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님, 홍보활동 서류 완성본입니다.”
그동안 지겹게 봐오던 사건보고 파일과는 전혀 다른 홍보활동 파일에 반장님이 흥미롭게 종이를 뒤로 남겼다.
“으음,”
글을 읽으시면서 눈썹이 꿈틀거리고, 턱을 매만지고, 고개를 끄덕이는 행동 하나하나가 긴장되었다. 평소에는 늘 듬직한 형처럼, 가족처럼 지내는 팀일지라도 서류로 남아야하는 일적인 부분에서는 칼같이 날카로운 지적을 날리시는 반장님이셨다. 물론, 그런 점이 우리를 더 배우게 하지만.
“괜찮네. 이제 보고파일도 제법 한다, 김여주?”
다행스럽게도 매서운 눈빛으로 서류를 읽으시던 반장님이 웃으며 서류파일을 책상에 내려놓으셨다. 그리고 더 기분좋게 만드는 칭찬까지도 해주셨다.
그렇게 반장님이 칭찬을 시작하면 덩달아 하형사님돠 윤형사님도 “이제 더이상 막냉이들이 아니야.” 하며 칭찬에 동참해주셨다.
씰룩거리는 입고리가 진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면, 저어기 책상에 앉아있는 황형사님도 나를 보며 함께 입꼬리를 올리고 계셨다. 어쩌면 나보다 더 들뜬 마음을 애써 누르는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뿌듯하게 날 보고 있는 황형사님을 바라보고 싱긋 웃음을 보이자 그에 답하듯 여전히 예쁜미소를 보여주는 황형사님이었다. 게다가 황형사님이 기분이 매우 좋을때(술을 마셨을때) 마다 가끔 나와서 나를 빵빵 터트리게 하는 윙크도 덧붙이셨다.
“(잘했어)”
아무도 모르게 입모양으로 말을 전하는것도 잊지않고.
그렇게 칭찬을 등에 업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자리에 앉아 조심스럽게 목걸이를 매만졌다. 마치 수호신이라도 된것마냥 이 목걸이를 한 이후에는 좋은일만 가득했던것 같다.
목걸이를 보자니 또 황형사님 생각이 나고 웃음이 피얼올라 황형사님을 바라보니, 마찬가지로 나를 보며 웃음짓고 있는 황형사님이었다.
원래 이렇게 애교가 많은 사람이었나, 주위 눈치를 보면서도 아무도 모르게 손하트를 보내오는 황형사님의 애교가득한 모습에 결국 내가 K.O
도저히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다 이내 책상에 고개를 묻었다. 눈을 감아도 여기 저기 둥둥 황형사님의 얼굴이 떠다녔다. 눈을 감고 입술을 쭉 내밀어 뽀뽀를 날리는 모습, 눈이 마주칠 때 마다 보여주는 눈웃음 또는 예쁜 윙크. 오늘 하루 종일 보여준 황형사님의 수많은 모습들이 온통 머릿속을 헤집었다.
"김여주!!"
"네!"
그렇게 멈출줄 모르고 새어나오는 웃음을 가려보려 책상에 고개를 묻고 있다가 다급히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급히 표정을 바꾸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또 시야에 들어오는 황형사님의 모습에 짧게 피식, 웃음을 흘리고 이내 입술에 힘을 꽉 주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했다.
"어디 아파? 왜 엎드려 있어."
"아닙니다."
"그럼 같이 자료실 좀 가자."
할일이 바쁜듯 먼저 쌩하고 밖으로 나가시는 윤형사님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더니,
눈이 마주치자 마찬가지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기 힘든 듯한 황형사님도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결국 고개를 숙이셨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웃음이 났고, 경찰서 사람들 아무도 모르는 오직 우리 둘만 알고 있는 꽁냥거림에 웃음이 났고, 보고만 있어도 너무 예쁜 사람이라 웃음이 났다.
삭막한 경찰서 안에 아무도 모르는, 단 둘만 알고 있는 핑크빛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
뻐근한 허리에 크게 한번 기지개를 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의자에 기대어 거하게 하품을 하던 성우가 손을 들고는 하이파이브를 건네왔다. 오늘도 이렇게 둘이 하나의 사건을 마무리했다는 의미였다.
