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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이준혁 몬스타엑스 샤이니 온앤오프
녹색의자 전체글ll조회 1165l 1

택운은 10년이라는 시간을 황량한 바다에서 보냈다. 목적지도 없이 출항된 나무토막 돛단배마냥 이리저리 파도에 치이며 전적으로 ‘홀로’ 아파했다. 학연은 제게 있어 낙인이었다. 아마 자신을 제외한 그 어떤 타인에게도 보이지 않을. 택운은 그 낙인을 매달고 다녔다. 수 백 번이고 지우려 노력했지만 결국 평생 지워지지 않을 흔적으로 남아버린. 학연이 떠나고 배낭여행을 떠난 기억이 있다. 강원도의 어느 산골이었는데 택운은 그곳에서 학연이 포함된 모든 기억을 버리고 오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서울로 향하던 기차 안에서 택운은 2시간 가까이 울었다. 그 울음은 택운이 결국 학연에 대한 기억들을 버리고 돌아오지 못했음을 뜻했다. 그리고 철저하게 자신을 버린 채 떠났던 학연.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학연이 눈앞에 나타났다.

택운을 떠나기 직전 학연의 모습과 현재의 학연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숨 막힐 정도로 여전히 아름다웠다. 택운을 바라보는 그 눈만 변하지 않았더라면 십대의 그때로 시간이 되돌아 간 것이라 착각했을 것이다. 택운을 사랑 하고 있다는 것을 여지없이 보여주던 학연의 눈이 지금은 우습게도 택운을 향해 글썽거렸다. 당장이라도 학연의 목을 조르고 소리치고 싶었다. 10년. 10년이었다. 네가 나를 철저히 배신하고 떠난 시간. 양심이 있다면 학연은 택운의 눈앞에 나타나선 안 되었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말이다.

“형. 인사 안 하고 뭐해요.”

자신을 소개해오는 학연에도 택운이 가만히 학연을 바라보며 서 있자 당황한 재환이 택운의 옆구리를 쿡 찔러왔다. 하지만 택운은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 차라리 그와 이름이 같은, 그와 생김새마저 비슷한 다른 사람이길 바랐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뻔뻔하게 다시 나타날 수는 없다고, 택운은 생각했다. 내 환각 속의 너는 춤을 추었는데 현실 속 너는 한낱 내 전속 인터뷰어가 되어 눈앞에 서있었다. 우스웠다. 죽고 못 살던 춤을 포기하면서까지 하게 된 일이 기껏 칼럼니스트라니. 택운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학연을 향한 모종의 실소가 택운의 입에서 터져 나왔고 학연을 그럴수록 택운의 앞에서 작아졌다. 항상 택운에게 자신 있고 당당했던 학연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어느새 방어하듯 웅크린 학연만 남아있었다. 학연의 위축된 모습에 쓸 데 없는 가학성이 마음속에서 피어났다. 치졸한 모습이래도 상관없었다. 우습게도 10년이 흐른 뒤에야 학연이 택운의 눈앞에 서 있다는 사실 하나에 택운은 마치 어린아이 같은 유치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택운은 학연을 잊지 못했음을 되돌려 스스로 인정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학연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철저히 학연을 무시하는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반갑습니다. 정택운 입니다.”

마치 10년 전 택운과 학연의 시간을 통째로 날려 버린 듯 행동하는 택운의 모습에 학연은 쓰디 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먼저 내밀어진 택운의 손을 잡았다. 10년 만에 잡아보는 학연의 손이었다. 짧은 악수였지만 택운은 학연의 손이 꽤 거칠어졌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때 그렇게나 미친 듯이 찾아 헤매었던 학연이 올곧게 제 앞에 서있음에도 택운은 학연과 이렇게 거짓 웃음을 지어보이며 손이나 맞잡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까무잡잡한 피부, 큰 키에 마른 몸, 무용을 전공으로 했던 아이인 만큼 태가 고운 몸 선.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세상에 이만큼 학연과 닮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차학연. 택운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이름.

