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왔구나. 급식은 맛있게 먹었고?”
“…….”
“오늘 급식 스파게티였잖아. 애들이 더 받느라 난리더라.”
대답 없는 어린 양의 새까만 눈동자를 주시하며 학연이 멋쩍게 뒤통수를 긁었다.
“…스파게티 싫어하니? 왜 싫어하지? 다른 애들은 좋아하던데.”
“…….”
“선생님도 스파게티 좋아해서, 오늘 두 그릇이나 먹었거든…….”
여자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잇는 학연의 얼굴이 꽤나 고통스러웠다.
애매하게 올라가있는 담임 선생의 미소가 가득 여자의 시야에 들어찼다.
선생님이랑 말하기 싫은가보구나.
학연이 부드럽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에 여자가 푹 고개를 꺾으며 학연의 책상 위로 시선을 돌렸다.
온갖 잡다한 물건들이 어지럽게 꼬아 흩어져있었다.
부질서한 모습에 저절로 인상을 찌푸린 여자는 이내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애매하게 찌그러져 있는 학연의 표정이 보였다.
“어……. 그러니까, 선생님이 따로 널 부른 이유는.”
“…….”
“내가 너한테 몇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야.”
“…….”
“대답해줄 수 있니?”
학연은 마치 사탕을 씹어 먹고 있는 어린 아이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처럼 느리게 말을 뱉어냈다.
여자의 또렷한 눈매가 학연을 찌를 것처럼 응시한다.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부모님은 잘 계시니? 아버지는 어떤 일을 하셔?”
“…….”
“생활기록부에 보면, 강남구에서 음식점을 하신다고 나와 있는데…….”
“…….”
“……학교 공부는 어때? 따라가기 벅차지는 않고?”
“…….”
“…대답 좀 해줄래?”
약간의 정적이 이어졌다.
학연이 대뜸 싱긋 웃었다.
생경한 어색함을 무마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학연에게 일말의 눈빛조차 보내주지 않았다.
유난히도 새까맣게 치렁치렁한 긴 머리카락이 학연의 눈동자에 닿았다.
점심시간 직후의 교무실이.
점차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몰라요.”
“…….”
“잘 모르겠어요.”
“…그래…….”
여자는 툭 한 마디를 내뱉고 다시 한 번 학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학연의 얼굴이 뚫어질 정도로 과했다.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져 있던 파일 중 하나를 골라잡은 그가 약하게 혓바닥을 씹으며 흰 종이 위의 글씨들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여자는 그런 학연의 움직임을 얌전하게 기다려줬다.
한참의 정적 끝에 학연이 말했다.
“친구들은…….”
“…….”
“…잘해주니?”
채 새살이 돋아나오지 못한 콧대의 상처가 여자의 마음을 아프게 쑤신다.
학연의 올곧은 시선이 잠시 여자의 새파란 피멍에게로 닿았다가 떨어졌다.
학연이 내뱉은 단어에 여자가 번뜩이며 두 눈을 반짝였다.
그것이 두려움인지.
어떠한 증오감에서 우러나오게 된 것인지.
학연은 잘 알지 못했다.
“그게 왜 궁금하신 건데요?”
“…….”
“웃기다.”
여자가 중얼거리며 웃었다.
그에 할 말을 잃어버린 학연은 답답한 손가락을 꾸물거리며 꾹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난 당연히 네 선생님이니까.”
“…….”
“알고 있어야지…….”
학연이 드문드문 말을 이었다.
여자가 무표정으로 그런 제 앞의 학연을 응시한다.
실로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는 눈빛이다.
증오.
갈구.
슬픔.
분노.
착잡.
그러나 학연은 그것을 그저 반항으로 치부할 줄로만 알았다.
미세하게 미간을 좁히던 학연이 곧 환하게 번지는 웃음으로 여자를 바라봤다.
“선생님이 알기로는 상혁이랑 제일 친하다더라.”