쌍방폭행사건은 다행스럽게도 빠르게 합의로 마무리 되었고 마찬가지로 그덕에 빠르게 서류도 마무리 지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 컨디션이 좋지않아지는게 느껴졌다. 온몸이 찌뿌둥하고 머리도 지끈거리는게 배도 살살 아파왔다. 그럴때면 나의 비타민인 황형사님을 바라보고 그 미소 한번에 또 힘을 얻었다.
"반장님, 방금 폭행사건 합의로 사건 종결 처리했습니다."
"수고했어."
처음에는 하나의 사건에도 어쩔줄 몰라하며 전투적으로 매달리던 나와 성우도 어느새 눈앞에 놓인 밀린 숙제처럼 빠르게 사건을 턱턱 해결해 나가고 있었다. 내 입으로 이런말 하기에는 민망하지만 더 이상 아무것도 모르던 막내시절의 형사가 아니였고, 형사님들의 대우도 그랬다.
얼마전 제복을 입었을 땐 초심을 잃은것 같아 서글픈 마음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성장했고, 일에 찌든 만큼 더 많은걸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센치한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다운되는게 아무래도 몸 상태가 확실히 정상이 아닌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도 밀린 사건이 수두룩 하기에 자리에 서서 허리를 양옆으로 돌려가며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사건수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많이 움직여야 했으니까.
방금 합의를 마무리 지은 사람들을 바래주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온 성우도 장시간 앉아있으려니 몸이 뻐근했는지 나와 함께 스트레칭에 동참했다. 매번 같이 공부하며 함께 해온 스트레칭이라 순서만 다를 뿐 둘다 비슷한 동작들을 하고 있었다.
서로 누가누가 더 시원하게 하나 내기라도 하듯 "으아-" 하는 아저씨 소리를 내가며 온몸을 쭉 쭉 당겼다. 그러다 벌써 지치기라도 한듯 성우가 먼저 스트레칭을 멈췄다.
"김여주, 이거 허리에 묶어."
팔을 들어올려 위로 쭉 뻗으며 몸을 풀다 성우의 뜬금없는 소리에 다시 팔을 밑으로 내렸다. 뜬금없이 자신의 후드집업을 내밀며 허리에 묶으라니. 게다가 후드집업을 내밀면서 왜 내 눈은 쳐다보질 못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성우의 행동에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으유, 칠칠아. 나니까 다행이지. 얼른 화장실 가봐."
손에 후드집업을 쥐어주고 먼저 지나쳐 자리에 앉는 성우의 말에 이제야 느낌이 왔다. 바보같이 그 자리에 서서 "아-" 하는 말만 내뱉었다. 부끄럽고 민망하고를 다 떠나서 그냥 멍하니 아- 이 한마디만 나왔다.
땅에 뿌리라도 내린 나무처럼 손에는 후드집업을 들고 멍하게 있다가 누군가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라도 분것처럼 갑자기 화장실로 달렸다. 역시나 청바지에는 새빨간 피가 묻어나와 있었고 그걸 발견했을 성우를 생각하니 그제야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평소 성우의 말처럼 칠칠이 인지라, 제때 날짜를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때면 성우가 나를 대신해 학원 옆 편의점에서 생리대를 대신 사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 때로부터 또 몇년이 흘렀는데 어째, 나이가 먹어도 똑같이 칠칠이야.
찝찝한 느낌에 얼른 숙직실에 들려 새로운 바지를 꺼내들었다. 한달의 절반은 이곳에서 생활하느라 귀찮아서 집에 가져가지 않은 옷들이 쌓여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무래도 이곳은 대부분이 남자라 이런 부분들이 가장 많이 신경쓰였다. 곧바로 샤워실에서 빠르게 손빨래 까지 끝내고는 혹시 하는 마음에 온몸에 칙칙 향수까지 뿌렸다.
그리고 다시 성우의 후드집업을 손에 들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감사합니다."
장난스럽게 90도 인사를 하면서 후드집업을 건네자 성우는 내가 민망하지 않게 짧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민망함과 찝찝함, 하지만 내게 더 큰 시련을 일으킨건 따로 있었다.
평소에는 생리통이라는걸 전혀 모르고 살았는데 계속된 불규칙적인 생활과 스트레스 때문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허리와 아랫배는 더더욱 아파왔고 식은땀까지 새어나왔다.
허리는 끊어질것같이 아프고 배에는 누군가 커다란 돌덩이를 올려놓은것 마냥 욱씬거렸다. 낯선 고통에 더이상은 안되겠어서 다시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흐르는 식은땀과 몸을 짓누르는 고통은 여전한데 정신은 점점 아늑해졌다.