‘운아, 나 소원 있는데.’
‘소원? 뭔데?’
‘우리가 나중에 어른이 돼서 네가 피아니스트가 되고 내가 무용수가 되면, 네가 나를 위해서 연주해줬으면 좋겠어. 관객은 나 한명!’
‘에이. 관객이 한 명인 연주회가 어디 있어.’
‘왜 없어! 완전 멋있을 것 같은데. 네가 연주를 하면, 나는 그 연주를 들으면서 거기에 춤을 출게.’

택운은 스무 살이 되는 해 학연의 생일날, 학연의 소원을 들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순간 막연하게 머릿속으로 떠올렸었다. 그리고 악상을 떠올렸었다. 학연만을 위한 노래를 작곡하고, 학연에게 연주해주어야겠다고.

‘..나는 너밖에 없어, 운아.’

나 밖에 없다던 너는. 내 연주에 맞춰서 춤을 추겠다던 너는. 네 손으로 모든 것을 어긋 낸 채 내 앞에 서 있었다. 가늘게 떨리는 학연의 손을 택운은 악수를 위해 붙잡고 있었지만 현실과 과거 사이의 틈바구니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혼동감이 온 몸을 감싸 안았고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에 손을 거칠게 놓자 당황한 재환의 표정 뒤로 상처 받은 표정의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빌어먹게도 나는 네 아픈 표정에 가슴이 아려왔고 나는 여전히 네게 약한 남자였다.

“…피아노를 다루시는 분답게 손이 굉장히 예쁘시네요.”
“……”
“저는 손이 되게 콤플렉스인데.”

정말…빌어먹게도 말이다.

홍빈이 재환과 택운의 식성을 물어 주문한 음식이 세팅되고 택운은 앞에 놓인 음식보다는 함께 세팅된 와인만 연신 잔에 따랐다. 10년 전의 사적인 감정 때문에 공적인 자리에서 휘둘리는 제 꼴이 볼썽사나웠다. 어색하게 웃으며 재환과 이야기를 나누는 학연. 아무리 그가 자신이 알고 있는 학연이 아니라고 부정해 보려 노력해도 택운이 학연의 손을 뿌리치는 순간, 학연의 얼굴에 서렸던 10년 전의 모습. 더 이상 빼도 박도 못할 증거였다. 그는 자신이 갇혀있는 테두리의 ‘차학연’ 이 맞았다.

“사실 이번 인터뷰는 학연씨가 자진했어요. 꼭 하고 싶다고 그러더라구요.”
“정말요? 택운이 형이랑 5주나 같이 얼굴 보시고 나면 꽤 까다롭다고 느끼실 텐데, 대단하네요.”
“그리고 학연씨가 전속 인터뷰를 맡게 된 게 처음이에요. 그래서 택운씨가 그 점을 조금 양해해주셨으면 좋겠는데.”

홍빈의 시선이 택운에게로 와 닿았다. 그리고 택운은 고개를 숙인 채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학연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인터뷰를 자진했다니. 대체, 이 무슨..상상을 초월하는 뻔뻔함에 놀라운 마음으로 박수라도 쳐 주어야 할 것인가?

“차학연씨라고 했나요?”

학연과 간단한 인사치레를 한 뒤로 한 마디도 하지 않던 택운의 입에서 떨어진 제 이름에 학연은 눈에 띌 정도로 몸을 떨었다. 그리고 들고 있던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은 채 택운과 시선을 마주해왔다. 택운이 사랑해 마지않던 눈동자였다. 까맣고, 빛나고, 항상 예뻤었던.

“저에 대해서 잘 모르시나 봐요.”
“……”
“웬만한 한국 기자들 치곤 저를 담당하겠다고 나서기 쉽지 않은데.”
“……”
“아님 제 열성팬이신가?”

