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모바일 (밤모드 이용시)
댓글
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이준혁 몬스타엑스 샤이니 온앤오프
녹색의자 전체글ll조회 820l

하루에 서너 번씩 비행기를 타기도 했기에 생활화처럼 되어 있던 공중에서의 시간은 이 순간 마치 택운 홀로 박제되어 버린 것처럼 고통스러울 뿐이다. 스웨덴에서 러시아를 경유하여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몇 번이고 택운은 자신이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있음에 진저리쳤다. 한국에 발조차 들이지 않게 된지 어언 10년. 재환과 함께 할 때면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곤 자신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조차 잠시 망각할 만큼 택운은 타국에서 지내면서 한국 관련 기사들로 가끔 한국 소식을 접했을 뿐. 부모님이나 에이전시에서 걸려오는 안부전화를 제외하고는 한국인과 통화를 할 기회도 그만큼 적었다. 사실 어색하다는 마음이 제일 컸다. 비행기 안에서 간간히 보이는 한국인들과 자신을 향해 한국어로 물어오는 승무원들. 오랜 시간 이어지는 비행에 택운은 편두통이 심해지는 것을 느꼈고, 내내 택운의 눈치를 살피던 재환은 얼른 물 한잔을 택운의 앞에 두었다.

3일 전쯤, 재환은 택운에게 한국에서의 리사이틀을 취소할 수 없다는 사실과 이미 2개월 전 쯤 정작 당사자만 모르는 티켓팅으로 모든 좌석이 매진되었으며 잡지사와의 전속 계약이 맺어졌고 한국 언론계에서는 ‘피아니스트 정택운’ 이 리사이틀을 한다는 것만으로 이미 엄청난 화제 거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결국 택운이 직접 자신의 한국 에이전시 측과 통화를 마치게 되고 재환은 택운의 내한이 있게 된 오늘 아침까지 택운 눈치를 보게 된 것이다.

“형.”
“……”
“진짜 죄송해요, 형..형을 속이려던 건 아닌데..미리 말하면 형이 어떻게든 취소할 것 같아서..”
“네 말이 맞아. 미리 알았으면 어떻게든 내가 취소시켰겠지.”
“……”
“계획에 없는 앙코르도 안 하는 연주자한테 생각지도 못했던 공연을 하라는 게 말도 안 되긴 하지만.”

수면용 안대를 하는 택운을 보던 재환은 여전히 자리가 가시방석이다. 그전에 귀띔이라도 해줬으면 좀 좋아. 내가 택운이 형 첫사랑이 한국 사람인지, 한국에 발 안 들이는 것도 그 사람 때문인지, 그걸 어떻게 알겠냐는 말이야. 캐나다 국회 의사당 초청 공연 전날에도 저렇게까지 신경질 적이진 않았었는데..더 이상 택운의 신경을 거슬리는 말을 했다가는 이 비행기 내부에서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재환 역시 애써 오지도 않는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았다.

학연이 떠나고 세평 남짓한 방안에 틀어박혀 미친 듯이 피아노만 쳤었다. 우습게도 학연이 떠난 뒤 택운의 손은 피아노만 찾았고 이걸 그에게 고마워해야 하는지 택운은 다들 입 모아 언급하는 천재 피아니스트가 되어 있었다. 가끔 피아노 앞에서 숨 죽여 울어본 적도 많았다. 피아노를 칠 때마다 눈앞에 환각처럼 춤을 추는 학연의 모습이 보였고 그 모습을 오래도록 보기 위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곡을 치며 눈물을 쏟았다. 오로지 차학연, 단 한사람 때문에. 택운은 줄곧 악몽을 꾸곤 하였다. 무거운 공기가 자신을 온통 짓누르는 느낌과 동시에 몇 발짝 쯤 앞에 서 있는 학연의 모습. 아무리 학연을 향해 다가가려 손을 뻗어보아도 닿지 않는. 그리고 꿈에서 깨어보면 온 몸이 식은땀으로 인하여 흠뻑 젖어 있었다. 그래서 한 동안은 수면제 없이는 잠을 잘 수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결국 중독 증세를 보이고서야 택운은 수면제 처방을 끊었고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야 했었다.