.
.
.
"김여주, 너 아까부터 어디 아파? 왜 자꾸 엎..
뭐야, 식은땀봐. 야, 김여주!!"
***
어떻게 여기까지 와서 누워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직 창 틈으로 햇살이 비춰오는걸 보니 다행히 시간은 얼마되지 않은것 같았다.
이전엔 한번도 이런적이 없었는데, 고작 그 생리통 주제에 사람을 녹초로 만들었다. 왠만하면 다시 일어나 사무실로 향할텐데 그럴 힘도 나질 않았다.
그래도 가봐야하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 성우에게 연락이라도 해보려 베개옆에 놓여있던 휴대폰을 들면 타이밍 좋게도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양손 가득 커다란 봉지를 가득 들고 조용히 들어온 황형사님은 내가 깨어있는걸 발견하고는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짐들을 침대 옆에 내려두더니 살짝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보았다.
"좀 괜찮아?"
기분탓일지도 모르지만 아까보다는 조금 괜찮은것 같아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러자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식은땀을 손으로 닦아내주는 황형사님이셨다.
"일단 약먹어야 하니까 밥 부터 먹자."
그 황형사님의 말에 그제야 점심시간임을 깨달았다. 황형사님은 가져온 여러봉지를 뒤적이더니 이내 죽이 한가득 담긴 도시락을 꺼내들었다.
"저 그냥 밥먹어도 돼요."
"안돼, 죽먹어야해."
"아니... 저 죽 안먹어도 되는데..."
"스읍, 안돼."
아니, 제가 속이 아픈것도 아니고 배가 아픈것도 아니고 굳이 죽을 먹을 필요가 없는데...
저 죽 싫어한다구요... 이런 내 마음과는 달리 세상 단호한 황형사님은 절대 안된다며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드셨다.
그리고 자신의 무릎에 올려 죽을 한숟가락 퍼서는 뜨겁지 않게 호- 하고 입바람을 불었다. 그 정성가득하고 단호한 모습에 결국 황형사님이 먹여주는 죽을 받아먹었다.
한입 한입마다 입바람을 불어주고 각각 다른 반찬을 올려주는 황형사님의 정성에 곧 그릇이 바닥을 보이자 황형사님은 뿌듯한 미소로 뚜껑을 닫으셨다.
"깜짝 놀랬었어. 아프면 먼저 이야기하지."
"그럼 또 걱정하실거잖아요."
"당연히 걱정 해야되는거야. 나중에 아는것 보다 먼저 아는게 덜 걱정되니까 앞으로 꼭 이야기해줘. 알겠지?"
매번 걱정만 시키는것 같아서 죄송하다구요. 하지만 오늘따라 다정하면서도 단호한 눈빛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늘 쓰다듬던 머리가 아닌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예쁘다."하고 말하는 황형사님이었다.
조금은 달라진 사소한 행동에 금세 몸에 열이라도 오르는듯 볼이 붉게 물들었다.
♩♪♪♪-
"반장님이 찾으시나봐. 잠시 갔다 올게."
"저 괜찮으니까 신경 안쓰셔도 돼요."
"쉬고 있어."
마지막까지도 다정함을 뚝 뚝 흘리고 간 황형사님이 문을 닫자 황형사님이 두고간 비닐봉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뭘 이렇게 많이 사온거야...
제법 무거운 비닐봉지를 부스럭 거리며 침대위에 올리자 그안에는 꽤 많은 양의 약들이 들어있었다.
두통, 소화제, 생리통, 몸살, 감기, 기침 등등... 거기다가 약국에서 파는 비타민음료까지.
내가 어디가 아프다고 말한적이 없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종류별로 약이란 약은 다 사오는 사람이 어디있어.
또 혼자 끙끙대며 약을 사들고 왔을 황형사님의 모습이 단번에 그려졌다. 무얼 하든 그 일을 위해 그려오는 과정이 너무 예쁜 사람이라서 나도 몰래 또 미소가 지어졌다.
그 많은 약들중 생리통약을 하나 뜯어 물과 함께 꿀꺽 삼켰다. 아직 점심시간인데다가 약을 먹고 조금 자다가 일어나면 금세 나을것같은 느낌이라 알람을 맞춰두고 다시 침대에 몸을 뉘었다.
