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끝까지 이불을 덮은 성규가 요란스럽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도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어깨에 붙인 파스 냄새가 진동을 해도 덮은 이불을 끌어내릴 생각이 전혀 없는 성규가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아픈 어깨도 어깨였지만 바꿔 입었던 우현의 니트가 문제였구나 싶어 성규가 무겁게 한숨을 쉬었다. 아직 쌀쌀한 날씨에 물에 젖은 니트를 입고 돌아다녔으니 감기가 걸린 모양이다. 자꾸만 나오는 기침에도 성규는 우현이 걸릴 감기를 대신 겪고있다는 안도감에 살짝 웃었다. 이내 바보같다는 자책을 하긴 했지만.
"오늘 수업 안 들어왔더라?"
학생 주소록에서 찾은 건지 느닷없이 걸려 온 동우의 전화에 성규가 연신 기침만 해댔다. 감기 몸살? 하고 물어오는 동우에게 짧게 대답을 한 성규가 먼저 통화를 끊었다. 아픈 목도 아픈 목이였지만 누군가의 걱정 섞인 목소리를 듣는다는 게 처음이라 뭔가 모르게 민망해진 성규였다. 끊긴 휴대폰 화면을 끈덕지게 보고 있던 성규가 다시 몸을 눕혔다. 누구 전활 기다리는건데. 아무래도 오늘 학교가는 건 무리였다. 천장의 요란한 벽지 무늬를 바라보다 우현의 걱정 섞인 목소리를 상상한 성규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도 안돼. 몸이 아프니 별 상상을 다 한다 싶어 다시 눈을 감는 성규의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
쿵쿵쿵 하는 큰소리에 눈을 뜬 성규의 눈에 원룸의 나무문이 부서질듯 위태롭게 흔들린다. 놀란 성규가 느린 걸음으로 일어나 문고리를 돌리자 예상치도 못한 인물이 문 앞을 지키고 서있다. 너무 놀라 다리에 힘이 풀린 성규는 겨우 벽을 잡고 간신히 서 있었다.
"죽고 싶지?"
우현이였다. 섬뜩한 말과 함께 성규의 집으로 들어선 우현이 방 안을 훑고는 미간을 잔뜩 구겼다. 벽을 타고 주르륵 미끄러져 주저 앉아있던 성규를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 비웃는 우현의 얼굴이 성규는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이마에 살짝 맺힌 땀방울이 뛰어오던 우현의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성규가 방금 전까지 덮고 있던 이불을 구석으로 치운 우현이 성규의 손을 이끌어 바닥에 앉혔다.
"네가 없어서 공강 시간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 여자들 쫓아와, 식권 줄 기다려, 무거운 책 들고다녀. 다 말하기 입 아프고 어쨌든 못 오면 못 온다고 전화를 하던가."
"그럴 정신이 없었어……."
"너 나 좋아한다며? 질질 울면서 좋아한다고 난리칠때는 언제고."
"미안……. 다음번에 이런 일 없도록 할게."
"내가 어제 그랬지? 네가 뭐라도 되는지 아냐고. 그래, 너 뭐 되더라."
우현의 말에 숙이던 고개를 든 성규의 눈빛이 잔뜩 기대에 차 있었다. 우현이 감기때문에 오른 열로 열꽃이 핀 성규의 양 볼을 한 손으로 꾹 눌렀다. 볼이 눌리는 바람에 입술이 앞으로 쭉 나온 성규의 입술을 한 번 본 우현이 성규의 얼굴을 다시 저 뒤로 밀어냈다. 평소에도 잘 뒤로 넘어가고 했던 성규지만 몸이 아픈 바람에 좀 더 심하게 뒤로 엎어져 머리를 바닥에 찧은 성규가 눈을 크게 감았다 떴다.
"졸병, 신하, 똘마니. 골라봐. 너 저 정도 되더라."
머리가 울렸다. 굴욕, 굴욕적이였다. 머리를 찧었기 때문이였을까, 아님 감기때문이였을까. 어디선가 갑자기 솟아나는 용기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성규가 우현의 팔을 잡아 집 밖으로 내쫓았다. 성규에게 밀려나던 우현의 표정을 성규는 보지 못했다. 보기 싫었다. 최초로 우현을 거부해 본 성규가 우현이 치워둔 이불을 다시 끌어와 덮었다. 미친 척 용기를 내보긴 했는데 우현이 다시는 보지 말자고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바보같이 자꾸 손이 떨렸다. 간 줄 알았던 우현이 문을 다시 두드렸다.
"옷 내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내미는 우현에게 니트를 전해주는 성규의 표정만 씰룩댄다. 니트를 받아든 우현의 주머니에 삐죽 튀어나온 물건을 본 성규가 침을 뒤로 삼켰다. 밀어낼 여지를 주지 않는 우현이 성규는 이제 점점 원망스러워졌다. 돌아서 가는 우현의 모습을 놓칠새라 성규는 골목길 끝까지를 눈길로 따라갔다.
"어제 기침 소리 심하더라. 아픈 건 좀 괜찮아?"
동우의 물음에 성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몸의 상태가 정상은 아니지만 어제 우현의 말도 있고 해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온 학교였다. 덕분에 강의 하시는 교수님의 말은 도저히 머릿 속에 담기지가 않는다. 아프지도 않은 동우도 강의가 머리에 안 들어오는 건 마찬가지인지 노트에 낙서만 열심히다. 동우의 낙서를 몰래 보던 성규를 의식한건지 볼펜을 멈춘 동우가 휙 고개를 돌려 성규를 본다. 어제 우현이가 너 찾길래 아프다고 했어. 아까부터 말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동우의 말에 성규는 다시 고개만 끄덕였다. 동우의 말에 감기인 걸 알고 우현이 그리 온 모양이였다. 자꾸 어제 우현의 주머니에 꽃혀 있던 체온계가 성규의 마음을 간지럽혔다.
"1분 늦었다. 다음 번에 또 늦으면 그 땐 너 안 봐."
앞 강의가 늦어져서 급하게 뛰어왔지만 손목 시계를 보여주며 으름장을 놓는 우현의 말투가 꽤 까칠해서 성규는 응, 하고 우현의 책을 받아들었다. 앞서 몇 걸음 걷던 우현이 뒤를 따라오던 성규를 보더니 가장 두꺼운 전공 서적 하나를 다시 가져간다. 이런 식이라면 성규는 아마 평생동안 마음 아파하며 우현을 따라다닐지도 모를 일이였다. 우현은 성규를 너무 잘 앎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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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에 또 왔어요. 댓글 달아주신 분들 고마워요호호호호홍.
좀 더 우현이를 못되고 까칠하게 만들고 싶었는데 제가 또 마음이 약해서
그렇게 하지를 못함돠. 안타까워ㅋㅋㅋㅋㅋ 다음화에 좀 더 나쁜 남자 우현이 되기를.
단편으로 쓰자 생각했는데 의외로 중편이 될 것도 같아서 벌써부터 무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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