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 넌씨눈 짝사랑기
* * * *
경수시점
보건실에서 눈을 떴을 땐 아무도 없었다.
피곤하기도 하고, 막상 정신이 드니 수업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무엇보다 김종인을 볼 용기가 안났기때문에
억지로 눈을 붙인채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보다.
벌써 노을이 지고 있는 듯한 분위기에 한숨부터 나왔다.
이런 기분으로 오늘은 또 어떻게 공부를 해야할지. 막막해라.
휴대폰을 열어보니 부재중 통화만 30건. 뭔가 싶어서 보니, 김종인네 어머니다.
김종인네 어머니를 자주 뵙기는 해도, 통화를 할 사이는 아닌지라 걱정부터 앞섰다.
아까 손을 뿌리칠 때, 고개를 괜히 들었나 후회 중 이였기 때문에.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됐던 김종인의 표정은 너무나도 비참했다.
' 오늘 집에 안 들어간다고 한마디만 남겨놓곤 전화도 꺼놨어. 경수 넌 모르니? '
조퇴를 하겠다고 교무실로 갔다. 빡빡한 담임으로 악명 높은 선생일지라도, 하얗게 질린 내 얼굴을 보더니
나오던 잔소리도 들어가는 듯 그냥 집으로 가라고 손짓만 했다.
사실, 제정신이 아니였다. 김종인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순간, 철렁 내려 앉는 기분.
평상시였으면, 이 새끼가 중2도 아니고 사춘기도 아닌게 가출을 또 하네. 하고 말았겠지만,
도경수라는 명분하에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교무실에 갔다가 교실로 돌아오자마자 모두 저녁을 먹으러 간 텅빈 교실에 가만히 앉아 칠판만을 바라보는
찬열을 맞딱뜨렸다. 아까 종인이의 손을 거절해버리고, 아이처럼 울었던게 생각나서 괜히 어색해지려는 찰나.
˝ 김종인 나갔어. ˝
˝ ...어? ˝
˝ 걔 나갔다고. 아까 오니까 가방도 없더라. ˝
˝ 아. 그래. ˝
˝ ...안가냐. ˝
˝ 어딜. ˝
˝ 김종인 찾으러. ˝
종인이를 찾는 아주머니의 전화에 모르겠다는 대답만 남기고 끊었다.
약간의 죄책감이 있었지만, 걔가 어디있든 내 알바 아니라고. 난 더이상 그 애의 껌딱지도 아니였으니까.
˝ 꼴에 빡쳤는지 온 교실의 의자란 의자는 다 넘어뜨리고 갔더라. ˝
˝ ... ˝
˝ 성격도 더럽지. ˝
피식 웃으며 말하는 찬열의 목소리에, 찾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그냥 둬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
김종인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
제어도 못 하는 김종인 옆에는 내가 없다는 생각.
˝ 찬열아 미안해. 나, 갈게. ˝
˝ 네가 뭘 미안해. ˝
˝ ...미안해. ˝
˝ 뭐가 미안한지 알지도 못하면서. ˝
˝ 미안. ˝
가방을 들쳐매고 바로 뒤돌아 교실을 나왔다.
자꾸만 말꼬리를 흐리는 찬열이 답답했고, 그 표정이 싫었다.
오늘 참 좆같은 표정 많이 보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내 잘못이다. 모두 다.
* * * *
없었다.
미친 사람처럼 온 동네를 다 헤집었다.
안그래도 어둑해지려던 찰나 학교를 벗어나서, 집 근처로 오니 벌써 어두워졌고.
이젠 아예 깜깜해져서 앞 분간도 안갈 지경이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김종인은 없었다.
늘 옆에 있던 김종인이 없는 허전함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였나보다.
* * * *
어릴적 부터 난 지지리 궁상맞았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난 외톨이였지만 단 한번도 내가 외톨이인것이 억울하거나 이해가 안간적이 없었다.
나는 태어났을때부터 그랬고, 그래야 했고, 당연한 세상의 이치와도 같은 것 이였으니까.
하지만 외롭지 않았다고 하는것은 나에대한 너무나도 큰 거짓말이였다.
난 늘 외로웠고, 그래서 외로운 사람이 됐다.
김종인은 유일한 내 말벗이였다. 태어났을때부터 모든걸 알고 공유해온 사람.
우리 집안 역시 유서 깊고 명예로웠기에 당연하듯 사귀게 된 여러 가문의 친구들이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곰 가문의 자식 답지 않게 작고 더딘 나는, 인간사회에서 흔히들 말하는 일종의 돌연변이였다.
경종에 불과해 나와 함께 손가락질을 받던 엄마 역시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더욱더 깊숙히 폐쇄되는 기분이였다.
