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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미친.”
여주 뒤에 있던 놈을 잡아채서 골목으로 끌고 와 놈의 얼굴을 확인한 석진이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안면이 있는 자였다.
“뭐야 너.”
“하이.”
“이제는 여자도 의뢰받아?”
“뭔 소리야. 그 쪽 찾아서 왔는데.”
“뭐?”
“말도 없이 이사 가신 덕분에 찾느라 애먹었다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열여덟 살 고딩은 당당하게도 말했다. 석진을 찾아온 거라고. 어이없음도 잠시 불길함이 석진의 뇌리를 스쳤다. 그러면 여주 스토커는?
“너 다른 이상한 놈 못 봤어?”
“여기 나 말고 이상한 놈 없는데.”
“확실해?”
“응.”
매일 밤 여주 뒤를 따라오더니 오늘은 왜 없어. 석진의 뒤로 정국이 뛰어와서는 석진의 앞에 있는 고딩에게로 바로 돌진해 주먹을 날렸다. 빼빼 마른 열여덟 살 학생은 고통스런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정국이 또 한 번 주먹을 드는 그 때, 석진이 정국의 팔을 잡았다.
“뭐야.”
팔을 놓지 않으며 석진 역시 때려버리겠다는 표정으로 정국이 말했다. 석진이 정국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니라고?”
“얘는 내가 아는 애야. 사람 잘못 잡았어.”
“뭐?”
정국이 방금 맞은 볼을 문지르고 있는 제 아래의 고딩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어려보이는 외모가 여주의 뒤에 있던 놈은 아닌 듯했다. 일이 틀어졌다.
“시발.”
정국이 왔던 길로 다시 빠르게 달려갔다. 제발, 정여주 아무 일도 없어라.
***
하필 오늘 구두를 신어버린 탓에 원래부터 불편했는데 쥐가 난 상태에서 휘청 이는 다리를 괜찮은 척 하려니 힘들었다. 이 집, 터가 안좋은 게 확실하다. 악마가 새벽에 창문으로 쳐들어오질 않나 이상한 놈이 우리 집 열쇠를 따고 있질 않나. 호흡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저기 뭐하세요?”
남자는 말이 없었다. 눈동자가 흐리멍텅하고 표정이 기분 나쁜 게 집을 잘못 찾아온 것 같지는 않다. 도둑? 또 경찰 불러야 하나. 며칠 사이에 경찰 아저씨들과 마음의 거리가 아주 가까워졌다. 내 평생 경찰아저씨들과 친해질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까는 이상한 놈이 뒤따라오더니 이번에는 도둑이다. 오늘 미쳤어 진짜. 전정국 말을 들을 걸. 그깟 공부가 뭐가 중요하다고. 아... 이거 어떡해야하지. 내 집인데도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다. 남자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보통 도둑은 범죄 행위를 들키면 도망치는 거 아니었나? 왜 가만히 있지?
“여주 씨.”
남자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왔다. 뭐야, 우리 아는 사이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저 아세요?”
“아까 가고 있다고 했잖아요. 왔어요.”
핸드폰에 왔던 문자를 말하는 건가? 아까 뒤따라오던 이상한 남자가 아니라 저 사람이 보낸 거라고?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이 뒤죽박죽 엉켰다. 기사에서 보긴 했어도 막상 나한테 이런 상황이 닥쳐버리니까 뭐부터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머리로는 신고부터 해야한다고 사고회로를 돌리는 중이었지만 정작 내 몸은 가까이 오는 저 남자를 피해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조용한 복도에서 유일하게 나는 소리는 내 구두가 바닥에 닿는 소리였다. 구두 소리가 공호감을 조성할 줄이야.
또 한 발짝을 뒤로 떼는데 바닥이 닿지 않았다. 뒷걸음질을 치다 결국 계단에 와버린 모양이었다. 뒤로 넘어가는 내 몸을 잡은 건 전정국이었다.
“괜찮아?”
정국을 보자마자 밀려드는 안도감에 숨을 내쉬었다. 정국의 존재가 나름대로 크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대로 내 어깨와 무릎을 받쳐 들고 안아든 정국이 남자를 향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3초 준다.”
비릿하게 웃고 있는 정국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퍼져있었지만 구석구석 진지함 역시 담겨 있었다.
“죽을힘을 다해서 도망가. 넌 오늘 뒤졌으니까.”
정국의 기에 압도된 남자가 겁에 질렸는지 우스꽝스런 걸음걸이로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후 정국은 나를 집 안에 데려가서 구두를 벗겨주었다.
