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me Day:: 13
(변백현X도경수)
다음 날, 경수는 등교를 하지 않았다.
자리에 홀로 앉은 백현의 모습은 예상 외로 차분했다.
평소라면 상황이 어찌되었든 간에 경수를 막무가내로 데리고 와 옆자리에 앉혀놓았을 백현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속은 까맣게 타고 다 헤집어져 엉망이었지만 백현은 억지로라도 평정심을 찾으려는 듯 표정을 지워냈다.
드르륵, 교실 뒷문이 열리고 백현의 친구들이 우르르 교실로 들어섰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일정하게 책상을 두드리던 손가락이 일순간 멈췄다.
백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제 친구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
담담한 표정의 백현이 천천히 그들의 얼굴을 차례차례 둘러보았다.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추려는 듯 승훈이 어색하게 손을 들어보였다.
제 친구들의 얼굴을 무표정으로 마주하던 백현이 별안간 씩 웃어보였다.
악의라고는 전혀 없는, 예전에 함께 어울려 다니던 때의 장난기 넘치는 웃음이었다.
"담배 있냐?"
백현의 물음에 허둥지둥 제 교복 안주머니를 뒤져본 승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자. 앞장서 교실을 나가는 백현의 뒤를 친구들이 쭈뼛거리며 따라나섰다.
길게 담배연기를 내뱉는 백현에게 친구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꽂혔다.
쉬는 시간마다 늘상 함께 찾았던 급식실 뒤편.
이상하리만큼 순식간에 예전으로 돌아온 것만 같은 백현의 모습에 생소한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 사이로 백현의 친구들이 초조한 듯 눈치를 굴렸다.
"왜. 어색하냐?"
"…아니, 뭐……."
"어색할 만도 하지."
백현이 담뱃재를 털어내며 푸흐흐 웃었다.
"내가 삽질을 너무 오래했지."
"……어?"
"…그만할라고. 재미없어졌어."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젓는 백현의 모습에도 여전히 분위기는 풀릴 줄을 몰랐다.
야, 표정들이 왜 그래. 기집애들처럼 삐졌냐?
백현이 한쪽 팔을 승훈의 어깨에 걸며 장난스럽게 말을 이었다.
표정부터 말투, 그리고 행동까지 완벽하게 예전 백현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제서야 조금 긴장감이 풀린 듯 승훈이 허탈하게 웃어보였다.
"진짜냐?"
승훈을 시작으로 말꼬가 트였다.
와, 대박. 진짜? 나머지 녀석들도 백현에게 다가서며 한마디씩 덧붙였다.
안 그래도 경수 일로 다들 백현의 보복을 두려워하던 찰나에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워낙 평소에도 변덕이 죽 끓듯 하던 백현이었기에 의심은 없었다.
그래, 이래야 변백현이지. 안도의 눈길이 바쁘게 오고갔다.
"……근데 니들 어제 나한테 왜 거짓말 한거냐?"
백현의 말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다시금 싸늘하게 굳었다.
대놓고 당황한 티를 내는 놈들의 모습에 백현이 또 한 번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야, 왜 그래. 나 다 알아. 도경수가 나한테 꼰지르더라, 니들이 그랬다고."
"…뭐? 그 새끼가?"
"어. 씨발 같잖아서 말이지. 뭐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나한테 참새마냥 지껄여대는 꼴 하고는."
백현이 잔뜩 비소를 흘리며 혀를 찼다.
완전하게 다시 제 친구들 편으로 돌아선 것 같은 모습이었다.
순간적으로 조성된 편안한 분위기에 잔뜩 신난 녀석들이 줄줄이 말을 쏟아냈다.
"와, 그거 진짜 웃기는 새끼네."
"지 입으로 걸레라고 아주 광고를 하고 다니는구만."
"지도 좋다고 앙앙댔으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는, 병신새끼."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조롱에 백현이 담배 하나를 더 입에 물었다. 연달아 귀에 꽂히는 경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백현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니들끼리 재미 봐서 좋았겠다, 새끼들아. 동영상이라도 찍어놓지."
"아, 그 생각을 못했네. 야, 백현아. 차라리 이따가 같이 한번 더……."
한껏 고조된 목소리로 들러붙던 현준이 급작스레 변한 백현의 표정을 눈에 담자마자 말을 멈췄다.
방금 전의 장난스러운 모습은 어디 갔냐는 듯 백현의 눈빛이 금세 살벌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서, 어제 도경수 그렇게 만든 거. 니들이 한 짓 맞다는거지."
"……어?"
"니들 멍청한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냐?"
백현이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현준의 얼굴로 튕겨냈다.
뜨겁게 타들어가는 불씨가 눈 언저리에 닿자 현준이 비명을 질렀다.
아, 좆됐다. 승훈을 비롯한 나머지 녀석들이 백현에게서 뒷걸음질 쳤다.
