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으, 짜증나! 경수는 자꾸만 쏟아지는 잠에 커피나 한 잔 끓여 먹고 다시 글을 쓰려는 생각으로 주방으로 향했다. 선반을 열어보니 벌써 봉지 커피를 다 마신건지 텅텅 빈 선반 속이 경수를 반겼다. 지금 시간은 10시였다. 슈퍼가 문을 닫기 전에 어서 사와야 겠다고 생각한 경수는 주섬주섬 옷들을 꺼내 입었다. 밖이 많이 추우려나…. 바로 집 앞 슈퍼에 나가는 건데도 경수는 고민 끝에 결국 장갑과 털모자까지 썼다.
히히, 돈 남으면 홈런볼도 사야지! 괜히 들뜬 경수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그렇게 집 앞 골목을 지나가는데 가로등도 설치 돼있지 않은 어두운 골목 틈에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매캐한 담배 연기…. 선천적으로 호흡기가 좋지 않은 경수는 담배를 입에 대 본 적도 없고, 심지어는 담배 연기가 조금이라도 나면 항상 기침이 나오곤 했다.
자기만 폐암 걸려 뒈질 것이지, 왜 남한테 피해를 줘…! 어김 없이 경수는 코를 틀어 막고 기침을 했다. 켁켁켁…. 그리곤 걸음을 빨리 하며 자리를 뜨려는데 담배 연기가 피어 나오던 골목에서 갑자기 한 아이가 튀어나왔다.
"으악! 뭐야!"
갑자기 제 앞으로 튀어 나온 형체에 놀란 경수가 뒷걸음질 치며 소리를 내질렀다. 교복을 입고 있는 앳되어 보이는 학생이었다. 누군가에게 얻어 터진 듯한 얼굴엔 온통 멍이 잡혀 있었다. 그 아이는 경수의 앞에 갑자기 나타나서는 어쩔 줄을 몰라 우물쭈물해 하고 있었다.
"야, 너 괜찮아? 너 입에서 피나!"
경수가 그 아이에게 괜찮냐며 다가가자 아이가 눈을 질끈 감고 제게 손을 내밀더니 소리쳤다.
"돈!"
"……?"
"돈 내놔!"
분명 이것은 저를 협박하여 돈을 갈취하려는 행위가 분명했건만 전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불쌍한 중생의 목소리에 경수가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이래 가지곤 7살 짜리도 안 쫄겠다! 경수가 이렇게까지 생각했다는 것은 꽤 심각했다는 뜻이었다.
"얘야. 형이 올해 스물 일..."
"한 번만요오. 제발…."
애원하는 목소리로 제게 눈짓하는 아이를 보고 경수는 필시 배후에 누군가가 있음을 감지했다. 경수는 아까 부터 담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던 골목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
그 곳엔 벽에 몸을 기댄 채 담배를 피고 있는 종인이 있었다.
"허…, 너…."
종인이 그런 경수를 발견하고는 귀찮은 표정을 해 보였다.
"씨발, 아저씨였냐? 빨리 꺼져."
입을 떠억 벌린채 다물지도 못하는 경수를 보고 종인이 인상을 찡그렸다.
"뭘 보냐고! 꺼지라고!"
"으, 응…!"
결국 경수는 또 쫄아버려 정말로 종인의 앞에서 꺼져버렸다. 다시 아이의 앞에 선 경수가 주머니를 뒤져 손에 잡힌 만원을 아이에게 건네 주었다.
"아가야. 이거 쟤 주고 얼른 형 따라와."
감동받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는 아이를 보고 "아, 얼른!" 하고 소리치자 만원을 들고 쫄래쫄래 종인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뒤이어 싱글벙글 웃으며 제게 다가오는 아이를 이끌고 경수는 제 집으로 왔다.
"애들 돈 뺏고, 마음에 안 드는 일 있으면 주먹부터 나가고…. 담배 피고 술 마시는 건 기본인데다가 여자들은 또 엄청 많아요."
"아…."
"형 친구 중에 박찬열이라는 형이 있는데요, 그 형하고 붙어다니면서 같이 일진짓 하는 거예요."
