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고딩 또 오겠지.."
녀석이 조잘대는 것은 사람을 짜증나게 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인데, 사실 속으로는 녀석을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
밖에서 주절주절 떠드는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안대를 벗어 침대 옆 서랍 위에 올려 놓았다. 칙칙한 색의 커튼 사이로 빛들이 새어 나온다.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네 시. 한창 밖이 소란스러울 때다. 옆집에 사는 녀석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괜한 생각을 하다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었더니 벌레새끼 죽은 시체 하나도 없다. 집에 먹을 거라고는 어제 고딩이 사다준 식탁 위의 인스턴스 식품 뿐이다. 가까운 슈퍼에 가 냉장고에 물이라도 사다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 근래 며칠간 밥을 못먹은 거 같아 배가 꽤 허기지는데 이 느낌은 항상 기분이 나쁘다. 도대체 몇끼를 빼 먹었더라.. 허기는 대충 고딩이 사다준 음식을 먹으면 될 거 같고 잠깐 편의점에 가서 물과 담배만 사야겠다는 생각에 얇은 가디건을 입고는 모자를 쓰고, 지갑을 챙겼다.
현관문을 열었더니 작은 종이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어떤 놈이 끼워 넣은거지? 괜한 생각을 하며 반듯하게 접혀있던 종이를 폈다.
「아저씨자고 있을거 같아서 문은못두드리고 쪽지만 남겨요! 인스턴스 식품 사다 드리긴 했는데 그건 몸에 안좋아요.. 이따가저녁에 같이 장보러가요! 일 나가시는 거면 '010741852963'으로 카톡 좀 해주세요! 집에 있으면 깨있기만 하세요!!!! 이따 내가 데릴러 올거에요! '여덟시에' 빠빠이^v^ 」
삐뚤빼뚤 띄어쓰기도 제대로 안 되어있는 쪽지다. 누구라고는 안 써 있지만 백 퍼 옆집 고딩이 남긴 쪽지인 거 같다. 자신이 사준 인스턴스 식품이 몸에 안 좋다고 한다. 종이에 볼펜을 꾹 꾹 눌러쓴 자국도 남아있다. 강아지 같은 녀석이 종이에다가 삐뚤 빼뚤하게 글씨는 모습이 상상이 가 괜시리 웃음이 나와 작은 종이를 다시 접어 주머니에 넣으며 혼자 웃어버렸다.
"귀엽다.."
편의점 문을 열어 종이 울리는 소리와 동시에 알바생이 어서오세요 하며 밝은 목소리로 말을 한다. 곧이어 그 알바생을 아저씨하며 나를 불러 세웠다.
"...여기서 뭐하냐"
"여기서 뭐하긴 알바하죠!! 아저씨는 왜 왔어요?"
"..뭐 좀 사려고"
"아하! 그럼 마음 껏 사요!"
자신이 사준다는 듯이 말하는 녀석. 냉장고 쪽으로가 2L 물과 커피를 두 개 집어 들고 계산대 앞으로 내려 놓았다.
"이 거 하고 에쎄 라이트"
"어? 아저씨 담배 피시네요! 푸흐.. 내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거 잘 했네!"
"뭐?"
"에이, 에쎄 이거 아저씨들이 피는 담배 아니에요~ 아저씨는 젊으면서 왜 이런걸 핀대? 딴 거 펴요 레종 펴봐 에쎄 아저씨한테 안 팔래 이거 촌시려"
녀석은 아저씨 아저씨 콧노래를 부르며 내가 달라고 한 게 아닌 다른 담배 바코드를 찍고는 나머지 물병과 커피의 바코드도 찍었다.
"자~ 아저씨 만 원입니다!"
난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편의점 로고가 박힌 비닐봉투를 받아 들었다.
"아저씨 이따가 여덟시에 꼭 봐요!!"
닫힌 편의점 문 뒤에서 녀석이 소리 쳤다.
집에 들어와 식탁에 봉지를 올려 놓고 캔커피를 따 한 입에 마셨다. 봉투 안에 들어있던 녀석이 준 담배 껍질을 뜯었다. 곽을 열자마자 달달한 커피향이 확 풍겨온다.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향을 맡다 입에 물곤 불을 붙였다.
마치 어린 고딩과 어울리는 향같다. 그런데 녀석은 단지 편의점 알바생이라는 것 만으로 이런거에 대해 그렇게 잘 아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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