백현은 다시금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분노에 주먹을 떨었다.
눈앞에 있는 제 친구들의 얼굴에 상처투성이인 경수의 얼굴이 겹쳐졌다.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은 백현이 구석에 버려져있는 낡은 파이프를 들어 녀석들을 향해 있는 힘껏 집어던졌다.
***
승훈 패거리의 책상은 금세 깨끗하게 비워졌다.
백현은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은 놈들을 앞에 두고 너스레를 떨어야 했던 것이 미친 듯 역겨웠다.
하지만 그건 물증은 없고 심증만이 있는 상황에서 백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덕분에 그 놈들 입으로 직접 시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미 예상은 하고 있던 사실이지만 직접 제 귀를 통해 그 모든 것을 듣고 나니 화를 참기가 어려웠다.
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쇠파이프를 던져버린 것을 마지막으로 백현은 그들에게 어떠한 폭력도 가하지 않았다.
그 것 또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죽도록 패봤자 더 이상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차라리 놈들을 경수에게서 멀리 보내버리는게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강간상해 혐의자로 신고하기 전에 알아서 꺼지라는 말에 놈들은 생각보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증거를 확보해 두었다는 거짓말 덕분이었다. 하지만 백현은 애초에 신고를 할 용기가 없었다.
경수가 경찰서를 드나들며 그 놈들을 또 마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또한 섣불리 신고했다가는 백현 역시 경수에게 가했던 폭행죄가 적용되어 놈들과 함께 잡혀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감옥에 가는 것이 두려운 건 아니었다.
다만 그 동안 경수의 옆에 있을 수 없다는 게 두려운 것이었다.
가만히 생각에 잠겼던 백현이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덤덤한 표정으로 가방을 의자에 거는 경수의 모습을 백현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근 3일만의 등교였다.
얼굴에 상처는 많이 아물어 있었지만 안색이 엉망이었다.
그 동안의 마음고생을 대변하듯 눈에 띄게 마르고 헬쓱해진 모습이었다.
많이 보고 싶었는데.
백현은 제게 조금의 눈길도 주지 않는 경수를 말없이 눈에 담았다.
경수는 톡 건들면 금방이라도 와르르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평소처럼 손이 가는대로 만지거나 마구잡이로 말을 걸고 싶었지만 참아야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경수는 점심을 걸렀다.
늘상 찾던 학교 정원에도 가지 않았다.
반 아이들이 전부 빠져나간 교실에서 책상에 조용히 엎드린 경수의 등이 유난히도 작아보였다.
차라리 잠깐 눈이라도 붙이지, 저러다 진짜 또 쓰러지면 어떡하려고.
백현은 하루 종일 애가 탔다.
"……야."
경수는 종례를 마치기가 무섭게 곧장 교실을 나섰다.
백현의 부름에도 경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저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모습에 백현은 한숨을 쉬며 조용히 경수의 뒤를 따랐다.
꾹 말아 쥔 주먹이 백현의 심정을 대변했다.
도경수. 교문을 벗어날 때 쯤 백현이 한 번 더 경수를 부르자 그제서야 경수가 발을 멈췄다.
"……."
미간을 옅게 찌푸린 경수의 표정에 백현은 또다시 화가 났다.
경수를 가만히 내버려두며 참는 것은 이미 한계치를 넘긴지 오래였다.
결국 백현이 경수에게 다가가 단호한 표정으로 손목을 단단히 틀어잡았다.
어떻게든 집으로 데려가 억지로 밥이라도 먹여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
식탁에 경수를 앉혀놓고 싱크대 앞에 선 백현이 한쪽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일단 쌀부터……. 어색하게 중얼거리며 쌀통을 열던 백현이 온 몸에 돋는 닭살에 손을 멈췄다.
간혹 어쩌다 집에서 직접 밥을 해먹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누군가를 뒤에 앉혀놓고 요리를 하자니 오장육부가 오그라들어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백현은 쌀통을 다시 서랍장으로 집어넣었다.
"야. 너 꼼짝 말고 기다려."
피곤한 표정으로 식탁에 앉아있는 경수에게 으름장을 놓은 백현이 현관을 향했다.
직접 요리를 하느니 그냥 밖에서 뭐라도 사오는게 낫겠다 싶어서였다.
집에 가면 죽여버린다! 백현이 집을 나서며 거듭 고함을 쳤다.
"……."
넓은 주방에 홀로 남은 경수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그 날 옥상에서의 끔찍한 기억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극성스럽게 경수의 목을 졸라맸다.
지난 3일간은 물조차 넘기기 힘들만큼 많이 아팠다.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간신히 약을 먹고 잠에 들면 곧바로 악몽 속으로 빠져드는 바람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그러는 동안 자꾸만 선명하게 되새겨지는 백현의 따뜻한 표정과 말투가 경수를 내내 괴롭게 했다.
