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한다. 그가 내게 속삭였던 달콤했던 말들. 귓가에 머뭇거리며 맴돌던 사랑을 표현했던 그의 사랑도
아침에 일어나면 울렸던 그에게 전화가 올때만 울리도록 설정해놓았던 벨소리도, 빠짐없이 모두다. 나는 아직도 미련하게 기억하고 있다.
정말로, 유행하던 노래가사처럼 일어나면 문득 미친사람처럼 집을 돌아다니며 그의 흔적을 찾는다.
...아무것도 없을 거란 걸 다 알면서도
난 항상 잃어만 왔다. 가뜩이나 내게 주어진 것들조차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작은 행복이라도 가지려고 하면
찰나에 손가락사이로 맥없이 바람을 따라 쓸려나가곤 했다.
남들 다 받는 부모님의 사랑도 내 것은 아니었다. 가난한 집도, 부모님이 한 쪽 계시지 않은 집도 아니지만
모두 나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언니! 언니 남자친구 생겼다며?"
"...어?..그게.."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야? 괜찮아~나 다 알고 있어 생겼잖아 맞지!"
"......후...."
"......말해.. 너 남자친구 생겼잖아. 나 알고 물어보는 거야. 이름도 알고 있고,
어디에 사는지도 다 알아. 뺏기기 싫으면 순순히 말해"
언제까지 뺏겨야만 할까 너무나 두려웠다. 나에게 남은 건 그 밖엔 없었는데 그마저 뺏겨버릴까봐 겁이 났다.
어릴 때 부터 그랬으니깐. 19분 차이로 태어난 동생이 있다. 한 배에서 나왔지만 나와는 다른 동생이..
난 모든 면에서 평범하지만 동생은 그렇지 않았다. 한 배에서 나온게 맞냐고 사람들이 의아해할 정도로 예쁘고 재능넘치는,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내가 가진 것들을 다 빼앗으려는 것이다.
15살 때 생긴 남자친구도, 18살 때 생긴 남자친구도 모두 동생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하...그래. 생겼어"
"히_그치?얼마나 됐는데?"
"그건, 왜 물어봐"
"...그냥 순순히 대답하지 그래_?"
"....3년..반..정도"
"와 나 그건 몰랐는데, 괘씸하게 오래도 됐다 언니- 아 나 언니 남자친구에 대해서 아는 거 있다고 했잖아"
"......."
난 무서웠어. 그 마저 잔잔히 내 손안에서 부숴져 나갈까봐
"이름. 기성용 나이.24..아니다 올해로 25이네, 그치? 키 191 맞나?언니. 응? 얼굴도 꽤_잘생겼더라"
원망스럽다. 내가. 이번에도 맥없이 뺏겨버릴까봐 난 그게 겁이 나서
그래서 원망스럽다. 뭘 두려워하는거야 벌써 남자친구랑 3년 반이나 됐잖아_ 사랑한 시간이 자그마치 3년인데, 도대체 뭘.
"흠..진짜 잘생겼는데, 언니한텐 쫌 아깝다"
_-
정확히 동생과 그 대화를 나눈지 2주 째 되던 날. 내 남자친구는, 기성용은 나에게 이별을 고했다.
"왜..?"
"..00아. 네가 싫어서 그런건 아닌데, 하..이런말 해도 돼냐"
"말..해봐"
입술 안 쪽을 꽉 깨물었다. 이미 핑 돌아버린 눈물이 흐르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 그를 잃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
"..니 동생...흠...."
그는. 기성용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같다. 당사자는 너와 나인데, 왜 동생얘기가 나오니까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보이는 건지.
까페 탁자에 놓여있던 휴지를 머뭇거리며 만지는 그의 손이 너무나, 너무나 원망스럽다.
그새 그의 손엔 나와 함께 맞춘 커플링이 없어졌다. 난 비참하게도 아직 이렇게 끼고 있는데
"그러니까...미안하다"
"..씨..발..."
죽여버릴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