학연을 잊어내기 위해 발버둥 쳤던 시절. 무조건적인 도피를 선택해서라도 학연을 지워내고 싶었던 무수한 시간들. 하지만 한국과 완전히 시차가 반대인 나라에 발을 딛고 서서도 택운은 한 시도 학연을 잊지 못하였었다. 첫사랑. 감히 손조차 함부로 댈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고도 차가운. 택운은 그 보이지 않는 테두리에 갇혔다고 생각했다. 그곳을 벗어나려 미친 듯 걸었던 수천가지의 길도 결국 그곳으로 향하는 걸음이었던.

“형. 잠 안 들었죠?”
“……”
“정말 그 첫사랑 때문에..10년 동안 한국에 안 간 거 에요?”
“……”
“그러면 그동안 여자 안 만난 것도 다 그 첫사랑 때문이었어요? 나는 또 형이 막 여자 때문에 연주에 집중 못 할까봐 그런 줄 알고 되게 프로페셔널 하다고 생각했었는데!”
“한 마디만 더 하면 공연 날 예술의전당에 안 나타날 테니까 알아서 해.”

네, 뭐..그렇게 말씀하시면 당연히 입 다물어야죠..재환은 앞좌석에 꽂혀있는 영자신문을 읽는 척 하며 한국에 도착할 때 까지 눈을 감고 있기로 마음먹었다. 이놈의 입이 방정이지, 입이 방정이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게이트를 벗어나자마자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에 당황한 재환은 생각지도 못했던 인파에 택운을 최대한 보호한 채 수많은 기자들 사이를 지나쳤다. 그들을 향해 쏟아지는 질문들. 10년이라는 시간동안 단 한 번도 한국에서 공연을 가진 적 없던 피아니스트 정택운이 어째서 갑자기 돌연 내한했냐는 질문이 대다수였으며 그간의 근황을 묻고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오는 탓에 재환은 무조건 입을 꾹 다문 채 길 좀 비켜달라는 말만 수없이 되풀이 할 뿐이었다. 한국 에이전시 측에서 보내준 차량에 올라 탈 때 까지 기자들은 거머리처럼 따라붙었고 차가 출발하였음에도 얼마간 뒤따라오는 기자들에 재환은 혀를 내둘렀다.

“..강실장님. 한국 기자들은 원래 다 저래요?”
“낸들 아나. 직업 정신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달리 투철하신 모양이지.”
“와, 진짜 깜짝 놀랐어요. 도착하면 얼른 에이전시로 갈 생각만 했지 기자들이 저렇게 모여 있을 줄은..”

운전을 하고 있던 실장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나누던 재환은 문득 택운이 무척이나 조용한 것을 느끼고 옆 자리의 택운을 보았을 때, 그가 턱을 괜 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았다. 빠르게 스쳐가는 서울 풍경들. 재환은 그간 수없이 한국을 오고갔기에 별 감흥이 없었지만 1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택운은 아마 지금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뭐, 아무리 첫사랑에 대한 좋지 못한 기억 때문에 한국을 꺼리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20년 가까이 한국에서 나고 자랐을 텐데..

택운은 한국이 무척이나 낯설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이렇게까지 한국이 변했을 줄이야. 에이전시도 엄청 변했겠네. 아마 어떤 건물인지도 못 알아보겠지. 그리고 차학연도, 많이 변했겠지. 역시 한국에 발을 디디자마자 생각이 나는 학연에 택운은 실소했다. 이래서 한국에 오기 싫었던 거야. 분명 나는 정신없이 차학연을 찾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 잊으려고 노력했는데..이제 겨우 조금씩 잊어 가고 있다 생각했는데. 그럼 그렇지..

재환과 택운을 실은 차가 에이전시 앞에 도착하고, 안으로 들어섰을 때 택운은 가볍게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보다 훨씬 회사가 변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제게 허리를 90도로 굽혀가며 인사를 해왔고 택운은 그들을 향해 어색하게 목례했다. 재환은 택운에게 그들이 현재 에이전시에 소속되어 있는 팝페라 가수나 교향악단, 작곡가, 피아니스트임을 소개해왔다. 다들 처음 보는 얼굴들. 8시간 정도 시차가 차이나는 스웨덴과 한국에 택운은 약간 어지러움 증을 느꼈다.

