고 돌아오는 매정한 감정들에 또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요. 오늘은 학연이 편 들래요, 나.
그리고 그 모든 게 무색할 만큼, 아픈 원식이가 자꾸 눈에 들어와요. 숨기고 싶어도 절대 숨길 수 없는 그 사랑을, 감춰도 새어나가는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아이라서 욕심내고, 하지만 도리어 욕심내지 않으려는 원식이가 애틋하고 마음 아파요. 겉도는 감정들이, 결국 모두 괴로운 아이들이 있어서 자꾸 지켜보게 돼요. 아, 플라밍고 였어요. 늦어져서 미안해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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