사람들이 던지는 작은 눈길, 속삭이는 말투에도 작아졌고, 실로 나는 더욱 더 작아지는 사람이였다.
우직하고 강단있는 아버지는 늘 나를 강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하셨지만, 태어났을때부터 가진 내 상처들은 고칠 수 없었다.
어찌됐던 간에, 나는 날때부터 외로움을 함께 지닌 그런 사람, 아니 그런 돌연변이였으니까.
가문은 좋았지만 멋진 아빠와 친척들 사이 늘 작고 여렸던 나는 당연히 멀리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다른 집 아이들은 교육을 받았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얼마 살지 못하는 새끼곰이 되어버렸다.
그런 나에게 유일하게 해사한 웃음을 공평히 지어주던 사람이 종인이였다.
그리고 종인이와 난 늘, 아마도 매일, 우리집 뒷뜰에서 숨바꼭질을 하곤 했었지.
종인이가 떠난 후엔 거기서 궁상을 떨다가 찬열이를 만났고,
뒷뜰은, 뒷뜰은.
...아, 뒷뜰.
생각을 마치면 행동은 머리가 시키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가는 것 이였다.
* * * * *
야밤에 달리기를 한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아니, 처음인가?
워낙 운동을 싫어하는 나였기에 자의적인 달리기는 거의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집 뒷뜰은 엄청나게 컸다.
전원주택인 우리 집을 커다랗게 한바퀴 둘러 싸고있는 마당, 그리고 그 곳에 위치한 작은 동산과도 같은 뒷뜰.
어릴적부터 생각이 많았던 나는 종인이와 함께, 아님 홀로 누워 생각하길 좋아했다.
연못에서 뻐끔대는 물고기들에게 밥을 주는 일도, 자라나는 꽃에게 물을 주는 일도 내 취미이자 특기였다.
때론 바닥을 보며 말을 걸기도 했고, 나무에 올라 책을 읽기도 했고. 말 하자면 아지트와도 같은 곳.
˝ ...김종인. ˝
그곳에서 김종인은, 10년전 우리처럼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겨있었다.
˝ ...웬일인데. ˝
˝ 웬일은 무슨 웬일. 내가 우리집 오는것도 네 허락 맡고 와야하냐. ˝
˝ 띠껍긴. ˝
피식 웃긴 웃는데, 어쩐지 힘이 없어보인다.
괜한 미안함과, 어색함까지 더해져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쭈뼛쭈뼛 근처로 다가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김종인 옆 잔디에 털썩 앉았다.
아, 씨. 아빠가 뒷뜰 가지 말랬는데, 또 혼나겠네.
이와중에도 아빠는 무서운 사람이다.
한참이나 정적이 찾아왔다.
김종인과 함께 있으면서 이런 순간은 많았지만, 어색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김종인은 나에게 어색할 사람이 아니였을뿐더러,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신나게 떠드는 시간보다
김종인과 한마디도 안 하는 시간이 나에겐 더 편하고 익숙했다.
물론, 오늘은 좀 제외 해야 할 것 같기도.
이렇게 불편하고 어색할 순 없어서, 조금만 더 있으면 토라도 할 것 같았다.
괜히 머쓱해지는 기분에 휴대폰을 켜서 시간을 보기도, '아, 벌써 12시네.' 라고 중얼거리기도, 교복을 탈탈 털기도 했다.
하지만 옆에 앉은 김종인은 정말 지가 돌부처라도 되는 줄 아는지 미동조차 없다.
그러다가,
˝ 도경수. ˝
˝ ...어? 어! ˝
˝ 너 나한테 화난거 있냐. ˝
˝ ...아니. ˝
˝ 그럼, 나한테 왜그래? ˝
˝ 내가 뭘. ˝
˝ 아니다, 내가 너한테 왜 화가나지? ˝
내가 뭘, 이라는 양심에도 없는 소리를 해버렸다.
도경수, 참 양심도 없지. 내가 뭘?
내가 김종인한테 지은 죄는 너무나도 많다.
일단, 이유도 없이 기피했고, 눈길조차 안줬으며,
바라보는 시선도 많은 운동장 한가운데서 뻗어오는 오랜 친구의 손을 보란듯이 내쳐버렸다.
사실 김종인의 손을 내친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런게 어딨냐고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정말 나도 모른다. 그래서 모른다고 하는거다.
억울했다. 나는 김종인의 사소한 말, 행동 하나하나 거슬리고 설레고 떨리는데, 그 아이는 모든 행동을
아무런 생각 없이 감정 없이 담아낸다는게, 그렇다는게 너무 억울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내쳐버렸다.
연인 사이도 아니면서 뭘 이런것 까지 신경써 미안해하냐 할 수도 있지만,
김종인이라면 말이 다르다.