“형, 그리고 오늘 잡지사 측이랑 미팅 있는데.”
“오늘은 피곤해. 내일로 미루던지 해.”
“에이..안 그래도 한국 언론 쪽 형 이미지 알잖아요. 웬만하면 그쪽 요청 들어주죠?”
“내가 왜 그런 사정까지 신경 써야 하는데?”
“아, 진짜! 형은 너무 빡빡해. 미팅 그거 별거 아닌 거 알잖아요. 그냥 간단히 얼굴 좀 익히고 다음 인터뷰 날짜 잡고 그런 건데.”

몇 번이고 스케줄 표를 확인하며 자신에게 사정, 사정하는 얼굴로 말해오는 재환에 택운은 결국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재환에게 져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몇 신데.”
“7시요! 그쪽에서 저녁도 사겠대요.”
“아주 신났다?”
“당연히 신나죠. 형이 계속 이렇게만 나와 주신다면야. 형 짐이랑 차는 내일 중으로 들어오구요, 일단 오늘은 근처 호텔에서 자면 된대요. 한국에는 두 달 정도 머물러야 하고 숙소는 내일 회사에서 정해준..형! 잠깐 내 말 아직 안 끝났어요!”

택운은 오늘은 호텔에서 머무르면 된다는 재환의 말에 그대로 재환을 지나쳤다. 아마 더 이상 중요한 말들은 없을 것이다. 택운은 10년 만에 돌아 온 에이전시 덕에 회사 내부를 온통 돌아다니며 간부들에게 간간히 인사치레를 했고 다들 택운을 무척이나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택운의 한국 공연 일정이 잡히자마자 에이전시 측 주가가 부쩍 상승했고 택운이 입국한 오늘, 뜨거워진 언론 탓에 앞으로도 주가는 계속 오를 예정이기에.

수중엔 지갑과 핸드폰, 여권뿐이었다. 택운은 재환과 함께 가까운 호텔로 향했고 뭣하러 돈 아깝게 다른 방을 쓰냐고 주장하는 재환에도 자기 사비로 재환의 방을 따로 잡아준 택운은 유유히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형!!! 문 잠그고 잠들면 안 돼요!!」
「7시에 미팅인 것도 잊지 말구요!!」

안 잊는다, 안 잊어..하여튼 이재환 걱정도 팔자야. 택운은 침대에 가만히 누웠다가 이내 발코니로 나서 바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가만히 구경하였다. 확실히 10년 전과는 확연히 다른 서울의 모습.

학연이 떠나던 그 날, 어느 때와 다름없이 택운은 학연을 기다렸다. 곧 전국대회를 나간다며 제 몸 성치 않게 연습 할 학연이 걱정 되었고 추운 겨울날 얼어붙은 몸을 비벼가며 기다리던 시간이 이상하리만큼 늦어져 결국 방해가 될까 들어가지 못했던 연습실 건물 안에 들어서자 학연이 아닌 다른 이들로 가득한 연습실에 당황스러웠다. 그때까지도 학연이 설마 자신을 떠났을 것이라고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다. 놀란 택운이 학연이 사는 처량한 달동네를, 그러나 학연이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소중했던 그곳으로 향했고 학연의 집 대문 앞에서 택운은 좌절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했지만 견고했던 학연의 집은 철거가 되어 정말로 무너져있었다. 주저앉은 택운이 얼어붙은 손으로 학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학연은 받지 않았었다. 너는 그렇게 나를 철저히 배신하고 떠났다.

더 이상 학연의 생각을 해선 안 되겠다는 느낌이 불쑥 들었다. 택운은 공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집어넣는 것만큼이나 한심한 짓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 학연의 생각에 깊어질수록 감정의 소용돌이만 거세지는 기분이었다. 택운은 몰려오는 두통에 타이레놀을 찾았지만 남은 타이레놀이 주머니에 없음을 깨달았다. 아마도 비행기에서 두고 내린 듯. 결국 택운은 침대에 다시 누워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오지 않는 잠을 일부러 청하려 애써 눈을 감았다.

“택운이 형! 형, 문 열어봐요!!”