떨쳐내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다 거짓말이야, 다 가짜야. 수도 없이 자기 최면을 걸어도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래서 오고 싶지 않았다.
백현의 얼굴을 보는 것이 불편했다.
껄끄러웠으며, 수치스러웠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경수는 백현이 없는 새에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꼼짝 말고 기다려. 나가기 전 당부를 하던 백현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하지만 도저히 백현을 앞에 두고 밥을 먹을 자신이 없었다.
또한 먹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경수는 거실 한켠에 놓인 제 가방을 집어 들어 어깨에 걸쳐 멨다.
삐, 삐, 삐- 삐, 삐-
신발을 신고 막 문고리를 잡으려던 순간이었다.
하필 그 때 문 너머에서 비밀번호 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컥, 다소 급하게 열린 문 사이로 마주보고 선 둘의 눈이 코앞에서 마주쳤다.
고급 한정식 세트라고 적혀있는 종이 백을 손에 든 백현이 허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너, 내가 기다리라고……."
"……."
"가방 내려놔."
백현은 잠시 당황했던 표정을 금세 지우고 덤덤한 손길로 경수의 가방을 끌어내렸다.
미간을 찡그리며 그 손을 가볍게 쳐낸 경수가 문 사이로 빠져나가려는 순간 백현이 앞을 가로막았다.
잠깐의 정적 끝에 백현이 경수의 손을 꽉 그러쥐었다.
빈틈없이 맞잡힌 손을 경수가 잠시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백현은 경수의 손을 잡아끌고 다시 억지로 의자에 앉혔다.
"이것만 먹고 가."
"……."
"자."
앞에 마주앉은 백현이 한정식 세트 포장을 하나하나 뜯어 경수 앞으로 내밀었다.
경수는 손을 가만히 내린 채 수저를 잡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백현이 직접 숟가락을 쥐어주려고 하자 경수는 단박에 고개를 돌려버렸다.
"안 먹어."
강경한 태도에 백현은 순간적으로 밥상을 뒤집어엎어 버리려던걸 간신히 참아내야 했다.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가 짧게 한숨을 내쉰 백현이 딱딱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말로 할 때 먹어라."
"안 먹는다고."
"아 씨발……. 야."
"니랑 마주보고 밥 먹는 것보다는."
"……."
"그냥 굶어 죽는 게 나아."
말을 마친 경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섭게 저를 노려보는 백현의 눈을 잠시 마주하던 경수가 그대로 매몰차게 집을 나가버렸다.
"도경수!"
당장 따라 나가 붙잡으려던 백현은 이내 제 머리를 헝클며 도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금 미친 듯이 화가 끓어오르는 이 상태로 경수를 마주하면 제 자신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였다.
화가 나면 나는 만큼 막무가내로 행동하던 이전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었다.
백현은 참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식탁에 팔을 괸 채로 잠시 머리를 감싸 쥐고 있던 백현이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꽤 한참동안이나 애써 화를 식힌 백현이 뒤늦게 경수를 따라나섰다.
"아 씨……. 어디까지 간거야."
몸도 안좋은게 걸음은 빨라가지고. 백현이 투덜거리며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다.
너무 늦게 나온 건지, 경수는 이미 한참 멀리 간 모양이었다.
다른 길로 갔나 싶어 잠시 멈칫했던 백현은 잠깐의 고민 끝에 그냥 가던 길로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빨라지던 발이 이내 뛰기 시작했을 때쯤 저만치 멀리 경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심코 경수를 소리쳐 부르려던 백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소리를 죽였다.
경수가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작은 꼬마아이였다.
백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조용히 거리를 좁히고 가로수 뒤에 살짝 기대 몸을 숨겼다.
경수의 목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꼬마야, 뚝! 울지마. 울지 말고…. 형아랑 같이 엄마 찾으러 갈까? 같이 찾아보자. 응?"
기껏해야 다섯 살은 됐을까 싶은 어린 아이였다.
엄마를 잃어버린 건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이의 손을 꼭 마주잡은 경수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눈높이를 맞춰주고 있었다.
아이를 달래는 경수의 목소리가 한없이 살가웠다.
놀란 백현은 경수에게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경수의 따뜻한 목소리를 듣는 것도, 다정한 표정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와, 뚝 그쳤네? 진짜 씩씩하다-"
아이가 울음을 멈추자 경수가 활짝 웃으며 볼에 흐른 눈물을 닦아내 주었다.
햇살이 내리쬐는 듯 새하얀 미소에 백현의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따뜻하게 웃는 경수 모습을 더 보고 싶은데, 경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유유히 멀어져갔다.
경수가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도 여전히 뛰고 있는 가슴은 도통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백현이 한참 후에야 쓰게 웃음 지었다.
도경수가 내 얼굴을 마주보면서 저런 표정을 짓는 날이 올까.
아마도 평생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아 백현은 가슴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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