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홉총] 밀회 00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d/b/3/db3c63de16f6aba2a9c795a489f6d7ff.gif)
밀회
密會
00
「날씨가 좋구나.」
태형이 쭉 뻗은 손으로 날을 만들어 이마에다 갖다대었다. 늦봄의 따듯하고 나른한 기운을 그대로 뿜어내고 있는 저자거리는 산책삼아 거닐기 안성맞춤이었고, 김태형은 더군다나 걷는 것을 좋아했다. 시중드는 아이 하나를 대동한 채 햇살이 화창한 날이면 늘 그랬듯 태형은 사람 구경에 나섰다.
*
「나, 나리… 저, 오늘은, 제발…」
「시끄럽다, 이년아. 천한 년이 하라면 하지 무슨 말이 이리도 많아?」
소년이 애처롭게도 그리 넓지 않은 어깨를 덜덜 떨어댔다. 곧 여름이 다가오고 늦봄의 바람이 불어오는데도 마치 겨울바람을 그대로 맞은 양 떨리는 소년의 어깨에 눈길조차 한번 주지 않은 채 투박하고 거치른 남자의 손이 소년의 몸에 걸쳐진 천조각을 무자비하게 벗겨내렸다. 끝이 처져 순하고 커다란 눈꼬리 안의 새카만 눈동자가 시선을 둘 곳을 모르는 듯 이리저리 움직인다. 딱딱한 맨바닥에 닿은 등이 아팠다. 맨살이 드러나고 느껴지는 기름진 남자의 살갗에 소년이 눈을 꾹 감았다. 잠깐만, 아프면 된다고. 소년은 매번 남자와의 폭력에 가까운 관계를 가질 때마다 생각했다. 조금만 버티면, 끝날 터였다. 조금만.
*
「아흑, 읏! 아아윽… 으윽… 끅, 나, 나리, 아… 제, 발, 제발…」
소년의 눈에서 쉴새없이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액체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끅끅거리는 소년의 허벅지를 붉게 달아오르도록 쥐고 제 욕구를 채우는 데 열중하던 남자가 절정을 맞은 듯 소년의 안에 제 씨들을 뿜어내었다. 사정하자마자 소년에게는 별 볼일 없다는 듯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헛기침을 한번 한 남자가 허름한 소년의 방 문을 열어제꼈다. 다 떨어져가는 창호지를 더럽다는 듯 한번 흘겨본 남자가 소년에게 눈길조차 한번 주지 않은 채로 방을 나섰다.
「비단이 떨어졌으니 해가 지기 전에 사다 놓아라.」
남자가 사라진 뒤, 한참을 색색거리던 소년이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고운 얼굴이 보기 좋지 않게 일그러졌다. 후욱, 후욱. 숨을 몰아쉰 소년이 움직이기조차 힘든 허리를 몇 번 크지 않은 손으로 주물렀다. 빨지 않은 헝겊으로 남자가 뿜어내고 간 씨들을 닦아낸 소년이 방 구석에 처박혀 있는 구겨지고 때묻은 천조각을 몸에 다시 걸쳤다.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은 말라붙은 지 오래였다. 비단을 사다 놓아야 했다.
*
소년이 조심스레 남자의 집 대문을 나왔다. 본래대로라면 저자거리에 나가 비단을 사야 하지만, 소년은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늘 그랬듯 저자거리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뒷골목으로 접어든 소년이 아무렇게나 배치되어 있는 망가진 손수레들을 요리조리 헤집었다. 짚단으로 불룩하게 덮여진 손수레를 발견한 소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가까이 다가서서 짚단을 들추었으나 그 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잔뜩 화색이 돈 얼굴에 실망감이 서리기도 전에 등 뒤에서 누군가가 소년을 꽉 끌어안았다. 단단한 팔뚝은 여린 어깨를 감싸기에 충분했고, 소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곧 배시시 접혔다.
「자고 있는 줄 알았더니, 김남준.」
「내가 매일 잠만 자는 줄 아냐.」
팔뚝의 힘이 빠졌고 소년은 몸을 움직여 제 뒤에 서 있는 키가 큰 소년과 얼굴을 마주했다.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저와는 다르게 이리저리 밖으로 쏘다니기를 좋아하는 소년의 얼굴은 까무잡잡했고 머리카락은 그보다 더 검었으나 천박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제가 좋아하는 든든하고 다정한 미소에 마음이 놓인 소년이 끌어안긴 가슴팍에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요새 통 나오는 걸 못 봤는데 오늘은 웬일이야.」
「응, 댁에 비단이 떨어져서….」
비단을 사러 가야 한다 말만 하고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소년을 내려다보며 작게 웃은 남준이 소년의 흰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하지만 곧, 희미하게 배어나오는 남자 냄새에 남준의 미간이 있는 대로 찌푸려졌다. 소년을 제게서 떼어낸 남준이 야. 하며 소년을 불렀다. 굳어진 남준의 얼굴에 조금 놀란 듯한 소년이 왜, 라며 되물었지만 남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이미 소년은 알고 있는 듯 했다.