그리고 쾅쾅거리며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을 때, 택운은 자신이 잠에 빠져들었었고 창문 틈새로 보이는 바깥이 꽤 어두워졌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재환이 신신당부를 했음에도 어기고 말았다. 피아니스트인 만큼 청각이 예민한 택운이기에 문 두드리는 소리에 금방 깼다지만 택운은 자신의 핸드폰에 쏟아지듯 와 있는 재환의 문자들과 전화, 혹은 에이전시 측의 전화들을 본다. 부재중이 대체 몇 개야..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두기에 전혀 몰랐다. 6시 30분. 준비라고는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택운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문을 열었고 잔뜩 열불이 난 표정의 재환이 문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형 잠들었죠?! 그러게 내가 뭐랬어요! 7시에 미팅인 거 잊지 말라고 했죠!”
“들어와, 일단.”
“지금 시간 없어요. 빨리 출발해야 돼!”
“나 씻어야 돼. 들어와서 기다려.”
“네!? 아, 씻긴 뭘 씻어요! 첫 미팅부터 늦게 나갈 거 에요!?”

펄쩍거리며 노발대발 성을 내는 재환에도 택운은 느긋하기만 하다. 하지만 재환은 절대 자신이 택운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에 결국 택운의 방으로 들어서 홀로 초조한 마음에 거의 30초에 한 번씩 시간을 확인하며 택운의 준비를 기다렸다. 아니, 무슨 남자가 씻는데 저렇게 오래 걸려! 7시가 다 되어서야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나오는 택운에 재환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준비를 마친 택운을 차에 태우고 약속 장소로 향했을 때, 시간은 이미 7시를 훌쩍 지나있었다. 재환이 오늘 미팅하기로 한 잡지사의 팀장에게 양해를 구하는 전화를 걸었을 때 그들은 7시가 되기 훨씬 전부터 장소에 도착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재환은 전화를 하면서도 택운을 향해 두 눈을 치켜떴다. 못살아, 진짜..아니, 잡지사랑 미팅인데 이렇게 처음부터 늦어버리면 어쩌자는 거야..인터뷰 기사 한 줄이라도 잘 못 쓰면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이미지 완전 끝장인데..하지만 여전히 택운은 태평한 표정으로 차 창밖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래..속 터지는 건 나 혼자지, 나 혼자야..팀장과의 전화를 끊은 뒤 재환은 엑셀레이터를 무작정 밟았고 그 와중에도 택운은 재환에게 두통약을 찾았다.

홍빈이 택운 측과 통화를 마쳤을 때 학연은 초조한 마음에 연신 입술을 깨물며 손가락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한 시도 가만히 두지를 못하였다. 자진해서 택운의 전속 인터뷰어를 맡긴 했지만 막상 10년 만에 만나는 택운에 학연은 택운이 눈앞에 서게 되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머릿속이 새하얬다. 혹시 택운이 자신을 알아본 뒤 이 모든 계약을 파기시키지는 않을지, 자신의 뺨을 때릴지는 않을지, 면전에 대고 욕을 하지는 않을지..

“학연씨 되게 긴장했네.”
“…네? 아, 조금요..”
“하긴. 내가 지금 학연씨 입장이라도 되게 긴장되겠다. 첫 전속인데 그것도 상대가 정택운이라니.”
“……”
“긴장 풀어요. 아무리 그래도 10년 만에 내한하고 처음 미팅인데 하대하기야 하겠어?”

아니요. 충분히 정택운은 나를 하대하고도 남아야 해요. 그가 나를 때리고, 욕을 한 대도 지난 10년간 내가 그에게 준 상처의 기억에 비하면 그것쯤은 보상조차 되지 않아요. 차라리 그 편이 내 마음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될 지도 몰라요. 그가 거의 도착했다는 홍빈의 말을 듣자 학연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는 기분이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하지만 일행이 도착했다는 웨이터리스의 말에 학연은 갑자기 발목이 시큰거리며 아파오는 것 같았다.

7시 30분이 다 된 시간. 재환은 여전히 느긋한 택운의 팔목을 잡아 이끌며 레스토랑 안으로 향했다. 택운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국에도 이런 레스토랑이 생겼을 줄이야. 고급스러운 실내와 귀에 익은 피아노곡이 내부에 가득 흐르고 있었다. 리스트의 콘솔레이션 3번. 레스토랑에서 연주하기 딱 좋은 곡이군. 지루하고 뻔한. 일행이 7번 테이블에 도착해있다는 웨이터의 안내를 받고 재환은 그들에게 무어라 변명을 해야 할 지 머리를 굴리며 택운보다 앞서 먼저 테이블에 도착하였다.