따뜻하게 데워진 전기장판에, 빵빵하게 부른 배덕분에 다시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다시 돌아온 황형사님이 머리를 쓰다듬다 짧게 입술도장을 쪽 남기고 간것도 모를만큼 깊이.
***
“짠-“
하루가 지난것도 아니고, 불과 몇시간이 지났을뿐인데 푹 자고 일어난만큼 몸은 개운했다.
약 하나 먹었을뿐인데 이렇게 달라져도 되나 싶을정도로 아팠던적이 없었던 사람인듯 다시 하루종일 헤헤- 거리며 웃고 다녔다.
그리고 저녁에는 우리의 단골집에서 소주 1+1 행사 소식이 들려왔는데 이를 또 그냥 넘길 수 없어서 하나, 둘 함께할 사람을 모집하다보니 어느새 (와이프의 허락을 받지 못한 반장님을 제외한)모두가 동그랗게 앉아 이렇게 술잔을 내밀고 있다.
물론 처음에는 모두가 “아침에 아팠던 애가 무슨 술이야.” 하며 거절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팔팔해져서 날아다니는 나를 보고는 결국 뒤를 따라왔다.
하지만 굳이 내 옆에 딱 붙어 앉은 황형사님은 한잔, 한잔 내밀때마다 “많이 먹지마.” 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쪽 옆에서 황형사님이 소주잔에 술 대신 물을 채워주면, 또 다른 한쪽 옆에서는 윤형사님이 황형사님 몰래 물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원래 회 먹을 땐 소독삼아 한잔씩 해줘야 하는거야.”
라는 말을 시작으로 누군가 황형사님와 이야기를 시작하면 몰래 테이블 밑에서 짠- 건배를 나눈뒤 물잔에 든 소주를 조금씩 넘겼다.
그런날 있잖아, 유난히 술이 잘들어가고 먹고싶은날. 오늘이 딱 그날이었다. 윤형사님도 마찬가지인지 오늘따라 유독 신이 나있었다.
“빈병 치워드릴게요.”
어느새 한가득 쌓인 술병을 알바생이 치워갔고 다시 새로운 술병이 우리 앞에 놓였다.
“술이 좀 늦게나왔네-“
“그러니까. 첫잔은 우리 윤형사님이 받으시죠.”
제법 술이 들어가고 흥이 오르자 별거아닌 상황에도 모두가 깔깔거리며 상황극에 동참했다. 성우는 혼자 “시간이 몇신데 이제 첫 잔을 먹습니까?!” 하며 분위기를 띄웠고 하형사님과 윤형사님은 둘다 자리에서 일어나 술을 주고 받았다.
이렇게 바라보는것 만으로도 술냄새가 가득 몰려오는것 같지만 오늘은 아무렴 어때, 그마저도 신이나고 좋았다.
짠-
마치 처음 먹는 술인것마냥 “반갑습니다-“를 외치며 다시 술잔이 부딫혔고 모두가 크으- 하는 아저씨 소리를 내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하형사님. 지금 술 끊어드시는겁니까?”
요즘들어 부쩍 술이 약해진것 같은 하형사님이 이제는 힘에 부쳤을까, 가득 채워져있던 술잔에 반정도의 술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그걸 그냥 넘어갈리 없는 성우가 큰일이라도 난것처럼 잔을 들고 일어나 호들갑을 떨었고 그 앞에는 더 큰일이 일어난것 처럼 눈을 크게 뜨고 다양한 표정연기를 보이던 윤형사님이 하형사님의 술잔을 머리위로 집어올렸다.
“여주야, 이거 어떻게 생각해?”
“오빠! 첫 잔은 원샷이겠쬬? 반샷 안대여, 반샷 안대여!”
“아, 우리 여주가 또 이렇게 애교가득한 노래까지 불러주는데, 먹어야지. 먹을게, 먹을게.”
요즘 유행하는 CF의 수지가 된것마냥 포즈까지 따라하며 노래를 부르자 결국 이기지못하고 술잔을 다시 입에 가져다대는 하형사님이었다. 그제서야 모두가 만족한듯 다시 자리에 앉았다.
“여주야, 잠깐 바람쐬러 가자.”
“어, 황형사님. 저 안취했어요!”
그냥 딱 흥이 오른 정도라 괜찮아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까부터 조용했던 황형사님이 신경이 쓰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앞서 나가는 황형사님의 표정이 너무 좋지않아서 쫄래쫄래 그 뒤를 따랐다.