“따뜻한 물에 발부터 담가.”
말을 남긴 정국은 친절히 문까지 닫아주고는 놈을 잡으러 나갔다. 오늘 전정국 바쁘네. 오늘 진 빚만 해도 몇 개냐.
***
석진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겨우면서도 묘한 쾌감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스스로가 변태같이 느껴졌다. 내 안에 이런 기질이 있을 줄이야. 석진은 정국이 휘두르는 주먹에 맞춰서 자신의 주먹도 막 휘둘렀다. 와, 전정국 완전 싸움꾼이네. 상남자다 상남자.
오랜만에 만난 새파랗게 어린놈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수상한 놈이 허겁지겁 뛰어오기에 앞을 가로막고 섰더니 조금 뒤 정국이 나타나서 놈의 멱살부터 잡았다. 정황상 저 놈이 여주의 진짜 스토커였다. 19세 미만은 관람하지 못하는 장면을 펼쳐주시는 정국 덕분에 석진은 저를 찾아왔다는 열여덟 살 소년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아 나도 볼래!”
“미성년자 관람 불가야.”
석진은 무심하게 답하며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화려한 장면을 연출하는 정국을 구경했다. 간만에 생긴 볼거리였다.
“네 놈 명줄이 긴 게 짜증나지만 여자들 상대로 이상한 짓은 하지 말고 적당히 즐기다 와. 지옥에서 만나면 아작을 내줄테니.”
정국은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또박또박 제 밑에 있는 남자에게 경고했다. 정국의 밑에 깔려서 두 손을 모으고 싹싹 비는 남자의 모습은 볼만했다. 이미 석진의 기에 한 번 눌려 제정신이 아니었던 남자는 정국이 오자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정국은 아직도 분이 안 풀리는지 남자의 멱살을 놓지 않았다. 경찰차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정국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손을 탁탁 털며 일어섰다.
“네가 불렀어?”
“불쌍해서.”
“배려심 하나 끝내주네.”
“칭찬 감사. 그런데 너도 몸 사려야지. 까딱하다간 네가 폭행 범으로 잡혀 들어가.”
정국이 눈살을 찌푸렸다. 잘못한 새끼는 저 새끼인데 왜 내가 잡혀 들어가. 정국의 사고방식으로는 아무리 이해하려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숨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정국의 태도에 석진은 주먹을 쥐고 정국의 볼을 가격했다. 난데없이 날아든 충격에 고개가 돌아간 정국이 터진 입술을 매만지며 석진을 쳐다보았다.
“미쳤어?”
“너도 맞은 티가 나야 정당방위 취급을 받지.”
“와…….”
그럴싸한 이유가 있는 주먹이었으나 그 주먹에 석진이 정국에 대해 가진 여러 가지 감정이 깃들어있는가에 대한 유무는 석진 만이 알고 있을 터이다. 정국이 석진을 향해 분노를 내비치려는 때에 경찰차가 멈춰 섰다.
“나이스 타이밍.”
석진이 눈썹을 올렸다 내리며 말했다.
몇 분 뒤 정국과 여주에게 스토커 짓을 한 남자를 경찰들이 데려가면서 상황이 정리되었다. 두 팔은 팔짱을 끼고 멀어지는 경찰차를 계속 주시한 채로 석진이 입을 열었다.
“그럼, 꼬맹아.”
석진의 옆에 있던 소년이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석진의 눈치를 보았다. 경찰이 온 틈을 타서 도망 가려했으나 석진에게 목덜미를 잡히는 바람에 결국 옆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어야했다. 여태까지 안 들키고 잘하고 있었는데 그 이상한 아저씨 때문에 들켜버렸다. 정확하게 무슨 잘못을 한 건지는 모르지만 경찰서에 가서 팍팍 썩었으면. 소년이 머리를 박박 긁었다. 도망가고 싶어도 이제는 발등까지 꽉 밟고 놔주지 않는 석진 때문에 도망갈 수도 없었다.
“이강우.”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소년이 움찔거렸다. 석진이 옆으로 고개를 돌려 강우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민윤기한테 지금까지 보고한 것들 전부 불어. 하나도 빠짐없이.”
여러분 윤기 기억 나시죠? 첫 등장한 날 아무도 얘기를 안 해줘서리ㅎ
이제 개강을 하기에...
1일 1연재는 쬐애끔 힘들 것 같습니다ㅠ
그래도 빨리 데려올게요. 남은 휴일 잘 보내세요~
W. 사프란(Spring Croc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