자신에게 비수를 꽂는 듯한 택운의 목소리에 학연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를 잘 알기에 네 담당을 자진했다. 너를 누구보다도 많이 알기에 다시 만나고 싶었다. 10년 만에 한국 땅을 밟는다는 네 소식에 얼마나 기뻤는지, 너는 아마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 네 마음이 편하니? 목까지 차오르지만 차마 뱉을 수 없는 말에 학연은 떨리는 손을 가볍게 말아 쥐었다. 사실 누군가 제 몸을 툭 치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10년 만에 만난 택운은, 여전히 학연을 가슴 설레게 한다. 전처럼 따뜻하지도, 다정한 눈길로 저를 바라보고 있지도 않지만 너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열아홉이 되는 해의 겨울을 다시 떠올릴 수 있을 만큼.

택운의 냉정한 목소리에 급격하게 싸해진 테이블의 분위기. 재환은 몇 번이고 택운의 다리를 자신의 발로 툭툭 쳐왔다. 택운의 성격이 까다롭고 약간 까탈스럽긴 했지만 처음 보는 사람을 이렇게까지 면전에서 대놓고 비꼬다니. 그것도 앞으로 5주나 같이 얼굴을 봐야 할 사람인데. 홍빈은 택운의 질문에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학연의 눈치를 보았다. 암만 보아도 평소와 확연히 다른 모습. 3년 가까이 지켜봐온 바로는 홍빈의 기억 속 학연은 성실하고 예의바르며 밝고, 싹싹한 칼럼니스트였다. 아무래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와의 첫 미팅에 긴장해서일까.

1시간이 넘도록 결국 더 이상 학연과 택운 사이에는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택운은 답답한 속에 연신 와인만 들이켰고 학연은 고기를 씹어 넘기며 간혹 와인을 마시는 택운을 흘긋거렸다. 휠체어에 의지한 채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던 10년 전의 제 모습이 떠올라 학연은 아랫입술을 피가 고일만큼 질끈 깨물었다.

“학연씨. 왜 이렇게 어색해해요. 이제 택운씨랑 슬슬 번호도 교환해야죠. 앞으로 연락할 일 많을 텐데.”

택운은 학연이 가증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전속을 자진한 것으로도 모자라, 마치 피해자인 마냥 상처받은 눈을 하고 있는 저 얼굴. 애써 아픈 표정을 가리려 노력하는 듯 어색하게 웃어 보이는 저 얼굴. 그리고 택운은 자기 자신에게 환멸을 느꼈다. 자신을 떠난 학연을 저주했었다. 어째서 그래야만했는지, 혹시라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꼭 묻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재회하게 된 학연에게 택운은 그를 탓하고, 저주하기 보다는 잘 지냈냐는 안부를 먼저 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디 아픈 곳은 없었는지, 어쩌다가 무용을 그만두고 칼럼니스트가 되었는지, 나를 떠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는지, 내가..보고 싶지는 않았는지.

홍빈의 말에 우물쭈물 거리며 핸드폰을 든 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학연을 향해 택운은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리고 멍하니 자신을 바라봐오는 학연에 괜히 눈가가 시큰거려와 택운은 학연의 손에 들려있는 핸드폰을 빼앗듯 가져와 자신의 번호 11자리를 꾹꾹 눌러 찍었다.

“저는 공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과 사적인 통화는 원치 않아요.”
“……”
“자주 전화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자신의 착각이었을까. 학연의 눈에 눈물이 어려 오는 것도 같았다. 서른이 가까워오니 연기가 꽤 늘었네. 택운은 학연이 내미는 제 핸드폰을 낚아챘고 액정에 찍혀있는 학연의 번호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번호를 저장했다. ‘칼럼니스트 차학연’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이름이었다.