가게 문을 닫자 가게안의 소음이 조금 멀어졌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황형사님은 자리에 그대로 서서 다른곳을 계속해서 바라보다 이내 다시 몸을 돌려 나에게로 향했다.
“여주야.”
“네?”
“.... 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애교 부리지마.”
뭐야, 그렇게 표정이 굳어있던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구나. 서운했구나, 화가났구나. 하지만 그런건 다 둘째치고 지금 내앞에서 질투를 뿜어내고 있는 이남자가 황형사님이라는 그 사실이 너무 귀여웠다.
“지금 질투하시는거에요? 어떡해, 너무 귀엽다.”
이 예쁜 입술이 툭 튀어나온것도, 날카로운 눈이 축 쳐져서는 나를 흘깃흘깃 바라보는게 너무나도 귀여웠다. 잘생기고 멋있고 다정하면서 귀엽기까지 하면 너무 반칙아닌가?
오늘따라 아기같은 볼이 너무 귀여워서 금세 황형사님에게 다가가 귀여운 볼을 살짝 꼬집어 당겼다.
그러면 그 반대쪽으로 고개가 돌아감과 동시에 황형사님의 팔이 탁- 소리 나게 내 팔목을 잡았다.
“장난하는거 아니잖아.”
그리고 제법 진지한 눈동자가 나의 눈빛에 닿았다. 그리고 그 눈을 바라보고 나서야 아, 이 남자 지금 화났구나 하고 상황파악이 되었다. 처음보는 화내는 황형사님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침이 꿀걱 삼켜졌다.
어떻게 해야 화를 풀어줄 수 있지? 어떻게 해야 이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 줄 수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였다.
“알겠어요, 안그럴게요. 오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귀엽게 황형사님의 품에 안겨 볼을 비비며 내 나름의 애교를 부렸다. 오,빠 이 두글자에 힘을 주는걸 잊지않고.
나의 생각대로라면 단 한번도 불러본적 없는 오빠라는 호칭에 황형사님이 빨개진 귀와 함께 금세 웃어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품에 안겼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감싸안아주지도 않고 뻣뻣히 굳어 나를 바라보기만 하는 황형사님이었다. 그저 새빨간 귀만 더 빨개져가고 있었다.
“나 지금 되게 민망한데. 안 안아줄거에요? 오빠.”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한번 더 말을 건네자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내려 나와 눈을 맞추는 황형사님이었다. 마주친 시선에 황형사님이 자주 하던대로 눈을 감고 입술을 쪽 하고 내밀자,
“아, 미치겠다. 진짜”
그제야 나의 생각처럼 웃음을 참지못하고 고개를 숙이는 황형사님이었다. 그렇게 고개를 숙인 황형사님과 눈을 맞추려 요리조리 얼굴을 내밀자 결국 나를 있는 힘껏 안아 품에 가두는 황형사님이었다.
“아 아, 아파요.”
“너 자꾸 나 미치게 할래, 응?”
내가 아프다는 소리에 살며시 나를 품에서 떼어낸 황형사님은 양손으로 내 볼을 잡고는 살짝 살짝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고개가 흔들리는 짧은 순간, 살짝 나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추었다. 쪽- 소리와 함께 가까워졌던 얼굴이 빠르게 멀어져갔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이번엔 내 얼굴이 황형사님의 귀처럼 빨갛게 달아오를것 같아서 아프지않게 황형사님의 가슴팍을 쿵- 때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다시 듣기 좋은 웃음소리와 함께 황형사님의 넓은 품이 다가왔다. 나를 품에 안고 한손으로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어떡하냐, 진짜.”
“뭐가요-“
“어떡하려고 이렇게 예뻐.”
그리고 황형사님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적당히 취한 기분좋은 밤에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와 심장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다는건 큰 행복이었다. 그 행복을 놓치기 싫어서 황형사님의 허리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우리 그냥 집에 갈까?”
“안돼요. 다 기다리잖아요.”
“그럼 안놔줄래.”
나도 벗어나긴 싫다구요. 더 꽉안오는 황형사님의 품을 파고 들었다. 사랑을 몸으로 표현한다면 딱 지금 이순간을 그대로 표현하는게 맞는것 같았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그런 사람.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그런 사랑.
너는 그런 사람이었고, 우린 그런 사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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