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판을 보던 우현이 3000원 식권 두 장이요, 하고 만원 짜리 지폐로 계산을 한다. 이제 막 지갑을 꺼내 들던 성규가 놀란 토끼눈으로 우현을 보자 우현이 픽 웃으며 성규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 식권 한 장을 더 계산한다. 우현의 손에 들린 두 장의 식권을 쳐다보는 성규를 의식한 우현이 성규 눈 앞에서 식권 두 장을 흔들어 보이며 약을 올린다. 네 꺼 아닌데. 우현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높아진 게 성규는 자꾸 마음에 걸린다.
"안녕하세요."
식권의 주인은 따로 있었던 모양이다. 먼저 자리에 앉아있던 여자가 환한 미소로 성규에게 인사를 건넨다. 여자와 같은 미소로 화답하는 우현과 달리 성규는 도무지 인사를 반갑게 받아줄 수가 없었다. 여자는 우현의 과 동기라고 했다. 여자의 음식까지 대신 가지러 가는 우현을 보던 성규가 거칠게 마른 세수를 했다. 성규가 한 번쯤 생각해봤던 장면이였다. 곧 우현을 따라 음식을 가져오던 성규의 입술에 피가 맺혔다. 속 앓이를 하면 항상 입술을 깨물던 성규니 입술이 남아날 턱이 없었다.
"같은 나이니까 반말할게. 근데 성규는 공대 식당있는데 왜 여기까지 와서 밥 먹어?"
"얘가 나 쫓아다니거든."
"응?"
우현의 돌발 발언에 성규가 놀라 숟가락을 떨어뜨리자 젓가락질을 멈추고 성규를 흘긋 본 우현이 소세지 반찬을 집어 여자에게 건넨다. 살짝 놀란 여자가 이내 웃으며 장난스럽게 우현이 건넨 소세지를 받아 들었고 성규는 다시 입술을 씹었다. 여자가 아니라 다행이다, 성규는 생각했다. 어떤 여자라도 이런 상황 속에선 울면서 뛰쳐나갔을지도 모를 일이지 않은가. 성규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밥을 뜨자 여자가 성규의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너희 공대에 괜찮은 애들 많다든데. 우리 과랑 과팅 주선 좀 해주면 안돼?"
"어? 아……. 나는 우리 과 애들이랑 별로 안 친해서 못 해 줄 것 같아."
"그러지 말고 해주라. 응? 거기에 당연히 너도 들어가야 하는 거 알지?"
"아니……. 나 진짜 그런 거 할 줄 모르고 동기들도 안 할 것 같은데……."
정말 곤란스러운 질문이라 성규가 자꾸 손사래를 치자 시무룩해진 여자가 우현에게 부탁을 한다. 성규 좀 설득해 봐. 애교 섞인 여자의 목소리에 살짝 웃은 우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절대, 절대 저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리. 결심한 성규가 더욱 다부지게 수저질을 한다. 달달한 맛탕에서 이상하게 쓴 맛이 난다.
"과팅 추진해."
여자가 빠지자 마자 툭 뱉은 우현의 말에 성규가 주먹을 그러쥐었다. 대답이 없는 성규를 보던 우현이 성규의 어깨를 세게 친다. 덕분에 휘청거린 성규에게 몇몇 사람의 시선이 쏠리자 인적이 드문 학생 식당 뒤쪽으로 성규를 끌고 간 우현이 담배 하나를 꺼내 문다. 여전히 강단있게 입술을 다문 성규가 마음에 들지 않은 우현이 신경질적으로 성규의 머리를 흩트린다. 내려온 앞머리가 눈을 찔러 머리를 정리하려던 성규의 손을 우현이 잡아챈다.
"너 요즘 많이 컸네. 하라면 하지, 말이 많아."
"내가 과팅했으면 좋겠다는 거지?"
"네가 과팅을 하든 함부로 몸을 굴리든 나랑 뭔 상관인데. 그냥 연지 부탁이나 들어주라고."
우현의 말에 충격이 컸던 성규가 우현의 손을 뿌리치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평소 먼저 연락한 적 없는 동우에게 전화를 건 성규가 대뜸 과팅 얘기를 꺼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긍정의 답을 해 준 동우 덕분에 통화가 빨리 끝난 성규가 우현에게 휴대폰을 들어보인다. 우현은 그런 성규가 가찮은지 눈썹만 움찔댈 뿐 별 말이 없다.
"만족해? 너도 연지라는 애 말이면 사족을 못 쓰는구나. 내가 네 말에 사족을 못 쓰는 거 처럼. 나 병신같지? 네가 하라니까 싫은대도 먼저 이렇게 솔선수범하는게. 근데 나 지금 정신이 번쩍 들었거든? 네 말에 죽는 시늉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일거라고."
"너……."
"다시는 너 못 볼 줄 알라고? 고마워. 이젠 내가 너 다시 안 봐."
들고 있던 우현의 전공 서적을 바닥에 내팽겨친 성규가 우현을 지나친다. 성규는 하루하루를 술로 버티더라도 이번에는 정말로 우현을 끊어내 볼 참이였다. 우현을 지나쳐 몇 발자국을 걸어갔을까. 성규를 돌려세운 우현의 표정에 분노가 서려있었다. 성규는 아차, 싶었다. 내가 널 놓으면 놓았지, 넌 날 못 밀쳐내. 진심이였다. 차라리 자존심의 상처를 입어 홧김에 내뱉는 말이였다면 좋을 뻔 했다. 우현의 눈은 진실됬고 성규는 눈을 감았다.
"성규 네가 왠일로 과팅을 다 주선했냐? 과대인 나도 못하는 일을 자식, 애썼다."
성규의 등을 두드리는 호원과 환호하는 동기들에게 성규가 억지 웃음으로 인사 치레를 했다. 빨개진 손목을 보자 다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덫에 걸린 것만 같았다. 달아나려 할 수록 점점 더 옥죄어 오는 덫. 남우현은 김성규에게 너무 깊은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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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심각하게 암울해졌네요.ㅠㅠㅠㅠㅠㅠ 내가 다 암울함
이정도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는데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바로 구성계획의 부재가 부른 참혹한 현실....
다음번엔 과팅으로 분위기가 살아나길 바람돠
그리고 독자분들이 손으로 쓴 댓글이 저를 살아나게 합니당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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