“택운씨 리사이틀이 열흘 정도 남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전에 인터뷰를 한 번 해야 할 것 같아요.”
“저, 이팀장님. 죄송한데 택운이 형이 공연을 앞두면 다른 스케줄은 잘 소화하지 않는 편이라서..”

이미지 생각해서 잡지사 측의 요구는 웬만하면 들어주자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톱스타 매니저같이 구는 재환의 모습에 택운은 작게 실소했다. 그래봐야 피아니스트일 뿐인데. ‘나 잘했죠?’ 하는 눈으로 택운을 바라봐오는 재환에 택운은 마시던 와인 잔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래도 공연 준비를 해야 하니 가능한 한 빨리 했으면 좋겠는데. 내일은 어때요?”
“택운이 형!”
“택운씨 쪽에서 그렇게 나와 주시면 저희야 감사하죠. 학연씨는 어때요? 내일 괜찮죠?”

평소와 다른 택운의 모습에 재환이 당황할 새도 없이 그렇게 내일 오전 중으로 첫 인터뷰 스케줄이 잡혔다. 더 오래 시간을 끌었다간 괜히 자리가 어색해질 것 같은 느낌에 홍빈은 그럼 먼저 일어나겠다며 계산을 마친 뒤 학연과 함께 레스토랑을 벗어났고 택운은 거의 손조차 대지 않은 채 자신의 앞에 놓여있는 메인 디쉬들을 보았다.

“형. 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요? 사람 놀래게.”
“저 사람이야.”
“네? 뭐가요?”
“내 첫사랑. 내가 지난 10년 간 한국에 발 안 디뎠던 이유.”

택운의 말에 잠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그게 무슨 말이냐며 되묻던 재환은 잠시 머릿속을 정리하다 그제 서야 그 뜻을 이해하고는 소리를 빽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그러니까 그때 말했던, 그..와, 나 진짜 어처구니가 없어서..어쩐지..자꾸 그쪽 잡지사 측에서 미친 듯이 콜 해올 때부터 뭔가 수상했어요. 형이 남자를..아니, 잠깐만..와, 진짜 미치겠네..근데 아까 이팀장 나이가 서른하나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럼 형보다 나이 많은 남자가 형 첫사랑..”
“아니. 이팀장 말고.”
“…네?”
“차학연 말이야. 내 담당 칼럼니스트.”

마치 들어서는 안 될 말이라도 들은 사람 마냥 재환은 가만히 그 자리에 못 박힌 채 서 있었고 택운은 재환을 향해 피식 미소 지은 뒤 일어서 먼저 레스토랑을 빠져 나갔다. 그리고 재환은 한참동안이나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니, 그러니까..진짜 저 인간 첫사랑이..이번 전속 칼럼니스트란 말이야!?

§

밤 11시가 넘은 야심한 시간의 한 청담동 카페. 2층으로 되어있는 구조의 카페 내부에는 간간히 야간 데이트를 즐기는 남녀 커플이 앉아있었고, 원식은 학연이 자주 마시는 에이드에 시럽을 잔뜩 넣고 얼음을 띄웠다. 연락도 없이 카페로 찾아 온 학연은 반가워하는 원식과는 달리 힘없는 얼굴로 한 테이블에 앉아 그대로 엎어져 버렸다. 분명 학연에게 무언가 우울한 일이 생겼다. 원식은 학연이 걸어오는 걸음걸이만 보아도 학연에게 좋은 일이 생겼는지, 좋지 못한 일이 생겼는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학연의 테이블로 다가가 그의 앞에 에이드가 담긴 잔을 내려놓고 원식은 테이블에 턱을 괜 채 가만히 학연의 까만 머리칼을 바라보았다. 학연은 언제나 원식에게만큼은 지나치게 솔직했다. 오늘은 어떤 일로 원식의 마음까지 속상하게 만들어 올지 원식은 머릿속으로 그에게 벌어진 일을 대충 예상해 본다.

“홍빈이형한테 들었어요. 그 사람 담당 지원했다면서요.”
“……”
“만났어요?”