「그 새끼가 또…」
「…남준아,」
「넌 그렇게 살고 싶냐?」
아니야, 아니야…. 소년이 희미하게 애처로운 미소를 띈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미련하게 웃어넘기는 소년의 아직 아이 티를 벗지 못한 깨끗한 얼굴을 볼 때마다 남준은 제 가슴이 갈가리 찢기는 것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좋은 옷을 입혀주고 좋은 것을 먹여주고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소년을 빼내 오고 싶었지만 고작 하루하루를 길에서 캔 나물이나 나무를 베어 판 엽전 몇 냥으로 연연하며 살아가는 자신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는 것을 남준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저 이렇게 화를 낼 줄 모르는 소년을 대신해 화를 내고 소년이 필요할 때에 어깨를 빌려주는 것이 남준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정호석,」
「나 해 지기 전에 들어가야 돼 남준아.」
「…….」
「가자, 얼른…」
소년이 남준의 마디가 뚜렷한 손을 잡아 끌었다. 남준의 발이 움직였다. 남준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자신이 소년을 절대로 이길 수 없음을.
*
소년은 주인이 명한 비단을 사는 것도 잊고 눈 앞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화려한 비단에 넋을 놓고 있었다. 남준아, 이거 예쁘지 않아? 와, 이것도 진짜 예쁘다- 옥빛과 푸른빛의 중간쯤 되는 색을 띄는 묘한 비단에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뻗던 소년이 흠칫, 손을 거두었다. 더러운 손으로 비단을 만졌다 주인에게 무슨 욕을 들을까 걱정되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얼굴에 아쉬운 빛이 잔뜩 도는 소년을 바라보던 남준 또한 황급히 말을 돌렸다.
「자주색 비단 사 가야 되지?」
「아, 응. 저, 주인장-」
그 순간 소년의 뒤에서 사람들이 웅성이는 소리가 점점 커져오더니 이내 아낙네들의 감탄에 찬 비명소리로 바뀌었다. 소년의 옆으로 누군가가 다가섰다. 훅 끼치는 향긋한 내음과 제 몸을 뒤덮는 그림자에 소년이 고개를 돌렸다.
소년이 숨을 화앗, 하고 들이마셨다 멈췄다. 눈 앞에 서 있는 남자는 굉장히, 아름다웠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했는데, 척 봐도 굉장히 지체 높은 가문의 자제인 것 같았다. 비단결 같이 우아하고 매끄러운 살결에서는 윤기가 흘렀고 동양에서는 흔치 않은 주홍빛이 은은히 머리에서 감돌고 있었다. 몸에 두른 모든 것이 색은 수수하였으나 전혀 밋밋해 보이지 않았고 고급스러웠으며 절제되었다. 보기 드문 꽤나 잘생긴 이목구비에서는 저와 나이가 비슷한 듯 풋풋한 기가 돌았지만 위엄이 있었으며 슬쩍 웃음이 걸쳐진 입가에서는 품위가 느껴졌다. 뚫어져라 그 얼굴을 보고 있던 소년이 황급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설레임과 사랑의 감정이라기보다는 동경하던 대상을 마주한 어린아이같은 그런 감정이었다. 세상에 저런 사람도 존재할 수가 있구나. 소년은 생각했다.
가만히 옆에서 소년을 쳐다보던 남자가 기다란 손가락을 뻗어 소년이 만지려다 그만둔 옥빛 비단을 슥 쓸어내렸다. 비단을 들어올려 눈대중으로 대충 훑어본 남자가 그 비단을 제 뒤에 서 있던 하인에게 넘겼다. 가게 주인이 얼굴 가득 아첨하는 미소를 지으며 남자의 앞으로 다가왔다.
「도련님, 오셨습니까. 날씨가 참 좋죠?」
「얼마인가.」
「예, 그 비단 색이 참 곱습죠. 얼마 전에 청에서 새로 들여온…」
「얼마냐 묻지 않느냐.」
「여, 열댓 냥입니다요.」
주인이 대답을 하자 남자가 소맷단 속에 손을 넣어 엽전 꾸러미를 꺼냈다. 열댓 냥을 끌러 주인에게 던지듯 건넨 남자가 다시 소년에게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소년은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있는 채였다.