김종인은 내 오랜 짝사랑 상대니까.
그래도 뻔뻔하게 굴 수 밖에 없다.
더이상 어색해 지기도, 질 수도 없다. 나는 이제 한계까지 왔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김종인과 친구 이상의 관계는 바래본적도, 바랄 예정도 없다.
김종인을 좋아하는 거라고 자각 한 순간부터, 아니 그 순간에도 난 욕심이 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김종인은 내 친구로 남게 하고 싶었다.
친구라는 이름은, 오랜 시간 옆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좋은 명목이 되어준다.
그렇기 때문에 난 그 오랜 시간동안, 김종인의 연애, 성장, 상처까지 지켜봐왔다.
아마, 앞으로도 욕심은 나지 않을거다.
˝ 있잖아 도경수. ˝
˝ 어. ˝
˝ 박찬열이랑 그만 좀 다녀. ˝
˝ ..왜. 기집애 같다, 너. ˝
˝ 존나 화가 난다. ˝
˝ 누가. 박찬열 싫어? ˝
˝ 박찬열이 왜 싫겠어. 언제 본 애라고. ˝
˝ 근데 왜 싫냐. ˝
˝ 그냥 네가 다른 새끼랑 시시덕 거리는게 싫어. 웃기지? ˝
˝ 뭐? ˝
˝ 그래 씨발, 나도 존나 어이가 없어. 그래서 이렇게 궁상떨잖아. 내가 도경수도 아닌데. ˝
˝ ... ˝
˝ 씨발, 모르겠다. 그냥. 그냥, 네가 다른 새끼랑 그렇게 맨날 다니고, 웃고 쪼개고, 씨발. 별 지랄을 다하는데. ˝
˝ ... ˝
˝ 존나 답답해. ˝
˝... ˝
˝ 웃기지 않냐? ˝
˝ ... ˝
˝ 존나 너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
˝ ...뭐야. ˝
˝ 씨발, 나 한은영이 다른 남자애들한테 꼬리치는 거 다 알아도 하나도 화 안나거든. ˝
˝ ... ˝
˝ 씨발, 나 왜이러지. ˝
˝ ...야. ˝
˝ 아니다, 됐어. 신경쓰지 마. 오늘 빡친것도 내가 병신이라 그런거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
˝ ... ˝
˝ 상처는 다 치료했어? ˝
김종인은 늘 어디로 튈지 모른다.
어릴때부터 그랬고, 커서도 변하지 않는 점이다.
난 욕심을 내고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종인아.
자꾸 너때문에 욕심이 생기려고 해.
넌 정말 어디로 갈지 모르는 사람이다.
또 한번 느꼈다.
넌 이기적인 사람이야.
감춰둘 내용을 여기에 입력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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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젤* |
하이루 반가어여!!!!!!!!!!!!! 글 쓴다고 생각은 했는데 늘 미루다보니 이지경;ㅅ;...허어... 참 저도 어이;가 없스빈다. 초반처럼 칼연재 하고싶어도ㅠㅠ...망므은 그래도ㅠㅠㅠ... 개강이 시작되다 보니 챙길게 많아 바빴어요! 사실 집 떠나기 직전이라 친구들 만나면서 왈콱왈콱 드링킹 했다는건 안비밀... 여튼 숙취를 다 하고 ㅋㅋㅋㅋㅋㅋㅋ 드디어 G편을 들고 왔습니당. 이번편에선 아주 자그마한~ 발전이 있었죠잉? 너무 질질 끄는 느낌이 들어서 종인이가 경수에게 느끼는 마음을 살포시 던져드렸어요! 아마곧.. 거ㅗㄷ... 곧... 종인이가 마음을 깨닫지 않을까 싶어요 허허... 그 이후엔 어떻게 전개될지 저도 몰라요.. 진짜 몰라욬ㅋㅋㅋㅋㅋ엌ㅋㅋㅋㅋㅋㅋㅋㅋ
내일 새학기 시작이네요! 저도 개강....하아.... 수많은 과제들이 쏟아지기 전에 최대한 다음편 빨리 쓸게요! 아마 이번주 내로 폭풍연재를 해야 가능할 것 같은데.. 여튼 새학기에 모두들 열공하시고! 친구도 잘 사귀시고! 대학생 분들 저처럼 되지 마시고! 술 줄이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ㅏㄷㅇ.. 아항! 딱 쓰다보니 공지가 보이더군요!!!!!!!!!!!!!! 구독료 ㅂ무료!!!!!!!! 그래서 포인트 올려쪄염 ㅇㅅㅇ(욕심) 그대신 오늘 지나면 다시 내릴겁니당. 안심하시길..(하트)
그럼 모두 주말 마무리 열심히 하세요! 싸랑함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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