학연은 이내 원식을 향해 고개를 들어보였다. 그리고 아무런 대답이 없는 학연에 원식은 말없이 웃으며 두 팔을 벌려온다. 학연은 그에 익숙하게 원식의 품에 안겼다. 원식은 학연의 등을 가볍게 도닥거렸다. 따뜻하면서도 그 손길에 약간의 투정이 섞여있다는 것을 학연은 안다.

“왜 이렇게 사람이 미련해요.”
“……”
“억지로 다시 만나서 좋을 게 뭐가 있다고.”

원식이 학연을 보는 눈빛은 학연이 10년 전 택운을 바라볼 때의 눈빛과 꼭 닮아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학연을 그저 챙겨주고 싶은 형이 아닌, 사랑하고 있다는 것 역시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원식은 학연이 아직도 택운을 사랑하고 있으며 그 대가로 모든 것을 잃은 것을 알고 있어도 묵묵히 학연을 지켜 봐줄 뿐이었다. 그래서 더욱 더 원식에게 마음을 열고 싶지 않았다. 원식의 감정을 알고서도 기대는 건 정말 못할 짓이라고, 정말 잔인한 짓이라고 입으로는 되뇌이면서도 학연은 사람의 체온이 필사적으로 필요해 원식에게 기댔고 그런 원식은 매번 아무런 말없이 학연을 안았다. 그런 원식이 자신에게 택운을 향한 투정을 부려온다. 물론, 원식은 학연이 상처받지 않기를 원했기에 택운과 재회하려는 학연이 혹여 또 다시 아파할까 두려웠다. 하지만 원식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택운의 마음이었다.

“형한텐 그 남자가 전부죠.”
“……“
“나한텐 형이 전부에요.”

원식은 어쩌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학연이 택운에게 온갖 상처를 다 받고서 자신을 찾아 온 것을. 애잔해져 오는 마음에 원식을 향해 고개를 들자 원식은 학연을 향해 쓰게 웃어보였다. 그것이 꼭 거울을 보는 것 같아 슬퍼왔다. 일그러지는 학연의 뺨을 쓰다듬는 그 손길에서 원식의 진심이 느껴졌다. 원식의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단 한 번도 형한테 마음을 구걸했던 적 없었어요.”
“……”
“나는 형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그게 다에요.”

학연은 택운이 차라리 자신에게 화를 냈으면 했다. 왜 다시 돌아와 날 혼란스럽게 하냐며 때렸으면 그렇게 까지 마음이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담담히 타인을 대하는 시선으로 자신을 내려다보았을 땐 눈물 먼저 흐를 것 같았다. 그리고 그가 거칠게 자신의 손을 던지듯 놓는 순간 깨달았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학연이 형.”
“……”
“속상하게 왜 내 앞에서 그 사람 때문에 울어요.”

택운이 학연을 보는 그 시선이 너무 아파 견딜 수 없었다. 정말 심장이 뜯겨나가는 고통에 아파 죽어 버릴 것 같았다. 학연의 억눌린 울음에 말없이 원식은 학연의 등을 쓸어내렸다. 미국에서 택운에게 차마 보내려다 보내지 못한 편지가 수 백 통은 됐다. 차마 하고 싶었던 말을 못 다하고 떠나는 바람에 택운에게 할 말이 너무나도 많아서 글로 적다보니 넘쳐흘렀고 여러 번 우체통 앞에서 망설였다. 학연은 결국 택운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하지 못했고 우리는 어느새 이렇게 어긋나 버렸다. 가슴을 부여잡고 무너져 내린 학연을 다정하게 안으며 달래는 원식의 품속에서 학연은 잔인하게도 택운을 추억했고 울지 말라는 목소리에서 또 택운을 찾았다.

