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할 수 있지? 가식적인 미소를 띄며 은근히 나를 농락하는 상사의 얼굴을 보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매번 그의 앞에 설 때 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는 탓에 입술에 피딱지가 가실 겨를이 없었다. 재 작년 삼월 초 다른 사람과 비슷한 대학을 졸업하고 비슷한 스펙을 지녔던 나는 운좋게 번듯한 직작에 입사를 했다. 대학 생활 내내 그리고 그리던 꿈의 회사였기에 내 청춘을 이 회사에 다 바치리란 생각마저 했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결심은 채 이년이 가지 못 했다. 내 눈앞에 보이는 인사이동 공고가 믿기지가 않았다. [김민석 사원→대리 / 중국 지사 발령] 중국에 지사를 새운지 채 5년이 지나지 않았다. 넓고 광활한 중국 대륙은 많은 기업들에게 좋은 기회의 장이었고 발빠르게 자신의 지사를 설립하던 타 회사들과는 달리 조금 늦게 시작한 것이다.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지사에 발령받는 것은 사실상 좌천이나 다름 없었다. 분명 배후에는 김준면 그 새끼가 있을 것이다. 좋은 바로 직속 상사인 김준면 팀장은 나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 첫 출근, 대학에 처음 발걸음을 내딛는 새내기 처럼 풋풋하게 인사를 돌리던 나에게 유일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인사를 받지 않았던 작자였다.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 있는 건가 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러나 그건 회사 생활에 있어 장마의 시작이었다. 김민석씨 여기 커피 부터 시작해서 복사, 제본, 타이핑, 하루종일해도 끝내지 못하는 작업량을 끊임없이 주는 것 뿐만 아니라 발을 건다던지 뒤에서 나의 욕을 하고 다닌다던지 하는 성숙하지 못한 언사마저 구사를 하는 것 이었다. 그렇게 이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관료제 사회 속의 일원으로 그에게 잘잘못을 따진다는 것은 내 인생을 걸어야 하는 일임이 틀림이 없었다. 타인앞에서만 드러내는 그 특유의 가식적인 미소를 곱씹으며 그에게 이렇게 말 할 수 밖에 없었다.
" 네 팀장님 당연하죠."
씨발.
8월의 북경 날씨는 무척이나 더웠다. 북경의 온도가 서울과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습한 기운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중국 최대의 공항답게 사람들이 바글바글대는 꼴도 보기가 싫었다. 한국에서 부터 질질 끌고 왔던 검정 트렁크는 타인의 발자국들로 하얗게 도장을 찍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보이는 허허벌판에 기가찬 웃음만 나왔다. 자신의 자회사가 있던 신논현에서 뼈를 묻으리라 다짐했던 나에게 있어서 이런 북경의 생활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3시 까지 북경 지사의 팀장과 만나야 했으므로 지나다니는 노란 택시를 잡아 회사로 향했다.
XX기업 이라는 글자가 세겨진 비석 앞에는 땀을 뻘뻘 흘리고 서있는 민석의 모습이 보였다.
저녁 8시, 매일 집으로 오는 버스 안은 고요하기만 하다. 한 명, 두 명 자신의 종착역을 찾아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버스 안은 고요함과 한적함만이 남는다. 오른쪽 가장 맨 뒷자리 바로 앞. 파란 의자 위에는 항상 백현이 타 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66번 버스의 그 자리만을 고집하는 민석의 표정은 무척이나 덤덤하다. 몇 번의 덜컹거림 이후 밖이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백현이 하늘을 올려다 보니 먹구름이 가득하다. 후두둑- 쏴아아 작게 틀어놓은 엠피쓰리의 볼륨소리를 뚫고 빗소리가 귀를 울린다. 최근 무척이나 더웠던 지상의 열기를 식히려는듯 예상보다 많은 양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소나기다. 아씨 우산 안들고 나왔는데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민석은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삐익- 버스 하차벨을 울리고 백현은 출입구 앞에 선다. 엠피쓰리 볼륨은 3정도 더 올려 '그때 크게 다툰 후로 우린 멀어져'하는 노랫말이 더욱 크게 들렸다.
탁탁탁-
집으로 향해 빠르게 뛰어가는 민석의 발걸음엔 힘이 보이지 않았다. 축축 늘어진 발걸음. 질척이는 비와 다 젖은 바지. 누가 보더라고 영락없은 물에 빠진 생쥐꼴이었다. 빨리 집에가서 씻어야지 하고 생각하던 민석의 발걸음을 늦추는 것은 갑작스레 울리는 전화벨소리 였다. 이어폰을 살짝 눌러 전화 통화를 연결한 백현의 귓속에는 크나큰 적막만이 흘렀을 뿐 이다.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이거 방탄 찐팬이 올린 위버스 글인데 읽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