“…….”
“상혁이가 그렇게 공부를 잘한다며?”
“…….”
“우리 반도 아닌데. 둘이 어떻게 아는 사이야? 좀 말해줄 수 있어?”
“왜요?”
“…….”
“그게 왜 궁금해요?”
“…….”
“선생님도 나랑 하고 싶어요?”
생각보다 덤덤하게 내뱉어진 말에 여자가 입꼬리를 내린다.
학연의 표정이 빠르게 식어갔다.
학생들의 소음에 포박된 교무실 안에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오로지 그 둘 뿐이었다.
여자가 가뿐히 몸을 일으켰다.
한껏 눈을 내리깔아 고개를 숙인 여자는 조용히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끈질기게 그 뒷모습을 좇던 학연의 두 눈이 복잡함과 실망감에 얽히어 차갑게 변해갔다.
“…사실이었다는 건가…….”
천천히 여자와의 상담을 떠올려보던 학연이 느리게 중얼거린다.
그리고 곧 선생으로서의 어둔 자괴감에 빠져 얼굴 위에 손바닥을 엎어버린다.
그렇게 해서 마주한 어둠은 탁하고 검었다.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배려 없는 어두움이었다.
교무실을 빠져나온 여자가 이 층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서 벅찬 숨을 토해냈다.
달리고 또 달렸다.
어지럽게 메슥거리는 속이 곧 터져 나올 것처럼 울렁거린다.
식은 땀이 주륵 흘렀다.
저 멀리서 오 교시를 알리는 종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러나 몸을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계단 위 아무렇게나 다리를 꼬아 앉은 여자가 가만히 숨을 골라쉬기 시작했다.
“계속 찾아다녔는데.”
“…….”
“여기 있었네.”
“…상혁아…….”
여자의 삶은 항상 거짓말이었다.
여자의 나날들은 매번 거짓말같이 무서운 속도로 나락을 향해 추락했고.
거짓말처럼 아름답게 환해지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여자는 거짓말 투성이의 삶을 살고 있다.
도저히 납득당하지 못할.
시간의 삶을.
여자는 살고 있었다.
오늘도 그랬다.
여자의 소년이.
거짓말처럼 여자의 앞으로 나타났다.
상혁은 마저 계단을 내려와 여자의 인영을 응시했다.
왜인지 불안에 사로잡혀 잔뜩 몸을 떨어대고 있는 그 모습은 이번에도 즐거웠다.
상혁이 약하게 미소 지으며 상체를 굽혀 여자를 안았다.
여자가 그런 상혁의 품에 어리광을 부리며 고개를 부빈다.
“종 쳤다.”
“…….”
“가자.”
상혁의 손이 여자에게로 내밀어졌다.
학연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 사건의 전말을 정리하기 위해 애를 먹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학연이 고민했다.
오 교시 수업을 위해 스물 남짓의 선생이 교무실에서 자리를 비웠다.
고요한 분위기였다.
학연은 차분하게 노트북을 만졌다.
수행평가로 내놓을 자료들을 마저 정리하다가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학연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낯설지 않은 모습의 얼굴이 보인다.
학연이 반갑게 웃으며 인영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아, 응. 벌써 왔네? 이렇게 일찍 안 와도 되는데.”
“시간이 밀려서요.”
“교복은 받았어?”
“네.”
인영이 살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몇 살이라고 했지?”
“스무살이요.”
“아, 맞다. 스무살. 그랬지.”
학연이 급한 손짓으로 파일을 뒤적거렸다.
“음……. 이제 가져올 서류들은 더 없고. 내일부터 등교하면 되겠다.”
“정말요?”
“응. 내일부터 바로 나오면 돼.”
“와. 신난다.”
“…근데 이름이, 이……. 뭐라고 했더라.”
학연의 눈이 인영의 얼굴을 향한다.
“재환이요.”
“아…….”
"이재환.“
학연이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재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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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지 않을 우리들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