“죄송합니다. 오기 전에 약간의 사고가 있어서..저희가 많이 늦었죠?”
“아닙니다. 정택운씨를 모시려면 이 정도의 시간은 충분히 기다려야죠. 그런데 정택운씨는..?”
“아, 저기 뒤에 올 겁니다. 형! 빨리 와요!”

어차피 그쪽에서 죽어라 매달리는 쪽인데 서두를 것 있나. 택운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확인하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재환을 따라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택운이 가까이 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택운을 맞는 잡지사의 팀장과 아마 앞으로 자신의 전속 인터뷰어를 맡게 될..

“처음 뵙겠습니다, 정택운씨. 저는 Luve의 팀장을 맡고 있는 이홍빈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희 잡지사가 정택운씨의 첫 전속을 맡게 된 점을 굉장히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정택운씨?”

한 때 그 아이가 아니면 미쳐 버릴 것 같은 시절이 있었다. 그 아이가 내 옆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날들 말이다. 철없는 십대의 사랑이라기엔 우린 너무 아름다웠고 때 묻지 않고 순수 했었다. 내 서툴던 고백에 울음을 터트리던 너. 내 피아노 반주에 맞춰 아름다운 춤을 추던 그 모습. 담벼락 아래서 처음으로 한 입맞춤에 수줍어하던 그 모습. 두 손 잡고 걷던 짧은 데이트마저 소중했던 그 시간. 그 모든 것이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십대의 시절.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부질없는 기억의 조각이었다고 비웃어 보이듯, 이해 할 수 없는 이별 뒤에 찾아온 괴로움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찬란했던 십대의 끝자락은 널 찾아 헤맸었고 너는 그런 나를 두고 훌쩍 사라져버렸다. 우습게도 널 필사적으로 잊으려 하면 할수록 잊혀 지지 않던 그 때가 엊그제 같은데 시간은 끝없이 흘렀고 어느새 나는 이렇게 덤덤하게 너를 받아들였다. 아니, 받아들이려고 했었다.

“반갑습니다, 정택운씨. 이번에 정택운씨의 전속 인터뷰어를 맡게 된 팝 칼럼니스트 차학연입니다.”

네가 빌어먹게도 내 눈앞에 나타나기 전 까지 말이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습니다

이런 글은 어떠세요?

 
독자1
좋아요ㅠㅠ 진짜 취격탕탕 당했어요ㅠㅠ 다음편도 기대할게요^0^
10년 전
독자2
정모카)학연이가 택운이를 떠난거는 안타깝지만 그렇지 않았으면 택운이는 지금처럼 천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는 않았을거라고 생각해요ㅠㅠㅠㅠㅠㅠㅠㅠ택운이 한국 갔을때 학연이 생각이 나긴했지만 자기 두눈으로 학연이를 다시 보게되서 진짜 놀랐을듯ㅠㅠㅠ재밌게 잘 읽었어요.다음편도 기대할께요!!
10년 전
독자3
너무 좋아요ㅠㅠㅠㅠㅠ다음편 개대해봅니다ㅠㅠㅠ
10년 전
독자4
내일 온다고 말씀드렸는데, 신알신 쪽지가 온 걸 알고 결국 날이 지나기 전에 찾아왔어요. 그래도 제가 이 답글을 달면 열두시가 지나있을 테니까 녹색의자님도 이해해주겠죠☞_☜ 안녕하세요, 플라밍고예요.
첫사랑을, 학연이를 잊으려고 돌던 발걸음이 온전히 학연이를 향해있었다는 게, 참 아픈데도. 잊고 싶은 기억들은 꼭 언제나 찾아와서 사람을 괴롭히고 도망가요. 문득 생각이 들어서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게 하고, 한숨을 터뜨리게 하고, 심지어 꿈 속에서도 찾아와서 장난을 쳐요. 너무나도 순수하게, 먼저 사랑의 말을 뱉고, 손을 잡아서, 기다리는 내내 아무 말이 없어 애를 태우다가, 결국에 찾아간 달동네 그 아픈 곳에서, 더 아프게 무너지는 집을 보면서 서 있었을 택운이라서, '빌어먹게도' 하고 학연이의 존재를 나쁘게 선 그어버리는 택운이는 미워할 수가 없어요. 저는 글 속 택운이가 아니지만 그 마음이 내 마음인 것처럼 안타까워서, 10년 동안 한국을 피해온, 실은 한국이 아니라, 학연이를 피해왔을 택운이가 아프고, 애틋해요. 피아노를 치고 약을 삼키는 모든 손가락 마디에 학연이의 움직임이 담겨있는 것처럼, 택운이는 너무 아프게 10년을 자랐네요. 그리고 모든 감정들이 잠잠해졌다고 믿을 즈음에 다시, 정말로 빌어먹게도 눈 앞에 나타난 학연이를 보면서, 택운이는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요.
저는 음악을 몰라요. 피아노도, 사람들이 훌륭하다며 일어나 손뼉을 치는 선율도,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움직임도, 저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몰라요. 피아노를 칠 수도 없고, 그 선율에 제대로 감동받아본 적도 없고, 피아니스트의 움직임을 읽어본 적도 없어요. 하지만 그 레스토랑 안에서 학연이를 마주하기 전까지 들리던 지루하고 뻔한 선율이, 학연이를 마주한 이후로는 부서질듯 다급하게 요동칠 걸 알아요. 아까, 낮에 그랬던 것처럼 세 번째 얘기도 지금은 미뤄둘래요. 녹색의자님이 와서 내 선율이 엄청, 빠르게 요동치거든요@.@ 녹색의자님한테는 더없이 잔잔하고 고요해서 기분 좋은 밤이 되었으면 해요. 그리고 그런 꿈을 꾸셨으면 해요.