학연은 10년이라는 영겁의 시간이 자신을 단단하게 담금질 시켜 주리라 굳게 믿었다. 택운을 다시 만나도 그에게 웃으며 인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바보 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오늘 10년 만에 다시 만난 택운이 자신을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해왔을 때, 학연은 자신이 택운을 사랑했었고, 지금도 여전히 택운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슬프게도 깨달았다.

 

*

플라밍고님이 안아주고 싶은 소년을 읽어주셨었다니'ㅇ' ..영광이에요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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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정말 좋아요ㅠㅠㅠㅠㅠ 태긔야ㅠㅠㅠㅠㅠ 요니한번만 생각래주려뮤ㅠㅠㅠㅠ
10년 전
독자2
정모카)택운이가 요니한테 저런식으로 대하는게 매정해보일수 있지만 저는 택운이의 행동과 심정이 이해가 될꺼 같아요ㅠㅠㅠ10년동안 가슴에 학연이라는 각인을 새긴채 지내왔으니ㅠㅠㅠ잘 읽고 가요!!
10년 전
독자3
미련한. 미련한 정택운, 미련한 차학연, 그리고 왜 그리 미련하냐고 말을 하면서도 누구보다 가장 미련한 김원식. 아무것도 손에서 놓아버리지 못하고 같은 자리를 돌고 도는 세 사람이 너무 미련해서, 도리어 애틋해서 짜증을 낼 수도, 울음을 터뜨릴 수도 없었어요. 내내 입술만 깨물다가 세 번째 이야기를 다 읽었을 때, 플라밍고님, 하고. 헉, 소리날 정도로 놀라서 한참을 봤어요. 저 플라밍고가 나를 얘기하는 건가? 나? 난가? 와, 어떡하지, 진짜@.@? 제가 더, 훨씬 영광이에요. 자꾸 인사가 늦네요ㅠ.ㅠ 미안해요, 플라밍고예요.
저번 글에서는 택운이가 너무 아파서 택운이 편을 들다가, 학연이가 비밀로 감춘 그 사정 때문에, 그래도 지금 이렇게 겨우 손을 내밀었는데 거칠게 손을 놓아버리는 택운이가 조금은 미웠어요. 그러다가 내가 보고 싶지는 않았는지, 그렇게 생각해버리는, 여전히 학연이에게 약한 택운이라서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택운이 편을 들게 돼요. 그리고 감정은 너무 매섭게 겉돌아요. 뿌리친 손 아래로 숨긴 수많은 안부의 말과 잊을 수 없는 감정, 자신을 가둔 첫사랑의 테두리는 학연이에게 닿지 못했고, 차오르는 감정을 눈가에 담아두었다가 터지는 울음을 택운이는 몰라요. 어긋난다는 게, 그 말부터 참 슬픈 것처럼.
조금 무서운 상상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감정이 누군가에게 온전히 닿았으면 할 때가 있어요. 말로 풀어내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모두 알아들을 수 있게. 만약에 10년만에 재회한 두 사람이 서로를 보고, 그 생각이 서로에게 닿았다면, 손을 매섭게 뿌리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입은 가끔 거짓말을 하잖아요.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고 소리치는 마음을 모르는 척하고 혀에 날을 세워서 미운 말을 쏟아내고, 뒤를 돌아서면 후회하고. 하지만 내 모든 감정이 닿지 못하리란 걸 알아서, 저는 또 다음 글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고마워요.

10년 전
독자4
ㅠㅠㅠㅠㅠㅠㅠ언제쯤 서로의 마음을 알까요ㅠㅠㅠㅠㅠ 우리원식이는ㅠㅠㅠㅠ빨리 다음편을 읽어야겠어요ㅠㅠ
10년 전
독자5
ㅇ와진짜 이렇게 아련하고 아름다운글은 오랜만입니다.
정말 감사하고 끝까지 연재해주세요.
처음에 택엔에만 주목햇는데 이래서 랍엔도 섞여잇구나
이제알겟더라고요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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