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경수…! 김성재 막아!"
우리 팀의 한 아이가 내게로 소리를 질렀다. 백현과 종인을 보고 있던 내가 시선을 돌려 앞을 보니 김성재가 공을 몰고 내게로 달려 오고 있었다. 당황한 내가 김성재에게로 뛰어 갔다. 김성재의 옆에는 아무도 따라 붙는 아이가 없었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공을 뺏어서 팀에 도움이 되야겠다, 고 생각했다.
내가 김성재에게로 달려가 공을 뺏으려는 찰나였다.
"……변백현!"
언제 백현이 여기까지 뛰어온 건지 뒤에서 김성재의 발을 향해 온 몸을 슬라이딩 해 내던졌다. 김성재도 뒤에서 태클을 걸어온 백현 때문에 공을 놓치고 넘어져 버렸고, 둘의 체육복은 온통 흙으로 뒤집혀 버렸다. 백현은 슬라이딩을 하면서 다리가 쓸렸는지 종아리를 잡고 작게 신음했다.
"야…! 너 미쳤어?"
안 그래도 아까 넘어져서 다친 것 같았는데, 그것도 모자라 이렇게 온 몸을 내던지면서까지 공을 사수하는 백현에게 조금 화가 났다. 이게 뭐 그렇게 중요한 거라고…!
골 하나쯤 먹히는 게 그렇게도 싫었는지 이렇게나 무리하는 백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백현이 몸을 일으켜 세우고 체육복 바지를 걷어 내자, 그새 멍이지고 땅에 쓸려 빨갛게 부어오른 종아리가 보였다. 체육 선생님도 백현의 상태를 보고는 내게 보건실까지 부축하고 오라는 명을 내렸다. 발목도 삐었는지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백현을 보고 급하게 따라 일어섰다.
백현이 먼저 절뚝절뚝 걸으며 운동장을 가로 질러 갔다. 얼른 그 뒤를 따라 부축을 해 주기 위해 백현의 팔을 잡았지만 백현은 나의 팔을 밀쳐버렸다.
"변백현…?"
"……."
다친 곳이 많이 아픈 건가. 굳어져 있는 백현의 얼굴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뒤에서 조금 떨어져 걸어야했다. 다리를 저는 모습이 조금 위태롭긴 했지만, 내 손을 뿌리치는데 억지로 부축해줄 수는 없었다. 그러길래 왜 무리해서 뛰어서 온 몸을 날리냐고…. 괜히 나를 못 믿고 그렇게 행동한 것만 같은 백현에 속이 상했다.
이번엔 내가 잘 막을 수 있었는데. 백현의 뒤를 따라 보건실에 도착했고, 백현은 다리에 연고를 바르고 발목에 파스를 뿌린 뒤 붕대를 감았다. 시큼한 파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 찜질을 위한 얼음을 받고 보건실에서 나온 백현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야, 변백현. 대답 좀 해….화 났어?"
내가 조심스레 말을 건네자 백현이 가던 길을 멈추고 뒤 돌아 나를 봤다.
"너 같음 화가 안 나겠냐?"
"……어?"
"너였음 이렇게 안 끝났어. 나 아니었음 너가 다칠뻔 했잖아."
꽤 화가 많이 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내가 다칠뻔 하다니…? 순간 머릿 속에 아까 종인이 내게 했던 이야기가 스쳐 지나갔다.
'너 김성재 마크한다며…. 잘 해봐.'
"김성재가 일부로 너 노리고 너한테 간거야. 너가 달려들었으면 김성재가 너 밀쳤을 거고, 그럼 너 이 정도로 안 끝났어."
"그…, 그게 무슨 소리야?"
한숨을 내쉰 백현이 머리를 쓸어올렸다. 대체 김종인은 어떤 새끼야…? 백현의 눈빛이 슬퍼보였다. 내가, 내가 이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만 있다. 내 욕심을 위해 이 아이를 다치게 하고 가슴 아프게 한다. 백현의 말에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다 알고 있구나, 김종인이 일부로 너를 다치게 한다는 것을…. 백현의 등 뒤로 보이는 운동장에는 우리를 제외한 아이들이 다시 축구 경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아니었음 너도 지금쯤 저기서 신나게 뛰고 있었겠지…?
"백현아."
"……."
"우리 예전으로 돌아가자. 서로 모르던 때로…."
백현의 눈빛이 조금 흔들리는 듯 했다. 지금껏 내 욕심 때문에 그러지 못했어. 너와 있는 시간이 즐거워서 그래도 되는줄만 알았어…. 내가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 같았어…. 내가,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나 봐…. 행복해도 되는 줄 알았어….
"너."
백현을 지나쳐 운동장으로 가려는데 백현이 내 팔을 붙잡았다.
"지금 이대로 가면 나 다시는 너 안봐."
……. 심장이 떨렸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이것 뿐이야…, 백현아. 입 밖으로 나오려는 말을 꾹 참고 백현이 잡은 손을 밀어냈다. 백현이 생각보다 쉽게 손을 놓아버렸다. 백현을 뒤로 한 채, 멈췄던 걸음을 다시 운동장으로 향했다. 더 이상 나를 잡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쯤은 불러줄까 싶었지만, 더 이상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달려와 웃으며 장난이었다고 말할 것만 같았는데 더 이상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 날 오후, 학교가 파하고 엄마가 계신 병원에 찾아갔다. 엄마는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주무시고 계셨다. 멍하니 침대 옆 보조의자에 앉아 엄마의 옆 얼굴을 쳐다봤다. 오늘 하루종일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고야 말았다. 엄마…, 나 지금 잘하고 있는거 맞아요…?