10년 전
독자5
헐 와 장난아니네요 ㅠㅠㅠㅠ
제가감히 이런글에 댓글을달아도될런지 잘모르겟지만
너무 감동받아서 써봅니다 ㅠㅠ
일단 설정도 장난아니고 쓰시는솜씨가아주 ㅠㅠ
당장 신알신하고 갑니다

10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분류
  1 / 3   키보드
필명날짜
      
      
      
      
      
빅스 [VIXX/켄엔] 월요일이 좋은 이유 01 1 슬러 02.16 22:39
빅스 [VIXX/켄엔/랍택/콩혁] 호그와트 마법 학교 관찰일지 04112 Violeta 02.16 22:23
빅스 [VIXX/랍콩] 커피와 초코우유 037 딸랑이 02.16 21:43
빅스 [VIXX/택엔/랍엔] 건반을 밟는 남자 035 녹색의자 02.16 20:45
빅스 [VIXX] 메신저2 2 느낌표 02.16 20:41
빅스 [빅스] 여섯 덩치와 빚쟁이의 단톡방 (생일축하헷) 39145 단톡방 02.16 20:08
빅스 [빅스/학연총수] 다크엘프 23 애련 02.16 18:31
빅스 [VIXX] 어느 몽상가의 우아한 세계 (부제 : Chaconne)27 cherish's 02.16 16:54
빅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19 SPY 02.16 16:42
빅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16 SPY 02.16 16:19
빅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16 SPY 02.16 15:35
빅스 [vixx/택엔] 청첩장번외42 컨트롤러 02.16 15:02
빅스 [빅스] 얼떨결에 아이돌 이상형 된 썰 777121 단톡방 02.16 09:32
빅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13 푸른 02.16 02:45
빅스 [VIXX/켄택] 머글들한테도 유명한 빅스 레오 남팬 일화 19196 디야 02.16 02:03
빅스 [VIXX/이재환/차학연] Love, Like A3 몬생깃다 02.16 01:37
빅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6 316 02.16 00:17
빅스 [택엔] 머리 좀 묶어줘(끝!!)2 옥수수 02.15 22:53
빅스 [VIXX/?/이별빛] 너빛쟁의 아찔한 마법학교 24 봉보네뜨 02.15 22:37
빅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33 이름모를새 02.15 22:29
빅스 [vixx/햇콩] 아가야 1826 실론 02.15 22:15
빅스 [VIXX/택엔랍콩] 하숙집 주인과 사랑방 하숙생들 : 0714 딸랑이 02.15 21:58
빅스 [VIXX/랍택/여체화] 나 오늘 지하철에서 완전 모델같은 커플봄106 디야 02.15 21:55
빅스 [VIXX] 죽어가는 골목 0510 실핀 02.15 21:10
빅스 [VIXX/별빛] 친구의날01 4 316 02.15 20:33
빅스 [빅스] Adore Scene 2014년 5월 26일33 단톡방 02.15 19:31
빅스 [VIXX/택엔/랍엔] 건반을 밟는 남자 025 녹색의자 02.15 1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