조잘 조잘 움직이는 입 속으로 귤이 들어갔다. 꽤 귀엽고 잘생긴 얼굴엔 경수가 덕지덕지 붙여준 반창고들이 자리했다.
"근데 너 이러고 들어가면 부모님이 놀라시지 않을까…?"
걱정스러운듯 물어오는 경수의 말에 아이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저한테 신경도 안 써요. 제가 집에 왔는지 안 왔는지조차도 모르는 데요, 뭘.
아. 갑자기 머쓱해진 경수는 아이의 명찰에 적힌 이름을 보았다. 오세훈…?
"종인이한테 오늘 우리 집 왔던거 말하면 안되고…. 알았지?"
"당연하죠. 형. 근데 형 이름이 뭐예요?"
나 도경수야. 아아…. 종인이형 친형은 아닌거네요? 응. 그런 건 아냐. 버스 끊기겠다. 얼른 가 봐. 경수는 집으로 가려고 몸을 일으켜 세운 세훈의 손에 귤을 하나 더 쥐어 주었다. 세훈이 아까 도와준 것도 고맙고 얼굴 치료해 준것도 감사하다며 고개를 꾸벅 숙여 경수에게 인사를 했다.
"저 가볼게여…!"
마지막으로 세훈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하품이 쏟아졌다. 흐아…. 피곤이 몰려 왔다. 오늘은 그냥 일찍 자는게 상책일듯 싶었다.
그나저나, 얘는 이 시간이 되도록 어딜 싸돌아 다니길래 안 오는거야…! 경수는 한숨을 포옥 내쉬며 거실에 불을 끄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 * *
오늘도 어김없이 지식인간에 접속한 경수는 제게 도착한 1대1 질문을 보고 순간 멍해졌다.
님 진짜 멋지세요
chanchan 조회수 2
안녕하세여ㅋ 답변 많이 도움 됐어요ㅋ 집에서 열심히 따라해보려구여ㅋ
근데 님ㅋ 얼굴 한번만 보여주심 안되여ㅋ? 저도 보여줄께여ㅋ
내공도 드릴께여ㅋㅋ
찬찬자식. 내 말을 진짜 믿는건가…? 잠시 고민을 하던 경수는 그 아래애 재빠르게 답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re: 님 진짜 멋지세요
dodo0112
네, 여기 제 사진입니다.
어제 지식인간을 돌아다니다 모은 짤방 중 하나를 첨부했다. 빅엿 좀 먹어봐라, 고딩 놈아! 이게 어른이란다!
평소엔 절대로 이런 과감한 짓을 할 수 없는 경수였지만, 익명에 가면에 감췄던 경수의 본 모습이 드러나고야 말았다. 소리 죽여 웃으며 작성을 마친 경수는 다시 마이 지식으로 들어갔다. 어제 올렸던 질문글에 그새 답변이 하나 달려 있었다.
(내공50) 무서워 보이는 법
비공개 조회수 87
안녕하세요...제가 누구한테 무섭게 보여야 할 일이 있거든요?...
무서워 보이는 법이 뭐가 있을까요... 제가 하나도 안 무섭거든요
그래서 절 만만히 보는 놈이 있어요...
무서워 보일 수 있으면 뭐든지 할 거예요.. 도와주세요..!
(내공냠냠 꺼지세요.)
re: (내공50) 무서워 보이는 법
luluhan
저 이 방법 엄마한테 썼는데 진짜 효과적이었는데요.
부엌에서 식칼을 꺼내서 손을 덜덜덜 떨면서 눈알 뒤집고 이상한 소리 내면서 가까이 다가가 보세요.
이거 듣기엔 좀 이상해 보여도 실제로 하면 100프로 직빵이예요.
그 이후로 엄마가 제가 해달라는 거 다 해주더라구요ㅋㅋㅋ
경수는 답변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아, 드디어 좀 제대로 된 답변이 달리는구나! 그리고 답변 채택하기 버튼을 눌러 luluhan 을 채택했다.
- 와우! 대단한 지식이예요.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답니다! -
답변 평가까지 마친 경수는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1시. 곧 종인이 일어날 시간이었다. 경수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부엌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