...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했다. 따듯한 물로 몸을 적시는데도 전과 같은 기분좋음을 느낄 수 없었다.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자꾸 옛날의 일들이 데자뷰처럼 겹쳐 떠올랐다. 이게 다 내가 더러운 놈이라 생긴 일이야…. 이젠 내가 모두를 위해 결정을 내릴 때가 온 것 같았다. 따듯한 물줄기와 함께 눈물이 같이 흘러내렸다.
내가 책임 지고 원래대로 돌려 놓을께, 다 미안해….
세훈은 그런 아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나보다 1살 어린 동생이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세훈은 날 잘 따랐다. 사실 우리의 첫 만남은 조금 유치했다.
아주 더운 여름날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 학교가 끝나자 아이들은 하나같이 우르르 슈퍼로 몰려갔다. 아이들은 저마다 입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달고 나왔다.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던 나는 혹시나하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보았지만, 100원짜리 하나 잡히지 않았다. 곧 그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집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린 찰나였다. 나보다 키가 조금 작은 소년이 내 앞에 나타났다.
"형아."
"……뭐야."
"형아, 돈 없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쉽게 말을 걸어 오는 소년은 날 놀리는 듯했다. 입에 앙 하고 물고 있는 아이스크림이 얄미웠다. 그런 녀석의 말을 무시하자 입에 물고 있던 쮸쮸바를 내게 건넸다.
"뭐야, 먹던 거 먹으라고?"
"들고 있어봐. 형아꺼 새로 줄게."
그게 무슨 소리지…? 얼떨떨하게 아이의 아이스크림을 손에 쥔 나는 슈퍼로 뛰어가는 아이의 뒷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홀연히 아이들의 무리 속으로 섞여 들어간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손엔 아이스크림을 꼭 쥔채 급하게 슈퍼 안에서 뛰쳐 나왔다. 빠른 속도로 내게 달려온 아이는 내 손을 붙들고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저 도둑 놈들!"
뒤에선 슈퍼 주인 아줌마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서야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갔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뛰어 어느 아파트 단지 안으로 숨어 들은 나에게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나도 내 손에 들려있던 그 아이의 아이스크림을 건넸고, 그 상황이 너무나 웃겨 푸하하하 하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왜 웃어? 웃겨?"
"너 진짜 대단하다. 걸리면 어쩌려고?"
나 절대 안 걸려. 이거 봐! 잠시 주머니를 뒤적이던 아이가 주머니에서 껌을 한 통 꺼내 보였다. 그 사이 껌까지 가지고 나온 모양이었다. 나를 보고 씨익 웃어보이는 아이에게 이름을 물었다. 이름이 뭐야…?
"오세훈. 2학년 3반. 형아는 도경수죠?"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며 내게 되물었다. 그걸 너가 어떻…?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세훈이 대답했다. 형, 우리 형이랑 동갑이예요. 오지훈…. 알아요?
그제야 우리 반 반장인 지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데, 왠지 하나도 닮은 것 같지 않았다. 세훈은 하얗고 귀엽고 이목구비가 뚜렷해 잘 생긴 편이었지만 지훈은 뚱뚱하고 들창코인 데다가 눈은 쭉 찢어졌다. 세훈이 헤- 하고 웃어보였다. 형이랑 성격도 완전 반대네…. 나랑 잘 맞는 아이를 만나게 된 것 같아 기뻤다.
그 일이 있은 후 우리는 더욱 친해졌다. 매일같이 동네 놀이터에서 만나 같이 곤충도 잡으러 다니고, 눈이 오면 같이 눈싸움도 하고. 비가 오면 우산 없이 뛰어다니기도 하고. 지나가는 여자애들을 놀리는 등 학교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세훈과 보냈다고 해도 무방했다. 나에겐 엄마와 세훈이 전부였는데, 엄마는 항상 일이 끝나고 밤에 오니까 그 전까지는 세훈과 우리 집에서 티비를 보거나 같이 요리를 해 먹거나 하는 등 언제나 함께였다. 나는 세훈이가 정말 좋았다.
그렇게 몇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자 나보다 작던 세훈의 키가 점점 자라더니 어느 순간 나의 키를 훌쩍 뛰어 넘어 버렸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어느새 내가 세훈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자존심이 상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걸어가는데 세훈이 나를 내려다 보다 내 입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자신의 손으로 닦아줬을 때. 처음으로 세훈이에게 가슴이 떨려왔다. 그리고 세훈에게 이전과는 다른 감정을 품게 되었다.
나 혼자 몰래 세훈을 보며 설레기 시작했다.
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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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로션입니다!!! 오늘은 조금 늦게 들고 왔어요ㅠㅠ...!
세훈이의 이야기가 조오금 나왔네요!.. 앞으로도 기대해 주세요...헤헤
항상 읽고 댓글 남겨주시는 분들ㅠㅠㅠ사랑합니다 하트하트 무한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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