「나를 보아라.」
「예?」
「얼굴을 보이란 말이다.」
예, 예.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든 소년이 침을 꼴깍, 들이켰다. 코앞에 남자의 얼굴이 있었다. 키는 저와 거의 비슷하나 아주 조금 더 큰 듯했고,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남자의 몸이 조금이라도 움직일 때마다 풍겨오는 짙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향에 소년은 거의 넋을 놓기 직전이었다. 비단을 소년의 얼굴 옆에 가져다댄 남자가 잠시 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다 물었다.
「너는 무엇이 좋으냐.」
「무슨…」
「옷보다는 신이 나은 듯 하구나.」
소년은 남자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남자가 이윽고 그 비단을 다시 챙겨 넣었다.
「아참, 네 이름이 무엇이냐.」
「호석… 이라 합니다.」
「어디 사느냐.」
「김 대감님 댁의 몸종입니다만….」
남자의 미간이 작게 일그러졌으나 곧 펴졌다. 알았다. 라고 짧게 대답한 남자가 손을 들어 소년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고는 몸을 돌렸다. 저자거리 너머로 사라져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소년이 저를 불러오는 남준의 음성에 정신을 차렸다. 남준의 얼굴에는 설명하기 힘든 표정이 어려 있었다. 놀라움, 신기함, 뭐, 등등이 섞인.
「너, 저 분이 누구신지는 아냐?」
「누구신데?」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따박따박 얘기를 한 거냐, 이 바보야. 하기사 넌 밖에 잘 못 나오니까 모를 만도 하다만… 영의정 댁 둘째아들 김태형이잖아.」
그 순간 소년은 다리에 힘이 탁 풀리는 것 같았다. 얼굴을 몰랐을 뿐이지 영의정 가문에 관한 소문은 저도 익히 들어 아는 바가 있었다. 영의정부터가 강직하고 바른 성품에 나이가 꽤나 있는데도 정정하여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다는 힘과 세력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영의정 가문이 유명한 이유는 그 아들들에 있었다. 아들이 둘인데, 첫째가 김석진이요 둘째가 바로 저에게 말을 걸었던 김태형인 것이다. 둘 다 훤칠한 키와 조각 같은 외모로 이미 나라 전체에서 모르면 간첩일 만큼 유명했고, 더군다나 출중한 무예와 명석한 두뇌까지 갖추어 내로라 하는 집안의 여식들은 전부 그들의 눈에 한번 띄어보겠다고 용모와 학식을 가꾸었다. 어릴 적부터 장안에 모르는 이가 없었고 일찍이 임금의 총애를 받아 그들의 인생은 탄탄대로가 보장되어 있었다. 그런 김태형이 방금, 저에게 말을 걸고 웃어주었으며 심지어 이름을 물어보았던 것이다.
손이 덜덜 떨려오는 것 같았다. 무언가 실수라도 한 것은 없는지 아까 전의 상황을 다시 떠올려보려고 애썼으나 머리가 하얘져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소년이 고개를 천천히 돌려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 남준을 바라보았다. 명백한 도움을 바라는 눈길에 남준이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소년이 도리도리,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겁 먹지 말고 일단 심부름이나 해 들어가. 잘못이 없는 사람한테 나쁜 짓을 할 만큼 성품이 좋지 않은 사람은 아니라고 들었어.」
「그렇겠지? 괜찮겠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비를 맞은 강아지마냥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던 남준이 작게 웃었다. 거칠지만 커다랗고 따듯한 손이 소년의 볼통한 두 뺨을 덮고 까만 눈동자는 소년의 눈동자와 시선을 맞추었다. 소년이 가장 안정감을 느끼는 자세였다. 달달 떨리던 손이 멈추었다. 남준이 특유의 낮은 음성으로 읊조렸다.
「괜찮을 거야.」
안녕하세요, 마당쇠입니다 :)
요즘 방탄에 빠져서.. 근데 홉총에 빠져버려서..
홉총은 마이너였을 뿐이고.. 저는 소설을 읽고 싶었을 뿐이고! 결국 자급자족해야 했을 뿐이고!
ㅋㅋㅋㅋㅋㅋㅋ 여튼, 그런 이유로. 제가 직접 글잡담에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글잡에 연재를 잠깐 멈춘 지도 한 달이 넘어가는데 고새를 못 참고 다시 연재를 하게 되었네요ㅋㅋ
어쩔 수 없어요 호석이가 이러케 이쁜데 안 쓰고 배겨ㅠㅠ
원래 필명이 있지만 가수가 다른 만큼 다른 필명을 써야 할 것 같아 마당쇠라는 새로운 필명으로 여러분들을 만나뵙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잘 부탁드려요 :)♡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인스티즈앱